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금마천벽(禁魔天壁)의 비밀
<벽라별궁(碧羅別宮)>
이곳은 황제의 거성인 자금성 내에서도 가장 깊고 은밀한 곳이다.
벽라별궁의 주위는 아홉 겹의 담장으로 겹겹이 차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내부는 완전히 별천지였다.
울창한 수림 속에는 가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고,
그 골짜기 사이에는 인공연못이 그림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인공연못은 벽라별궁의 후원에 있었다.
아침.
찬연한 아침 햇살이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리며 연못의 수면에 내려앉고있었다.
그 눈부신 햇살은 연못의 물결이 잔잔하게 일 때마다 현란한 빛의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헌데 바로 그 때였다.
촤아...!
갑자기 수면이 크게 흔들리더니 눈부시게 찬란한 금광이 물 속에서 솟구쳐 올랐다.
뒤이어 별안간 크게 흔들리던 수면이 쩍 갈라졌다.
우르르...첨벙!
그와 함께, 물 속에서 한 명의 전라(全裸) 소녀가 수면 위로 둥실 떠올랐다.
흡사 잉어가 물을 차며 솟아오르듯 신비스럽게 물 위로 떠오른 것은 전라소녀!
그런데, 그녀의 모습은 정녕 아름다웠다.
인어도 아니요,
물의 요정도 아닐진데, 도저히 인간의 모습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천상우물(天上尤物)인가?
투명하리만큼 맑고 희디 흰 그녀의 피부는 전체적으로 찬란한 금광을 발하고 있었다.
그녀의 온 몸에서 발산되는 눈부신 금광은 실로 신비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소녀의 전신에서 흐르는 이 금하(金霞)의 실체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 금령비황강기(金靈秘皇 氣)!
그것은 바로 전설적인 도가강기신공이었다.
참으로 믿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수백 년 전에 절전되었다고 알려진 상고절기가 소녀의 몸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 소녀는 누굴까?
소녀의 나이는 십오륙 세 가량 되어 보였다.
하지만 나이에 비해 그녀의 몸매는 아주 성숙해 보였다.
건드리면 퉁겨나올 듯 탄력 있는 젖가슴, 가는 허리와 탱탱한 굴곡을 이룬 둔부,
그리고 마치 정교한 조각과도 같이 미끈한 하체는 가히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이랴?
검고 긴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찰랑찰랑 드리워져 있었는데 물기에 젖어 윤택을 발하고 있었다.
살짝 감겨진 두 눈과, 짙고 긴 속눈썹.
그리고 선명하고 또렷한 오관은 단아하기 그지없다.
특별히, 그녀의 도톰하고 붉은 입술은 지극히 매력적이었다.
미(美)의 여신이 어느곳 하나 소홀히 다룬 곳이 없는 완벽하고도 빼어난 용모였다.
"...!"
감겼던 미소녀의 눈이 살풋 떠졌다.
이어, 그녀는 물 흐르듯 유연한 움직임을 보이며 한 곳으로 날아갔다.
그곳은 연못가에 세워져 있는 정자(亭子)였다.
아마도 소녀의 처소인 듯 싶었다.
"호호...시원하다!"
소녀의 입에서 마치 구슬이 딸랑거리며 울리는 듯한 맑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그녀의 교구는 한겹의 나삼으로 가려졌다.
장자 안은 아늑하면서도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것은 소녀의 취향을 말해주고 있었는데 깔끔한 가운데 은은한 기품과 화려한 꾸밈새가 돋보였다.
정자 안에는 백의를 입은 또 한 명의 미소녀가 다소곳한 자태로 서있었다.
나이는 십칠팔 세 가량 되었을까?
그녀의 용모 또한 꽃이 무색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는 유난히 크고 아름다운 눈을 지니고 있었다.
호수같이 맑고 깊숙한 눈은 추측할 수 없는 한없는 지혜를 담고 있었다.
"해하(海霞), 그 멍청이들이 입궐했다고?"
연못속에서 나온 미소녀는 샛별같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해하라고 불린 소녀는 그녀에게 나삼을 입혀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방금 전에 등룡전(騰龍殿)에 들었다는 전갈이 왔어요, 공주님!"
전라의 소녀는 바로 당금 황제의 막내딸인 벽라(碧羅)공주였다.
