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제왕벌

제20장 천예화원(千藝花院)의 풍운(風雲)

오늘의 쉼터 2014. 10. 4. 23:31

 

제20장 천예화원(千藝花院)의 풍운(風雲)

 

 

 

"큰 위기를 넘겼어."
하후린은 선착장에 배를 댄 연후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사의를 표해야 할지......'
"별 말씀을... 그대나 나나 선량한 사람들이야."
"......?"
"그 거센 폭풍 속에서 이렇게 살아 나온 것을 보면 하늘이 우리를 도왔어.:"
그렇다.
이 알량한 편주로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또한 폭풍이 엄습한 십절파를 무사히 항해한 것은

실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한데 문득,
"......"
"......"
선착장에 선 그들의 시야에 관도 어귀에 위치한

거대한 유리벽이 들어오는 것이었으니!
"아...... 말로만 듣던 유리의 성! 천예화원이에요."
화의 여인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발하고야 말았다.
'천예화원? 천 가지의 꽃을 팔고 있다는 화원......'
하후린은 내심 뇌까리며 안력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유리,
황혼녁에 반사된 유리의 벽면은 실로 아름다웠다.
한데,
그 투명한 유리막 사이로는 모란, 작약, 장미, 행화 등등......
온갖 기화이초가 그 탐스러운 모습을 아낌없이 다 드러내고 있었으니......
또한
그 크기는 어디에다 비하랴?
그 유리벽 사면과 하늘을 외부로부터 차단시킨 그 유리의 성은

거대한 광장에 건립되어 있었다.
그 유리의 성은 그들로부터약 삼백 보 가량 떨어져 있었는데....
황금빛 저녁 노을 아래로 각이 진 유리면은 석양을 반사시키고,
평이한 면은 그대로 흡수하는 기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석양,
저녁 노을......
그 저녁노을 아래로 붉게 물드는 유리의 성.
또한
투명한 유리 안에서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꽃... 꽃들......
"아... 정말 아름다워요."
화의여인은 몽롱한 시선으로 유리의 성을 쫓았다.
'여자란 참 이상한 존재들이다.

보아하니 큰 근심거리가 가슴 속에 있는 것 같은데

미적 분위기에 자신의 위급한 상황도 잊어버리다니......'
하후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앞서 걸음을 옮겼다.
"그대와 난......"
"여......?"
그의 음성에 정신을 퍼뜩 차린 그녀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기색을 떠올렸다.
하후린은 그녀를 향해 미소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와 난 이제 이곳에서 작별을 고해야 해."
"......"
일순간 그녀의 커다란 봉목에 한 줄기 아쉬움이 스쳤다.
"그렇군. 아직까지 그대의 이름도 모르고 있군."
하자.
그녀는 만면 가득 당황함을 띄우고 이내 입을 열었다.
"처... 천첩의 이름은 백옥군(白玉君)이라 합니다."
떨린 음성,
그 이름을 듣는 자가 하후린이 아니었더라면 대경실색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국화선자(菊花仙子) 백옥군!

대륙 십패(十覇)인 십자천검맹 중

만화검풍곡(萬花劍風谷)의 소곡주가 되는 여인의 이름이 그녀였기에......
하나,
그녀는 결코 무명(武名)이 높은 것은 아니었다.
별호 그대로 국화와도 같은 여인......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내재된 은은한 아름다움은 대륙 제일이었으니......
한데,
그런 그녀가 검각의 고수들에게 쫓기고 있었다니.....
하후린은 그녀의 이름을 귓전으로 흘리며 창천으로 시선을 올렸다.
"사람이란 누구나가 슬픔을 잊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라오.

