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 협력(7)
(1628) 협력-13
왕자성은 찻잔을 들었다가 그냥 내려놓았다.
시선이 앞쪽에 앉은 위윤에게 향해져 있었지만 초점이 멀다.
뒤쪽을 보는 것 같다. 왕자성이 입을 열었다.
“한국측 조건이 아직 밝혀진 건 없지?”
“예, 부대사님.”
위윤은 제 잘못인 것처럼 분위기가 위축되었다.
시선을 내린 위윤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경제사절단에다 장관들을 대동한 총리 방문,
그리고 이어서 북한총리와 군 실력자들의 방문이 이어지는 터라…….”
그야말로 전력 차이가 난다.
이쪽이 기관포를 쏘아 재끼는데 갑자기 미사일이 날아온 것이나 같다.
한국의 경제사절단에다 총리 방문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북한 놈들의 행태는 기습적이다.
놈들은 어느새 한국과 연합한 것이다. 빌어먹을 북한놈들, 배은망덕한 놈들 같으니.
속으로 욕설을 뱉은 왕자성이 머리를 들었다.
“지금 한국 로비스트는 부총리를 만나고 있나?”
위윤이 대답하기 전에 벽시계를 보았다.
낮 12시반, 아직 점심 식사가 끝날 시간이 안되었다.
“예, 지금 부총리하고 식사 중일 겁니다.”
그러고는 위윤이 덧붙였다.
“포이가 동석했을 테니까 상담 내용은 곧 보고 드리겠습니다.”
“도대체.”
어금니를 물었다가 푼 왕자성이 위윤을 보았다.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북한놈들이 왜 저러지?”
당연히 위윤은 눈만 껌벅였고 왕자성의 말이 이어졌다.
“원유 공급권을 따내면 남북이 나눠쓰자는 비밀 합의를 한 것일까?”
“저는 잘.”
그러자 길게 숨을 뱉은 왕자성이 위윤을 보았다.
“일본측 책임자는 대사관의 미나미지?”
“예?”
놀란 위윤이 눈을 크게 떴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부대사님.”
“지금 연락을 해. 내가 만나잔다고.”
“만, 만나자고 말씀입니까?”
“아마 일본놈들도 상황을 알고 있겠지.
눈만 껌벅이고 있을거야. 얼굴이 노랗게 되어 갖고 말이지.”
왕자성이 역시 얼굴이 노랗게 된 위윤을 향해 입술 끝을 비틀면서 웃었다.
“오늘 밤에 회동을 하자고 해. 물론 극비로.”
“예, 극비회동을.”
“남북한이 연합전선을 구축했다면 중·일도 동맹을 맺는거야.
그놈들이 예전에 한 짓을 생각하면 기가 막힐 일이지만.”
잠시 말을 멈춘 왕자성이 길게 숨을 뱉었다.
“쥐 잡는 데 흰고양이, 검은고양이 가릴 것 없어. 쥐만 잡으면 돼.”
흑묘백묘론, 개혁의 선구자 덩샤오핑(鄧小平)이 한 말이다.
“알겠습니다.”
긴장한 위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지금 연락을 하겠습니다.”
“이번 공급권을 빼앗기면 안돼.
총리 동지께서도 다녀가신 데다 당에서도 적극 지원해 주겠다고까지 한 상황이야.”
“알고 있습니다.”
“중·일 동맹이 전력을 모으면 남북한의 어설픈 공조는 깨뜨릴 수 있을거야.”
악문 잇사이로 왕자성이 말했을 때 위윤은 몸을 돌렸다.
일본은 동맹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남북한의 갑작스러운 연합에 놀라 우왕좌왕하고 있을 것이었다.
왕장성은 심호흡을 했다.
동맹은 하더라도 중국이 주도권을 쥐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몫이 많아진다.
(1629) 협력-14
창밖의 거리를 바라보던 강성욱이 머리를 돌렸다.
오후 세시반, 부총리와 점심을 마친 조철봉은 호텔로 돌아와 있었다.
강성욱이 앞에 앉은 김정산에게 말했다.
시내의 한식당 밀실 안이다.
“부총리는 조 사장의 신분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다 알면서 만난 것이지요.”
김정산은 잠자코 머리만 끄덕였고 강성욱의 말이 이어졌다.
“특별한 언급은 없었지만 남북 연합에 대해서 호의적인 것 같다고 조사장이 말하더군요.”
지금 강성욱은 조철봉이 부총리와 만난 결과를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강성욱이 정색한 얼굴로 김정산을 보았다.
“아직 방심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그냥 물러날 리는 없으니까요.”
“물론입니다.”
머리를 끄덕인 김정산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조금 전에 포이한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오늘 조 사장과 부총리와의 상담 내용을 알려달라고 중국 측이 부탁해왔답니다.”
중국은 포이를 뇌물로 매수한 상태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강성욱의 시선을 받은 김정산이 말을 이었다.
“오토바이 공장 설립에 대한 지원 요청을 했고 부총리가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는 정도로 말하라고 했습니다.”
포이는 김정산이 시킨 대로 할 것이었다.
“내일 경제인단이 도착하면 분위기가 확 바뀔테니까요.”
강성욱이 말했다.
경제인연합회장 박동규는 이곳에서 대규모 한·캄 경제협력 계획을 발표할 것이었다.
이미 내부에서 투자액까지 설정해 놓았다고 했다.
그러고는 총리 일행이 방문해서 협력 계획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그때 김정산이 시선을 들고 강성욱을 보았다.
“저기, 조 사장 말입니다.”
“예, 김 선생.”
그러자 강성욱의 시선을 받은 김정산이 멋쩍게 웃었다.
“제가 며칠 전에 조 사장한테서 활동비로 3만달러를 받았습니다.”
“…….”
“좀 황당해서 말입니다. 조 사장은 팀원 경비를 지급한 셈이라고 하시는데 이거.”
“그런 셈으로 치시지요.”
강성욱이 얼른 말을 받았지만 외면했다.
“이해하십시오. 김 선생.”
“난 그런 거금을 본 적도 없어서 말입니다. 그렇게 겁이 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
“그래서 일단 그 돈을 대사께 보고하고 맡겨 놓았단 말입니다.”
그러고는 김정산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대사 동지께서도 놀라시더란 말입니다.”
강성욱은 아직까지 헷갈린 상태였다.
열심히 김정산을 살폈지만 화를 내는지 비꼬는지 감이 잘 안잡혔다.
그러나 대사한테까지 보고하고 보관시켰다면 문제가 커질 가능성이 많다.
이윽고 강성욱은 마음을 정했다. 잘 나가는 판을 조철봉이 깨면 안된다.
한국에서 이놈 저놈한테 막 먹였던 행태를 프놈펜까지 와서
북한 담당자한테도 써먹고 있는데 위험한 것이다.
상대를 잘못 골랐다.
“제가 주의를 주겠습니다.”
단호한 표정을 지으면서 강성욱이 김정산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조 사장은 좀 썩었습니다.
썩은 물에서만 놀다 보니까 사람을 가려서 대하는 걸 잊은 것 같습니다.
이해해 주시기를….”
그때 김정산이 손을 들어 강성욱의 말을 잘랐다.
“아니, 저는 좋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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