그녀는 아직 나이 어리나 경성사대미인 중 첫째로 꼽히는 빼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성격이 활달하고 무공을 좋아하여 이미 절정고수의 실력을 지니고있는 그녀였다.
"그래, 네가 보기에는 어떠하더냐?"
벽라공주는 특별한 관심조차 없이 그저 지나가는 말투로 미소녀 해하에게 물었다.
"천금왕부의 만금우 공자는 다 좋으나 지나치게 유약한 것이 흠인 것 같아요.
용모만 해도 너무 곱고 아리따워 영낙없는 여인으로 착각할 정도예요.
오히려 누이동생인 금황선(金皇仙) 만금예(萬金霓)를 뺨칠 정도의 미남자예요."
"흥, 틀렸어! 그런 기생오라비가 부마가 된다면
그날 밤을 새지 못하고 횡사하도록 만들어 주겠어!"
벽라공주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냉랭한 코웃음을 날렸다.
해하는 깊은 혜안에 이채를 빛내며 말을 이었다.
"승상부의 이검엽 공자는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지만 교만한 기회주의자가 분명해요."
그녀는 지혜로운 소녀로 사람을 보는 안목이 아주 뛰어났다.
"그는 부마가 되어 황실의 영화를 누려 보겠다는 계산을 지니고 있어요."
듣고 있던 벽라공주의 눈에 차가운 빛이 일렁거렸다.
"짜증스러워! 아바마마는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그렇게 변변찮은 자들을 부마로 삼으시려는 것인지 모르겠군."
해하는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한 벽라공주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후보인 구문제독부의 군...!"
"말 할 필요 없어. 나도 소문으로 들었으니까."
벽라공주는 해하의 말이 끝나기 전에 그녀의 말허리를 끊었다.
"그러시겠군요. 워낙 유명한 분이니...!"
"그 천하의 망나니 질풍인가 뭔가 하는 자까지 부마 후보에 들다니...
세상에 그토록 인재가 없단 말이냐?"
벽라공주는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쨋든 세 분 중 한 분을 선택하셔야 할거예요!"
해하는 벽라공주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황상께서는 공주마마께서 비황(秘皇) 일류(一流)를 이어 무도에 드신 것을 못마땅해 하시는 눈치세요.
그 때문에, 이번 기회에 공주마마를 기필코 출가시키실 작정을 하신 듯 해요."
그녀의 말에 벽라공주는 어림없다는 듯 혀를 낼름 내밀었다.
"핏! 누구 마음대로...!"
그녀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다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녀는 배시시 미소를 피워물었다.
"등룡전에 가서 몰래 설펴봐야겠다.
그래서 그 세 명이 과연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이라면
나는 그대로 비황천부로 달아나 버리겠어!"
"공주마마...!"
해하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그녀는 당혹함을 느끼며 벽라공주를 만류하려 했다.
그러자, 벽라공주는 정색을 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해하, 내가 그런 보잘것 없는 자들과 살을 맞대고 살기를 바라지는 않겠지?"
"물론이에요."
"그럼 아무말 말고 따라 와!"
벽라공주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한 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이어, 홱 몸을 돌리더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해하의 아름다운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다.
'큰일이구나. 황상께서 부마 간택을 서두시는 바람에 평지풍파가 일 듯하구나!'
그녀는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녀는 말없이 벽라공주의 뒤를 따랐다.
<등룡전(騰龍殿)>
그 내부는 지극히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었다.
사방을 장식하고 있는 번쩍이는 가구와 화려한 불빛,
고급스러운 탁자와 의자등 그 화려함이 가히 현란할 정도였다.
이곳에 삼 인이 자단목의 탁자를 가운데 두고 품자(品字)형을 이루고 앉아 있었다.
군검풍도 그 삼인 중의 일인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군검풍의 좌측에는 십 칠팔 세 가량 되어 보이는 한 명의 청년이 앉아있었다.
그의 용모는 준수한 편이었으며 자신감과 패기만만함이 넘쳐 보였다.
하지만 위로 치켜진 두 눈이 예리하게 번쩍이는 것으로 보아 지나친 자만심과 교활함이 엿보였다.
-- 자금일패룡(紫禁一覇龍) 이검엽!
그는 바로 승상부의 소공자로서 세 명의 부마 후보 중 일인이었다.
그의 뛰어난 학문은 이미 북경을 진동시켰다.
