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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장 인물 18

오늘의 쉼터 2014. 9. 26. 22:57

제20장 인물 18

 

 

 

 

백관들은 왕이 노망하였다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걱정하다가 저녁나절에야

 

고구려 침공을 다시 논의하게 되었다.

 

한동안 격론 끝에 염종이 용춘을 보고,

“고구려 군사는 용맹하고 강인하기가 백제보다 윗길인데

 

대체 어느 장수가 그 일을 맡아 한단 말이오?

 

공연히 쓸데없는 공론을 일으켜 대일공과 월종공을 죽여 놨으니 모다 공의 책임이오.”

하니 용춘이 그 말을 받아,

“누가 자네더러 고구려를 치라고 할까봐 그토록 사생결단 반대를 했던가?

 

마땅히 내가 갈 것이니 병부의 군사 5천만 내어주게.”

하였다.

 

용춘이 직접 가겠다는 소리에 염종은 더 할 말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맥없이 물러날 수도 없어,

“5천이나 내어줄 군사가 어디 있소?

 

2천만 데려가고 나머지는 외주에서 조달을 해보시오.”

하며 트집을 잡고는 내친김에,

“잡찬 대인(大因)은 지략이 특출하니 금성에서 내어줄 2천 군사는 그의 절도를 받도록 하리다.”

하고 해괴한 주장까지 덧붙였다.

 

염종은 자나깨나 용춘이 잘못되기를 바라던 사람이라 이번에도 어떻게 하면

 

그가 낭패를 겪고 궁지에 빠질까를 먼저 생각했다.

 

그런 염종의 주장 속에는 용춘이 비록 내성사신(內省私臣)의 직책을 맡아

 

3궁(三宮:大宮, 梁宮, 沙梁宮) 내에서는 그 세도가 으뜸이지만 일단 궁을 나서면

 

벼슬이 파진찬에 불과하니 그보다 높은 잡찬으로 장수를 삼아 마음대로 뜻을 펴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이 깔려 있었다.

 

이같은 염종의 저의를 용춘인들 모를 리 없었으나 그는 더 중언부언하지 않고,

“알았네. 그리하지.”

하며 순순히 승낙하여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염종 당자조차도

 

딴소리가 없는 것을 내심 궁금히 여겼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용춘은 마침내 2천의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의 낭비성 공벌에 나서게 되었다.

 

그는 출정에 앞서 덕만과 상의하여 하주 군주 서현을 금성으로 불러 올리라는 왕의 윤허를 얻어내고

 

알천(閼川)을 편장으로 삼는 한편, 국원과 하슬라주로 긴급히 사람을 보내어 양주에서

 

1천씩의 원군을 청하였다.

 

출정을 위해 금성에 당도한 서현도 자신의 장남 유신을 상수에서 풀어 부장으로 삼으니

 

오랜만에 만난 두 부자가 상봉과 동시에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 전장으로 나가게 되었다.

금성을 출발한 신라군이 북방 접경인 고구려 낭비성에 이른 것은 8월 초순이었다.

 

그런데 용춘 일행이 도착하여 미처 한숨도 돌리기 전에 한 패의 군사가

 

자욱히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1천여 기의 정병을 이끌고 나타난 장수는 국원 소경 군주로 있는 파진찬 백룡(白龍)이었다.

“부여장이 웅진에 나와 있다고 들었는데 소경은 어찌하고 장군께서 친히 오셨소?”

용춘이 놀라움과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묻자 백룡이 웃으며 대답했다.

“비록 서적(西敵)이 코앞에 있지만 북적을 치는 일에 어찌 내가 빠질 수 있겠소?

 

소문에 듣자니 부여장은 지난달에 남악을 둘러보러 가서 아직 웅진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여

 

접경 방비를 철통같이 세워두고 몰래 빠져나오는 길이외다.

 

군사들만 보내고 어디 안심이 되어야 말이지.”

원군이라도 보내만 주면 다행이다 싶었던 용춘은 백룡이 나타나자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쁘고 든든했다.

 

그는 곧 대인과 서현, 백룡 등과 한자리에 모여 낭비성을 공략할 계략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낭비성의 방비는 매우 견고하여 아무리 살펴보아도 마땅히 공격할 곳이 없었다.

 

더구나 지리에 어두운 신라군으로선 역공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게 되면 치러 갔다가 오히려 이쪽의 땅을 잃을 수도 있었다.

“고구려 석성들은 예로부터 공략이 쉽지 않은 철옹성으로 정평이 자자하오.

 

그런데 변방의 싸움은 속전속결로 끝을 내야지 시일을 끌면 이로울 게 없고

 

낭비성 주변은 평지라서 기마전에 적합하오.

 

내가 유심히 지세를 본즉 성의 왼쪽으론 나무와 숲이 제법 우거진 데다

 

방비도 다른 곳에 비해 허술한 것 같으니 기병을 동원해 먼저 그곳을 치는 게 어떻겠소?”

염종이 천거한 대인이 말했다.

 

죽은 대일의 아우인 그는 말 타는 기술이 뛰어나고 꽤나 용맹이 있어

 

십수 년간 도성에서 기병 훈련을 책임지고 있었다.

“만일 그랬다가 숲 속에 복병이라도 있어 반격을 해오면 그땐 어찌하오?

 

더군다나 적이 성의 남문에서 기병으로 응수해 우리 군사가 돌아올 길마저 막는다면

 

낯선 숲 속에서 그야말로 속수무책이 아니겠소?”

용춘이 반문하자 대인이 껄껄 웃었다.

“내가 데려온 기병은 날쌔고 용맹스럽기가 가히 신군(神軍)이란 찬사를 듣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소.

 

어찌 고구려 기병 따위에 당하겠소?”

대인은 자신감에 찬 도도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쪽에서 기병으로 응수한다면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는 일이지만,

 

만일 숲에서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난다 해도 급히 말머리를 돌려 빠져나오면 그만이오.

 

기병이 앞장서고 보군(步軍)이 뒤를 맡는 것이야 용병의 기본이 아니오.

 

장군들은 내가 떠나고 나거든 보군들을 몇 패로 나누고 적당한 장소에 숨어 대기하였다가

 

뒤쫓아 오는 적군을 개미 떼처럼 쓸어버리시오.

 

아무리 봐도 그 외엔 다른 방법이 없을 성싶소.”

그러자 서현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우거진 숲속의 지세를 잘 알기 어려우니 차라리 드러난 곳을 치는 게 나을 것 같소.

 

병서에도 이르기를 보이지 않는 곳을 치는 것은 눈을 감고 절벽을 걷는 것과 같다 하지 않았소?

 

비록 우리 기병이 날쌔고 용맹하다고는 하나 고구려의 기병도 결코 만만치 않소.

 

차라리 적을 성밖으로 불러내고 평지에서 공방전을 벌이는 것이 상책일 것이오.”

이에 백룡도 서현의 말에 동의했으나 대인은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좋소이다.

 

하면 나는 휘하의 2천 군사를 데리고 성의 왼편을 치겠소.

 

경들은 나머지 군사로 알아서들 하오.”

그는 금성에서 데려온 군사들로 기마전에 알맞은 군진을 만들고

 

더 만류할 겨를도 없이 낭비성 왼편 숲으로 내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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