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511. 주면 받는다(13)

오늘의 쉼터 2014. 9. 11. 19:45

511. 주면 받는다(13)

 

 

(1613) 주면 받는다-25 

 

 

 

대사관의 2층 사무실로 들어선 미나미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더니 뒤를 따라온 야마구치에게 말했다.

“보쿠동이 공급 계약을 질질 끌고 있는 건 조건을 올리려는 심보야.

 

중국놈들하고 이야기가 다 된 것이 아니라구.”

“차관 10억달러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내가 듣기로는 20억달러라던데.”

쓴웃음을 지은 미나미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참사관 미나미는 이번 제7공구 유정 공급계약 사업의 현지 책임자인 것이다.

 

야마구치가 라이터를 켜 미나미의 담배 끝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한국 측 로비스트 일당이 지금 프린스호텔에 투숙하고 있지만 아직 아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야마구치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기가 떠올랐다.

“대사관도 없는 터라 공식적으로 모일 수도 없는 형편이지요.”

야마구치는 상무관 직책을 갖고 있었지만 정보국에서 파견된 정보요원이다.

“중국 측이 그 자들을 감시하고 있더군요.

 

프린스호텔에 중국측 정보원만 10여명이 넘게 깔려 있었습니다.”

“아마 우리도 눈치채고 있을 거야.”

미나미가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이번에 온 경제협력단의 속셈을 중국측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지.

 

차일피일 미루다가 공급 계약이 임박해서 몰려왔으니까 말이야.”

“결국은 중국과 일본의 경쟁이 되지 않겠습니까?”

정색한 야마구치가 창가에 등을 붙이고 서서 물었다.

“내일 한다자동차의 모리 사장이 차관에다 공장 설립 조건을 제시하면

 

유정 공급권은 넘어오지 않을까요?”

“글쎄.”

눈을 가늘게 뜬 미나미가 폐에 남은 숨을 길게 뱉었다.

“요즘은 중국놈들 달러 보유고가 우리보다 많은 데다 돈이 커서 말이야.”

“소문입니다만 중국놈들이 부총리한테 5백만달러를 먹였다고 합니다.

 

핵심 관계자 네 놈한테는 각각 2백만달러씩….”

“가능한 일이지.”

그러고는 미나미가 머리를 들고 야마구치를 보았다.

“야마구치, 모리 사장한테 가서 가능한 한 최대치를 내놓으라고 전해.”

“가능한 한 최대치입니까?”

그러자 미나미가 목소리를 낮췄다.

“우린 15억달러 차관에다 15억달러를 투자한 경승용차 공장 건립을 조건으로 제시하기로 되어 있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야마구치의 시선을 받은 미나미가 말을 이었다.

“제7공구 유정의 공급권을 획득하면 연간 55억달러의 유정을 20년간 뽑아낼 수가 있지.

 

현재 단가 기준으로 말이야.”

“…….”

“하라다정유측 계산으로는 순이익이 연간 7억달러,

 

20년간 유가 상승률로 계산하면 2백25억달러가 된다는 거야.

 

원유는 원유대로 확보하고 말이지. 이런 수지 맞는 장사가 없어.”

그러고는 미나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한국측 입장에서 보면 땅을 치고 통곡을 할 일이지.

 

죽을 고생을 해서 원유를 개발해냈는데 약속대로 공급권을 가져가지 못하게 됐으니까 말이야.”

“…….”

“그러니까 미리 처음부터 그것을 문서화했어야지, 병신들.”

말을 그친 미나미가 정색했다.

“야마구치, 서둘러. 모리 사장한테 상황을 분명하게 전해. 내일이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1614) 주면 받는다-26

 

 

 

 

 

 

 

 보쿠동은 공기에 담긴 쌀밥위에다 닭고기 한점을 올려놓고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검은 얼굴 피부가 주름살로 덮여졌고 눈이 가늘어져서 순박한 표정이 되었다.