아버지인 승상(丞相)의 지도(指導)가 그를 뛰어난 학문의 소유자로 만든 것이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한 명의 강호기인을 사부로 모시고 사사받고 있었다.
따라서, 무공에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유를 종합해 볼 때, 이검엽은 자신이 부마로 간택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감에 넘쳐있는 것이다.
그는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띈 채 자신의 경쟁자로 나타난 군검풍과 또 한 명의 청년을 쓸어보았다.
군검풍의 우측에는 시선이 절로 끌릴 만큼 화려한 금의(錦衣) 미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 역시 나이는 십 칠팔 세 가량 되어보였고, 체구는 단아한 편으로 군검풍과 비슷했다.
그의 용모는 지극히 준미하여 결코 군검풍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니, 오히려 군검풍보다 더 아름다운 용모였다.
다만, 한가지 흠이라면 너무 곱상한 용모와 지나치게 뽀얗고 투명한 피부로 하여
사내다운 구석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어쩐지 그에게서는 여인과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는 것이었다.
-- 천금공자(千金公子) 만금우.
이것이 금의청년의 이름이다.
그는 천하제일부(天下第一富) 천금왕야(天金王爺)의 독자로 북경제일미남자로 알려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누이인 금황선(金皇仙) 만금예(萬金霓)는경성사대미인중 하나로 꼽히는 절세미인이었다.
"하하... 듣자하니 군형(君兄)은 요즘 야훼원의 야훼서시와 정분이 돈독하다던데,
언제 성혼주(成婚酒)를 먹을 수 있겠소?"
이검엽이 비양거리는 어투로 먼저 군검풍에게 말을 건넸다.
그의 음성은 다분히 감정적이었으며 일부러 음성을 높여 크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검풍은 여전히 무심한 모습이었다.
그는 그저 이검엽을 한차례 쓱 훑어보고는 시선을 천정에 보냈을 뿐이었다.
'저 놈이...!'
이검엽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군검풍의 태도에 그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평소 그는 군검풍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지금껏 모든 면에서 군검풍에게 눌려 왔기 때문이었다.
헌데 일 년 전부터 갑자기 군검풍의 태도가 돌변하여 방탕한 짓을 일삼고 있었지만
여전히 경성제일기재의 명성은 그에게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이검엽의 심사를 뒤틀리게 만들었다.
그는 이번에 한 가지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다른 것은 네게 모두 양보하겠다. 하지만...벽라공주만은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
이것이 그의 결심이었다.
이검엽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군검풍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는 짐짓 태연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벌써 야훼서시가 군공의 아이를 가졌다는 소문이 사실이오?"
이검엽은 군검풍이 대꾸하기를 바라며 계속 비양거렸다.
"...!"
그러나, 군검풍은 여전히 무심했다.
그는 이검엽의 말에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 듯 말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을 보다못한 만금우가 나섰다.
"이형, 남말 할 때가 아닌 것 같소! 본 천황금부의 아랫것들 사이에는 이형이
이부상서(吏府尙書)의 금옥(金玉)인 화옥란(華玉蘭) 소저를 울리고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더이다!"
"...!"
이검엽은 만금우의 뜻밖의 반격에 당황했다.
그의 안색이 그만 시뻘겋게 달아 올랐다.
"만형, 얼굴만 미남으로 뛰어난 줄 알았더니...유언비어를 만드는 재주도 뛰어나구료."
이검엽은 짐짓 시치미를 뚝 떼며 말했다.
하지만 만금우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어찌 이형 재주를 따르겠소?"
이검엽의 안면근육이 씰룩거렸다.
'무...무어라고? 저 기생오라비같은 작자가...!'
이검엽은 노기가 치밀었으나 꾹 눌러 참았다.
그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반격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실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세 청년은 그저 아무런 말도없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침묵이 이어졌을까?
"지겹군."
지금껏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던 군검풍이 혼잣말로 낮게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따분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군형, 어디 가시오? 곧 알현실에 가야하오."
만금우가 군검풍을 쳐다보며 말했다.
"잠깐 바람 좀 쏘이고 오겠소."
군검풍은 그를 쳐다 보지도 않고 말한 뒤 휭하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
"...!"
군검풍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검엽과 만금우의 눈빛이 기이하게 번뜩였다.
이검엽은 내심 이를 갈았다.
'으음. 언젠가는 내 발을 핥게 만들겠다. 건방진 놈...!'