아니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그 슬픔이라는 존재를 잊게 마련이지.....'
"......"
화의 여인은 백옥군은 갑자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놀라지 말아요. 우연히 당신의 찢어진 앞섶을 보았소."
순간,
"어멋!"
백옥군은 다급한 비명을 토하고 자신의 앞가슴을 내려다 보았다.
길게 찢어진 앞섶.,
하나 속옷은 그대로 있어 그녀의 당혹함을 가중시키지 않았다.
한데,
그 찢어진 옷섶 사이에는 하나의 검은 조엽이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검은 나비!
아......
그것은 바로 부군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 상을 당하고

백일 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삼제조엽이었으니......
"아......"
급기야 설움의 눈물을 삼킨 화의 여인 백옥군!
그렇다면 그녀는 바로 얼마 전에 미망인이 되었단 말인가?
'정숙하고, 몹시도 아름다운 여인... 하나 미인박명... 제길!'
하후린은 내심 알 수 없는 부아가 치밀고 있었다.
여인,
처음에는 그저 그랬다.
사실,
대황금성 내에서 그의 백팔 명의 첩들 중

그녀와 비견될 미녀는 여럿 있었다.
그리고,
유무녀임을 알고난 뒤에는 더더욱 신경을 끊었었거늘......
한데,
그게 아니었다.
보면 볼수록 끈끈한 아름다움으로 자신의 마음을 휘어잡는

백옥군의 미려함은 점점 그의 일부를 확대시키고 있었으니.....
'과부라......'
그는 자신의 인내를 실험하듯 욕망을 억제했다.
"그대같이 아름다운 사람일수록 슬픔에서 곧바로 헤어나야만 하오.

앞으로 살 날은 그대가 지금껏 지내온 날들보다 훨씬 많을 테니까."
내심 한숨을 내쉰 하후린은 말을 마치자마자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
그때
"은공(恩公), 잠깐만......'
"......"
그녀의 간곡한 어조에 하후린의 발걸음이 멈춘 것은 그와 그의 도시였다.
하후린은 천천히 신형을 돌렸다.
그가 돌아서자 백옥군은 또 한 번의 기대어린 시선으로 도톰한 입술을 열었다.
"제가 ... 오늘 밤은 은혜에 보답할 기회를 주세요."
"......"
하후린은 그녀의 말을 곰곰히 생각했다.
'음... 그녀의 성의를 무시하면 안 되겠지....

슬픔을 해소하는 법!

특히 남편의 죽음에 대한 충격을 하루 속히 씻어버릴수록

저 여인에게는 그것이 큰 도움이 된다!'
그는 한껏 기대의 시선을 발하고 있는 백옥군에게 가벼운 미소를 보냈다.
"궁금하군. 무엇으로 보답할지......"
이에 그녀는 무언의 시선으로 미소한 다음 앞서 걷기 시작하는데......


천예화원,
천 가지의 꽃을 생산하고 사람들에게 매매하는 이곳을 그 누가 모른다 하겠는가?
황실을 비롯, 고관대작의 자택에 싱싱한 꽃을 배달하는

그들의 운송 능력은 만인이 높게 평가하는 사실.
유리의 성이라 일컬어지는 이곳의 규모는 정말 놀라웠다.
대략 일만 오천 평의 드넓은 광장에

천정과 사면의 벽은 온통 투명한 유리로 외부와 차단하고 있었다.
보통 건물의 오 층 높이에 해당되는 이 유리의 성에는

각 층마다 진귀한 꽃이 탐스런 자신의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는데... 

별천지!
세외별원이라 착가이 드는 이곳에 일남일녀가 찾아들었다.
마치 한 쌍의 보기좋은 원앙 같은 느낌을 주는 두 남녀.
그들은 바로 하후린과 백옥군이었다.
거대한 유리벽을 배경으로 양렬로 진열된

각양각색의 꽃들이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데,
그들이 들어서자 일백여 명에 해당하는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에게 쏠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꽃을 고르다 말고 한결같이 선망의 시선으로

하후린과 백옥군을 번갈아 보았다.
너무도 뛰어난 두 남녀의 모습에 고객들은 할 말을 잃고 있었는데......
"은공! 이것 보세요.

