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518. 협력(6)

오늘의 쉼터 2014. 9. 18. 16:42

518. 협력(6)

 

(1626협력-11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2차를 나가겠는가? 

 

조철봉은 폭탄주만 세 잔을 더 마시고 나서 룸살롱을 나왔다. 

 

물론 나올 때 강성욱과 김정산은 이미 정보원답게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최갑중이 호텔 방 앞까지 따라와서 힐끗거린 것은 조철봉의 생리를 알기 때문이었다. 

 

강성욱과 김정산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지금은 여자하고 둘이 있을 시간이다. 

 

지금까지 조철봉이 하다가 만 적은 갑중의 기억에 없는 것이다.


“형님.”

그래서 조철봉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기 직전에 뒤에서 불렀다. 

 

머리만 돌린 조철봉에게 갑중이 물었다.

“혼자 주무실 거요?”

이미 배동식은 제 방으로 갔기 때문에 복도에는 둘뿐이다. 

 

갑중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구 있어?”

“아까 걔 오라고 할까요?”

“나중에.”

한 마디로 자른 조철봉이 문을 열다가 말고 쓴웃음을 지은 얼굴로 갑중을 보았다.

“아까 외화낭비 안 한다는 말은 틀렸다. 

 

걔들은 받은 달러를 밖에다 뿌릴 테니까 말야.”

“그렇죠. 안 쓰는 게 굳히는 거죠.”

“일 끝나고 진하게 할란다.”

“알겠습니다.”

기분이 풀린 갑중이 몸을 돌렸고 조철봉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의 불을 켜고 옷을 벗어 소파 위에 던져놓은 조철봉은 베란다 쪽 문을 열었다. 

 

밤 바람에 커튼이 펄럭이면서 짙은 땅 냄새가 맡아졌다. 

 

선반 위에 놓인 위스키 병과 잔을 집어든 조철봉은 쇼파에 길게 다리를 뻗고 앉았다. 

 

밤 11시 반이 되어 가고 있었다. 

 

조철봉은 잔에 양주를 따르고는 한 모금 삼켰다. 

 

술기운이 번져 있던 몸에 다시 강한 알코올이 흡수되면서 머리가 화끈거렸다. 

 

그러나 정신은 말짱했다. 

 

김정산과 강성욱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떠올랐다. 

 

한국은 대규모 경제사절단에다 총리가 인솔하는 장관들이 몰려온다. 

 

북한은 총리와 무력부장, 군총정치국장까지 실세가 오는 것이다. 

 

다시 양주를 한 모금 삼킨 조철봉은 길게 숨을 뱉었다. 

 

이렇게 될 줄을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뤄지는 꼴을 보니까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자랑스럽다. 

 

조철봉은 다시 술을 한 모금 삼키고는 침대로 다가갔다. 

 

섹스 생각은 진즉 달아나 있었다.

다음 날 오전 11시40분이 되었을 때 조철봉과 최갑중, 배동식과 통역인 송기태까지 

 

넷은 부총리 집무실 옆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경세엔진의 오토바이 공장 설립 건에 대한 설명 및 협조 요청의 명분이므로 배동식은 

 

자료도 준비해 왔다. 

 

회의실은 원탁 주위에 10여개의 의자가 놓여 있을 뿐 방안 장식도 소박했다. 

 

5분쯤 기다렸을 때 비서실장 포이의 안내를 받은 부총리 보쿠동이 들어섰다. 

 

마르고 주름 진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 번져 있다. 

 

자리에서 일어선 조철봉부터 차례로 악수를 나눈 보쿠동이 말했다.

“한국의 선발대 역할이군요.”

다시 자리에 앉았던 조철봉이 긴장했다. 

 

보쿠동은 지금 경제사절단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맞는 표현이다. 

 

보쿠동이 뒤쪽에 앉아 있는 통역에게 다시 말했다. 

“당신을 선두로 한국과 북한의 민관 경제사절단이 몰려오게 되었군요. 