그러나 만금우의 눈빛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내 눈이 틀림없다. 우리 금황벌(金皇閥)의 수호전사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그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내심 염두를 굴렸다.
금화벌의 수호전사!
그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쨋든 만금우는 무엇인가 숨기고있는 듯 했다.
한편, 등룡전 밖에는 두 사람이 은밀히 몸을 숨긴 채 안을 엿보고 있었다.
바로 벽라공주와 해하라는 신비소녀였다.
그녀들은 절정의 은신술로 몸을 감추고 있었다.
"네 말대로다, 해하!"
벽라공주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삼엄한 빛을 발하며 등룡전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룡전 안에서는 아무도 벽라공주가 주위에 있다는 것을 의식치 못하고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등룡전 주위에 나타났을 때 군검풍은 이미 안에 없었다.
벽라공주는 오연한 표정으로 등룡전 안에 남아있는 이검엽과 만금우를 바라보았다.
"군검풍이란 자를 보지 못했으나 보나마나일 것이다.
이검엽과 만검우, 저 두 사람은 결코 내 배필이 될 자격이 없다."
그녀는 조소어린 표정을 지으며 단정적으로 말했다.
"결국 나는 비황천부(秘皇天府)로 가야할 것 같다."
벽라공주의 안색을 살피던 해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기다려 보는것이 어떨까요?
저들 셋이 황상의 눈에 모두 들지 않으면 달리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하지만 벽라공주의 태도는 이미 확고했다.
"그만 뒤. 엄선하여 뽑은 작자들이 저 정도이거늘 달리 무엇을 기대하겠느냐?"
그녀는 아예 기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차갑게 잘라 말했다.
이어 그녀는 미련없이 홱 돌아섰다.
"나의 생은 내 스스로 결정한다. 나의 배필,
비황야(秘皇爺)가 될 인물은 나의 손으로 찾을 것이다!"
스스...!
그 말과 함께, 벽라공주의 모습이 연기같이 흩어지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홀로 남은 해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곧 자금성이 온통 발칵 뒤집히겠구나!"
하지만 이내 그녀의 모습도 안개같이 흩어졌다.
실로 상상을 불허하는 놀라운 경공이었다.
등룡전을 빠져나온 군검풍은 발길닿는 대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군검풍은 멈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두 눈이 이채로 빛났다.
"자금성 내부에 이런 절경이 있다니...!"
그의 얼굴에는 놀라운 표정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지금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주 신비한 곳에 이르러 있었다.
주위는 어쩐지 음울한 기운이 감도는 울창한 죽림(竹林)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죽림 너머로, 하늘을 찌를 듯한 석벽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실로 놀랍고도 신기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자금성 내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군검풍은 만면에 의아로운 기색을 떠올렸다.
"이상한 일이다. 북쪽인 탓에 연경 주위에는 대나무가 살지 못하거늘 이대나무들은 아주 멀쩡하다."
군검풍은 눈을 빛내며 대나무를 유심히 살폈다.
그 대나무는 멀쩡할 뿐 아니라 아주 특이한 점을 지니고 있었다.
보통 대나무와는 달리 그것은 자죽(紫竹)이었다.
은은한 자색을 띤 대나무가 음울한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자죽은 남해 특산으로써 환경적인 요인으로 볼 때
연경에서는 결코 자라지 못하며 살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군검풍의 눈앞에는
수없이 많은 자죽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이 정도로 진한 자색이 우러나려면 적어도 천 년 이상은 걸린다.
그렇다면 이 자죽이 천 년 이상 됐다는 얘기인데...!'
군검풍은 유현한 눈을 빛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그와 함께 그의 내부에서 강렬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 때였다.
휘이잉...스스스...!
대나무 잎이 흔들리면서 일진의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속에는 무엇인가 신비한 냄새가 묻어오는 듯 했다.
"저 안에 무엇인가 있을 것만 같다. 들어가 볼까?"
군검풍은 생각과 동시에 망설임없이 자죽림 속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그런데, 자죽림 속으로 한 걸음 내디딘 군검풍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별안간, 스산한 살기가 온 몸을 휘어 감았기 때문이었다.
"점입가경이군. 이 자죽림에는 진세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는 두려움이란 모르는 성격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그는 어떤 경우에 처하든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무불통지(無不通知)의 천하제일기재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실이었다.
