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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남역(南域)평정 19

오늘의 쉼터 2014. 9. 13. 21:33

제18장 남역(南域)평정 19 

 

 

 

“먼길에 변변한 음식도 먹지 못했을 터이니 우선 요기부터 하고 술을 듬세.

미역국에 밥을 놓아 한숟갈 뜨게나. 애 낳고 빈속에도 곽탕이 제일이지만 배 타고 놀란 속에도

 맑은 곽탕이 그만일세.”

아닌게아니라 용춘은 뱃전에서 심한 멀미를 하는 바람에 줄곧 속이 편치 않았다.

그는 미역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을 거뜬히 비우고서야 을제가 권하는 술잔을 받았다.

“기왕 왔으니 오래 묵어가게. 거로의 진귀한 음식 맛을 다 보고 가는 데도 족히 달포는 걸릴 것이네.”

“제가 음식을 먹으러 온 게 아니라 종숙을 뭍으로 뫼시고자 왔습니다.

이제 거로 삼현은 별유천지와 같으니 종숙께서는 저와 함께 금성으로 나가서 계림의 나머지 고을도

이곳처럼 넉넉하게 만들어주십시오. 전하께서도 종숙이 오시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십니다.”

그러자 을제는 잠깐 대꾸가 없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예서도 뭍의 소문은 다 듣고 사네.

백반이 아직 죽었다는 말이 들리지 않는데 내 어찌 임금을 제대로 모실 수 있겠는가?

자네는 젊었을 때 누명이라도 써서 진골이 될 수 있었다지만 내게는 그런 복도 없으이.

성골의 신분으로 금성에 가면 백반과 그 일패들이 과연 나를 가만히 둘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네. 나는 국상이 났다 해도 나가지 않을 것이요,

금성이 망했다 해도 나가지 않을 것이지만 다만 백반이 죽었다는 소리가 돌면 그때는 나가겠네.”

을제의 단호하고 명료한 대답에 용춘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워낙 사정이 다급하여 전후불계하고 달려왔지만 을제의 처지에서 보면 그런 걱정이 앞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노릇이었다.

“지난날 내 아버지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말씀이 무엇인 줄 아는가?

우리 3형제 모두 절로 들어가 중이 되라고 하셨다네.

그런데 위로 두 형님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일찍부터 편안함을 얻으셨으나

나는 유언을 좇지 않은 죄로 오방 잡처를 떠돌며 갖은 고초를 겪다가 이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심신의 평안함을 얻었다네.

하긴 이런 소리를 구구하게 하지 않더라도 자네 역시 우리네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제발 나를 불쌍히 여겨 사지로 끌어들이지 말게나.”

을제를 설득하러 온 용춘은 도리어 자신이 설득을 당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거타주 6성과 남악을 잃고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종숙의 처지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용춘의 말을 듣고 난 을제가 빙긋이 웃었다.

“6성과 남악을 잃은 것이야 자네가 원하여 그리 된 게 아닌가?”

순간 용춘은 들고 있던 술잔을 떨어뜨릴 뻔하였다.

“허허, 숙부께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원했다니요?”

엉겁결에 헛웃음과 함께 시치미를 떼고 반문하자 을제가 온화한 얼굴로 가만히 손사래를 쳤다.

“탓하자는 게 아니니 그리 놀랄 건 없네.

제 살을 도려내는 고육책과 할양계(割讓計)가 아니고서야

어찌 계림의 뿌리깊은 중병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인가.

부여장은 소적에 불과할 뿐,

자네가 상대할 대적은 나라 안에 있으니 내가 자네라도 그 방법 외에는 달리 묘안이 없었을 것이네.

남악 하나를 잃고라도 조정의 쥐새끼 같은 난신들을 다스릴 수만 있다면 대성공이지.

그럼 부여장이 도리어 공신이 되는 셈인가, 하하하.”

진골이 되는 수모를 감내하고 벼슬길에 나선 지 3년,

그러나 용춘은 나라의 요직이란 요직을 죄 장악한 백반의 충복들에게 둘러싸여

좀체 자신의 뜻을 펼 수 없었다.

중신들은 어전에서 물러나면 곧장 백반의 사가로 무리를 지어 몰려다녔고,

백반의 말 한마디는 그대로 어전에서 공론이 되었다.

병부대감 직책을 신설하거나 왕을 호위하는 시위부에 대감을 6명씩이나 임명할 때에도

중신들은 여출일구로 백반이 지명한 사람을 천거하였다.

당나라의 책봉 사절이 왔을 때는 더욱 가관이었다.

중신들은 당나라 사신이 보는 앞에서 갈문왕 두 사람을 책봉 의식에 참례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백반과 국반이 상객으로 초청되기에 이르렀고, 의례가 끝난 뒤에는 사절들을 모조리

백반의 집으로 데려가 궐에서보다 더욱 호사스런 연회를 베풀었는데,

그 자리에서 백반을 지칭하여 주상이라 불렀다는 뒷말까지 무성하였다.

이 같은 전횡과 불경이 횡행해도 사면초가의 용춘으로서는 그저 구경만 할 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일부 중신들은 용춘이 진골인 점을 들어 노골적으로 모욕을 주는 일마저 있었는데,

특히 죽은 형의 일로 용춘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염종은 환갑에 이른 용춘을 볼 적마다,

“어, 진골 용춘이 아닌가?

그대도 진골이고 나도 진골이니 우리 허교하여 지냄이 어떠한가?”

하고 참지 못할 야지랑을 떨어대곤 했다.

이러한 조정 분위기에서 용춘이 홀로 무슨 일을 하기란 역부족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할양계였다.

그는 백제가 쳐들어왔다는 소식에 접하자 곧바로 칭병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아니하였다.

비록 국토의 한 부분을 잃더라도 그것으로 백반의 충복들을 공략할 계기와 명분으로 삼는다면

이는 팔 하나를 잘라 목숨을 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게 용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막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서 오직 천명뿐이었다.

한집에 기거하던 하인들까지도 실제로 용춘이 끔찍한 복통을 앓는다고 여겨 토사곽란에 좋다는

약초를 구하러 난전을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종숙께서 저를 이미 꿰뚫어보고 계시니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그러나 시절은 허망해 젊고 분방할 때 사귄 영걸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 남은 이라곤

서현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6성과 남악을 잃고도 사람을 구하지 못하니 할양계를 써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적은 그대로 있는데 소적의 기세만 더욱 북돋아준 꼴이지요.

이제 계림을 만만히 본 부여장이 또다시 군사를 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니

도리어 화를 자초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여장은 만만한 인물이 결코 아닙니다.

어찌 칠숙이나 염종 따위로 그를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용춘의 실토에 을제 또한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조정 대신이란 것들이 죄 허깨비요 녹봉만 축내는 도적놈들이니

부여장의 잔꾀에 속아 넘어가는 건 당연지살세.

그 중에 백반이 하늘같이 믿고 부리는 칠숙 하나가 제법 지모가 있는 줄 알았더니

이번 난리에 처신하고 용병하는 것을 보아하니 그 역시 부여장에 대면 어린아이에 불과하더구먼.”

“저 혼자 힘으로는 안팎이 다 역부족입니다.

큰 집이 무너지는 것을 어찌 기둥 하나로 떠받치겠습니까.

아무래도 벼슬길에는 공연히 나왔나봅니다. 후회막급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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