소설방/강안남자

(701)존경을 받다(1)

오늘의 쉼터 2014. 10. 8. 13:39

(701)존경을 받다(1)

 

(1984)존경을 받다-1 

 

 

 

사장실 안에 조철봉과 최갑중, 김경준 셋이 둘러앉았다.
 
일요일 오후. 오늘은 의원회관에 가지 않고 회사 사장실에 모인 것이다.
 
그야말로 소변보고 나서 바지 지퍼 올릴 시간도 없었던 나날이었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쓸 때도 있었는데 어떤 때는 마음이 급해서 두개,
 
세개씩 약속을 같이 잡아 함께 만난 적도 있다.
 
그러다보니 시간은 빨리 지난 것 같았지만 도무지 내실이 없다.

겉으로는 떠들썩하게 뭔가 이루고, 유명인사가 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속은 허했다.
 
가끔 자다가 일어나 멍하게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 조철봉이 제 회사 사장실로 두 심복을 부른 것이다.
 
갑중과 경준은 지금 영문을 모른 채 앉아 있다.
 
경준은 메모지까지 펴놓고 조철봉의 지시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윽고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나도 존경하는 사람이 있어야겠는데.”

뜬금없는 소리였으므로 둘은 시선만 준다.
 
작게 헛기침을 한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저기, 전(前) 대통령은 링컨을 존경한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최갑중은 알 리가 만무했으므로 김경준이 얼른 대답한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링컨, 좋지.”

뭐가 좋다는 것인지 둘은 알 수가 없을 것이었다.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대통령은 누구던가?”

“예? 뭐가 말씀입니까?”

김경준이 묻자 조철봉이 정색했다.

“존경한다는 사람 말야.”

“안중근인 것 같습니다.”

“에이.”

갑자기 조철봉이 혀를 찼으므로 두 보좌관이 긴장한다. 조철봉이 투덜거린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으로 정하려고 했는데 그 양반이 선수를 쳤군.”

“의원님.”

정색한 최갑중이 조철봉을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존경하는 인물은 왜 찾으십니까?”

“이 사람 참 답답하네.”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이 최갑중을 지그시 보았지만 김경준만 없었다면
 
개새끼 소새끼 했을 것이다.
 
멍청한 놈 따위는 기본이다.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다 존경하는 인물을 하나씩 갖고 있지 않느냐 말이야.
 
유명인사 인터뷰 기사를 보면 꼭 그걸 물어보고 다 갖고 있더라구. 그런데.”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둘을 훑어본다.

“난 없단 말이야.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없어.”

둘은 눈만 껌벅였으므로 조철봉은 답답한지 길게 숨을 뱉는다.

“그래서 하나를 만들어 보려고 안중근, 이순신, 김유신, 계백장군,
 
이렇게 적어 보았는데 딱 가슴에 와 닿는 인물이 없어.”

“… ….”

“자네들이 하나 만들어와.”

“예에?”

하고 김경준이 눈을 크게 뜨고 조철봉을 본다.

“만들어 오라니요? 어떻게.”

“글쎄, 책 뒤져서 찾아봐. 존경하는 인물도 없는 놈이 어떻게 국회의원을 하겠냐구?
 
안그래?”

“그, 그건.”

“내가 모르는 놈이면 그놈에 대한 설명서도 요약해서 가져 오고. 길게 쓰지 마.”

“예에.”

마침내 말귀를 알아들은 김경준이 메모지를 들고 기록을 했고 최갑중은
 
외면한 채 헛기침을 한다.
 
참 가지가지 한다는 표정이 얼굴에 역력했다.
 
 

 

(1985)존경을 받다-2

 

 

 

 

“찾으실거요?”

사장실을 나왔을 때 최갑중이 김경준에게 묻는다.
 
이맛살을 찌푸린 최갑중의 얼굴은 그까짓 것 찾아서 뭐 할거냐고 적혀 있었다.

“찾아야죠.”

정색한 김경준이 말하더니 복도 끝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최갑중을 똑바로 보았다.

“최 보좌관님은 의원님하고 오랜 교분이 있으시지요?”

“그거야, 좀.”

“그래서 묻는 건데 의원님이 평소에 누굴 칭찬하시거나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있었을 텐데요.”

“그거야….” 하더니 주위를 둘러본 최갑중이 불쑥 말한다.

“여자죠.”

“여자요?”

“여자는 다 좋아했으니까요.”

그러자 최갑중의 얼굴을 5초쯤 바라보던 김경준이
 
그제서야 말귀를 알아듣고 입맛을 다신다.
 
그때 최갑중이 불쑥 말한다.

“다 필요 없습니다. 아무도 저 양반하고는 어울리지 않을 테니까요.”

“무슨 말씀입니까?”

“뭔가 좀 비슷해야 존경하고 자시고 할 것 아닙니까? 예를 들어서 말이죠.”

다시 최갑중이 주위를 둘러본다.
 
복도에는 그들 둘뿐이다.

“만일 저 양반이 안중근을 존경한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다 웃을 겁니다.
 
링컨도 마찬가지죠.
 
저 양반은 안중근이나 링컨하고 전혀 관계가 없는 생활을 해왔단 말입니다.”

“아니, 누가 같은 생활을 해야 존경한다고 합니까? 그건 아무나….”

“아니죠.”

정색한 최갑중이 머리를 저었다.

“난 저 양반이 존경할 인물을 찾으라고 말한 순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찬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 쓴 것 같더라구요. 이거, 큰일났다 싶더라니까요?”

“…….”

“이거 완전히 사기꾼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란 말입니다.
 
사기꾼 정치인이 되면 나라가 위험합니다.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니까 말이죠. 안 그렇습니까?”

“그, 그거야.”

“전에 사업할 때는 사업상 돈이 왔다갔다 하다 보니까 상대한테 주고 받았지만
 
지금은 정치란 말입니다.”

“…….”

“본인은 존경을 받지 못하면서 존경하는 인물을,
 
그것도 억지로 만들어내서 국민한테 사기를 치는 거 아닙니까?”

“에이, 최 보좌관님도 오버하시기는….”

쓴웃음을 지은 김경준이 달래려고 했지만 최갑중은 누가 어깨를 잡은것처럼
 
상반신을 흔들었다.

“저 양반, 북한 가서 위원장 몇 번 만나고 오더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것 같아요.
 
존경하는 인물을 만들어 갖고 다니려고 하는 걸 보니까 이거 큰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에이, 최 보좌관님이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리고….”

숨을 고른 김경준이 정색했다.

“전부터 그런 말이 있지요. 왕은 7할이 운이고 3할의 능력으로 만들어 진다고 말이죠.”

“왕이오?”

눈을 둥그렇게 뜬 최갑중에게 김경준의 말이 이어진다.

“예, 지금은 대통령이 되겠지요. 그리고 말입니다. 우리 의원님은 순수하십니다.
 
요즘은 그런 순수성이 먹히는 시대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염려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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