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제왕벌

제19장 대륙행, 최초의 여인, 유부녀였다

오늘의 쉼터 2014. 10. 4. 23:30

제19장 대륙행, 최초의 여인, 유부녀였다

 

 

 

두두두두-
급박한 말발굽소리가 항주성(杭州城)의 대로 한복판을 울리고 있었다.
한 필의 백마,
자욱한 모래 먼지를 뒤로 하는 그 말은

인파가 북적대는 대로상을 쏜살같이 질주하는데......
한데 그 순간,
"앗! 위험......"
낡은 객잔에서 막 나온 행인이 비명을 토하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북적대는 인파속을 마치 아슬아슬한 곡예처럼 빠지듯 헤쳐나가는 분마.
마상(馬上),
그곳에는 괴이하게도 백주에 흑건으로 눈밑을가린 청년이 앉아 있었다.
칠채화문(七彩花紋)의 화려한 화의가

지는 꽃잎마냥 허공에서 아름답게 흩날리는데......
화려한 의복으로 보아서는 어느 고관 집의 지체높은 자손인 듯 했다.
하나,
그는 이마에 흐르는 땅방울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연신 말채찍을 휘둘러 갔으니......
두두두두-
"이랴!"
자욱한 모래 먼지를 뒤로 하고 멀어져 가는 그에게

행인들은 저마다 거친 욕설을 퍼붓는 것이었다.
"거지 같은 자식!"
"퉤! 가서 똥물에나 빠져 죽어라!"
그 험한 욕설을 듣는지 마는지......
기마는 곧장 대로의 어귀를 돌아 질풍같이 사라져갔다.

소류강(少流江),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작은 물줄기.
주위에는 십리에 걸쳐 펼쳐진 백사장,
그리고 은은한 버들향을 발하는유림이 백사장의 좌측에,
송림이 백사장의 우측에,
건너에는 끝없이 펼쳐진 아름답고 고요한 바다가 보인다.
"어영차!"
"어기영차!"
그물을 끄는 어부들의 노래가 흥겨웁게 들려오고......
갈매기가 한가롭게 노닌느 풍경은 가히 한 폭의 산수화가 아닐까?
두둥실.
청천에 백운이 일렁일 때,
다각- 따가닥-
예의 그 화의 청년이 지친 말을 이끌고 백사장으로 진입해 들어왔다.
"워......"
진한 거품을 입에 물고 있는 말을 몰고 온 그는

지체없이 백사장의 사구를 뛰어넘고,
이어,
지친 말도 쉬게 하려는 듯 말 안장에서 훌쩍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한데, 그때
휘획-
휘익-
송림의 어두운 그늘에서 몇몇이 인영이

경쾌히 솟구쳐 백사장으로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순간,
"......"
화의 청년은 반사적인 신경이 일환으로 극히 빠르게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한데,
아!
그곳에도 역시 같은 수의 인영이 와르르 솟구쳐 오르는 것이었으니......
일견,
예리해 보이는 꽉 째진 체격을 소유한 그들의 숫자는 대략 이십여 명,

<검!>

백의인들의 앞가슴에는 한결같이 이런 글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일순,
"치이......"
화의 청년은 그들의 신분을 확인한 순간

흑두건을 신경질적으로 풀어헤쳤다.
한데,
그 오관의 수려함이란......
절세가인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검각(劍閣)놈들... 앞지름을 당하다니......"
여인 같은 음성.
하나,
그 음성의 이면에는 피를 짜는 비통의 신음이 짙게 배어 있었으니......
한데,
그를 추격하는 백의인들이 검각의 인물들이라니......

검각,

대륙제일쾌(快)- 검각!
십자천검맹의 제이좌를 차지하고 있는 쾌검술의 달인 집단이 그곳이었다.
아울러,

사일검황(射日劍皇) 사우(査羽)!
빛보다 빠른.....
일명, 광섬폭살객(光閃暴殺客)이라 불리우는 광섬검예술의

극을 치달리고 있는 쾌검술의 독보적인 검황!
십자혈검난비세!
대륙의 지존검왕을 차지하기 위한 검쟁혈투의 장......
그 구검(九劍) 중 최강이라 일컫는 사일검황 사우.
당금의 대륙 무림계에 그의 행동을 제지할 인물은 전무한 상태였다.
한데,
바로 그 검각의 쾌검수들에게 쫓기고 있는 화의 청년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
백의 인들은 극히 조심스러운 몸놀림으로

