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 협력(8)
(1630) 협력-15
“좋다고 하는데요.”
쓴웃음을 지은 강성욱이 조철봉에게 말했다.
이곳은 호텔에서 한 블록 떨어진 중식당의 방 안이다.
저녁 시간이라 밖의 홀은 떠들썩했다.
강성욱이 웃음을 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난 처음에 좀 놀랐습니다.
불쑥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꺼내기에 말이죠.
그런데 말하는 분위기가 불쾌한 것 같지가 않더라니까.
그러더니 좋다고 하더란 말씀입니다.”
강성욱은 김정산과 만나고 나서 다시 이곳으로 온 것이다.
목소리를 낮춘 강성욱이 말을 이었다.
“부대사한테 보고하고 그 돈을 맡겨 놓았다고 합디다.
조 사장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시겠소?”
“그럼 부대사 몫도 줘야겠는데.”
혼잣소리처럼 조철봉이 말했지만 강성욱이 흠칫하면서 머리를 들었다.
긴장한 듯 얼굴이 굳어 있었다.
“부대사한테 말요?”
“직접 만나 주면 좋겠지만 김정산씨를 통해도 되겠지요?”
“주려고?”
강성욱이 얼굴을 굳힌 채로 입술만 달싹이고 묻자 조철봉은 머리를 끄덕였다.
“아직 서둘 건 없죠. 분위기를 봐서 천천히 먹일 겁니다.”
이제 강성욱은 입을 다물었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김정산씨는 강 선생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입장을 밝혔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럴까요?”
“내가 강 선생의 지시를 받고 돈을 줬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으음, 그럴 수도 있겠구먼.”
신음 같은 탄성을 뱉은 강성욱이 머리를 들고 조철봉을 보았다.
“그럼 조 사장께선 김정산한테 돈을 준 것이 잘 먹혔다는 겁니까?”
“그렇죠.”
정색한 조철봉이 강성욱을 보았다.
“제가 곧 김정산씨를 만나 비밀을 철저히 지킬 것이라는 언질을 줄 겁니다.
김정산씨가 부대사를 언급한 것이 나한테는 부대사 몫도 있어야 한다는 소리로 들리거든요.
그러니까 저쪽은 김정산과 부대사 둘이 되고 우리도 둘입니다.”
강성욱은 눈만 크게 떴고 조철봉은 말을 이었다.
“따라서 우리 둘이 비밀을 지킨다는 약속을 해주면 저쪽은 마음 놓고 먹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조철봉이 소리 없이 웃었다.
“비밀을 지켜준다는 조건하에 먹어 준다면 일단 절반은 성공한 셈이지요.”
“많이 해보셨군요.”
강성욱이 웃지도 않고 말했을 때 조철봉이 정색하고 동의했다.
“예, 저는 먹어준 상대방한테 고맙다는 심정이 됩니다.
이용하게 되었다는 마음을 먹으면 그 로비는 십중팔구 잘못되더군요.
제 경험이 그렇습니다.”
이제는 말문이 막힌 강성욱이 눈만 껌벅였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북한 담당자뿐만 아니라 링컨 대통령한테도 돈 먹일 자신이 있습니다.
방법은 진심이죠. 진심으로 먹이는 겁니다.”
(1631) 협력-16
참사관 미나미는 중국 대사관저에 와 본 적이 있었지만 한나자동차 사장 모리는 첫 방문이었다.
밤 9시반이었다.
왕자성은 모리와 미나미, 상무관인 야마구치까지 셋을 대사관으로 초대했지만 극비 접촉이었다.
따라서 일본인 셋은 중국요원의 안내를 받아 대사관 뒷문으로 들어왔다.
대사관 2층 소회의실에 둘러앉은 인원은 모두 여섯. 중국측도 왕자성과 위윤, 통역관까지 셋이다.
인사가 끝났을 때 먼저 왕자성이 입을 열었다.
“일본측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남북한이 연합해서 밀고 들어가게 되면 결과는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왕자성이 대뜸 본론부터 꺼내자 통역을 들은 일본인 셋은 긴장했다.
정색한 왕자성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씀인데요.
중·일이 컨소시엄을 결성해서 남북한 연합에 대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통역이 끝났을 때 미나미와 모리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더니 미나미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다급한 상황에서 본국 승인을 기다릴 여유가 없으니 제 독단으로 결정하겠습니다.
하지요.”
미나미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고 통역을 들은 왕자성이 얼굴을 펴면서 활짝 웃었다.
“결단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중·일 양국의 조건과 공급권을 획득했을 경우의 권리 문제를 결정해야 될 것 같군요.”
“그러시죠.”
이번에는 모리가 나섰다.
“곧 한국 경제사절단이 올 텐데 캄보디아 정부가 넘어가기 전에 제의를 해야 합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다시 모여서 조건과 권리 사항을 협의하기로 하지요.”
왕자성이 말하자 미나미와 모리가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본이 내놓을 최대한의 조건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우리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한 왕자성의 시선이 야마구치에게로 옮겨졌다.
“오늘 부총리를 만난 한국인 기업가에 대해서 아시죠?”
왕자성이 묻자 통역을 들은 야마구치가 시선을 들었다.
대답을 기다리는듯 왕자성의 시선이 아직도 옮겨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야마구치에게 물었다는 표시였다.
그것은 야마구치가 일본측 정보책임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도 되었다.
야마구치가 쓴웃음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자는 오토바이 공장을 설립한다지만 거짓말입니다. 알고 계시지요?”
“예, 그자는 태우개발이 고용한 로비스트입니다.
하지만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 등 여러 곳에 기업체를 경영하고 있지요.”
정색한 야마구치가 통역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한국 국정원 요원들이 이곳에 와 있습니다. 알고 계시지요?”
이번에는 야마구치가 물었고 왕자성이 대답했다.
“보고 받았습니다.”
“이건 마치 전쟁이군요.”
그때 모리가 혼잣소리처럼 일본어로 말했지만 통역관이 그대로 통역을 해버렸다.
그러자 왕자성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전쟁은 적이 보이기나 하지요.
이런 전쟁은 누가 적인지도 불분명한 데다 싸움은 더 비열하고 잔인하지요.”
통역관이 진땀을 흘리며 겨우 통역을 끝냈을 때 일본측 셋은 다 머리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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