서역에서만 생식한다는 택사예요!"
백옥군은 진귀한 보물을 대한 듯 정신 없이 꽃내음을 만끽하고 있었다.
하후린은 그러한 그녀의 꾸밈없는 태도에 호감을 느끼며 역시 감탄을 터뜨렸다.
"호오! 정말 그렇군."
한데,
그 순간,
'......'
찰나적으로 그의  두 눈에 기광이 감돈 것은 어찌 된 연유인가?
우연일까?
그들의 뒤쪽에는 사오 명의 귀족차림을 한

고귀한 기품의 청년들이 꽃을 뽑아 감상하고 있었고,
좌측에는 면사로 얼굴을 가린 며령의 여인이

벗꽃이 피어난 가지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는데.....
이때,
"향기가 참 좋아요."
백옥군은 꽃이 만개하는 듯한 아름다운 웃음을 띄우며

한 송이의 장미를 그에게 내밀었다.
흑장미!
한데,
공교롭게도 그녀가 내민 흑장미의 모양과 꽃잎의 갯수는

하후린의 왼쪽 가슴에 붙어 있는 흑장미와 똑같지 않은가?
순간,
'몹시도 자상한 여인이다!'
하후린은 내심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했던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그는 이내 그녀가 건네준 흑장미를 코끝으로 가져가며 물었다.
"보답이 바로 이것이오?"
"맘에...... 안드시나요?"
그녀가 곤혹의 표정을 짓자,
하후린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라...

이 장미를 건넨 그 이면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소."
"......"
그러나
백옥군은...

이 미망인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쓸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심중으로만 삭이고 있었는데......
약간 어색해짐을 느낀 하후린은 싱그런 장미의 내음을 맡았다.
이어
"흐음! 향기가 아주 좋군!"
은은한 탄성을 터뜨린 그 마지막 순간,
돌연,
하후린의 검미가 빳빳이 치켜 세워지는 것이 아닌가?
그의 변한 모습에 백옥군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츠와와와왕-
휘리리리릿-
어디선가 무서운 파공성을 동반한 칼바람이

하후린의 전신을 향해 무섭게 쇄도해 들어오는 것이었다.
"악!"
그녀는 너무나도 돌발적인 사태에 비명을 토했고,
그러나
'기다리고 있었다!'
내심 외친 하후린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져 갔다.
그와 동시.
하후린의 우수가 한 번 반원을 그리자

그의 손에는 어느 새 한 송이 흑장미가 쥐어져 있었고,
그 순간,
카카캉-
몇 자루의 검신이 그의 흑장미에 부딪쳐 오는 것이었다.
찰나,
싹-
사악-
그를 노리던 몇 자루의 검신은 보기좋게 양단되어

그 사이로 붉은 선혈이 흩날리는 것이었으니......
"윽!"
"크윽!"
몇 마디 단말마의 비명이 터짐과 동시에

정확히 다섯 개의 목이 동체로부터 처참히 분리되어 나뒹굴었다.
백옥군,
그녀는 놀랍고 충격어린 시선으로 쓰러진 시선과...

나뒹구는 수급들을 바라보았다.
한데,
아아!
그들은 바로 뒤에서 꽃을 감상하던 귀족풍의 청년들이 아닌가?
"이들이 어째서......"
그녀가 경악의 뇌까림을 토할 사이도 없이.
"계집! 너도  한패지?"
하후린의 차가운 외침과 함께

또 한 번 그의 손에 있던 흑장미가 수평선으로 이동했다.
"오호호호호!"
좌측에 있던 여인의 벗꽃이 허공에 날며

그 요사스런 웃음소리가 뚝 그치는 가운데.....
촤악!
진한 핏물이 진열된 황국(黃菊) 위로 뿌려지는 것이었다.
어찌된 일인가?
이 모든 심호흡 한 번 할 동안에 일어난 급격한 상황인데.....
좌중의 고객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한데,
이때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은 바닥에 쓰러진 채

한 마디 앙칼진 교갈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네...놈! 창... 룡... 왕... 오늘은... 운이... 좋았다만...

살예혈검루의 살수는 피하지 못할 것이다!"
푹!
면사 여인은 한 마디 저주를 내뱉고 고혼으로 화했는데......

