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521. 협력(9)

오늘의 쉼터 2014. 9. 18. 16:44

521. 협력(9)

 

(1632협력-17

 

 

 

“자, 이쪽으로.”

계단을 오른 김정산이 조철봉과 강성욱의 앞장을 서면서 말했다. 

 

붉은색 양탄자가 깔린 이층 복도는 조용했다. 

 

밤 10시반, 북한 대사관 건물 전체가 무거운 정적에 덮여 있다. 

 

김정산이 멈춰 선 곳은 복도 끝의 방문 앞이다. 

 

육중한 목제 문에다 가볍게 두 번 노크를 한 김정산이 문을 열었다.

“들어오시지요.”

김정산이 옆으로 비켜서면서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회의실인 것 같았다. 

 

20평쯤 되는 방 안에 원탁이 놓여졌고 의자가 대여섯 개, 

 

그 가운데 의자에 앉아 있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쯤으로 보였는데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다.

“어서오십시오.”

사내가 손을 내밀었을 때 다가선 김정산이 소개했다.

“부대사 동지십니다.”

“조철봉입니다.”

“부대사 이용태올시다.”

이용태가 다가온 강성욱과도 악수를 나누고는 자리를 권했다. 

 

넷이 둘러앉았을 때 이용태가 각자의 앞에 놓인 생수병을 가리켰다.

“늦은 시간이어서 준비가 부족합니다. 오늘은 약소하지만 이것으로.”

“아닙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조철봉이 대표로 인사를 했다. 

 

저녁 9시가 되었을 때 갑자기 북한 대사관의 부대사가 

 

김정산을 통해 만나자는 연락을 해온 것이다. 

 

강성욱을 동행시켜 초대한 형식인데 둘 다 긴장하고 있었다. 

 

강성욱이 목이 타는지 생수병의 물을 따라 마셨다. 

 

그도 이런 경우를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강성욱이 잔을 내려놓았을 때 이용태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중국 대사관에 들어갔던 일본 대사관의 참사관 미나미와 한다 

 

자동차 사장 모리, 그리고 상무관 야마구치는 돌아갔습니다.”

그러고는 눈만 껌뻑이는 조철봉과 강성욱을 향해 웃어보였다.

“중일 연합을 모의했을 것입니다. 북남 연합에 대항해야 될 테니까요.”

조철봉이 힐끗 옆에 앉은 강성욱에게 시선을 주었다. 

 

강성욱이 눈만 크게 뜨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정보는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 이용태가 말을 이었다.

“보쿠동이 경쟁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지만 그것을 비난할 수만은 없지요. 

 

국익이라는 명분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조철봉이 먼저 입을 열었다.

“중일이 연합했다면 대단한 조건이 만들어질 텐데요.”

이용태의 말을 들은 순간부터 조철봉의 가슴은 서늘해져 있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남북 연합전선이 만들어지면서 쌓였던 열기가 허물어져 내리고 있다. 

 

남북의 국력과 중일의 국력을 비교해도 차이가 난다.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이용태를 보았다. 

 

이제 이용태는 동맹군이며 전우나 같다. 

 

이 시점에서 자존심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탁 털어놓는 것이 낫다. 

 

그것이 조철봉식 처신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습니까?”

조철봉이 묻자 이용태가 정색했다.

“러시아측에다 로비를 해 보시지요.”

눈만 크게 뜬 조철봉을 향해 이용태는 말을 이었다.

“러시아에서도 7공구 유정 공급권에 관심이 있지만 우리들처럼 적극적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면 중일 동맹에 견줄 만할 겁니다.”

 

 

 

 

 

(1633협력-18

 

 

 

이제는 러시아다. 

 

조철봉은 저도 모르게 들이켠 숨을 길게 뱉으면서 이용태를 보았다. 

지금까지 갖가지 유형의 로비를 해보았고 온갖 부류의 인간을 만났지만 

 

이렇게 국제적으로 논 적은 없다. 

 

러시아라니, 일본과 중국에 이어서 러시아까지 등장했다. 

 

내일모레면 얼굴만 보았던 경제계 거물들에다 

 

총리까지 달려와 투입되는 작전에 인간 조철봉이 그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아니, 이용태는 러시아측을 끌어오는 로비를 부탁한 것이다. 

 

일익이 아니라 주역이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이용태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러시아를 좀 압니다. 

 

지금 이곳에 와 있는 통상차관 몰로토프는 제7공구 유정 공급권을 획득하라는 

 

임무를 받고 왔지만 러시아 정부측은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데다 

 

몰로토프 본인도 의욕을 잃은 상황이지요.”

조철봉은 숨소리도 죽였고 이용태는 진지하게 설명했다.

“러시아에서는 캄보디아의 해군력을 당장에 몇십배로 증강시킬 수 있는 

 

해군 장비를 지원해줄 수 있지요. 

 

중국은 동남아의 재해권을 장악할 작정이기 때문에 캄보디아에 

 

해군 장비를 지원해준다 해도 겉치레에 그칠 겁니다.”

조철봉은 머리만 끄덕였고 이용태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러시아는 다르죠. 캄보디아를 우방으로 만들어 해군력을 

 

실질적으로 증강시켜 주면 중국을 견제할 수가 있으니까 

 

러시아, 캄보디아 양국이 서로 좋은 일이란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용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조철봉을 보았다.

“한국에서는 윈윈이라고 하던가요?”

“예, 그것이.”

조철봉이 어물거리자 이용태의 얼굴이 금방 원상으로 되돌아갔다.

“몰로토프한테 의욕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이번에 북남연합에다 러시아까지 포함한 3국 공조체제가 공급권을 획득하면 

 

러시아도 싼값의 원유를 공급받게 되겠지만.”

말을 멈춘 이용태가 지그시 조철봉을 보았다.

“몰로토프한테도 득이 있어야겠지요. 

 

그건 우리 모두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조철봉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가 좀 부족합니다만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말을 꺼냈을 때부터 알아들었지만 조철봉은 다 듣고 나서 가슴이 뿌듯해졌다. 

 

몰로토프한테 돈을 먹이는 일이라면 이 중에서 가장 선수일 것이다. 

 

그때 이용태가 다시 말을 이었다.

“몰로토프는 이르쿠츠크에 별장을 갖고 있습니다. 

 

자식 두명을 스위스에 유학을 보낸 터라 차관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힘들겠지요.”

“그렇겠군요.”

조철봉이 정색하고 대답했을 때 이용태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경비 3만달러는 잘 쓰고 있습니다.”

“아, 예.”

금방 얼굴이 붉어진 조철봉이 시선을 내렸을 때 이용태가 말을 이었다.

“조 사장께서는 돈을 먹이는 기술이 뛰어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태우개발에서도 조 사장께 이번 일을 부탁한 것 같은데.”

이제는 강성욱도 시선을 내렸고 이용태의 말이 이어졌다. 

“잘 아시겠지만 조국에 대한 사명감을 품고 일하는 일꾼들한테 돈을 먹이는 건 모욕이 됩니다. 

 

조 사장께서 이해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내용과는 달리 이용태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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