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천년대업(千年大業) 2
병술년 여름,
하루는 세민이 조반 후에 찾아온 춘추를 보고 대뜸,
“아우님은 제(齊)나라 환공을 어떻게 생각하오?”
하고 물었다.
당시 그는 자신의 형인 건성이 황태자 자리에 올라 급기야는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낌새를 알아채고
가까운 측근들의 조언을 구하고 있을 때였다.
워낙 돌연한 질문이라 춘추가 대답을 미룬 채 세민의 안색을 살피고 있으려니
세민이 수심 가득한 낯으로 고쳐 물었다.
“그간에 겪어보니 아우님은 예절이 바르고 학식이 높으며 성품이 너그럽고 자애로운 사람이오.
그런 아우님이 보기에 제나라 소백(환공)과 수나라 양광의 서로 같은 점은 무엇이며 다른 점은 무엇인지, 내게 허심탄회하게 말해줄 수 있겠소?”
춘추는 그제야 세민의 고민하는 바를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장안에 숙위한 지 이미 5년째인 그로서 날로 극성해져가는 황자들간의 알력을 모를 턱이 없었다.
곧 정색하여 대답하기를,
“제나라 환공은 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사람이요,
수나라 양광 역시 부형을 살해하고 제위에 올랐으니
같은 점이라면 권세를 얻고자 지친을 해쳤다는 것입니다.
둘 다 인의롭다고는 할 수 없는 인물들이지요.
하지만 환공은 그 뒤로 관중, 습붕, 영척, 동곽아와 같은 이를 중용하여
아홉 번이나 제후들을 불러 회맹하고 춘추오패의 우두머리가 되었지만,
양광은 어진 신하의 보필을 받기는커녕 자신의 내면조차 다스리지 못해 패장에
망국실군(亡國失君)을 더하였고, 급기야는 부하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참혹한 꼴을 면치 못했습니다.
한쪽은 천하를 얻었으나 다른 한쪽은 하늘로부터 얻은 자신의 천수마저 지키지 못했으니
두 사람을 같은 반열에서 논하기는 어렵지요.”
하고서,
“하물며 소백이 그 형인 규(糾)를 죽인 것은 규가 먼저 아우를 죽이려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백은 왕위에 오른 뒤 규의 편에 서서 자신에게 대항한 관중을 용서하였을 뿐 아니라
그에게 나랏일을 맡겼습니다.
능히 대인이라 할 만하지요.
인의롭지 못한 것은 군주의 사사로움이지만 정사를 펴는 일은 천하의 대사입니다.
어찌 지친을 해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양광과 비견할 수 있겠습니까.”
하며 형을 죽인 환공의 처지를 두둔해 말하였다.
춘추의 대답을 듣고 나자 세민의 얼굴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물었다.
“소백의 아들인 자보와 목이의 일을 놓고 보더라도 형이 태자가 되고 아우가
그 아래에 처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소?”
세민의 고민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연히 알아차린 춘추가 문득 온화한 낯으로 말했다.
“대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보와 목이는 나라를 세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정사를 농경에 비유하면 이미 곡식을 기를 수 있는 비옥한 논밭이 갖추어져 있으니
예전부터 해오던 관례에 따라 때를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농사만 지으면 됩니다.
곧 선대로부터 기업을 물려받는 수성(守成)의 경우지요.
수성의 군주는 후덕한 인품과 자애로운 처신이 덕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새로이 논밭을 일궈야 하는 창업의 경우엔 이와는 다릅니다.
우선 척박한 땅을 갈아 곡식을 기르기 좋게 만들어야 하고, 쇠를 녹여 농기구를 준비해야 하며,
풍우와 절기의 변화를 잘 관찰해 토양에 맞는 농사의 법칙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께서도 창업은 수성과 다르다 하였고,
창업하는 군주는 사사로움 따위에 얽매이는 것을 특히 경계해야 하는 법입니다.
대의멸친(大義滅親)이란 무엇입니까?
형님께서는 부친을 도와 당을 창업하신 분입니다.
어찌 자보와 목이의 일을 거론하십니까?”
이미 속으로 형을 살해할 뜻을 세운 뒤 명분을 구하던 세민에게 춘추의 말은 천금과도 같은 것이었다.