화의 청년을 중심으로 서서히 원진의 형세로 포위해 들어오고 있었다.
'으음... 이젠 하는 수 없지!'
비장의 각오를 한 듯 화의 청년은 안색을 딱딱하게 굳혀갔다.
이어, 품 속에서 지체 없이 석 자 길이의 은검을 꺼내든 것이었으니......
창!
맑은 검명이 적막한 허공을 갈라 놓았다.
그것은 상당히 숙련된 잡스러움이 완전히 배재된 민첩한 동작이엇다.
하나,'
그 우아한 자세는 예리한 체격의 백의인들에게

사방을 포위당해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으니......
흑의인들 역시 눈부신 일륜을 반사시키며 발검을 했다.
소리없이 빼내든 그 모습이 상당히 노련함과,
화의 청년을 대하는 눈빛은 야수의 그것인 양 매우 무서운 빛을 발하고 있는데......
일순,
그 시선을 대한 화의 청년은 자신의 콧잔등 위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의식했다.
'으음... 어차피 난국의 형세! 그렇다면.....'
돌연,
안색을 싸늘하게 변화시킨 그는 번개같이 검세를 발동했다.
"받아랏!"
쐐애액-
아......
여인의 몸임을 숨길 수 없는......
비단이 찢어지는 듯한 음성이 발해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순간,
"흥!"
"어림 없다."
몇몇의 백의인들이 신형으로 옮기며 화의 청년의 공세를 저지시킬 찰나,
스윽-
화의 청년은 몸을 낮게 숙이며 옆으로 사보 가량 재빨리이동하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그는 미꾸라지처럼 흑의인들의 포진을 교묘히 뚫고

사구를 향해 미끄러지듯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닌가?
가히 눈부실만한 솜씨였다.
그러자,
"앗?"
"아니......"
백의인들은 잠시 주춤하더니 곧바로 대갈일성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쫓아라!"
"제길, 호리(狐狸) 같은 계집!"
화의 청년,
그는 백의인들이 비워놓은 방향,

즉, 넓은 바다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다를 향해 일직선으로 줄달음치고 있는 그는 그대로 물 속으로 뛰어들 기세였다.
한데, 그찰나,
"......"
"......"
바닷속으로 뛰어들던 화의 청년도
또 그의 뒤를 쫓던 백의인들도.
그들은 한결같이 멍한 표정을 짓고야 말았다.
그들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모아진 곳.
아......
그들은 보았다.
철썩-
밀려드는 창파에 흔들리는 편주!
언제,
그리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그 편주의 출현은 너무나도 신비로운 것이었으니...
천공,
그곳에는한 점 백운이 말없이 흘러만 가는데......
어느 한 순간.,
돌연,
배 귀신처럼 불쑥 일어난 창의인!
깊숙이 눌러쓴 죽립 때문에 그 용모는 알 수 없다.
다만,
짙푸른 청하(靑霞)를 보는 듯 시린 듯한 창의(蒼衣)에,
곧이라도 등천할 듯 전신을 휘감은 대창룡!
반짝-
그것은 태양빛을 받아 휘황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아울러,
화르르-
해풍에 흩날리는 긴 수발은 환상적이기조차 하다.
누구인가?
이토록 한적한 풍격이 어울어진 곳에 갑자기 나타난 인물은.....
이때,
화의 청년은 본능적으로 그 인물을 구원의 신이라 생각했는지...  휘익-
그는 모래를 박차고 배우 갑판 위로 뛰어올랐다.
"구... 구해 주세요. 제... 제발!"
화의 청년,
아니 화의 여인은 그제야 본색을 드러내며 다급히 뱃전으로 뛰어올랐다.
하나,
창의인!
이 대창룡의 화신같은 그 사람은 한 손에 노를 들고

쇄도해 들어오는 백의 검수들을 조용한 신색으로 대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야.
맨 앞장 선 터벅부리의 장한이 두 눈을 부릅뜨고

