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협력(4)
(1622) 협력-7
“내일 점심 때 부총리 면담 일정이 잡혔습니다.”
하고 김정산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곳은 프놈펜 시내의 베트남 식당 안이다.
오늘은 조철봉과 송기태, 김정산 셋이 모여 앉았는데 식당 안에는 그들 셋뿐이다.
주위를 둘러본 김정산이 말을 이었다.
“아마 점심 식사를 같이 하시게 될 겁니다. 조 선생님하고 말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조철봉이 정색하고 김정산을 보았다.
피부는 검게 탔고 체격도 보통이어서 영락없는 크메르인이었다.
그러나 김정산은 열심이었다.
지금 프놈펜에서의 한국 측 활동은 김정산이 주역이다.
부총리 면담 일정이 예상보다 빨리 잡혔으므로 조철봉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보쿠동한테 오토바이 공장 설립건에 대해서 협조 요청을 할 계획이었지만 그것은 외면일 뿐이다.
제7공구 유정 공급권에 대한 어떤 힌트라도 얻어 내는 것이 주목적인 것이다.
그때 김정산이 입을 열었다.
“조 선생, 국정원 강 선생이 여기 우리 대사관에다 협조 요청을 해왔을 때
난 베이징에 있었단 말입니다.”
김정산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랐고 말이 이어졌다.
“평양에서 ‘야, 동무가 가서 도우라우’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
“야, 이거 정말 북남이 하나가 되는 모양이다.
이거 목숨을 바칠 만하구나, 야, 하는 생각이 들더란 말입니다.”
“…….”
“제7공구 유정 공급원이 한국으로 넘어가면 우리도 기름 걱정을 안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겠지요.”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그때서야 옆에 앉은 송기태를 보았다.
“그것.”
그러자 송기태가 탁자 밑 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더니 조철봉 앞에 놓았다.
“받으시지요.”
“뭡니까?”
김정산이 봉투를 받으며 물었다.
“현찰로 3만달러 들었습니다. 활동비 드리는 겁니다.”
김정산은 봉투를 쥔 채 가만있었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어쨌건 제가 외면상으로는 이번 로비작전의 책임자로 로비 자금을 다 갖고 있지요.
“…….”
“비용이 많이 드실 테니까 청구를 해주시면 더 좋겠지만 제가 알아서 드리도록 하지요.”
그러자 김정산이 봉투를 제 앞쪽에다 내려놓더니 조철봉을 보았다.
“내가 이런 지시는 받지 못했는데, 상부에다 보고를 해야겠습니다.”
“그렇게 하시든지요.”
조철봉이 웃음띤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어쨌건 제가 김 선생님한테 뇌물 로비를 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이해는 합니다.”
“제가 태우개발 측에서 로비 자금으로 수백만달러를 가져왔거든요.”
그러자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인 김정산이 봉투를 식탁 밑으로 내려놓았다.
(1623) 협력-8
조철봉이 김정산에게 건넨 현찰 3만불은 뇌물이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팀원에게 건네준 기밀비 내지는 활동비 명목이 될 것이다.
사업을 하면서 뇌물이야말로 기계에 칠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조철봉이다.
따라서 김정산에게 활동비를 준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날 밤, 조철봉은 프놈펜시내의 룸살롱에 들어가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프놈펜에도 어김없이 한국계 룸살롱이 진출해 있었는데 좀 과장한다면 세계의 옷 입고 사는
도시에는 다 한국 룸살롱이 진출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전에는 한국 식당부터 진출했는데 지금은 순서가 바뀐 것 같았다.
룸살롱 대표는 한국어가 유창한 캄보디아 여자로 대단한 미인이었다.
틀림없이 한국인 남편 내지는 스폰서가 배후에 있을 것이다.
이름도 한국식으로 지어서 명함에는 ‘지니’라고 찍혀 있었다.
조철봉 일행이 방에 들어가 자리잡고 앉았을 때 그 ‘지니’가 말했다.
“영계 좋아하시면 딱지 안 뗀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 순간 최갑중이 조철봉의 눈치를 보더니 머리부터 흔들었다.
“이보쇼, 우리 사장님은 그런 분 아녀. 그냥 아가씨 데려와.”
그냥 아가씨라는 표현이 우스웠으므로 조철봉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랐다.
룸살롱에 온 건 오랜만이다.
갑자기 거창한 일을 맡는 바람에 긴장하는 나날을 보내다가 룸살롱 분위기가 좋아지자 살 것 같았다.
숨 쉬기도 편해진 것 같고 어깨가 늘어지면서 온몸이 평온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장을 뛰게 만드는 기대감이 에너지를 불러일으켰다.
조철봉은 지금 자신의 몸이 자동차라면 엔진 오일에다 필터, 에어 클리너를 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니가 나가더니 금방 아가씨 셋을 데려왔다.
손님은 조철봉과 최갑중, 그리고 비서실장 배동식 등 셋인 것이다.
“으음.”
아가씨들을 본 순간 조철봉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아름답다.
알맞게 탄 피부는 윤기가 났고 검은 눈동자에 오뚝 솟은 콧날,
그리고 아담한 키에 섬세한 몸매,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 조철봉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셋을 차근차근 훑어보았다.
전에는 아름다운 아가씨들을 세워놓고 눈이 부셔서 대충 골랐다.
그러고 나서 꼭 후회를 했다.
고르고 나서 보면 옆쪽 파트너가 더 나은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고를 시점에는 앞에 늘어선 아가씨들의 시선을 무시하기로 했다.
걔들은 그냥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가씨들과 시선이 마주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눈이 마주치면 아무래도 인정에 끌린다. 눈이 마주친 상대가 웃어 주기라도 한다면
어지간한 기준에서 그냥 그 아가씨를 골랐던 조철봉이다.
그러고 나서 백발백중 다 후회했다.
조철봉은 오늘은 인정에 끌리지 않고 맨 왼쪽 아가씨를 지명했고,
갑중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고는 오른쪽 아가씨를 제 옆에 앉혔다.
지니가 술 주문을 받고 나갔을 때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제 파트너를 보았다.
그러자 시선이 마주친 파트너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 정은주라고 합니다.”
유창한 한국말, 그리고 이름 또한 한국 이름이다.
놀란 조철봉이 눈만 크게 떴을 때 아가씨가 방긋 웃었다.
“앙코르와트 관광하려고 왔다가 여기서 용돈 좀 모으려고요.”
역시 옆에서 놀란 최갑중이 입을 딱 벌리고 있다가 제 파트너에게 물었다.
“넌? 너도 메이드 인 코리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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