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 인간의 진심 (7)
(1800) 인간의 진심-13
사장실로 들어선 부사장 안진식은 웃는 얼굴이었다.
안진식은 거침없이 옆쪽 소파에 앉더니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안진식은 조철봉보다 연상인데다 고위 공무원 신분이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해도 무의식 중에 깔보는 것 같은 행태가 드러난다.
더구나 조철봉에 대해서 수집한 정보 자료를 다 읽었을 터였다.
안진식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탁자 위에다 서류봉투 하나를 내려놓고 나서 말했다.
“저기, 내가 앞으로 협조를 부탁해야 될 것 같아서요.”
“협조라면 어떤 일 말씀입니까?”
여전히 웃음띤 얼굴로 안진식이 묻자 조철봉은 정색했다.
“대충은 짐작하셨겠지만 내가 투자자금에서 리베이트를 떼낼 계획입니다.”
안진식이 이제는 얼굴을 굳혔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북한측에서 자료는 다 만들어줄 겁니다.
말하자면 북한측과 공모해서 리베이트를 떼먹는 것이지요.”
“사장님.”
헛기침을 하고 난 안진식이 조철봉을 보았다.
정색한 얼굴이다.
“지금 저한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농담도 적당히 하시지요.”
“난 부사장께 이 작업에 동참해주시라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 말씀 안 들은 것으로 하지요.”
“거기….”
조철봉이 탁자 위에 놓인 봉투를 눈으로 가리켰다.
“천호동 에덴아파트 안에서 김미영씨하고 같이 계시는 사진이 있습니다.
보시지요. 딸들하고 같이 있는 사진도 있고.”
안진식이 눈을 두어번 깜박이고 나서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그러나 봉투에 손을 뻗치지 않았으므로 조철봉이 사진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쳐놓았다.
“이 사진은 북한측에서 찍어온 겁니다.”
그러고는 조철봉이 봉투에서 다시 서류 몇장을 꺼내 놓았다.
“이건 내가 조사한 건데 김미영씨한테 한달에 4백만원씩 생활비를 주셨더군요.”
“…….”
“3년반동안 말이죠.”
“…….”
“그래서 조사해봤더니 업자한테서 뇌물을 4억쯤 받으셨더구먼.
근화실업, 대성물산, 유경산업에서 말입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색한 조철봉이 안진식을 보았다.
“이 자료를 본부에 넘겨서 교도소로 가시도록 해드릴까요?”
“…….”
“아니면 우리한테 협조해서 수수료를 받으실 겁니까?”
그때 안진식이 입안에 괸 침을 삼키더니 조철봉을 보았다.
시선은 똑바로 향하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흐렸다.
죽은 생선 눈알 같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1분 드리지요.”
담배를 꺼내 입에 문 조철봉이 외면한 채 말했다.
“난 꾸물대는 건 딱 질색이라서요.”
“얼마 주실 겁니까?”
하고 안진식이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라이터를 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연기를 깊게 빨아들인 조철봉이 길게 내뿜었다.
“3퍼센트 드리지요.”
조철봉이 똑바로 안진식을 보았다.
“1백억이면 3억이오. 거금이죠.”
여기서 다시 2퍼센트 줄이면 몫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3퍼센트면 충분하다.
(1801) 인간의 진심-14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조철봉은 베이징반점 지하의 일식당으로 들어섰다.
최갑중의 이름을 대자 곧 안쪽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최갑중이 조철봉을 맞았다.
“힘들었습니다.”
마주보고 앉았을 때 최갑중이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하지만 돈이면 다 되더군요.”
최갑중은 장선옥의 뒷조사를 해온 것이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갑중이 탁자 위에 놓인 노트를 펼쳤다.
“장선옥은 모스크바대학을 졸업하고 러시아에서 7년동안 무역을 했는데
실적이 뛰어나 훈장까지 받았습니다.”
갑중이 말을 이었다.
“결혼했다가 이혼한 것도 맞습니다.
상대는 같은 모스크바 유학생이었는데 북한 실력자의 아들이더군요.”
“…….”
“장선옥이 무역회사를 운영하게 된 것도 남편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머리를 든 갑중이 조철봉을 보았다.
“왜 이혼한지 아십니까?”
조철봉이 잠자코 시선만 주었으므로 입맛을 다시고 난 갑중이 말했다.
“남편이 무역회사 공금을 횡령했기 때문입니다.
장선옥은 남편을 고발해서 본국으로 송환되게 만들었어요.”
“…….”
“남편은 아버지 배경으로 겨우 살아남았지만 장선옥은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군.”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엽차잔을 들었다.
“이제 좀 알 것 같다.”
“뭐가 말씀입니까?”
갑중이 묻자 조철봉은 그동안 장선옥과 합의한 사항을 말해주었다.
“슬슬 윤곽이 잡히는데요.”
이야기를 들은 갑중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말했다.
“장선옥은 제 몫까지 다 보고하고 바칠 작정입니다.”
“날 갖고 논 거야.”
“그렇죠.”
선선히 머리를 끄덕이던 갑중이 갑자기 풀썩 웃었다.
“형님이 임자 만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야.”
갑중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정색했다.
“내 애인이 된다면서 같이 방으로 가자고 하더라니까.”
“그런데 놔두신 겁니까?”
“찜찜해서 놔뒀는데 과연 내 예감은 틀림없다니까.”
길게 숨을 뱉은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앞쪽 벽을 보면서 말했다.
“강적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생각해봐야지.”
그때 주문한 요리가 들어왔으므로 그들은 잠시 말을 그쳤다.
회에다 요리가 놓여졌지만 한국에서 보는 일식상이 아니다.
중국인 입맛에 맞도록 기름기가 많았다.
종업원이 나갔을 때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그 여자도 내 뒷조사를 다 했겠지.
안진식의 애인까지 알고 있을 정도니까 말이야.”
“우리가 제 뒷조사 한 것도 짐작하고 있을 겁니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이자 갑중이 불쑥 물었다.
“그 여자 진심은 뭘까요?
형님 애인이 되겠다는 것도 다 작전이겠지요?”
그러자 한동안 갑중을 바라보던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다 진심일거야.”
그러고는 풀썩 웃었다.
“사기꾼은 말과 행동이 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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