 거친 음성을 토함과 동시에 앞으로 다가왔다.
"뭐야, 비키지 못하겠는가?"
"......"
그러나 창의인은 묵묵 대답이 없었다.
"비키래두!"
텁석부리의 장한은 이렇게 외치며 뱃머리로 다가들었다.
순간,
휘리릭!
창의인의 손에 들려져 있던 노가 완만한 포물선을 그려

곧장 텁석부리 장한의 면상으로 날아들었다.
"흥, 어딜!"
텁석부리 장한은 노가 눈에 보이게 자신을 향해 날아들자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살짝 돌려 피했다.
한데, 살짝 피해 버린 줄 알았던 노가

재차 그의 후두부를 노리고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퍽-
격타음과 동시.
털썩-
텁석부리 장한은 비명도 지를 새 없이 모래바닥에 고꾸라졌다.
이를 본 백의 검수들은 저마다 광분의 기색을 띠었다.
"아니, 저... 육시랄 놈이......"
"방해하면 죽일 테다!"
하나,
그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창의인은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의 입에서 더운 날의 청량제와도 같은

시원한 음성이 흘러나오는 것이었으니......
"궁조도 품 안에 들면 사냥꾼도 쏘지 않는다고 했다. 단념하고 돌아가라."
은은한 위엄이 깃든 음성.
그것은 백년지기에게 말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애꾸의 백의인,

그는 짐짓 무게있는 걸음걸이로 나섰다.
"어흠, 그대는 우리가 어느 소속이라는 걸 모르는 모양인데...."
"......"
그는 상대가 말이 없자 갑자기 표정을 돌변하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 우리는 대 검각의 고수들이다. 어서 그 계집을 넘겨라!"
"......"
재차 상대가 말이 없자,

그는 극히 자애스런 미소로 바꿔갔다.
"자.. 어서 내놓아라. 그러면 좀전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
하나,
창의인은 뱃고물 위에 우뚝 선 채 말이 없었다.
한데,
극히 짧은 시간이 흐르자,
아!
그가 뱃고물에 우뚝 선 모습을 보라!
마치 거대한 태산인 양, 영겁의 침묵을 긴직한 거봉인 양......
철탑 같은 인상을 심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나니....
그것은
이미 뱃전에 올라 있는 화의 여인...
그녀는 창의인의 담담하고도 육중한 뒷모습을 대하자

잠시나마 쫓기던 시달림을 망각하고 있었다.
한데, 그때
창의인의 노가 뱃전에 수직으로 세워지며

애꾸 백의인이 고대하던 시원한 음성이 발해기는 것이었으니......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

본인은 그저 이 여인을 입장에 놓였으므로 그대들의 청을 허락지 않겠다."
담담한 음성에 뒤이은 전신에 어리는 위엄의 기도!
일순,
애꾸의 백의인을 비롯한 그들은 어쩌면 상대가 강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그 이유를 닥 꼬집어 말하라면 그들은 글쎄... 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나,
그 뒤를 이어 뇌리를 스치는 생각은 자신들의 위치,
즉, 적어도 강동무림 내에서만은 검각에 비견될 세력이 없다는 점과

자신들의 임무와 목적 등등이었으니......
불현듯,
자존심이란 말을 가슴에 떠올린 애꾸의 백의인.
그는 대뜸 거친 살광을 폭사하며 대갈일성을 터뜨렸다.
"애송이! 얼굴을 보여라!"
말을 마친 순간,
그의 신형은 뱃고물의 위로 치솟고 있었다.
하나 그 순간,
휘리릭-
퍼억-
창의인의 손에 쥐여졌던 노로 사정없이 그의 등을 후려치고 있었다.
첨벙!
애꾸의 백의인은 지체 없이 물 속으로 빠졌고,
이때
휘이잉-
불어오는 싱그런 해풍을 얼굴 가득 맞으려는 듯,
창의인은 서서히 죽립의 턱끈을 풀러갔다.
그 죽립의 턱끈이 풀어지자,
오오!
밝은 햇살 아래로 드러나는 절륜의 용모란......
환상적인 미안!
이 한 마디의 형용사는 부적당할 정도로 뛰어난 그는 바로,
하후린!
하후린이 아닌가?
일 년이 시공 끝에 출현한 하후린이었다.
대륙천금전에서 사라진 후.
오늘도 그의 이목은 그지 없이 수려한데......
한순간,
"으음!"
"아......"
백의인들은 저마다 부지중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알 수 없는 신음을 터뜨리고야 마는 것이었으니......
하후린이 풍기는 담담하면서도 높은 기품,
건장한 체구를 지닌 그의 나이는 이제 십육 세!
모든 것이 변했으련만 오직 그만이 지닌

