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4. 인간의 진심 (4)
(1794) 인간의 진심-7
조철봉은 이경애의 입술을 입안에 가득 물었다가 곧 떼었다.
그러자 마치 과일을 떼어 먹은 것처럼 새큼한 맛과 향기가 느껴졌다.
이경애의 어깨를 쥔 조철봉이 말했다.
“밤에 내 방으로 올래?”
“몇시예요?”
눈의 초점을 잡은 이경애가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10시면 되겠다.”
“갈게요.”
자리에서 일어선 이경애가 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러자 조철봉이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밤에 올 적에 지금까지의 자금 입출내역을 뽑아와.”
“알겠습니다.”
정색한 이경애가 조철봉의 시선을 마주 받았다.
생기띤 눈이 반짝였다.
“그럼 10시 정각에 갈게요.”
이경애가 방을 나갔을 때 조철봉은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앞쪽의 벽을 보았다.
지금까지 숱한 여자와 만나고 헤어졌지만 상처를 준 기억은 없다.
여자한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사기를 치지도 않았다.
다 좋게 좋게 끝냈다.
조철봉 속으로도 은근히 척진 여자가 없다는 것이 자랑이었다.
전처 서경윤도 마찬가지다.
원수가 되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저도 모르게 폐 안에 고인 숨을 길게 뱉고 난 조철봉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요즘 들어서 가끔 가슴이 먹먹해지는 현상이 오는 것이다.
바로 지금이 그렇다.
채우고 채워도 언제나 부족한 느낌이 들던 욕정이 주춤해진 것과도 상관이 있는 것 같다.
탁자 위에 놓인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문 조철봉이 소파에 머리를 붙이고는 창밖을 보았다.
베이징의 오후 하늘에 태양은 떠 있었지만 매연으로 흐렸다.
담배 끝에 불을 붙인 조철봉이 깊게 빨아들인 연기를 길게 품었다.
본격적으로 섹스 기술을 연마한 이유는 전처 서경윤이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바람을 피운 상대 이종학의 기술(?)이 자신보다 나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피눈물 나는 수련을 거듭한 결과 섹스에 대해서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부해온 조철봉이다.
밤새도록 철봉을 세울 수 있게 되었으며 마음만 먹는다면 여자가 밤새도록 끝없이 절정을
이어가도록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절륜의 정력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담배 연기를 길게 품은 조철봉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욕심이다.
욕심이 생긴 것이다.
몸뚱이에 이어서 마음까지 차지하고 싶다는 욕심,
가슴이 허전한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조철봉은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수화구에서 울린 맑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장선옥이다.
장선옥과는 업무 협의차 하루에도 서너 번은 통화를 한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으세요?”
장선옥이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일정표를 보았다.
저녁 약속은 없다.
“바쁜 일 없습니다.”
“그럼 저하고 저녁 드시죠.”
거침없이 말한 장선옥의 말에 웃음기가 배어나왔다.
“같이 술도 한잔 하구요.”
“무슨 좋은 일 있습니까?”
“좋은 일은 만들면 되는 거죠.”
장선옥이 말을 이었다.
“저녁 7시에 차이나호텔 중식당에서 제 이름으로 방 예약해 놓을게요.”
그러고는 통화가 끊겼으므로 조철봉은 문득 이경애를 떠올렸다.
10시에 호텔방으로 오라고 했으니 시간을 늦춰야겠다.
(1795) 인간의 진심-8
방안으로 들어선 조철봉을 향해 장선옥이 환하게 웃었다.
맑은 눈이 반달처럼 굽혀졌다가 펴졌다.
눈과 입이 함께 웃었고 자연스럽다.
누구는 입만 웃는 바람에 치켜뜬 눈이 번들거려서 지어낸 웃음인 줄 대번에 표가 난다.
또 눈만 웃고 입이 비뚤어져서 어색한 경우도 있다.
장선옥의 웃음을 보자 조철봉의 가슴도 밝아졌다.
“바쁘시죠?”
원탁에 마주 보고 앉았을 때 장선옥이 물었다.
중식당의 밀실은 아늑했다.
붉은색 벽과 기둥, 탁자까지 붉은색 바탕에 금박을 입혀 더운 기운이 느껴졌다.
“처음 시작할 땐 다 그렇죠. 몸은 바쁜 것 같은데 성과는 별로거든요.”
웃음띤 얼굴로 조철봉이 말을 받았다.
여러개 회사를 설립해 본 경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유가 있다.
다만 장선옥의 배경이나 뒷조사 등을 지시받은 최갑중과 박경택이 바빴다.
방으로 들어온 종업원에게 잉어찜에 돼지고기 볶음, 50도짜리 백주를 시키고 났을 때
장선옥이 불쑥 물었다.
“조 사장님, 애인 있으세요?”
머리를 든 조철봉이 장선옥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장선옥이 다시 웃었다.
“한국에선 애인 없는 사람 없다고 하던데요.
특히 쭉 빠진 유부녀들, 돈 많은 남자.”
“오해하고 계신 겁니다.”
조철봉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그건 과장된 소문입니다.”
“그럼 조 사장님은 애인 없으시단 말씀이네요.”
“없습니다. 물론.”
“하지만 안진식씨는 있더군요.”
그 순간 조철봉이 눈을 치켜뜨고 장선옥을 보았다.
처음에는 안진식이 누군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가 몇초가 지난 후에야 정신이 났다.
바로 평화무역 부사장을 말하는 것이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장선옥이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딸 둘이 있는 이혼녀하고 4년째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더군요.”
“…….”
“그 여자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안진식씨가 남편인 줄 알고 있더라구요.”
“…….”
“딸들도 안진식씨한테 아빠라고 부르니까요.”
“…….”
“일주일에 한번 정도 자고 가지만 낮에는 자주 들러서 쉽니다.
아주 용의주도해서 한번도 차를 갖고 애인한테 간 적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누구한테 들었습니까?”
마침내 조철봉이 그렇게 물었다.
지금 조철봉은 안진식의 배후도 조사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장선옥이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그 의도를 생각하자 동료의식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부감이 솟아오르고 있다.
이건 보통내기가 아니다.
그때 장선옥이 말했다.
“우리 조사원이 말입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아무래도 뒷조사를 해 놓아야 될 것 같아서요.”
“그럼 조사를 시킨 의도까지 말씀해 주시지요.”
조철봉이 부드럽게 말했지만 장선옥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불쾌하세요?”
장선옥이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쓴웃음을 지었다.
“실은 나도 안진식씨 뒷조사를 시켰거든요.
그래서 내 의도하고 맞는지 알고 싶어서 그럽니다.”
“안진식의 약점을 쥐고 조종하면 일이 쉬워질 것 같아서요.
이제 약점이 드러났으니 조 사장님 수단에 맡겨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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