"십방(十方)에 역천지기(逆天之氣)가 흐르고, 팔의(八儀)에 진운이 일어나니...후훗,
이것은 죽벽천형대진(竹壁天形大陣)이란 상고진세(上古陣勢)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단 한 번 살펴본 것 만으로 자죽림에 펼쳐진 상고진세를 단번에 파악해 내고 만것이었다.
스슥!
일순 그의 신형이 유연한 움직임을 보이며 자죽림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것은 설사 만권서(萬卷)를 읽은 재사(才士)라 해도 십년은 고심해야 파해할 수 있는 절진이다.
하지만 나는 눈 감고도 죽벽천형대진을 통과할 수 있다."
군검풍은 자신있게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거침없이 자죽림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과연 천하제일기재다운 안목이었다.
잠시 후 그의 모습은 자죽림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군검풍이 사라진 자죽림 앞에 하나의 그림자가 환상같이 나타났다.
스스...!
그 그림자는 한 명의 여인이었다.
바로 눈부신 미태를 지닌 벽라공주였다.
"자금성을 떠나기 전에 비황삼보(秘皇三寶)를 가져가야겠지. 이제는 황족이 아니고 무림인이니...!"
무심코 중얼거리는 벽라공주의 입에서 실로 놀라운 말이 튀어나왔다.
그녀가 스스로 황족의 신분을 버리고 무림으로 뛰어들 줄이야
그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는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놀라운 변신이었다.
"내게는 황금보다 비황삼보가 더 중요하다."
그녀는 눈을 빛내며 자죽림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는 멈칫했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이상한데...?"
그녀의 눈이 경이의 빛을 반짝였다.
그녀는 아미를 모으며 전면을 주시했다.
땅 위에 남아있는 흐릿한 발자국을 발견한 것이었다.
"이것은 내 발자국이 아니다. 누가 금마천벽(禁魔天壁)에 접근한 것일까?"
그녀의 봉목이 점점 살기로 짙어졌다.
"누군지 모르지만 잘됐다. 그렇잖아도 기분이 영 엉망이었는데..
아무라도 걸리기만 하면 그냥 두지 않겠다."
다음 순간, 벽라공주의 교구가 바람같이 자죽림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군검풍은 죽벽천형대진에서 벗어나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은 하나의 아득한 분지였다.
전면에는 깎아지른 듯한 백 장의 석벽이 앞을 가로막고 우뚝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석벽 앞에 한 채의 석옥(石屋)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얼마나 오래 전에 세워졌는지 반쯤 허물어져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듯 했다.
아예 그 형체부터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군검풍은 석옥을 바라보며 두 눈에 번쩍 이채를 띄웠다.
"뜻밖이군. 자금성 내에 이런 은밀한 곳이 있다니...!"
그는 호기심을 느끼며 석옥을 향해 다가섰다.
석옥의 문 위에는 하나의 편액(編額)이 걸려 있었다.
온통 거미줄에 뒤덮인 채 비스듬히 걸려 있는 편액은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듯 했다.
<비황별거(秘皇別居)>
편액에는 빛이 바래 희미하지만 웅휘한 서체로 그렇게 쓰여져 있었다.
"비황별거...!"
군검풍은 입 안으로 나직이 뇌까리며 석옥의 안쪽을 주시했다.
석옥 안은 깜깜하지는 않았으나 제법 어두웠다.
그 어둠 속에 먼지가 가득 앉은 식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군검풍은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일이백 년 내에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다. 원조(元朝) 때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군...!"
그는 망설임없이 석옥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방안은 제법 어두웠으나 사물은 한 눈에 들어왔다.
석옥 내부에는 꾸밈이나 장식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단지, 방 중앙에 덩그라니 놓여 있는 석탁 하나가 전부일 뿐이었다.
석탁 위에는 하나의 옥함이 먼지에 덮인 채 놓여 있었다.
"주인 없는 물건이나 실례 좀 해야겠다!"
끽!
군검풍은 호기심을 느끼며 옥함을 열어보았다.
한편,
'죽일 놈!'
그런 군검풍을 매섭게 노려보는 한 쌍의 눈이 있었다.
바로 군검풍의 발자욱을 뒤다라온 벽라공주였다.
그녀는 자죽림에 교구를 숨긴 채 군검풍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군검풍의 태도는 그녀로 하여금 분노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감히 나 주벽라(朱碧羅)의 물건을 만지다니...!'
그녀는 내심 이를 갈았다.
