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4. 숙청 (5)
(1872)숙청-9
“무슨 사업을 하세요?”
합석하고 나서 여자가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호텔이 몇 개 있습니다.”
여자는 놀란 듯 눈이 커졌고 앞쪽 여자도 그것을 들은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이쪽을 본다.
조철봉의 시선 안에 이강준이 술잔을 집는 것이 보였다.
저 사람은 첩보전은 도사인지 몰라도 여자 앞에서는 영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든 조철봉이 여자를 똑바로 보았다.
거짓말할 때는 상대방 눈을 똑바로 보는 것이 조철봉의 버릇이다.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이죠. 난 그냥 까먹고 있습니다.”
“그러세요.?”
여자가 다시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여긴 자주 오시나 봐요?”
“예, 그런 셈이죠.”
정색한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같이 이차 나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누가 그걸 물었어요?”
피식 웃은 여자가 조철봉의 잔에 술을 따라 주면서 또 물었다.
“더 좋은 곳도 있을 텐데 왜 카바레에서 노세요?”
“여기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눈을 크게 뜬 조철봉이 곧 머리를 저어 보였다.
“댁 같은 분을 어디 가서 만날 수 있단 말이죠? 참, 그런데 이름이.”
“서애영입니다.”
“괜찮다면 같이 나갑시다.”
“또.”
하더니 여자가 눈을 흘기는 시늉을 했다.
“자꾸 그러지 마요.”
여자가 목소리를 낮췄으므로 조철봉이 바짝 다가앉았다.
“우리 방으로 옮길까요?”
머리를 든 여자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지만 조철봉은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불렀다.
웨이터는 방으로 옮기겠다는 말을 듣더니 반색을 했다.
방으로 옮기면 술값이 더 비싸진다.
방 비용에다 노래방기기 사용료, 안주도 더 들여놔야 한다.
이강준은 말할 것도 없고 그쪽 파트너도 군말이 없었으므로 넷은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합석에서 다시 방으로 한 단계씩 전진한 셈이 된 것이다.
방은 첫째로 아늑하다.
소음이 딱 끊기면서 공범 분위기가 조성된다.
대개 소파가 피 같은 붉은색으로 갖춰져 있는 것도 성적 감동에 도움이 될 것이다.
조철봉은 잘나가는 카바레 수십 곳의 방을 다녔지만 소파가 파란색이거나 하다못해
노란색도 못 보았다.
이강준은 방으로 옮기고 나서도 파트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그쪽은 가만 놔두어도 저절로 잘 굴러가고 있었다.
오히려 서둘고 보채는 이쪽이 빠직거리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조철봉은 조급해졌다.
이럴 때 심복 최갑중 같았으면 파트너를 끌고 나가 조철봉을 여자와 둘이만 있도록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우리 춤춰요.”
하고 서애영이 말하는 바람에 조철봉은 머리를 들었다.
서애영은 벌써 몸을 일으키는 중이다.
“좋지.”
잇새로 말한 조철봉은 서애영을 따라 방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춤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놈은 바지 주머니에다 탁구공을 넣고 비벼댔다고 했지만 조철봉은 자연산이다.
지금까지 춤추면서 한 번도 흥분 안 시킨 적이 없다.
다만 플로어에서 비벼대다가 같이 응응댄 상대의 눈에 띌지 그것이 걸릴 뿐이다.
그것도 어디 하나 둘인가?
여럿이 될 수도 있다.
(1873)숙청-10
춤춘 지 10분도 안 되었다.
그동안 곡이 두번째로 바뀌어서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서애영의 몸이 뜨거워진 것이다.
서애영은 조철봉을 얕본 것이 분명했다.
카바레 출입을 여러 번 하고 나면 스스로 단련되었다고 믿는 남녀가 많다.
그래서 찔벅대는 상대를 일단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서애영이 그런 경우였다.
네 수법을 훤하게 꿰고 있다는 식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런 상대에게 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했다가는 술값만 내주고 끝난다.
그러면 상대는 또 한번의 전과를 올린 용사가 되어서 더 방자하게 굴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서애영은 스텝을 밟으면서 허벅지 안쪽을 쿡쿡 찌르는 조철봉의 철봉에 압도되었다.
반쯤 녹았다는 게 맞는 표현이 될 것이다.
평상시 같으면 조철봉은 이런 수단을 쓰지 않는다.
점잖게 말로 분위기를 띄웠다가 그 자리에서 일을 치르거나 이차를 나갔는데
오늘은 팀워크에다 타이밍까지 안 좋았고, 상대도 종잡을 수 없는 여자였다.
시쳇말로 까지지도 음전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케이스였다.
더 자세히 표현하면 설까진, 까지다 만 경우의 여자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대는 가라면 빼고 오라면 또 버틴다.
그래서 본인이 춤을 추자고 한 것을 기화로 비벼댄 것이다.
비벼댄다고 해서 맷돌에 콩 갈듯이 무조건 비벼댔다간 귀싸대기 맞는다.
이것도 기술이다.
돌면서 쿡, 그것도 강약과 고저, 장단이 있어야 한다.
감질나게 했다가 힘차게 쿡, 비틀면서 쑤욱, 떨어졌다가 와락 부딪치면서 쿠욱!
작은 스텝을 밟으면서 쿠쿠쿡, 크게 돌다가 꽉!
이렇게 10분 가깝게 하고 났더니 서애영의 정신이 몽롱해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조철봉이 누구인가?
서애영은 춤을 춘 지 30초도 안 되었을 때부터 자신이 지금 상대와 응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했다.
그래서 정신없이 돌고 비틀고 비비며 부딪치면서
쿠, 쿠, 쿠, 쿠, 쿡, 쿡, 하는 동안 사지가 비틀렸고 숨이 막혀왔다.
마음이 조급해졌으며 또 다시 조철봉의 철봉이 부딪쳐 주기를 갈망했다.
잡힌 손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으며 허리를 잔뜩 붙였다가 조철봉이 떨어져 나가면
아쉬운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세곡째 춤이 이어졌을 때 서애영은 마침내 참지 못했다.
둘은 어느덧 플로어의 기둥 뒤로 옮겨와 있었는데 이곳은 홀과 격리된 장소였다.
이곳에 음탕한 짓을 하려는 두 쌍이 먼저 와 있었는데 그렇다고 악수를 하겠는가?
서로 제 파트너에게 정신이 팔려 옆에서 살인이 났다고 해도 시선을 돌리지도 않을 것이다.
“해줘.”
하고 서애영이 조철봉의 목을 두팔로 감아 안으면서 허덕였다.
“나, 흘러, 흘러내린단 말이야.”
“쌌어?”
조철봉이 서애영의 귓불을 입술로 씹으면서 물었다.
그러자 서애영이 더는 못참겠다는 듯이 손 하나를 조철봉의 바지 속으로 밀어 넣었다.
“어머.”
조철봉의 철봉을 손에 쥔 서애영이 탄성을 질렀다.
“너무 좋아.”
“나갈까?”
조철봉이 묻자 서애영이 허덕이며 말했다.
“여기 방에서 해, 친구 내보내고.”
“빈 방이 있을 거야.”
“그럼 거기로 가.”
하더니 서애영이 몸을 틀었다.
그러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 앞장을 섰으므로 조철봉은 뒤를 따랐다.
이런 순간에는 생의 활력이 최고조로 솟는다.
인간이 아름답고 인생이 황홀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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