창룡왕!(蒼龍王)

아....
이 이름을 아는가?
이 창룡왕이란 세 글자가 천하에 주는 의미는 실로 거대한 충격이었다.
충격!
그것은 오히려 신선함마저 느끼게 하는 것인데......
일 년 전,
한 명의 창의 서생이 돌연 대륙에 출현했다.
허나,
그 당시에 그 누구도 그를 눈여겨 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한데,
일 년의 시각이 흐른 지금은,

그를 모르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못했으니......
천하제일 미공자!
그렇다.
오직 그의 얼굴만 보아도 상사병에 걸리게 된다는

절세기남아가 바로 그인 것이다.
술을 알고, 해학을 알고,
풍류를 아는 멋진 사내, 창룡왕!
그러나,
그가 충격의 돌풍을 몰고온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무영은밀종(無影隱密宗)!

그림자만 존재하는 무형인들......
그들에 대해 나타난 것은 오로지 하나......
신비롭다는 것 뿐이었다.
구성 인원도, 그들의 연령이나 성별도 구별할 수 없는 신비의 인물들.
그런데,
그 신비가 백일하에 밝혀진 것이었다.
비단,
밝혀진 것 뿐만이 아니라

아예 그들의 존재는 지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동영의 인자단(忍者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끔직한 만행이 드러나는 순간,

천하는 분노의 치를 떨었으니......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던 살인사건,
한 일가를 초토화시킨 방화, 학살사건,
연이어 실종되었던 여인들의 실종사건 등......
십 년 간 자행되었던 그 모든 일들이

바로 그들에 의해 저질러졌던 것이었으니......
실종된 여인들은 해외의 노예 상인에게 팔려갔다는 후문은

대륙 혼을 격동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와 함께,
창룡왕이라는 이름은 대륙혼의 등불로 떠올랐다.
은연중,
그 동안 대륙 천하의 지주로 군림했던 십자천검맹.
그들이 분열되어 혈란을 일으키자 대륙 무인들은 못마땅해 있는 상태였다.
창룡왕,
그 이름은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한데 이때.
백옥군,
그녀는 하후린이 창룡와이라는 사실을 알자

만면에 회색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대... 대인을 몰라본 죄 용서하십시오."
"새삼스럽게 무슨 인사를......"
순간,
하후린은 말을 하다 말고 급히 호흡을 정지했다.
'독분! 분명 꽃가루의 냄새....

그러나 그 속에는 가공 무비할 춘약(春藥)이......'
그는 백옥군에게 급한 전음을 보냈다.
"부인! 숨을 죽이시오."
동시에
쐐애액-
그의 검신이 흑장미가 만발한 그루터기를 무서운 기세로 양단내고야 말았다.
하자,
꽈지직-
그루터기는 완전 박살나고......
획-
한 줄기 홍영(紅影)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었으니......
"흥! 어딜!"
하후린의 손목이 비쾌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슉- 슈슈슉-
은빛 찬란한 광망이 홍영을 향해 섬전같이 쏘아져 나가는 것이었다.
하나,
홍영은 움찔하더니이어 다시 유리문 입구 밖으로 사라지는 것이엇다.
"오호... 네놈과 네놈이 구해준 저 계집은 나의 춘약에 중독되었다."
"춘약의 이름은?"
하후린은 홍영이 달리는 곳을 어림짐작으로 포착해 전음을 보냈다.
"오호호, 알고 싶으냐? 말해 줘도 무방하겠지.

장락산혼분(長樂散魂粉)에 요음산(妖淫散)을 복합시켰다.

오호호, 창룡왕!

네놈은 그 계집을 품는 순간에 죽는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오호호호!"
순간,
"낭패다!"
하후린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나직한 부르짖음을 토했다.
'장락산혼분은 양기를 원하게 되는강력한 효력을 지녔고,

반면 요음산은 음기를 원한다!

나야 상관이 없지만 이 여인은......'
그가 여기까지 생각할 때,
"아... 은공! 어... 어지러워요."
백옥군,
그녀는 무엇에 취한 듯 스르르 두 눈을 감고

그의 품 속으로 기대어 오는 것이었으니......
하후린은 이를 갈았다.
"제 칠의 암습자를 염두에 두지 못한 것이 큰 실책이었다.

그러나 네년 또한 나의 독침에 맞아 일각을 버티지 못한다!"
순간,
획-
말을 마친 그의 신형이 백옥군과 더불어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