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4. 동반자(9)
(1657) 동반자-17
화정은 물론이고 고급 룸살롱에서는 예약을 받은 손님의 신원을 알고나면 사전에
그에 대한 공부를 해두는 것이 상식이다.
정치인이면 국회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 무슨 요직을 꿰차고 있는가도 외워두고
기업가라면 매출액, 사업성격, 주가, 경쟁업체 따위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도록 교육 받는다.
그것을 김정산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김정산이 감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남한의 술집 아가씨까지 장군님 가계를 외우고 있다니 대단하단 말입니다.”
“그렇군요.”
시치미를 딱 뗀 얼굴로 강성욱이 맞장구를 쳤고 갑중도 머리를 끄덕였다.
“자, 내 술 한잔 받아.”
하고 김정산이 미스윤에게 잔을 건넸고 분위기는 더 무르익었다.
조철봉이 미스윤을 찬찬히 보았다.
마담이 미스윤처럼 체격이 크고 통통한 아가씨를 김정산의 파트너로
정한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북한 남자들이 미스윤 같은 체형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쟤 잘 아는 애냐?”
조철봉이 옆에 앉은 파트너 미스리에게 미스윤을 눈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미스리가 머리를 저었다.
“오늘 처음 보았어요.”
“그런가?”
“어디서 데려왔겠죠. 마담은 발이 넓으니까요.”
“넌 어디서 데려왔는데?”
그러자 미스리가 풀썩 웃었다.
자연스럽게 보조개가 만들어졌고 흰 이가 드러났다.
그러고보니 얼굴에 루주도 칠하지 않았다.
조철봉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전 여기 고정 멤버예요.”
“그렇군, 선수로군.”
선수라는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미스리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가 금방 풀렸다.
미스리가 웃음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조 사장님도 선수라고 들었는데요?”
“내가?”
“기분 나쁘세요?”
“나쁠 리가, 이런 데서 선수 대접을 받으면 영광이지.”
“지난번 파트너 기억나세요?”
“글쎄.”
머리를 기울였던 조철봉이 좌우로 흔들었다.
지난번에 화정이 왔을 때는 1년전이다.
파트너 성이 누구인지도 잊었다.
“기억 안나는데.”
“강지현이, 이제 기억 나세요?”
그래도 가물가물했으므로 조철봉이 다시 머리를 저었다.
“모르겠다. 어디 여자를 하나둘 거쳤어야지.
이거 내가 그일로 너한테 미안해할 건 없지?”
“그럼요.”
“그런데 네가 걔를 어떻게 알아?”
“다 기록이 되어 있거든요.”
풀썩 웃은 미스리가 말을 이었다.
“사장님의 취향, 버릇까지 다요.”
“내 섹스 테크닉까지? 가만, 내가 걔하고 섹스 했던가?”
“그럼요.”
다시 웃은 미스리가 조철봉의 귀에 입술을 붙이고 속삭였다.
“그래서 제가 사장님한테 선수라고 한 건데요.”
“이런 제기랄.”
조철봉이 눈을 치켜떴지만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고객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미스리가 다시 소근거렸다.
“사장님은 솔직한 표현을 좋아하신다고 기록이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그것도 맞다. 조철봉은 머리를 끄덕였다.
(1658) 동반자-18
그러나 김정산은 10시반이 되었을 때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론 미스윤과의 이차는 운도 못뗄 만큼 엄숙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잘 마셨습니다.”
김정산이 조철봉에게 말하더니 미스윤에게는 악수를 청했다.
“동무한테는 탄복했소. 다음에 만납시다.”
“감사합니다.”
미스윤이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둘의 분위기가 좋았으므로 조철봉도 얼굴을 펴고 웃었다.
김정산이 이차를 나갈 것인가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대는 크지 않았다.
만일 이차를 나갔다면 작업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전 어떡해요?”
방을 나올 때 미스리가 조철봉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장소만 정해주시면 가서 기다릴게요.”
“내가 이따 핸드폰으로 연락하지.”
조철봉이 낮게 말하자 미스리가 머리를 끄덕였다.
눈이 반짝이고 있다.
“제 핸드폰 번호 드릴게요.”
그러더니 조철봉의 저고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빼었다.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준비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밖으로 나왔을 때 조철봉이 김정산에게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숙소까지 모셔다 드리지요.”
김정산은 강성욱의 차를 타고 왔던 것이다.
그러자 김정산이 머리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부탁합니다.”
“그럼 저는 뒤를 따라가지요.”
조철봉의 의도를 눈치챈 강성욱이 제 차로 다가가면서 말했다.
그래서 조철봉의 차에는 운전사와 갑중까지 포함해서 넷이 탔다.
“실례지만 술값이 얼마나 나왔습니까?”
차가 차량 사이에 끼어들었을 때 김정산이 불쑥 물었다.
정색한 표정이다.
“예, 5백쯤 나왔습니다.”
계산서에는 팁까지 525만원이 나왔다.
조철봉이 정직하게 말한 셈이다.
그러자 김정산은 길게 숨을 뱉었다.
“비싸군요. 그럼 5천불이 넘는다는 말씀아닙니까?”
“그런 셈이죠.”
“나올 때 보니까 방에 손님이 다 차 있던데, 하루 매상이 엄청나겠군요.”
“그렇겠지요.”
“모두 정상적인 방법으로 모은 돈을 저곳에서 쓸까요?”
김정산이 묻는 요지는 바로 이것이었다.
조철봉이 김정산의 시선을 받고 빙긋 웃었다.
“뭐, 부정한 돈도 있겠지요, 하지만.”
조철봉이 웃음띤 얼굴로 김정산을 보았다.
“어떤 돈이건 유통이 잘 되면 경제가 활기를 띱니다. 바로 지금처럼 말입니다.”
“그런가요?”
했지만 김정산은 의심쩍은 표정이었다.
그때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제가 태우개발 측으로부터 받은 로비 자금이 1천만불 가깝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5백만불쯤을 쓰고 5백이 남았지요.”
김정산이 눈만 껌벅였고 조철봉의 말이 계속되었다.
“거기에다 태우개발은 저한테 성공사례비로 3백만불을 더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 수중에는 8백만불이 있지요. 한화로 계산하면 75억원쯤 됩니다.”
“…….”
“지금 차 트렁크에 현금으로 1백만불이 든 가방이 실려 있습니다.
그 돈을 김 선생께 드리려고 가져왔는데, 물론 성공 사례비조로 말입니다.”
조철봉이 똑바로 김정산을 보았다.
“받아 주실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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