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 협력(1)
(1616) 협력-1
그로부터 한 시간 반쯤이 지난 후에 송기태와 포이는 프놈펜 교외의 2층 건물로 옮아와 있었다.
둘이 앉아 있는 응접실의 활짝 열린 베란다 밖으로 울창한 숲이 보였다.
바람이 들어오면서 걷힌 커튼 자락이 훌렁거렸다.
건물 안은 조용했다.
이곳으로 끌고온 사내들은 정보국 요원이라고 신분을 밝혔는데
그말을 들은 순간부터 포이는 맥을 탁 놓더니 몽유병자처럼 흐느적거리며 시킨 대로 했다.
송기태도 고등학교 때까지 이곳에서 자란 터라 정보국이 어떤 기관인지 안다.
공무원의 부정과 비리 색출 업무도 정보국 소관인 것이다.
포이는 저승사자를 만난 셈이었다.
식당에서 이미 포이는 뇌물로 받은 봉투를 증거물로 압수 당했으며 사진까지 찍혔다.
친절하게 알려 주었는데 뇌물을 주고 받는 장면이 녹화, 녹음되었다는 것이다.
옆쪽 문으로 사내 두 명이 들어섰으므로 방안의 정적이 깨뜨려졌다.
둘 중 한 명은 새 얼굴이었는데 나이가 들었다.
40대쯤의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였다.
“그것 참.”
털썩 앞쪽에 앉은 40대가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포이와 송기태를 보면서 말했다.
“정말 황당하군.”
송기태는 시선을 주었지만 포이는 감히 마주보지 못했다.
머리를 떨구고는 한숨 같은 숨만 뱉고 마실 뿐이다.
“이봐, 포이 실장.”
사내가 부르자 포이는 감전이나 된 것처럼 푸드득 떨더니 머리를 들었다.
그러나 눈에 초점이 없다.
“내 말 듣고 있나?”
포이의 태도가 한심했는지 사내가 확인하듯 물었다.
목소리가 굵어졌고 눈빛도 강해졌다.
그러자 포이가 머리부터 끄덕였다.
“듣습니다.”
“내가 지금 상황을 고위층에 보고했다. 그랬더니.”
말을 멈춘 사내가 잠깐 포이를 쏘아보았다.
그러고나서 말을 이었다.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이번 사건은 불문에 부치라는 지시를 받았다.”
사내의 표정은 쓴 약을 먹은 것 같았다.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이 탁자 위에 놓인 재떨이라도 집어던질 것만 같았다.
그때 사내가 뒤쪽에 서있던 사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뒤에선 사내가 봉투 두 개를 사내 손에 쥐어 주었다.
식당에서 송기태가 포이에게 준 봉투였다.
사내가 봉투를 포이 앞에다 던졌다.
“가져가.”
포이가 봉투를 집을 리가 있겠는가?
눈을 치켜뜬 포이가 봉투만 보았을 때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고위층은 이번 제7공구 유정 공급권이 중국과 일본, 러시아의 다툼으로
비약된 것에 불쾌감을 갖고 계셔. 그리고.”
다시 말을 멈췄던 사내의 목소리가 낮고 굵어졌다.
“중국측이 부총리한테는 5백, 그리고 공급권 결정자 넷에게는 2백만불씩 뇌물을 먹였어.
우리는 그 증거도 쥐고 있어.”
놀란 포이가 그때서야 머리를 들었을 때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저녁 한다자동차 모리 사장이 주관하는 일본 대사관의 경제협력단 파티에서
또 뇌물 공세가 쏟아지겠지. 일본측도 알고 있을 테니까 말야.”
그러더니 사내가 포이를 똑바로 보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포이 실장, 부패한 관리들이 뇌물을 먹고 국가 대사를 그르치게 하면 안돼.
우리 고위층께서는 한국과의 약속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하셨어.
그것이 국가 위상과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다고.”
(1617) 협력-2
호텔방은 도청 장치가 되어 있다고 믿는 터라 회의는 물론이고 둘이 만날 때도 차 안에서
이야기를 하든지 식당에서 했다.
불편했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시간이 지나 버릇이 되자 참을 만했다.
송기태가 한국식당에 들어섰을 때는 저녁 7시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조철봉은 주방 바로 옆쪽 방에서 최갑중과 배동식,
그리고 처음 보는 사내 한 명과 넷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밥만 달래서 먹어.”
끝자리에 앉는 송기태에게 최갑중이 말했다.
상에는 찌개에 구이, 갖가지 찬이 놓여 있어서 밥만 있으면 되었다.
그러나 송기태는 밥보다도 보고부터 해야만 했다.
정보국 요원들에게 포이와 함께 현장에서 체포되어 안가로 연행되었다가
고위층의 특별 지시로 풀려난 상황인 것이다.
정보국 고위층이면 정보국장이다.
정권 실세 중 하나인 정보국장이 한국과의 신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 것은 대특종 정보에 속한다.
그리고 정보국장이 부총리와 네 명의 핵심 결정권자가 중국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챙긴 증거를
쥐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거기에다 부총리 비서실장 포이는 정보국의 특별 배려로 풀려나면서 한국 측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라는 지시까지 받았다.
감지덕지한 포이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지시에 복종하겠다는 맹세를 한 것은 물론이다.
“저기, 사장님.”
점심도 걸렀지만 입맛이 있을 리 없는 송기태가 먼저 조철봉을 불렀다.
보고를 빨리 해야겠다는 조바심이 일어나 상에 바짝 다가앉았다.
“어, 좀 먹으라니까.”
그때 머리를 든 조철봉이 상 위에 놓인 음식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많이 시켰으니까. 어서.”
“여기 밥 주세요.”
하고 배동식이 문을 반쯤 열더니 밖에다 소리쳤다.
그러자 송기태는 짜증이 났다.
한가하게 밥 타령을 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사장님, 제가 오늘 낮에 포이 실장을 만날 때 말입니다.”
송기태가 말을 이었다.
“갑자기 누가.”
하고 나서 송기태는 바로 앞에 앉은 낯선 사내가 마음에 걸렸다.
지금 이 사내 앞에서 보고를 해야 될 것인가?
같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 편은 맞다.
그때 방문이 열렸으므로 송기태는 식당 종업원이 밥을 가져온 줄만 알았다.
“어, 오셨구만.”
하고 앞에 앉은 낯선 사내가 말하면서 일어섰으므로 송기태는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서다 찬 그릇 하나를 엎었지만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다 일어섰기 때문이다.
“사, 사장님. 이, 이 사람.”
송기태가 다급하게 말했다. 방에 들어선 사내는 정보국 요원이었던 것이다.
40대의 인상이 날카로운 사내. 몇 시간 전만 해도 포이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정보국 간부.
“어서 오십쇼.”
하고 방에 있던 낯선 사내가 정보국 간부를 맞았다.
그런데 한국말로 맞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송기태는 벼락을 맞은 듯이 눈앞이 하얘졌다.
정보국 간부가 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한국말이다. 먼저 낯선 사내와 악수를 나눈 사내가 조철봉을 보았다.
그때 낯선 사내가 조철봉에게 정보국 간부를 소개했다.
“김정산씨입니다. 북한 대사관 상무관으로 이번에 파견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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