그녀의 봉목은 노기로 무섭게 들끓고 있었다.
그러나, 벽라공주 주벽라는 선뜻 군검풍의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 자신 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군검풍의 등 뒤로 느껴지는 쓸쓸하고 허무한 기도는
기이하게도 그녀의 방심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알 수 없는 이끌림같은 것이었다.
벽라공주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가운데도 내심 궁금함과 의혹의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저 자는 누구지? 누구인데 저런 기도를 흘린단 말인가?'
그녀의 시선은 군검풍의 뒷모습에 못박힌 듯 고정된 채 떨어지지 않았다.
군검풍은 벽라공주의 존재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그는 눈을 빛내며 옥함만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옥함 안에는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한 권의 비급과 기형의 탈(奪), 그리고 작은 금번(金幡)이 그것이었다.
비황단경(秘皇丹經).
비황천형탈(秘黃天形奪).
비황금번(秘皇金幡).
세 가지 물건은 각기 이런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군검풍은 그것들을 살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황이라는 이름의 문파도 있었던가?"
그러나 그는 모르고 있었다. 비황(秘皇)이라는 이름이 지닌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본래, 마도에 마교와 십패천이 있듯이 정파에도 이에 버금가는 전설의 강파들이 있었다.
이를 일컬어 대정팔극세(大正八極勢)라 한다.
-- 비황천부(秘皇天府)!
그것은 바로 대정팔극세의 일세(一勢)에 속한다.
달리, 비황천도맹(秘皇天道盟)이라 불리는 초강세력이다.
맹(盟)이라 불리는 이유는 비황천부가 도가오류(道家五流), 즉 태청(太靑),소청(少靑),
옥청(玉靑), 전진(全眞), 비선(秘仙)의 오파가 연맹하여 창설한 문파이기 때문이다.
비황천부의 장문영부인 비황금번이 현세하면 천하도가 십만강파가 일시에 움직인다.
그러나 그 비황금번은 이백 년 전 비황천도종과 함께 실전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황금번이 북경의 깊은 곳 자죽림 안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군검풍은 먼저 비황단경을 집어들었다. 첫 장을 열자 다음과 같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 십지마련(十地魔聯)의 가장 무서운 마두(魔頭) 십절천마(十絶天魔)를 금마천벽(禁魔天壁)에 가두노라.
그러나 그 대가로 노부 비황천도종도 회생치 못할 중상을 입었다.
후대에 연자가 이 글을 보기를 원하며 비황삼보를 남기노라.
군검풍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비황천도종, 비황삼보...십절천마...?"
그에게는 모두 생소한 이름들이었다. 하지만 웬지 호기심이 느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비황단경으로 눈길을 돌렸다.
글은 다시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 경계하거니와, 금마천벽에 접근치 말것이며 비황삼보를 비황천부로 돌려주기 바란다.
그 대가로 후인은 도종맹주(道宗盟主)의 무상명예를 얻으리라.
비황천도종 절필(絶筆)--
비황단경을 대충 훑어본 군검풍은 별로 흥미없다는 듯 비급을 덮었다.
"비황류라...! 나와는 인연이 없는 전통이군."
그는 비황단경을 덮고 일어섰다.
이어 석실의 후면 벽을 향해 마주섰다.
그는 형형하게 눈을 빛내며 벽을 주시했다.
"이 벽은 인공(人工)이 가해졌다. 금마천벽이란 곳의 입구라고 했지."
그는 문득 좌수를 쳐들었다. 그러자, 은은한 묵광이 어려 그의 좌수를 투명하게 물들였다.
그것은 바로 군검풍이 철사천부에서 대폭풍륜과 함께 얻은
무영환자의 만능살병(萬能殺兵) 잠형묵린갑으로 인한 현상이었다.
군검풍은 나름대로 혼자 추측하며 중얼거렸다.
"십절천마, 그가 누구인지 모르나, 일이백 년 전에 이곳 금마천벽에 갇혔다면 살아 있지 못할 것이다.
유해라도 거둬주는 것이 도리겠지."
그는 잠형묵린갑을 낀 좌수로 석벽의 일부를 지그시 눌렀다.
따당...!
그러자 돌가루가 튀며 무엇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석벽의 세 자 안에 감추어진 기관의 철편이 작동하는 소리였다.
그것은 격벽쇄형(隔壁碎形)이라 불리며, 잠형묵린갑으로 펼칠 수 있는
십팔종의 만능살수(萬能殺手) 중 하나였다.