 

가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하오는 시골에서 물소 등에 앉아있는 촌로를 연상했다.

 

여기에다 검정색 작업복만 입히면 영락없을 것이었다.

“맛있군.”

보쿠동이 젓가락으로 밥과 닭고기를 입안에 밀어넣고 씹으면서 말했다.

 

말하다가 발알이 튀어서 식탁위로 떨어졌다.

 

식탁에는 닭고기 절임에다 야채 볶은 접시가 두개 놓여져 있을 뿐이다.

 

이것이 캄보디아 경제 부총리의 점심상이다.

 

시선을 내린 하오가 밥을 입안으로 쓸어 넣다가 하마터면 뱉을 뻔했다.

 

밥알이 숨구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내일 모리 사장이 어떤 제의를 해올 것 같나?”

불쑥 보쿠동이 물었으므로 하오는 입안의 음식을 서둘러 삼켰다.

 

보쿠동이 이렇게 물을 줄 예상을 했지만 긴장이 된 것이다.

 

경제부 차관보로 이번 제7공구 공급권 체결권자 중 가장 하급자였지만

 

실무 책임자인 하오는 요즘 갈등하고 있었다.

 

그것은 총책임자이며 최종 결정권자인 부총리 보쿠동의 의중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쿠동은 일년쯤 전만해도 한국의 태우개발과는 구두 약속이지만 지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중국의 수상과 당총서기 등 최고위층이 연달아 방문하여 여러 조건을 제시하자

 

슬그머니 그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 같았다.

 

그것이 반년전이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가? 제7공구 유정이 막 공급 시점이 되어갈 때 일본 경제협력단의

 

방문을 받아들였고 러시아 산업시찰단의 방문도 승낙했다.

 

모두 유정 공급권을 노리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인 것이다.

 

보쿠동의 시선을 받은 하오가 입을 열었다.

“차관과 한다자동차공장 설립을 조건으로 제시할 것 같습니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하오가 말을 이었다.

“차관은 장기 저리가 될 것 같으며 규모는 전례로 봐서 10억불에서 15억불 사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다자동차는 5년전부터 우리한테 약속을 해놓고 미룬 사항이라 내용은 잘 알고 있습니다.

 

15억불 규모의 공장이지요.

 

5000명 인력의 고용 효과가 있으며 3년 후부터는 연간 10만대 생산이 가능합니다.”

미루면서 자꾸 더 좋은 조건을 요구하던 자동차공장 설립이 이번 유정 공급권 체결 시점이 되자

 

선물처럼 넘어오게 되는 것이다.

“하오.”

보쿠동이 이름을 부르자 하오는 더 긴장했다.

 

보쿠동은 72세였지만 프랑스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를 지냈던 인물이다.

 

45세인 하오는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가 되었지만 지금까지 보쿠동을 존경해 왔다.

 

하오에게는 스승이며 아버지같은 존재였다.

 

보쿠동이 말을 이었다.

“내가 중국측에서 뇌물로 5백만불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던데, 들었나?”

놀란 하오가 침부터 삼켰다.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체결에 영향력을 가진 네명의 관리한테 각각 2백만불씩 먹였다는 소문도 있다.

 

하오의 시선을 받은 보쿠동이 빙긋 웃었다.

 

그러자 검은 이가 드러났고 위쪽 두개는 빠져서 입안이 더 휑했다.

 

보쿠동은 틀니도 만들어 놓지 않았다.

“그리고 자네들은 각각 2백만불씩 먹였다던데, 맞는가?”

“예, 부총리님.”

하오가 보쿠동을 향해 웃어 보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 없습니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513. 협력(1)  (0) 2014.09.14
512. 주면 받는다(14)  (0) 2014.09.11
510. 주면 받는다(12)  (0) 2014.09.11
509. 주면 받는다(11)  (0) 2014.09.11
508. 주면 받는다(10)  (0) 2014.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