“봉접은 꿀을 놓고 다투고, 한 둥지에서 태어난 제비는 어미가 물고 오는 먹이를 두고 싸우지만
아무도 이를 추한 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물며 범을 잡은 포수가 그 가죽이며 고기를 취하는데 뉘라서 이를 탓하겠습니까?
단순히 형제간의 서열만을 논할 때가 아닌 줄 압니다.”
춘추가 말을 보태자 세민은 크게 흡족했다.
그는 자신의 속내를 들킨 것에 개의치 아니하고 기쁨에 못 이겨 춘추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아우님의 말 한마디가 내 오랜 근심을 눈 녹듯이 없애주셨소!
고맙구려, 과연 아우님은 일세의 귀인이오!”
그로부터 시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세민은 자신이 먼저 부하 장수들을 거느리고
형인 건성과 아우 원길을 죽였고, 그해 가을에는 아버지로부터 천자의 자리를 물려받아
드디어 꿈에 그리던 황제의 지위에 올랐다.
오랜 세월에 걸쳐 호형호제하며 지내던 사람이 당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니
백정왕이 죽은 후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던 춘추로서는 실로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었다.
세민이 황제에 등극한 직후 춘추는 본국에서 궁금해 하는 정변의 내막과 조정에 등장한
새로운 인물 따위를 설명하기 위해 귀국선을 탔는데,
그새 사정은 판이해져서 자신과 세민의 각별한 관계는 소문이 날 만치 났고,
계책까지 써가며 도망치듯 떠나던 때와는 달리 만조의 백관들로부터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때는 바야흐로 신라가 백제에게 왕재성을 빼앗긴 직후였다.
궁지에 몰린 신라에서는 당에 호소하여 백제의 거듭되는 침략을 막아보려 하였으므로
자연히 당에 대한 의존도가 어느 때보다 높았던 시기였다.
춘추는 귀국하자마자 임금과 중신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백정왕은 노구를 이끌고 친히 궐문 앞에까지 걸어 나와 오랜만에 대하는 외손을 반갑게 맞이했고,
중신들은 저마다 당조의 번성함을 미리 예견한 춘추의 혜안에 찬사를 늘어놓느라 입에 침이 말랐다.
이제 당나라가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는 한 신라에서 그를 해치거나 무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치기는커녕 춘추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들이 조석으로 뻔질나게 문전을 들락거렸다.
귀국한 뒤로 춘추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곳으로 불려 다니느라
한동안은 몸이 열이라도 모자랄 판국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환대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우쭐한 마음이 생겨서 갑자기 말이 많아지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눈에 띄게 거만해졌다.
그는 기름진 음식과 향기로운 술이 아니면 입에 대지 않았고,
하루가 멀다하고 색주가의 젊은 여자들과 어울렸으며,
신분이 천한 사람과는 아예 말상대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용춘이 진골이 되었으니 당연히 자신도 진골이었지만 그런 일 따위는 춘추에게 무의미한 것이었다.
예전부터 지니고 있던 임금의 유일한 외손과 새로 얻은 당나라 황제의 절친한 벗으로서
누릴 수 있는 온갖 특권을 마음껏 누릴 뿐이었다.
춘추는 당나라에서 가져온 화려한 비단옷에 성골들이 입는 계수와 금라 바지를 입고,
허리에는 연문백옥(硏文白玉)으로 만든 띠를 두르고, 자줏빛 가죽신을 신은 채로 활개를 치며
도성을 돌아다녔다.
가까운 곳에 행차를 하면서도 향내 나는 자단과 침향나무로 만든 수레를 탔으며,
바다거북의 박제와 금은옥(金銀玉)의 호사스런 사치품들로 수레의 앞과 뒤를 휘황하게 장식해 다녔다.
그래도 이를 나무라거나 탓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춘추의 수레가 나타나면 남자들은 선망의 눈빛을 감추지 못했고,
여자들은 먼발치에서 얼굴이라도 구경하려고 목을 길게 뽑아댔다.
신분에 어긋나는 복색과 거기를 단속하는 관리들조차 춘추 앞에서만은 머리를 조아리고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할 따름이었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9장 천년대업(千年大業) 4 (0) | 2014.09.15 |
---|---|
제19장 천년대업(千年大業) 3 (0) | 2014.09.15 |
제19장 천년대업(千年大業) 1 (0) | 2014.09.14 |
제18장 남역(南域)평정 26 (0) | 2014.09.14 |
제18장 남역(南域)평정 25 (0) | 2014.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