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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천년대업(千年大業) 22

오늘의 쉼터 2014. 9. 17. 16:57

제19장 천년대업(千年大業) 22

 

 

 

“그런데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쯤에 소천이 두 자매가 묵던 뒤채로 와서,

“좀 전에 큰도련님께서 오셨는데 보희 아씨를 찾습니다.”

하여 보희가,

“나만?”

하고 물으니,

“네. 바느질할 채비를 해서 급히 안채로 건너오시랍니다.”

하였다. 보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오라버닌 바느질할 게 있으면 옷만 벗어 보내시는데 어찌하여 이번엔 사람을 건너오라고 하시지?”

했더니 소천이 웃으며,

“춘추 도령이 같이 오셨는데 아마도 바느질할 옷이 춘추 도령 옷인 것 같습니다.”


하고 일러주었다. 보희가 춘추라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가,

“오라버니의 옷이라면 모를까 내 어찌 처자의 몸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남정네 옷을 만지겠니.

 

너는 안채로 가서 내가 연고가 있어 명을 받들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아뢰어라.

 

몸이 아파 잠이 들었다면 오라버니도 더 귀찮게 하지 않을 게다.”

하며 거부했다.

 

소천이 안채로 갔다가 잠시 뒤에 다시 나타나서,

“말씀하신 대로 아뢰었더니 이번엔 막내아씨더러 오시랍니다.”

하였다. 보희가 소천이를 보고는,

“저런 답답이를 좀 보아. 중 뜻이나 스님 생각이나?

 

오줌장군 같은 춘추 도령 옷을 꿰매라는데 문흰들 나랑 형편이 다르겠니?”

하며 소천이 미리 거절하지 않은 것을 책망한 뒤에 문희를 보고는,

“얘, 너는 나한테 꿈을 사갔으니 길몽 꾼 값을 해주고 오너라.”

하고 놀려댔다.

 

그러자 두 자매의 뜻을 알아차린 소천이,

“아씨들은 소천이가 답답한 줄만 알았지 본인들의 눈이 얼마나 어두운 줄은 모르시는 모양들이오.”

하고서,

“광물이 바위 속에 숨고 아름다운 꽃도 본래는 땅 밑에서 생겨나는 법이오.

 

춘추 도령이 비록 외모는 볼품이 없어도 천하에 저만한 인물이 또 있을까 모르겠소.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오라버님이 사람을 집으로 데려와서 누이를 부르는 것 하나만 보더라도

 

무턱대고 기휘할 일만은 아닌 듯하오. 언제 이런 일이 또 있었소?”

하며 일침을 놓았다.

 

부전자전. 그 아버지 성보를 닮아 전에부터 신통한 소리를 곧잘 한 마디씩 던지곤 하던 소천이었다.

 

그래도 보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인물 아니라 우인물이라도 나는 싫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 않니.

 

오라버니가 부르는 까닭을 아니까 안 가려는 게다.”

하였으나 언제부턴가 시종 골똘한 생각에 잠겼던 문희는 별안간 벌떡 일어나

 

바느질할 도구를 주섬주섬 챙겨오더니,

“가자, 소천아. 낮에 보니까 춘추 도령이 못나긴 했지만 그런대로 귀여운 구석은 있더라.”

 

말을 마치자 제가 오히려 앞장서서 유신이 묵고 있던 안채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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