햇살 같은 눈부신 용모는 변하지 않았는데......
백의인들은 잠시 주춤했다.
뿐인가?
그들을 피해 뱃전으로 올라선 화의 여인조차도

일견에 숨을 죽이고 말았으니......
하나,
백의검수들은 곧 스산한 살광을 발하며 하후린에게로 다가들었다.
"이름을 대라!"
악바친 음성에,
"성은 하후, 이름은 린!"
부드러운 대답은 그것이었다.
한데,
그가 풍기는 얄미울 정도의 침착성,
그리고 같은 남자의 얼굴이 이다지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는 시기심,
그것이 도리어 백의인들을 미치게 만들었으니......
"죽여라!"
"단칼에 베어 버렷!"
차라리 절규에 가까운 외침을 토한 백의인들은 성난 벌떼처럼 신형을 날렸다.
하나,
휘리릭-
휘리리- 릭-
퍽-
하후린이 휘두르는 노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유자재의 활동을 개시했으니......
휘리릭-
휘리릭-
퍽- 퍼- 억-
"억!"
"으악!"
백의인들의 참담한 비명은 허공을 처절히 갈랐고......
하나,
저 푸른 창공 위로는 갈매기들이 한가로이 유유자적 노닐고 있었으니......


그후 얼마쯤 지나서
편주,
하나의 작은 편주가 맑게 개인 해변을 한 폭의 그림인 양 유유히 흘러가는데......
"......"
"......"
뱃고물에 앉아 있는 두 남녀,
그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는 하후린과 그에게 구원을 받은 화의 여인이었다.
하후린의 노젓는 솜씨도 가히 일품,
촤아아-
일순,
뱃머리에 웅크리고 있는 화의 여인은

물끄러미 그 단려한 하후린의 옆모습을 응시했다.
하나,
하후린은 그녀의 시선을 받지 않고 사위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
'음, 상당히 먼 지점까지 나왔군!'
그렇다.
그들이 탄 배는 이미 수심이 깊은 해역으로 몰입하고 있었다.
한데 그때,
"저..."
해풍에 실린 듯한 화의 여인의 음성이슬며시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 은혜에 대한 보답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지......"
몹시도 청순한,

하나 그 가운데서도 꿋꿋하을 느끼게 하는 음성이었다.
그 음성에 마음이 상쾌해짐을 느낀 하후린은 지체없이 입을 열었다.
"희망하는 곳에 배를 대 주지. 어디가 좋을까?"
"처... 천첩은 항주까지 반드시 가야만 합니다."
반드시란 말에 특별히 강조를 둔 화의 여인.
이렇게 대답하는 그녀는 자신이 이미 여자라는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는 쓸쓸한 모습이었다.
한데,
천첩이라니?
그렇다면 벌써 결혼을 한 몸이라는 뜻이 아닌가?
하나,
하후린은 그것에 별반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항주라......"
하후린의 뇌까림이 발해지자 그녀는 기대 어린 시선으로

그의 이지적인 입술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항주로 가자면 육로로 말을 달려 두 시간,

반면 뱃길로 가면 정확히 반 시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알량한 편주로는 십절파(十絶波)를 거쳐야 하는데......"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거의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하후린은 묵직하게 고개를가로젓는 것이 아닌가?
'아......'
화의 여인은 내심 마음 한구석이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으나.....
그래도 한가닥 기대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집념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었다.
한데,
"그건 안될 말씀, 평생의 경험을 쌓고 있는 사공들도 꺼려하는

그 험해를 본인더러 항해를 하라고?"
하후린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십절파!

