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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장 인물 19

오늘의 쉼터 2014. 9. 26. 23:02

제20장 인물 19

 

 

 

 

대인이 막 떠나고 나자 다시 한 패의 군사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용춘이 보니 앞선 장수는 하슬라주 군주인 칠순 노장 임영리(任永里)였다.

“기별을 받고 지체 없이 달려왔는데 험산준령을 넘느라 좀 늦었소이다.”

비록 칠숙의 천거로 하슬라주 군주가 되긴 했어도 임영리는 평소 칠숙의 처신을

 

탐탁찮게 여기던 사람이었다.

 

용춘이 덕만에게 환속할 것을 권유하고 내려오는 길에 하슬라주 객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임영리가 변복을 하고 몰래 찾아와서 양인이 밤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임영리는 임금이 너무 오래 살았다며 땅이 꺼지도록 탄식했고,

 

칠숙이 백반 같은 좀것을 섬겨 아까운 재주를 썩힌다며 두 사람을 싸잡아 비난하다가

 

종내 신라의 사직을 걱정하며 눈물을 흘렸다.

 

임영리가 충신임을 용춘은 그때 알았다.

“노장군께서 친히 원군을 거느리고 예까지 나오시니

 

이제 낭비성은 얻은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대인이 군사를 이끌고 떠난 뒤 난감함에 빠져 있던 용춘은 임영리를 보자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낭비성은 나만큼 아는 이가 없는데 어찌 직접 오지 않겠소.”

용춘은 그렇게 말하는 임영리에게 대인이 군사를 이끌고 떠난 사실을 알렸다.

 

용춘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임영리의 안색이 백변하였다.

“큰일났구려! 낭비성 서문 숲은 말 탄 군사들의 훈련장이 있는 곳이오!

 

고구려 기병은 천하무적으로 품평이 자자하니 대인은 스스로 범의 아가리를 찾아 들어간 꼴이오!”

“하면 이 노릇을 어찌합니까?”

“기왕 갔다면 방법이 없지요. 반이나 살아오면 다행이겠소.”

“낭비성의 군사는 모두 얼마쯤 됩니까?”

“작년까지만 해도 고작 2, 3천여 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금년에 남녘의 성곽들을 죄 수리하면서

 

군사도 보강하여 지금은 어림잡아 5, 6천 명은 될 거외다.”

장수들이 둘러서서 한창 대걱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대인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간 성의 서쪽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더니

 

한차례 결전이 벌어진 듯 고함과 함성, 칼과 창이 부딪치는 쇳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황급히 소리나는 곳을 살피니 우거진 숲속이라 명확하지는 않으나

 

기병을 따라간 보군의 후미가 뒷걸음을 치는 걸로 미루어 역공을 당하고 있음이 분명한 듯싶었다.

“기왕 싸움은 벌어졌으니 어떻든 저들을 구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용춘의 말에 임영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랬다간 우리마저 당하기 십상이오. 저기 남문 쪽을 보오.”

임영리가 가리키는 낭비성 남문에서 과하마를 탄 수백의 기병 부대가

 

성문을 박차고 쏜살같이 달려나왔다.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대인이 군사를 이끌고 들어간 진입로를 차단하더니

 

맹렬히 칼을 휘두르고 장창과 맥궁을 쏘아대며 신라 보병들을 닥치는 대로 쓰러뜨렸다.

대인의 군사가 참패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때 고구려의 낭비성에는 장군 솔천수(率川首)가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건무왕(榮留王)의 지시에 따라 도성의 군사와 역부들을 이끌고 와서

 

성곽의 수리와 군력 보강을 꾀하던 중이었다. 대인은 죽을힘을 다해 간신히 사지를 탈출해 나왔지만

 

이미 2천의 군사는 지리멸렬하여 살아 돌아온 자가 고작 3, 4백에 지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대인이 자랑하던 기병은 전멸하였고 생환한 사람들은 대부분 후미에 있던 보군들이었다.

대인의 패배로 신라군은 서둘러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급히 군장을 꾸리고 남쪽으로 천여 보나 달아나 새로 참호를 파고 진채를 만들었다.

 

접전에서 대승을 거둔 고구려 군사는 낭비성 밖으로 나와 횡렬로 진을 쳤는데

 

그 기세가 매우 웅장하고 짜임새가 있었다.

“예로부터 고구려는 강국이라더니 과연 그렇구나!”

용춘이 낭비성을 바라보며 참담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제 남은 군사라곤 양주(兩州)에서 온 원군 2천과 사지에서 살아남은 3, 4백의 잔병뿐이었다.

 

그러나 더욱 난감한 일은 싸움다운 싸움도 해보기 전에 여지없이 꺾여버린 군사들의 사기였다.

 

생환한 자들이 다시 싸우려고 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임영리와 백룡을 따라온

 

외주의 원군들조차도 두려움을 느끼고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너무 무리한 일을 벌인 모양이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간다면 만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은 고사하고 우리를 얕본 고구려와 백제가

 

당장 양쪽에서 침공해올 것이 뻔하니 대체 이 노릇을 어찌해야 좋단 말이오!”

용춘은 땅이 꺼져라 깊이 탄식했다.

 

바득바득 고집을 부리며 갔다가 휘하의 군사들만 죽이고 가까스로 살아난 대인은

 

진채의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아무 말이 없었고, 서현을 비롯한 나머지 장수들도

 

엄두를 내지 못해 한숨만 쉬었다.

 

족히 갑절은 될 적군의 숫자와 땅에 떨어진 아군의 사기를 감안한다면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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