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 동반자(8)
(1655) 동반자-15
최갑중은 이력서에 시선을 준 채로 잠깐 생각했다.
지금 책상 앞에 앉아있는 여자는 이은지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조철봉은 말해주지 않았지만 여자가 제 입으로 관계를 밝힌 것이다.
갑중은 이은지에 대해서 호의를 품고 있었던 터라
그순간부터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여자 이름은 유지선, 36세, 삼화여대 영문과졸에 대성전자에서 영업팀장까지 지낸 경력에다
영어, 중국어, 일어까지 회화가능하며 이혼 후 독신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혼 경력은 명기하지 않아도 되는데 당당하게 밝힌 것이 마음에 들었으므로 갑중은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그러나 아직 시선은 들지 않았다.
조철봉이 유지선의 인사를 자신에게 맡긴 이유가 아직 명쾌하게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예상 했던 대로 지선은 눈에 척 띄는 여자였다.
몸매도 날씬하고 미모였다.
검고 맑은 눈동자와 처음 마주쳤던 순간에 갑중의 가슴도 쩌르르 울렸으니까,
이것도 짐작이지만 조철봉도 지선을 처음 만났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목구멍이 좁혀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었다.
이 생리 반응은 조철봉이 제 입으로 말해줘서 아는 것이다.
조철봉이 이 여자를 건드린 것은 분명하다.
마침내 갑중은 그렇게 결론을 냈다.
와이프 친구지만 가만 내버려두었을 리는 절대로 없다.
회사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조철봉의 원칙인 것을 아는 갑중이라
지선을 끌어들인 것이 좀 께름칙했지만 명령을 거역할 수가 있겠는가?
마음을 정한 갑중이 시선을 들었다.
생각은 많이 했지만 걸린 시간은 몇초밖에 되지 않는다.
지선과 시선이 다시 마주쳤을 때 갑중은 숨을 들이켰다.
36세라고 했지만 어려보인다.
20대 후반 정도 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에 수심이 깃든 것 같은 눈,
저 수심은 조철봉이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헛기침을 하고난 갑중이 입을 열었다.
“해외근무도 괜찮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중국 칭다오에 있는 저희 회사는 어떻습니까?”
“상관 없습니다.”
맑은 목소리로 지선이 대답했다.
눈빛이 더 강해졌고 얼굴도 조금 상기되었다.
“오히려 한국 근무보다 나아요, 저는.”
“중국어는 어느정도까지 하십니까?”
“2년동안 베이징 대학에서 중국문학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아아.”
대학은 나왔지만 여러 면에서 무식하기는 갑중이나 조철봉이나 오십보 백보여서
이런 대화가 오래가면 기가 죽는 것도 같다.
갑중이 화제를 돌렸다.
“칭다오의 오성자동차 부품공장에 영업부를 증강하는 중입니다.
그곳 영업부의 제5부장 직무대행을 맡아 보실랍니까?”
“네, 해보겠습니다.”
지선이 머리까지 끄덕이며 대답했다.
균형잡힌 입술이 다부지게 닫쳐져 있다.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보수는 직무대행일 때 250만원 정도이고 부장이 되시면 400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칭다오에 가시면 주택은 30평 기준의 아파트가 제공됩니다.”
사무적인 태도로 말한 갑중은 지선의 얼굴이 점점 붉게 상기되어 가는 것을 보았다.
섹시했다.
여자가 평상시에도 저렇게 흥분으로 들뜬 표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갑중은 처음 보았다.
다시 가슴이 답답해진 갑중은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다음 순간 조철봉에 대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지선은 이미 조철봉에게 길들여져 있을 것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밤일은 조철봉의 발끝에도 못미친다.
최장 기록은 12분이다.
그래서 굵고 짧게 산다는 말을 버릇처럼 쓴다.
(1656) 동반자-16
방 안으로 들어선 김정산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져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조철봉이 반가운 표정으로 일어나 인사를 하자 어설프게 답례는 했다.
동행한 강성욱도 화정이 처음이라면서 방 안을 둘러보았다.
“과연.”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강성욱이 말했다.
“비싸다고 소문이 난 만큼 분위기가 다르긴 하네요.”
화정은 3층 건물 전체를 룸살롱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2층과 3층의 10개뿐이다.
1층은 로비와 휴게실, 대기실로 쓰였고 각 방에는 술을 마시는 방 외에 욕실과 침실까지
딸려 있어서 피곤하면 누워 잘 수도 있다.
“시설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조철봉이 강성욱의 말을 받았다.
“아가씨죠. 아가씨가 마음에 안 들면 이 따위 시설은 있으나마나입니다.”
“그렇죠.”
강성욱이 맞장구를 쳤을 때 문이 열리더니 마담이 아가씨 넷을 데리고 들어왔다.
들어선 마담은 거침없이 아가씨에게 손님을 지정해 주었는데 조철봉의 옆에는 단발머리에
상큼한 분위기의 아가씨가 앉았다.
김정산 옆에 앉은 아가씨는 약간 살집이 많았으므로 조철봉의 가슴이 조금 어두워졌다.
마담한테 예약할 때 김정산이 북한에서 온 손님이라고 말해주긴 했다.
그러자 마담이 김정산의 체격과 성격 따위를 물어서 건성으로 대답을 해주었던 것이다.
다음 순간 김정산의 표정을 본 조철봉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아무리 시치미를 떼고 있어도 이런 경우에는 표시가 나는 법이다.
그런데 김정산의 얼굴은 활짝 펴져 있었던 것이다.
옆에 앉은 파트너를 힐끗거리는 시선에 벌써부터 욕정이 배어 있는 것이 드러났다.
그것을 최갑중도 눈치챈 것 같았다.
조철봉과 시선이 마주친 갑중이 희미하게 웃었다.
마담이 방을 나가자 곧 술과 안주가 날라져 왔고 방 안 분위기는 부드러워졌다.
조철봉 말마따나 제 파트너가 마음에 들면 술이나 안주, 시설 따위는 상관없는 것이다.
룸살롱에 와서 아가씨한테 초연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비싼 돈 내고 룸살롱에 왔으면 그 보상을 받아야 되는 것이다.
술만 마시려면 편의점에서 술 사 마시지 뭐하러 룸살롱까지 온단 말인가?
김정산은 옆에 앉은 파트너하고 머리를 맞대고 소곤대는 중이었는데 간간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것을 본 강성욱도 조철봉을 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오늘 접대는 프놈펜에서 김정산의 도움을 받은 답례 형식인 것이다.
강성욱은 조철봉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상체를 기울이더니 낮게 말했다.
“조 사장님, 지난 번에는 실수하셨는데 오늘 접대는 성공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강성욱의 귀에 입을 가깝게 대었다.
“두고 보십시오.”
“뭘 말입니까?”
“결과를 말이죠.”
그때 김정산이 소리내어 웃었으므로 둘은 일제히 그쪽을 보았다.
방 안의 시선을 받은 김정산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이 아가씨가 우리 장군님의 가계를 다 외우고 있단 말입니다. 상을 줘야겠어요.”
“그래야겠군요.”
바로 대답한 조철봉이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아가씨에게 내밀었다.
“자, 상이야 받아.”
미스 윤이라는 아가씨가 멋쩍은 표정이 되더니 망설이다 수표를 받았다.
갑중과 강성욱이 박수를 쳤고 김정산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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