분명 물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한 마리의 물고기도 살지 않는 광해(狂海)가 바로 그곳이었다.
첩첩이 숨어 있는 검극 같은 암초,
만근 거석을 박살내 버릴 죽음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한아름의 거목일지라도 두 동강내 버리는 대강풍이 있는 곳.
오죽하면,
십절파 중 삼절파를 넘으면 초일류의 어부로 공인받겠는가?
"하오시면?"
"물, 특히 바다는 인간과 달리 한 번 거칠기 시작하면 그 어느 누구도 주체할 수 없지."
그는 문득 노를 놓고 우수를 들어 남쪽의 수평선을 가리켰다.
수평선과 하늘이 맞닿는 그 곳에는 아름다운 구름이 유유히 흐르는데......
"지금은 바람이 없지만 보기에도 무척이나 환상적인 저 뭉게 구름도

바람을 만나면 무서운 폭풍의 선발대로 변신하고 말지.

나는 어릴 적부터 유달리 기상의 변화에 대해 관심이 높았거든."
"죄송... 합니다."
화의 여인은 만면 가득 암울함을 담았으나

무리한 요구를 부탁한데 대한 사과를  잊지 않았다.
한데,
검고 윤기나는 치렁한 모발이 해풍에 조용히 흩날리는그녀의 모습을 보라!
탈속의 신선미를 나타내는 그녀의 절세적인 분위기에

그 누구라도 매료당할 것이 분명한 우아함이었다.
그러나,
하후린은 그녀의 미모에 관심이 없다는 듯 계속 노를 젓고 있을 뿐이었다.
일순,
그녀는 물기에 촉촉히 젖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어려우시겠지만 대상진까지만 데려다 주시면 안될까요?"
하자,
하후린은 입가에 의미있는 미소를 띄우는 것이었다.
"만일 추격대가 또다시 그대를 추월해 기다리고 있다면?"
순간,
그녀는 큼직한 눈망울에 체념의 빛을 담는 것이었다.
"용왕님의 도움을 기다릴 수밖에요."
"글쎄, 용왕님이 그렇게 한가할까?"
하후린의 말투는 상당히 냉정했다.
그러나,
그의 내심은 아무도 모르게 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으니.....
'어차피 항주로 가려던 참인데 동행해도 무방하겠군,

한데 유부녀와 같이 있다는 사실이 좀 마음에 걸리는군.'
항주(沆州)!
이곳은 색향(色鄕)이라 불리우는 역사의 고도가 아닌가?
봉황루란 희대의 윤락장소가 있고,
또한 천예화원(千藝花院)으로 불리워지는꽃시장이 있어 유명한 항주!
그 때였다.
뚝!
화의 여인의 눈에서 수정 같은 액체가 뱃전으로 떨어진 것은....
"처음 뵙는 분에게 더이상이 페를 끼치고 싶지 않지만......

이것은 저 개인의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
설움은 그녀의 말 끝을 흐리게 하고
그녀의 이성은 간신히 그 설움을 억제하고 말을 잇게 했다.
"어느 지체 높으신 분의 생명에 괸계되는 일이므로... 될 수 있다면 합니다."
상당히 세련된 언행으로 보아

고관집 여식이나 며느리의 신분으로 추측되는 그녀의 부탁에

하후린은 고개를 약간 가로 젓는 것이었다.
'지체 높다......'
이 네 글자를 떠올리는 그의 입술에 쓴웃음이 맺혔다.
"지체 높은 사람이나 밥을 빌어먹는 비렁뱅이나 그 목숨은 누구나가 귀중한 법

지체가 높으신 분만 목숨이 귀한 것은 아니겠지!"
재차 비꼰 하후린은 신비한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때,
"부탁......"
하고 입을 열던 화의 여인은 극히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 떨고야 말았다.
아아......
하후린의 미소는 여인이라도 반할 그런 기품과 화사함을 간직하고 있었으니......
'......'
한 순간,
그녀는 자신의 위급함을 망각해 버리고야 말았다.
휘잉잉-
시원한 바람이 불며 검은 모발이 그녀의 도화빛 뺨을 스치고 지나가자,
'내... 내가......'
그녀는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이내 정신을 퍼뜩 차렸다.
하후린,
그는 그녀의 동공에서 말못할 염원의 빛을 읽고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정히 원한다면...

이것도 인연이라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 그럼......"
순간적으로 기쁨의 신색을 나타내는 화의 여인.
그녀는 유부녀였다.
대륙행 최초의 여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