그긍!
이윽고, 둔중한 굉음과 함께 석벽이 쩍 갈라졌다.
그에 따라, 스산한 음풍이 몰아치며 음침한 석로가 드러났다.
이백 년 간 밀폐되었던 탁한 공기가 순간적으로 군검풍의 얼굴에 확 끼얹어졌다.
"기분좋은 곳은 아니군."
군검풍은 한 차례 어깨를 으쓱했다.
음침하고 스산한 바람이 어쩐지 기분 나쁜 느낌을 풍겼던 것이다.
군검풍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가 석로 안으로 사라진 직후였다.
스슥!
한 줄기 왜영이 그곳으로 날아들었다.
"놀라운 자다. 내가 십 년을 두고 찾았어도 찾지 못한 금마천벽의 비밀을 한 눈에 알아내다니...!"
놀라움이 가득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는 왜영은 물론 벽라공주였다.
그녀는 봉목을 형형하게 빛내며 군검풍이 사라진 곳을 주시했다.
"십절천마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십절마예(十絶魔藝)가 저 안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림으로 흘러들면 대혼란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그녀는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슥!
다음 순간 그녀는 조심스럽게 동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십지마련에서 뛰쳐나온 십패천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십절마부(十絶魔府)의 마공을 유출시킨다면 비황류의 전인으로 면목이 없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모습은 동굴 안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군검풍은 막강한 대정지기가 흐르는 지하광장을 지나고 있었다.
"금마호정대금제(禁魔護正大禁制)...!"
그는 두 눈에 이채를 띄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르르...츠츠!
주위에는 온통 만사만마의 극성인 대정지기가 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금마호정대금제라는 것이었다.
군검풍은 한 눈에 그것을 알아보았다.
금마호정대금제는 마공과 사공을 익힌 자를 간단없이 무력하게 만드는
항마금제(降魔禁制)로 이미 천 년 이전에 실전된 절대금제였다.
금마동부 안에 그 금제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군검풍은 갈수록 놀라움을 느끼며 거듭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훗! 이 정도의 금제(禁制)라면 설사 아수라(阿修羅)라도 가둘 수 있다.
비황천도종이란 분은 대단한 분임에 틀림이 없다."
그는 비황천도종에 대해 찬탄을 금치못하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유유히 금제를 헤치며 금마호정대금제의 중궁(中宮)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하나의 옥대(玉臺)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옥대 위에는 다섯 가지 기보가 놓여 있었는데
특히 두 가지 물건이 군검풍의 눈길을 끌었다.
그것은 아홉 개의 방울이 달린 환(環)과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한 보광을 뿌리는 하나의 보주(寶珠)였다.
군검풍은 두 눈에 이채를 발하며 다섯 가지 기보를 바라보았다.
"항마오대지보(降魔五大至寶)가 이곳에 모두 모여 있다니...!
십절천마가 그토록 무서운 인물이었단 말인가?"
-- 항마오대지보(降魔五大至寶)!
도가와 불가에 전하는 사마의 극성인 오대지보.
그것은 각기 다음과 같다.
반야천검(般若天劍).
천강패도(天剛覇刀).
항마신극(降魔神戟).
구령벽정천환(九鈴霹霆天環).
범밀보패단(梵密寶貝丹).
이는 하나하나가 만마를 제압할 수 있는 절대항마력을 지닌 무상지보들이었다.
그 항마오대지보가 금마호정대금제의 가장 중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반야천검!
이는 만 가지 번뇌와 유혹을 끊으며,
아무리 강한 마력도 천강패도의 막강함 앞에는 모래같이 스러지고 만다.
또한, 항마신극의 장쾌한 항마거력은 아수라천이라도 능히 꿰뚫을 수 있었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구령벽정천환과 범일보패단이었다.
구령벽정천환은 용수존자가 악룡을 죽여 그 용골(龍骨)로 만들었다는 전설의 신병이었다.
그 중에는 구천벽정척마뢰라는 항마제일신공이 숨겨져있었다.
따라서, 구령벽정천환에는 그 구천벽정척마뢰보다 두 배 더 강한 항마지력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도 그 비밀을 풀지는 못했다.
군검풍은 항마금휘(降魔金輝)를 지나자 장쾌한 호연지기 자신을 가득 덮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감탄성을 발하며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나직한 음성으로 외쳤다.
