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천년대업(千年大業) 1
당에 숙위로 갔던 춘추가 귀국한 것은 병술년 늦가을로, 당시는 당황제 이연(李淵)이
차남 세민에게 천자의 자리를 양위한 직후였다.
그가 신라 조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안으로 떠났던 것이 신사년(621년) 여름이니
햇수로 6년 만에 돌아온 셈이다.
춘추는 그동안 장안(長安)에 머물며 대세와 구칠의 소개로 면을 익히게 된 신생 당나라 조정의
여러 중신들과 두터운 교분을 쌓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이세민과는 그가 제위에 오르기 전부터
먹던 수저로 뒷상 밥을 물려 먹고 밤에는 한 이불을 덮고 잘 만치 사이가 자별했다.
이세민은 쾌활하고 호방한 점과 날카롭고 치밀한 구석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그는 스스로 당나라 건국의 주역일 뿐만 아니라 송로생의 군대를 물리치고 장안을 점령함으로써
이연이 공제에게 천자의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도록 했고, 그 뒤로도 직접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비며
수나라 장수 왕세충, 두건덕 일당을 차례로 토벌하여 나날이 신하와 백성들의 신망을 쌓아갔다.
당조가 번성할 것을 예측하던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이 높았던 인물은 누가 뭐래도 황제의 차자인
세민이었다.
거기 비하면 황태자 건성은 여러 모로 아우에 미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괄게 타는 단불에 나방 꾀듯 세민의 주변에 상시 사람들이 들끓었다.
때를 만나 뜻을 펴보려는 자국의 선비와 호걸들은 물론이요,
세력가의 풍모를 엿보고자 하는 이웃 나라 사람들까지 가세해 대궐 근처 그의 사저는
연일 식객, 문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세민을 만나본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호쾌함과 대범함에 탄복을 금치 못하면서도
일변 사람을 찬찬히 뜯어보는 예리한 눈빛에 섬뜩함을 느끼곤 했다.
대개의 호걸들이 그렇듯 그 역시 사람 만나기를 즐길 뿐 아니라 상대가 마음에 들면
귀빈으로 삼아 황송할 정도로 지극히 환대했는데, 신라 사람 대세도
그런 대접을 받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대세는 세민이 그 아버지를 들쑤셔 거사를 도모할 때부터 인연을 맺어 구칠과 함께
곡물 장사로 벌어들인 재물을 적잖이 헌탁하였고, 그 공으로 위국공(爲國公)에 봉해져
건국 공신의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었다.
그런 그가 젊어 둘도 없는 고향 친구인 용춘의 아들 춘추를 자식처럼 귀애한 것이나,
춘추를 세민에게 데려가 좋은 말로 소개한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양자가 초면 상견한 첫날,
세민은 미리 온 한패의 세객들과 흥겨운 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그는 춘추가 신라의 왕자임을 대세를 통해 몇 차례 들었으나 시초만 해도
누가 누군지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
마침 좌중은 세민이 개주의 염조칙을 물리친 일에 대한 치사와 덕담을 나누는 중이었고,
주흥이 무르익자 글깨나 읽은 한 선비가 나서서 시문을 지었다.
꽃의 종자가 비록 땅에서 유래하고
땅을 좇아 꽃이 생겨나지만
만일 씨를 뿌리는 이 없으면
꽃은 저절로 피어나지 않는다
花種雖因地 從地種花生
若無人下種 花種盡無生
이세민의 눈부신 활약을 파종에 비유한 글이었다.
“훌륭하외다.”
세민이 흡족하게 웃으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누가 이에 짝할 글을 한번 지어보지 않겠소?”
그러자 춘추가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제가 비록 아는 바는 없으나 주흥이 깨어질까봐 감히 만용을 부립니다.
글이 시원찮더라도 크게 흉보지 마십시오.”
상석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고 나서 곧 낭랑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귀인이 와서 씨를 뿌리니
땅이란 원인이 있으면 항상 결과가 절로 돌아온다
지난날의 무정(無情)함은 이미 종자마저 사라졌으니
명줄도 끊어졌지만 역시 살아남도 없겠구나
貴人來下種 因地果還生
無情旣無種 無命亦無生
앞선 사람과 마찬가지로 당의 창업을 축수하고 아울러 수나라의 멸망까지 비유한 시문이었다.
“호, 참으로 대단한 문재시오.
더군다나 그대는 신라에서 온 사람인데 시문을 구사함이 오히려 우리나라 시인보다 낫구려.”
세민이 기꺼운 낯으로 춘추를 극찬하자 좌중의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동방에서 온 외래인의 글이 저러할진대 어찌 우리나라 사람으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오리까.”
그리고 그는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춘추를 돌아보았다.
“내가 알기로 그대의 나라는 전날 수나라 3대를 지극한 정성으로 섬겼는데 이제 들어보니
도리어 수나라가 망한 것을 기뻐하는 듯하구려.”
말을 마치자 미처 대답할 겨를도 주지 않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우수수 가을 잎은 바람에 흩어지고
끼룩끼룩 기러기는 새벽 하늘을 울며 가네
고금의 영화와 쇠잔함을 문득 깨닫지 못한다면
간절했던 마음을 저버리는 허물만 남는구나
飄飄脫葉落秋林 蕭蕭征鴻送曉音
古今榮枯如不瞥 幾多辜負老婆心
문사는 드러내놓고 신라 조정을 비꼬았다.
그쯤이면 안색이 변할 만도 하련만 춘추는 시종 온화한 낯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돌연 아무 대꾸 없이 시문 하나를 더하였다.
봄바람 화창한데 인적은 없고
들살구 산복사꽃만 어지러이 빛나누나
성문은 열려 하루종일 한가한데
베 짜던 노인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네
春風院落無人到 野杏山桃爛漫開
城郭門開竟一閑 織老不知何處去
그때 춘추가 읊은 시는 운문산 초입에서 만난 정체 불명의 두두리 거사가 가야금을 타며
불렀던 것이었다.
자연에 빗대어 노래한 것은 앞의 문사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본래 나라가 망하는 것은
인재를 제대로 가려 쓰지 않음을 말하고, 아울러 이제 막 시작하는 당조를 향해 훈시와 경구의 뜻까지
포함한 절묘한 문장이었다. 공연히 시비를 걸어오던 자는 단번에 입을 다물었고,
이를 지켜보던 세민은 춘추에게 탄복하여 박수를 쳤다.
“신라의 왕자께서는 시문에 능함이 가히 위나라 조식에 견줄 만하오.
존함이 춘추라 하시었소?
내 동방에를 가보지 않아 그쪽의 문물은 자세히 알지 못했는데,
위국공과 그대를 보아하니 신라가 소국이 아님을 능준히 깨닫겠소.
실로 다시 보기 힘든 기인이오!”
그 일로 세민은 춘추를 또렷이 기억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틈이 나면 집으로 불러 상빈으로 극진히 예우하며 지냈다.
세 살 위인 세민의 쾌활하고 호걸다운 성품과 춘추의 차분하고 관후한 인품은
시일이 흐를수록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양인은 어느덧 서로 호형호제하며 흉금을 털어놓고 속엣말을 허물없이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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