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 협력(5)
(1624) 협력-9
“네, 저도 한국산이에요.”
하고 최갑중의 파트너가 말했으므로 조철봉이 소리내어 웃었다.
갑중이 따라 웃었고 긴장하고 있던 배동식도 마침내 웃었다.
셋이 다 한국산이었던 것이다.
“좋아, 외화 낭비 안 해서 다행이다.”
조철봉이 파트너 어깨를 감아 안으면서 물었다.
“근데 팁값이나 이차비 계산은 어떻게 하는 거야? 현지 시세 기준인가?”
“그럴 리가요.”
금방 정색한 갑중이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들을 보았다.
“아니지? 그렇지?”
오늘 룸살롱 수배는 배동식이 했기 때문에 갑중은 내막을 모른다.
그리고 동식 또한 이곳 경험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오직 현지 사무실을 통해 소개를 받은 것이다.
그러자 정은주가 대표로 대답했다.
“기준이 없으니까 알아서 주세요.”
“그것 황당하군.”
갑중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가씨 셋은 다 미인이었다.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일 만했다.
이곳에도 이런 미인이 있구나 하고 신기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한국녀라는 것이 밝혀지자 조철봉부터도 왠지 신비감이 줄어들었다.
그 원인은 아마 싼값에 고급 물품을 사려다가 제값을 내게 되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현지 시세를 적용한다고 했다면 갑중은 틀림없이 기뻐서 펄쩍 뛸 놈이다.
그러나 폭탄주를 석 잔씩 마시고 났을 때 찜찜했던 기분은 다 풀렸다.
정은주와 두 한국녀는 친구 사이였고 각각 직장을 다니다가 뜻한 바 있어
여행을 떠난 스물네 살 동갑내기였다.
따라서 남자들과 대화가 통했고 나중에는 해외에 나와서도 외화를 낭비하지 않게 되었다는
조철봉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들을 했다.
그런데 폭탄주를 네 잔째 만들었을 때였다.
문이 열리더니 사내 하나가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깨졌다.
들어선 사내는 국정원 팀장 강성욱이었던 것이다.
“아니, 여길 어떻게?”
하고 조철봉이 대표로 그를 맞으면서 물었다. 그러자 강성욱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말씀 드릴 일이 있어서요.”
그러더니 여자들한테 말했다.
“아가씨들, 잠깐 옆방에서 기다려. 5분이면 되니까.”
한국말이다. 강성욱은 여자들이 한국녀인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가씨들이 방을 나갔을 때 자리잡고 앉은 강성욱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여기 오신다고 해서 미리 조사를 했지요.”
강성욱이 방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무슨 장치 같은 건 없습니다.”
“이거, 저희들도 신경을 썼지만.”
조철봉이 강성욱에게 술잔을 건네주며 말했다.
“번거롭게 해드렸습니다. 그냥 방 안에서 마시는 건데.”
“아니, 이렇게 가끔 스트레스를 풀어야 견딥니다. 이해합니다.”
잔을 받은 강성욱이 위스키를 삼키더니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닷새 후에 한국에서 경제인연합회장이 100여명의 경제계 인사들을 이끌고 캄보디아에 옵니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지만 캄보디아 정부 측에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죠.
이런 대규모 경제사절단은 처음이니까요.”
놀란 셋은 입만 쩍 벌렸고 강성욱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뒤를 이어서 총리가 장관 셋을 대동하고 정부 차원의 방문을 합니다.
모두 제7공구 유정 공급권 때문이지요.”
강성욱이 이를 드러내고 소리없이 웃었다.
(1625) 협력-10
포이로부터 일본 측이 제시한 조건은 물론이고 중국 측 조건까지 이미 다 파악된 상황이다.
중국의 유언비어 작전까지 알고 있는 터라 한국 측은 작전 수립에 유리했다.
김정산은 지난번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도 하지 않았는가?
그때 방문이 또 열렸으므로 모두 고개를 들었다. 조철봉이 다시 놀라 눈을 둥그렇게 떴다.
들어선 사내는 김정산이다.
마침 생각했을 때 나타난 셈이었는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옛말은 타당성이 있다.
호랑이는 뜬금없이 나타나지 않는다.
나타날 만하니까 말들을 하는 것이다.
이 분위기에서 김정산이 나타날 만했고 바로 호랑이처럼 나타났다.
웃음띤 얼굴로 들어선 김정산이 자리에 앉더니 먼저 조철봉에게 말했다.
“베이징에서 룸살롱을 여러 번 가봤는데 한국 룸살롱 수준은 도저히 따라가지 못 한다고 하더군요.”
맞는 말이다. 조철봉이 겪어봐서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해장국 원조집 등에 비교할 것이 아니다. 룸살롱에 한해서는 세계 어느 민족도,
어느 나라도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는 한국 수준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그때 성욱이 나섰다.
“김 선생, 제가 지금 경제사절단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총리 방문 계획도요.”
그러자 김정산이 상체를 세웠다. 얼굴 표정도 어느새 정색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총리님이 오신 다음날에 우리 공화국 총리 동지께서 여기 오십니다.
총리 동지께선 무력부장과 군총정치국장 동지를 대동하고 오십니다.”
놀란 조철봉이 눈만 껌벅였고 최갑중과 배동식은 아예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김정산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이번 북남 협력사업인 제7공구 유정 공급권 때문이죠.
총리께선 캄보디아 정부 측에 무기 원조 제의를 하실 것입니다.”
그러고는 김정산이 조철봉의 시선을 받고 빙그레 웃었다.
“아마 중국보다 조건이 좋을 겁니다.
무기 수준도 나으면 나았지 떨어지지 않습니다.”
“으음.”
마침내 조철봉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그야말로 남북 협력이다.
북한제 무기가 우수하다는 것은 조철봉도 안다.
미사일도 수출해왔고 더욱이 작년에는 핵까지 개발하지 않았는가?
“해볼 만하군요.”
조철봉이 말했을 때 이번에는 강성욱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일 부총리를 만나실 때 부담을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총리도 조 사장님이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오셨는지 짐작하고 있을 테니까요.”
머리만 끄덕인 조철봉을 향해 다시 김정산이 말을 이었다.
“포이의 말을 들으면 부총리는 조 사장님 일행이 한국 측 로비스트라는 보고를 받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일 점심 회동도 그걸 알면서도 약속을 잡았다고 보셔도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아직까지도 앞에 놓은 폭탄주 잔을 들고 갑중에게 말했다.
“두 분께 폭탄주 만들어 드려.”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갑중이 놀라 동식과 함께 폭탄주를 만들어 둘 앞에 놓았다.
“자, 건배합시다.”
잔을 든 조철봉이 상기된 얼굴로 둘을 보았다.
“이제 해볼 만한데요.”
그러자 술잔을 든 강성욱과 김정산이 누가 빨리 마시나 내기라도 하듯이
서둘러 마시고는 거의 동시에 잔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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