 

당신은 행운을 몰고 오는 분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통역을 들은 조철봉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이번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627협력-12

 

 

 

공관의 마당 건너편 단층집은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10평도 안되었다. 

 

테이블 2개에 의자가 10여개 정도여서 가족 식당인 것 같았다. 

 

본래 오늘 회동은 사업 설명을 간단히 마치고 나서 오찬을 하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그들은 곧 식당으로 옮아간 것이다. 

 

자리잡고 앉았을 때 곧 쌀밥과 찬이 날라져 왔다. 

 

닭고기 튀김과 야채 조림, 그리고 수프에다 과일이 전부인 점심상이었다. 

 

부총리는 비서실장 포이와 통역까지 둘만 대동했고 이쪽은 넷이어서 분위기는 어수선하지 않았다. 

 

밥 먹으면서 세상 이야기를 하자는 의도인 것이다. 

 

날씨 이야기를 꺼냈던 보쿠동이 씹던 음식을 삼키고 조철봉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다른 나라하고 비교하면 이곳은 로비가 잘 통하던가요?”

통역을 맡은 송기태가 더듬거리면서 조철봉의 눈치를 보았다. 

 

말해놓고 제가 제대로 옮겼는지 불안한 표정이었다. 

 

보쿠동이 대답을 기다리는 듯 시선을 주고 있었다. 

 

조철봉은 자신의 지난 행적이 다 밝혀져 있는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쪽은 정부다. 국가 기관이 움직이는 것이다. 

 

한국인 조철봉의 과거쯤은 어렵지 않게 조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3초 정도의 순간이었지만 조철봉은 추리했고 마음의 결정을 했다.

“이쪽은 어렵습니다. 첫째로 당사자가 정부 관리들이어서요.”

조철봉이 또박또박 말했고 송기태가 통역했다. 

 

보쿠동이 자신이 로비스트 역할인 걸 아는 이상 돈 문제를 꺼낼 수밖에 없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농담 삼아 하는 말인데 돈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뒤탈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긴 그렇지가 않은 것 같네요.”

송기태가 열심히 통역을 마쳤을 때 보쿠동이 활짝 웃었다. 

 

소리없이 온 얼굴을 주름살투성이로 만들면서 웃었다.

“비즈니스에 로비가 필요하죠.”

불쑥 보쿠동이 말했고 뒤에 앉은 통역이 무뚝뚝한 말투로 통역했다. 

 

억양이 북한식이다. 

 

눈만 크게 뜬 조철봉을 향해 보쿠동도 천천히 분명하게 말했다.

“더욱이 큰 프로젝트에는 로비가 필수적입니다. 

 

물론 부정한 방법은 배제되어야겠지요.”

한모금 수프를 삼킨 보쿠동이 다시 얼굴을 펴고 웃었다.

“이번 국가간의 로비는 전쟁이나 다름없는 것 같더군요. 

 

중국과 일본, 한국, 세 경제 대국이 벌이는 경제 전쟁 같더란 말입니다.”

북한 억양의 통역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보쿠동이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한국이 좀 방심했지 않습니까? 난 그것이 의아했는데.”

조철봉은 통역의 억양에 점점 열기가 더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 자는 북한산 같다. 

 

혹시 김정산과 아는 사이인가? 

 

그때 보쿠동이 또 말했다.

“중국과 일본이 치열하게 나섰을 때 뒤늦게 조 사장이 도착하셨더군요. 

 

경세엔진이란 급조된 회사 이름을 갖고 말입니다.”

그러고는 보쿠동이 눈웃음을 쳤는데 조철봉이 따라서 웃어 주다가 통역을 듣고 나서 시선을 내렸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보쿠동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더니 남북이 연합해서 민관이 전력으로 접근해오는군요. 보기가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겨우 조철봉이 그렇게 말했을 때 보쿠동이 물잔을 들고 건배하자는 시늉을 했다.

“나도 제법 로비를 한 셈이지요. 공급권 가지고 조건을 많이 올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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