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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국운(國運) 4

오늘의 쉼터 2014. 10. 7. 15:57

제22장 국운(國運) 4

 

 

 

우소가 시름에 잠겨 하룻밤을 꼴딱 새고 새벽녘에야 잠깐 눈을 붙였는데,

아침 일찍 궐에서 내관이 나와,

“대왕께서 급히 찾으십니다.”

하였다.

 

그러잖아도 하직 인사를 하러 입궐하려 했던 우소인지라 먼 길 떠날 채비를 하고

내관을 따라 장왕에게 갔더니 왕이 주위를 물리고,

“정말 가려느냐?”

어제 이미 끝난 말을 또 물었다.

우소가 속으로야 걱정이 태산 같아도,

“신심직행(信心直行)이올시다. 장부가 어찌 두 말을 하오리까!”

하자 왕이 빙그레 웃음을 띤 채로,

“따로 무슨 복안은 있느냐?”

사뭇 음성을 낮추어 반문하였다.

우소가 밤새껏 제 나름으로 궁리한 바에 따라,

“신이 승복 한 벌을 구하여 당나라 중으로 위장하고 당나라 말을 쓰면서 지경을 통과하면

금성까지는 무사히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적당히 기회를 보아 궐내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아볼 작정입니다.”

하자 왕이 여전히 웃는 낯으로 고개를 저으며,

“지금부터 내가 일러주는 대로 하라.

신라왕 덕만은 나이 쉰이 넘도록 불문에서 불도를 닦은 여자로 임금이 되고 나서

산곡간에 불사를 많이 일으킨다고 들었다.

재작년에는 왕도 금성에 분황사(芬皇寺)라는 대찰을 지었다더니

작년에는 또 대궐 서쪽 부산(富山) 골짜기에 영묘사(靈廟寺)라는 절을 짓고 자주 그곳을 드나든다고 한다. 너는 먼저 신라로 가서 덕만의 행차가 지나가는 때와 길목을 알아두라.

그러나 너 혼자로는 군사들이 호위하는 임금의 행차를 감당할 수 없다.

내가 이곳에서 맹졸들을 선발하여 각각 중이나 장사치로 위장시켜 보낼 터이니

적당한 장소에서 합류하여 매복하고 있다가 덕만이 지나가거든 한꺼번에 들이쳐 공을 세우라.”

하고 소상한 방법까지 가르쳐주었다.

왕의 말을 듣자 우소는 뛸 듯이 기뻐했다.

더구나 신라의 산곡간 지리를 훤히 꿰고 있던 왕은 우소에게 자객들과 합류할 장소까지 지정해주었다.

“부산 골짜기라면 전날 아도화상이란 자가 말한 일곱 군데 법수지(法水地:가람터) 가운데 하나인

사천미(沙川尾)가 틀림없다.

신라인들에게 사천의 끝을 물어 찾아가면 독산성(獨山城)이란 곳을 지나치자마자 묘하게 생긴

계곡이 하나 나올 것이다.

그곳은 여자의 음부를 닮아 예로부터 여근곡(女根谷)으로 불려왔는데,

여근곡의 한가운데에 옥문지(玉門池)라는 못이 하나 있다.

옥문지 주변은 음기가 드센 장소라 사람들이 꺼려서 인적이 드물 뿐만 아니라

숲이 깊고 나무가 울창하여 복병을 숨기기에 그저 그만이다.

내달 초순에 그곳에서 군사들과 만나기로 약속하면 크게 일을 그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왕은 말미에 한 마디를 덧붙였으니 이는 예전 같았으면 하지 않을 소리였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신라의 무고한 백성들은 상하게 하지 말라.

그리고 사정이 여의치 않거든 언제든 되돌아오라.”

우소가 영을 받고 떠나자 장왕은 해수를 불러 날쌘 보졸 가운데 신라말에 능통한 자들을 선발하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뽑혀 온 자들은 대략 5백 명 가량 되었다.

왕은 이들에게 독산성과 여근곡 옥문지의 위치를 친히 설명하고 일부는 승려로,

일부는 장사치로 변복을 시켜 사방의 국경으로 보내면서 목적지에 이르거든

모두 우소의 절도를 받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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