"저곳이군!"
그의 전면, 하나의 철벽이 우뚝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철벽의 높이는 십장에 달했다.
<금마벽(禁魔璧)>
-- 다시 한 번 경계하거니와 이곳에 고금제일마(古今第一魔)가 갇혀 있으니 경망되이 접근치 말라!
철벽에는 그와 같은 글씨가 웅휘한 서체로 쓰여져 있었다.
보는 것 만으로도 위압감을 절로 풍기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철벽 아래에는 십인의 도인(道人)들이 좌화해 있는 시신이 보였다.
"비황천도맹의 고수들이겠군."
군검풍은 눈을 빛내며 앞으로 다가섰다.
십 인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었다.
가까이 다가서자 바닥에 쓰여있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 우리 천도십황(天道十皇)은 십절천마와의 일전에서 회생키 어려운 중상을 입고
결국 금마동부(禁魔洞府)에 뼈를 묻어야 한다.
그러나 그냥 죽지는 않겠다. 우리들 시신으로 천도십절대진(天道十絶大陳)을 이룰 것이다.
누구도 우리 천도십황의 최후 방벽을 넘지 못하리라!
그렇다.
천도십황은 죽으면서 도가최강의 진세를 형성했다.
하지만 군검풍은 싱긋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미안하외다. 천도십절대진은 이미 미생이 열 살 때 연마해 낸 이류 진세 밖에 되지 않소이다."
이어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천도십절대진 사이를 거침 없이 통과하는 것이 아닌가?
천도십황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아마 기절하고 말았으리라.
그들이 사력을 다해 완성했던 도가최강의 진세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줄이야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군검풍은 천하제일의 기재였다.
어릴 때부터 헤아릴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서책을 통독해온 그는
모든 방면에 있어서 그야말로 무불통지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 그가 천도십절대진의 파해법을 알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끼...긱!
군검풍이 철벽의 어딘가를 만지자 철벽은 곧장 소리를 내며 쩍 갈라졌다.
"...!"
군검풍은 철벽이 갈라지며 나타난 안쪽을 주시했다.
그곳은 사방 십 장에 달하는 한 칸의 철실(鐵室)이었다.
스스스....!
그런데, 기이하게도 철실 전체는 온통 흰색의 거미줄로 뒤덮여 있는 것이아닌가?
군검풍의 눈이 일순 번쩍 빛을 발했다.
"마라천망(魔羅天網)! 이것은 마라천망이다!
그는 경악과 의혹의 눈빛으로 전면을 주시했다.
-- 마라천망(魔羅天網).
마도의 전설로 내려오는 최강의 호신대법이다.
십 갑자 이상의 내공이면 호신강기를 유형의 실로 꼬아낼 수 있는데,
그 강사(襁絲)로 마치 누에고치같이 자신의 몸을 뒤덮어 버리는 것이 바로 마라천망이었다.
한 가닥의 마라천망을 끊으려면 절대신병으로도 일 각이 소요될 정도였다.
그만큼 마라천망은 완벽한 호신대법이었다.
군검풍은 이번에야말로 경악을 금치못했다.
'그렇다면 설마... 십절천마란 자가 살아 있단 말인가?
이 정도의 마라천망을 엮어내려면 이백 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는 의혹과 경이의 눈으로 마라천망을 주시했다.
그런데, 이 때였다.
츄___학!
번쩍...!
돌연 마라천망의 중앙부에서 눈을 멀게할 정도로 무서운 광휘가 폭사되었다.
"...!"
군검풍은 일순 신형을 휘청했다.
그는 갑작스레 쏟아진 찬란한 광휘에 눈이 파열되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광휘를 발산해 낸 것이 살아있는 인간의 눈(眼)이라는 점이었다.
한 쌍 인간의 눈이 믿을 수 없을만큼 엄청난 광휘를 폭사해낸 것이었다.
'무협지 > 폭풍세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9장 황금과 미녀의 유혹(誘惑) (0) | 2014.09.30 |
---|---|
제8장 마녀(魔女)와의 정사(情事) (0) | 2014.09.30 |
제6장 철사천부(鐵獅天府)의 기연(奇緣) (0) | 2014.09.30 |
제5장 십전제왕, 그 첫걸음은 여인으로부터 (0) | 2014.09.30 |
제4장 악인마교, 저주는 시작되었다 (0) | 2014.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