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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호각세(互角勢) 5

오늘의 쉼터 2014. 9. 30. 11:35

제21장 호각세(互角勢) 5

 

 

 

 

유신이 좌중을 둘러보다가,

“박천효(朴天曉)가 뵈지 않네.”

하며 거타주 조진의 아들을 묻자 천효와 동갑이던 수승이,

“천효가 본래 상수살이보다도 유신 형님 쫓아다니며 술 먹는 재미로 살던 사람인데

 

형님마저 상수관을 떠나시고 나자 걸핏하면 게으름을 피웁니다.

 

근자 상수관 관리들은 천효 때문에 골머리를 톡톡히 썩이고 있습지요.”

하고서,

“형님이 오신 줄을 알면 실은 천효가 제일 기뻐 날뛸 텐데,

 

지금이라도 제가 가서 데리고 오리이까?”

하고 물었다. 유신이 그럴 것까지 없다며 손사래를 치고서,

“천효가 끝내 오지 않거든 나중에 자네가 천효 집에 들러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을 그대로 옮기게.”

하고는 드디어 입을 열어 용무를 말하였다.

그러잖아도 심상찮은 기운을 감지하고 그 내막을 궁금해 하던 상수들은 덕만 공주가 선도산으로

 

피신해 있으며, 용춘이 따로 진채를 만들어 임금을 시해한 백반 일당과 한판 결전을 벌일 태세라는

 

유신의 말에 크게 놀라는 눈치들이었다.

 

대강의 돌아가는 사정을 전한 유신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들이 금일 밤중으로 각자 고향집에 돌아가서 원군을 좀 얻어와야겠네.

 

임금이자 형을 죽인 흉악한 백반을 우리가 어떻게 새 임금으로 모실 수 있겠는가?

 

내가 알기로 덕만 공주는 비록 여자이긴 해도 성정이 곧고 품성이 바르며 지기가 뛰어나

 

능히 일국의 정사를 경영할 만한 분이네. 하니 어떤가?

 

자네들이 나서서 스러지는 사직과 꺼져가는 국세를 보란 듯이 한번 일으켜보지 않겠는가?”

유신의 말이 끝나자 가장 연장자인 금강이 먼저 대답했다.

“옳은 말씀이네.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태곳적에나 있었던 이놈의 빌어먹을 상수살이를 복원해

 

수많은 청년들의 인생을 망친 장본인이 바로 백반이 아니던가?

 

그런 자가 임금이 되면 나라야 망하지 달리 무슨 수가 있어?

 

아무렴, 자네 뜻에 따르겠네.”

상수의 맏형 격인 금강의 말은 병부에 갇혀 지내는 상수들의 억울한 심정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것이었다.

 

금강의 나이 마흔, 그리고 그가 상수살이를 시작한 지 어언 13년.

 

동년배들은 이미 벼슬길에 나선 지 오래요,

 

심지어 문충의 아버지 진부만 해도 금광과는 허교하는 사이였다.

 

그렇게 한번 상수가 되면 한도 없고 끝도 없이 상수관에 구어박혀 한창 아름다운 호시절을

 

값없이 흘려보내니,

 

인생을 두세 번씩 산다면 모를까 자다 생각해도 분하고 억울해서 바득바득 이가 갈렸다.

 

금강보다 나이는 아래지만 품일이나 수승도 상수관이 처음 생길 때부터 징역살이를

 

시작한 사람들이었고, 나머지도 대개는 6, 7년씩 붙잡혀 무위의 나날을 보내오고 있던 터였다.

 

10여 년 상수살이 끝에 풀려난 유신이 상수들의 이런 사정을 모를 턱이 없었다.

“우리가 힘을 모아 이번에 반드시 덕만 공주를 임금으로 옹립하세.

 

그리하여 나라 안의 육사(六邪)를 몰아내고 상수 제도와 같은 악법을 혁파해야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 더 안 나올 것 아닌가?

 

여기 진주나 문충을 봐서라도 나는 이번 일에 목숨을 걸고 신명을 바치겠네.

 

세월은 손가락 사이의 물살처럼 빠져나가는데 파릇파릇한 청년들이 볼모로 붙잡혀 덧없이

 

늙어가는 세상이라면 장부가 과연 무엇 을 위해 뜻을 세울 것이며,

 

그런 세상을 더 살아 무엇하는가? 사직이 흥하고 망하는 것은 이제 우리 몇 사람 손에 달렸네.

 

자, 다들 흩어졌다가 서형산성에서 만나 간적의 무리를 징벌하고 계림의 스러지는 왕업을

 

한번 힘차게 일으켜보세!”

나라의 존망이 걸린 중대사였다.

 

울분에 차서 살아가던 상수들은 유신의 말을 듣자 한결같이 비장한 결심들을 했다.

 

이튿날 아침이면 또 상수관 점고를 위해 병부에 들어가야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형님 뜻이 곧 제 뜻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 비하면 갈 길이 머니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제일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선 사람은 변품의 아들 품일이었다.

그러자 이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수승과 진춘, 여운 등이 뒤따라 일어났고,

 

진주와 문충도 한껏 결의에 찬 얼굴로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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