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579. 시장조사(4)

오늘의 쉼터 2014. 9. 25. 10:32

579. 시장조사(4)

 

 

 

(1745) 시장소사 -7

 

 이수동은 키가 작았지만 다부진 체격이었다.

 

눈빛도 날카롭고 굵은 입술은 꾹 닫혀 있어서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인상을 풍겼다.

 

그러나 이경애의 소개를 받은 순간 조철봉을 향해 웃어 보이면서 인상은 전혀 딴판이 되었다.

 

마치 하회탈처럼 얼굴이 주름으로 덮이더니 분위기가 편안해진 것이다.

 

웃는 모습이 좋은 인간은 복이 모이는 법이다.

 

웃는 모습이 좋으려면 자주 웃어야만 할 것이고 그래야 모양이 좋아진다.

 

많이 웃어본 사람만이 보기 좋게 웃는 얼굴을 만든다.

 

그리고 그는 이미 복이 모이는 중일 것이다.

 

이수동은 이경애의 작은 할아버지 손자였으니 먼 친척은 아니다.

 

더구나 이수동은 베이징에 여러 번 들러 이경애의 집에서 신세를 진 적도 있다.

“조선족 동포들의 경제활동과 중국경제, 그리고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

 

제가 여러 번 특집 기사를 쓴 적이 있지요.”

인사를 마치고 식당 테이블에 마주 앉았을 때 이수동이 말했다.

 

호텔 지하 한식당은 손님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한국 관광객이었다.

 

옷차림만 봐도 대번에 표시가 났고 목소리도 크다.

 

이수동이 가방에서 묶음으로 된 서류를 꺼내 조철봉에게 내밀었다.

“이걸 읽어보십시오. 제가 거의 일년에 걸쳐 조사한 자료입니다.

 

조선족 동포의 기업활동, 성공과 실패사례,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자치주에 진출한 한국인기업과 성공과 실패사례,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동포들의 반응까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서류를 받은 조철봉이 이수동에게 머리를 숙여보였다.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거 사례를 해드리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아이구, 이런.”

입맛을 다신 이수동이 이경애를 보았다.

다시 얼굴이 고약해졌는데 마치 절벽에서 떨어져 부서진 돌덩이 같았다.

“한국 사람들은 꼭 이렇게 돈으로 해결하려고 든단 말입니다.”

이경애와 조철봉의 사이에다 시선을 두고 이수동이 말했다.

“우리 조선족 동포를 위해서 일하신다고 들었기 때문에 나는 자료를 그냥 드리는 겁니다.”

“하지만 미안해서.”

“일 없습니다.”

손을 저어보인 이수동이 다시 얼굴을 펴고 웃었다.

“술이나 사시면 됩니다.”

이경애가 종업원을 부르더니 주문을 했다.

 

식당안이 혼잡한 데다 소란해서 이경애는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이 기자님이 이건 꼭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신 사업이나 사건이 있습니까?”

불쑥 조철봉이 물었으므로 이수동은 못 알아들은 듯이 이경애를 보았다.

 

그러자 이경애가 설명했다.

“우리 사장님은 시장조사와는 별개로 직접 돕고 싶으신 거야.

 

그래서 오빠한테 물어보신 거야.”

“아, 그러십니까?”

했지만 이수동은 어정쩡한 표정으로 눈만 껌벅였다.

 

믿기지가 않는 눈치였다.

혹시 무슨 속임수를 쓰는가 의심하는지도 모른다.

 

그때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이건 기사로 내면 안됩니다.

 

나하고 이 기자님, 이경애씨까지 셋만 아는 일로 합시다.”

이수동은 여전히 눈만 껌벅였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난 자선사업가도, 동포애가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중국에 투자해서 돈을 번 사람으로 이익금을 조금 동포한테 투자하겠다는 겁니다.” 

 

 

(1746) 시장소사 -8

 

 여관방에 돌아왔을 때는 밤 11시였다.

“앞으로는 침대 두 개짜리 방을 잡아야겠다.”

혼잣소리처럼 말한 조철봉이 저고리를 벗어 소파에 걸쳐 놓고는 이경애를 보았다.

“침대에서 같이 자기로 하지.”

“네. 사장님.”

외면한 채 말한 이경애가 저고리를 집어들었다.

 

욕실로 들어서면서 조철봉은 이경애가 소파에서 자겠다고 말하지 않은 것에

 

안도감을 느낀 한편으로 미안했다.

 

이경애가 선선히 따르는 이유는 오직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조철봉의 얼굴도 보지 않은 상황에서 2만위안에 한 달을 같이 있겠다고 계약을 했다.

 

이것은 몸을 판 것과 같다.

 

조철봉이 욕실에서 나왔을 때 이경애는 탁자 위의 등 하나만 남겨두고 방안의 불은 다 꺼놓았다.

“저도 씻겠습니다.”

낮게 말한 이경애가 조철봉을 스쳐 욕실로 들어섰다.

 

침대에 누운 조철봉은 길게 숨을 뱉었다.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눈꺼풀이 무거워졌지만 정신은 더욱 맑아지고 있었다.

 

물론 이경애 때문이다.

 

이수동과 헤어져 여관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부터 조철봉의 갈등은 시작되었다.

 

이경애를 소파에서 재울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조철봉이 소파에서 잔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럼 한 침대에서 같이 자야 하는데 그냥 가만 있는다는 것도 위선 떠는 것 같았다.

 

계약도 그렇게 했으니 당연하다는 듯이 안는 것도 너무 뻔뻔하다.

 

그리고 첫째, 조철봉은 누운 채로 저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였다.

 

마치 돈 주고 여자 몸을 산 느낌이 들었는데 조철봉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나이트클럽이나 룸살롱에서 셀 수 없는 여자를 만났지만 돈부터 치르고 침대로 데려간 적은

 

없는 것이다.

 

최소한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골랐으며 그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그때 욕실 문이 열리더니 이경애가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조철봉은 숨을 들이마셨다.

 

이경애는 욕실용 타월로 젖가슴 아래를 감싸고 있었지만 그것만 벗기면 알몸인 것이 분명했다.

 

이경애는 탁자 위의 등까지 끄더니 침대에 올랐다.

 

비누 냄새에 섞인 체취를 맡은 순간 조철봉은 목이 메었다.

 

등을 다 껐지만 TV는 켜놓아서 사물의 윤곽은 다 드러났다.

 

이경애가 옆에 누웠을 때 조철봉이 물었다.

“벗고 온 거야?”

“네.”

“지금 기분이 어때?”

“네?”

하더니 이경애가 3초쯤 후에 대답했다.

“조금 떨려요.”

“거부감은 없고?”

“그럴 리가 있나요? 계약할 때 다 버리고 온 것인데.”

“내가 흉칙하게 생긴 데다 정신병자 같은 성격이라도 그랬을까?”

그러자 이경애가 모로 눕더니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TV 화면의 반사광 때문에 이경애의 두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잔다면 좋겠죠. 섹스도 더 황홀할 것이고요.”

말문이 막힌 조철봉은 시선만 주었고 이경애의 말이 이어졌다.

“사장님은 저한테 뭘 기대하시죠?

 

2만위안에 포함되지 않은 걸 기대하지 마세요.”

“그런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대답한 조철봉이 천장을 향해 길게 숨을 뱉었다.

“알았어. 그냥 자자.”

그러고는 시트를 당겨 덮었다.

“계약할 때 꼭 해야 된다고 그러진 않았을 거야.

 

안 해도 2만위안 낼 테니까 그냥 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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