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 남북동거(4)
(1844)남북동거-7
“아니.”
조철봉은 제 입에서 저절로 터져나온 말을 들은 순간 정신이 났다.
인간은 가끔 뇌에서 결정하기도 전에 말부터 터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속마음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조철봉의 경우는 다른 것 같다.
말을 듣고 나서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 왔기 때문이다.
후회, 또는 원망 같았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나명진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이더니 술잔을 들었다.
“좋아요, 생각나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한 모금에 양주를 삼킨 나명진이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었다.
“우린 만 하루 동안 여기에서 호흡을 맞춰야 할 테니까요.”
“만 하루 동안?”
놀란 조철봉이 눈를 크게 떴다.
“여기서 말야?”
“그래요, 그동안 본부에서는 작전계획을 수립할 것이고 수시로 지시사항이 전해질 테니까요.”
나명진이 턱으로 컴퓨터를 가리켰다.
“우린 한 팀이 되어 있는 거죠.”
“말하자면 만 하루 동안 합숙훈련이군.”
“그러네요.”
웃음 띤 얼굴로 나명진이 조철봉의 잔에 술을 채웠다.
“베이징의 장선옥씨, 미인이더군요.”
“벌써 알고 있었어?”
놀란 조철봉이 묻자 나명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잠깐 들여다봤어요.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많이 들여다보겠구먼.”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술잔을 쥐었다.
술을 꽤 마셨지만 취기가 빨리 오르지 않는다.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원 하고는 연애하기 힘들겠어.
거기에 점 박힌 것까지 다 알고 있을 테니까 말야.”
조철봉은 문득 나명진이 윤달수와 엉키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길게 숨을 뱉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먼저 주무세요.”
벽시계를 본 나명진이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전 2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전 정리 좀 하고 잘 테니까요.”
“그럴까?”
일어선 조철봉이 침대로 다가가면서 나명진에게 물었다.
“침대로 올 거지?”
“그럼요.”
술잔을 치우면서 나명진이 눈웃음을 쳤다.
“생각 있으시면 자지 말고 기다리시라고요.”
“젠장, 너무 쉽게 말하면 김이 샌단 말야. 좀 튕겨 줘야지.”
투덜거리는 시늉을 하면서 조철봉은 침대에 누웠다.
“불 꺼드려요?”
하더니 나명진이 대답도 듣지 않고 불을 껐다.
“미인계는 아주 오래된 방법이지만 지금도 효과가 있는 편이죠.”
어둠 속에서 나명진의 목소리가 울렸다.
“알면서도 빠져드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남자의 욕정은 억제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안 그래요?”
어느새 침대 옆으로 다가선 나명진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달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조철봉의 눈에 나명진의 윤곽이 드러났다.
나명진이 속삭이듯 말했다.
“난 섹스 테크닉을 철저하게 교육 받았죠.
그래서 남자들의 생리라든가 침대에서의 반응,
또 쾌락을 배가 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꽤 아는 편이죠.”
그러고는 나명진이 목구멍을 울리며 낮게 웃었다.
그 순간 조철봉은 목이 막히는 느낌을 받고는 이를 악물었다.
나명진이 도전해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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