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561.인연(11)

오늘의 쉼터 2014. 9. 23. 00:24

 

561.인연(11)

 

 

(1710) 인연-21 

 

 

 

“좋아.”

소주잔을 내려놓은 조철봉이 앞에 앉은 서연주를 지그시 보았다.
 
조철봉의 단골 일식당 방 안이었다.
 
맨 끝쪽의 밀실이었고 조철봉을 너무나 잘 아는 식당 종업원들은 음식상만 내려놓고
 
문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상 위에는 광어회에다 여러가지 요리가 가득 놓였는데 소주는 두병째 비워지는 중이었다.

“솔직히 말하지.”

조철봉이 조금 붉어진 얼굴을 펴고 웃었다.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난 서연주씨하고 연애는 못하겠다.
 
김태영이는 내 동생이야. 태영이 만날 때마다 찜찜해지고 싶지가 않아.”

조철봉이 서연주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그리고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태영이가 서연주씨하고
 
인연이 맺어질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흐응.”

코웃음을 친 서연주가 술잔을 집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조철봉을 보았다.

“사장님은 아주 답답하시군요. 한번도 연애 안해본 분 같아요.”

“그래. 나도 서연주씨하고 비슷해. 바빠서 여자 만날 시간이 없었어.”

아마 조철봉의 기록이 서연주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섹스 상대로 따지면 47개월동안 서연주는 12명이겠지만 조철봉은 1백명도 넘었을 것이다.
 
서연주가 말을 이었다.

“오늘 우리가 만난 것도 김태영씨한테 알려주실 건가요?”

“글쎄.”

쓴웃음을 지었던 조철봉이 서연주를 보았다.

“내가 더 이상 태영이한테 해줄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저 갖고 싶지 않으세요?”

불쑥 서연주가 물었지만 조철봉은 차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또 조건이 있나?”

“아뇨.”

머리를 저은 서연주가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냥 드릴게요. 저도 섹스하고 싶고요.”

“허, 이런.”

조철봉이 입맛을 다셨다.

“조건 없이 이러는 건 겁나더라.”

“조건 있어요. 김태영이란 인간을 우리 둘한테서 떼어내는 효과가 있을 테니까.”

“내 외사촌동생이라니까.”

“그래도 더이상 서연주하고의 인연은 거론하지 않게 되겠지요.”

서연주가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그렇다고 김태영씨한테 당신 형하고 섹스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요.”

“이거 당기는군.”

다시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서연주를 보았다.

“그렇게 싫어?”

“지겨울 뿐이에요. 마치 옷에 달라붙어 있는 거미줄 같은 느낌.”

“나하고 섹스를 하면 개운해질까?”

“네, 거미줄은 분명히 떨어져요.”

크게 머리를 끄덕인 서연주가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오늘밤 같이 보내요. 지금 동해안 바닷가로 가도 되겠다.”

서연주가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가실래요?”

“가자.”

마침내 조철봉도 머리를 끄덕였다.
 
서연주에게 끌려들었다는 느낌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갈 길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맞다. 억지로 맺어지는 인연이 온전하게 성사될 리가 있겠는가?
 
작업을 할수록 꼬일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다가 이렇게 기다리지 않았던 인연이 온다.

 

(1711) 인연-22

 

 

 

 

강릉으로 향하는 영동고속도로를 모범택시는 그야말로 총알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장거리 손님을 만난 운전사는 신바람이 났고 평일의 늦은 밤이어서
 
고속도로의 차량 통행도 뜸했기 때문이다.
 
뒷좌석에 기대앉은 조철봉은 머리를 돌려 서연주를 보았다.
 
서연주는 반대쪽 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쪽 검은 유리 바탕에 얼굴이 다 드러났다.
 
차분한 모습이었다.

“저기요.”

유리창에서 시선이 마주쳤을 때 서연주가 창에 비친 조철봉을 향해 말했다.

“전 이런 일 첨이에요.”

조철봉의 시선을 놓지 않은 채 서연주는 말을 이었다.

“남자하고 밤에 고속도로를 달린 적도 없다니 우습죠?”

“…….”

“너무 답답하게 살아온 것 같아요.”

“아는 선배는 3년 동안 남자 친구를 열명 가깝게 바꿨다던데 처음엔 이해가 안가더군요.”

제 이야기를 빗대서 하는 것 같았으므로 조철봉은 정색하고 창에 비친 서연주를 향해
 
머리를 끄덕여 주었다.
 
뒤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꾸며가나 보자.
 
서연주가 길게 숨을 뱉었다.

“중독된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도 항상 외롭다고 하소연을 하고.”

“…….”

“그래요.”

혼자서 머리를 끄덕인 서연주가 머리를 돌려 이제는 조철봉을 정면으로 보았다.

“남녀의 만남은 다 타산이죠.
 
계산기 두드리는 것이라구요.
 
순정? 희생? 다 지어낸 이야기죠.
 
내가 손해보면서 왜 엮어져요?
 
적어도 공평은 해야지.”

서연주의 두눈이 반짝였고 목소리는 점점 열기가 띄워졌다.

“사랑타령하다가 깨진 경우를 숱하게 봤거든요.”

침을 삼킨 서연주가 말을 이었다.

“내 상대는 좀 있어야 돼요.
 
내가 경제 기반이 약하니까 뒤에서 어느 정도 받쳐 줘야 돼요.”

조철봉은 긴장했다.
 
이 말은 진심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김태영씨는 사람을 잘못 보았어요.
 
그 사람은 얼마든지 나보다 나은 여자를 택할 수 있다구요. 난.”

잠깐 말을 그친 서연주가 입술을 비틀고 웃었다.

“사장님 같은 남자가 딱 맞아요.”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떴을 때 서연주의 말이 이어졌다.

“내 뒤를 받쳐 주는 스폰서.”

“그리고.”

마침내 조철봉도 입을 떼었다.

“받은 만큼 주고 말이지?”

“사장님은 절 잘 평가해 주셨죠.”

그 말은 지난번 유중환 부장의 제의보다 조철봉의 조건이 좋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었다.
 
미리 답안지를 본 수험생처럼 조철봉은 금방 이해가 되었으므로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지금 서연주는 제 진심을 말하고 있다.
 
남자하고 처음 고속도로를 탄다는 따위는 거짓말이겠지만 지금 마음을 열어 놓았다.

“하지만.”

쓴웃음을 지은 서연주가 말을 이었다.

“그 거래도 성립이 될 수 없을 것 같네요.”

조철봉이 다시 머리를 끄덕였다.
 
거짓과 진실이 편리한대로 뒤섞여 있는데다 욕심과 미련이 수시로 드러나는 모습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조철봉 자신의 모습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이윽고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우리 가까운 데로 가자.”

감동이 왔고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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