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8. 주면 받는다(10)
(1607) 주면 받는다-19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 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국가로 태국, 라오스, 베트남과 접경하고 있다.
세계에 알려진 폴 포트 정부시대의 대량학살로 인구가 크게 줄었지만 지금은 정국이 안정된 상황이다.
조철봉 일행이 프놈펜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이었다.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프린스호텔의 식당으로 아침 식사를 하려고 내려간 조철봉을 송기태가 맞았다.
아침 8시였다.
“사장님, 저쪽으로 가시지요.”
창가의 테이블로 안내한 송기태가 말했다.
“한식도 됩니다. 제가 준비를 시켰거든요.”
“어, 그래?”
아침은 뷔페 식단이어서 시큰둥한 얼굴을 짓고 있던 조철봉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콩나물 해장국도 되나?”
“예, 사장님.”
송기태가 다가온 종업원에게 유창한 크메르어로 음식을 주문했다.
창밖의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파랬고 베란다를 통해 들어온 공기도 맑았다.
식당은 꽤 넓어서 같은 호텔에 투숙한 최갑중과 박경택, 배동식 등은 보이지 않았다.
제각기 맡은 일이 있는 터라 오후 6시에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내려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종업원이 가져온 콩나물 해장국 맛은 조철봉이 전주에서 먹어본 맛과 비슷했다.
밥도 기름기가 흐르는 한국산 같았고 찬도 한국 식당에 온 것처럼 다양했다.
새우젓에 갈치 속젓까지 있다.
어젯밤에 방에서 양주를 반 병쯤이나 마시고 잔 터라 조철봉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해장국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식사를 마친 조철봉이 느긋한 표정으로 커피잔을 들었을 때 기태가 말했다.
“시장 상황을 알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제 누나를 불렀습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기태가 멋쩍은 듯 뒷머리를 쓸었다.
“누나는 이곳에서 쭉 자랐으니까요. 어려웠던 시절에 태어나서 생활력도 강하지요.”
어려웠던 시절이란 1975년 크메르루주가 프놈펜을 점령한 이후를 말한다.
1979년 베트남이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을 서부 내륙지역으로
몰아내기까지 대량 학살이 일어났다.
교육 받은 중산계급과 지식인들은 거의 다 죽었다.
조철봉도 그쯤은 알고 있었으므로 머리만 끄덕였다.
송기태의 누나는 32세로 아버지는 캄보디아인이다.
기태의 어머니는 캄보디아인 남편이 죽고 나서 한국인인 기태의 아버지를 만난 것이다.
“아, 저기.”
자리에서 일어서며 기태가 말했으므로 조철봉도 머리를 들었다.
흰색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키가 크고 긴 머리에 날씬한 체격이다.
기태를 발견한 여자가 활짝 웃었으므로 흰 이가 드러났다.
그것을 본 순간 조철봉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아름답다. 아름다운 여자를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신이 내려주신 기쁨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조철봉에게는 이때가 가장 아끼고 싶은 순간 중의 하나다.
여자가 다가오는 동안 조철봉은 시선을 떼지 않았다.
기태의 인적 기록을 읽어서 가족관계는 다 안다.
여자의 이름은 탁 반디. 5년 전에 의사하고 결혼했지만 3년 전에 남편이 물에 빠져 죽어서
네 살된 아들하고 둘이서 산다.
지지리도 남편 복이 없는 가계였다.
이런 여자들을 한국에서는 팔자가 세어서 서방 잡아먹는 여자들이라고 한다.
“안녕하세요.”
다가선 여자가 한국어로 인사를 했으므로 조철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름답다. 숨이 막힐 정도로. 신은 세상 곳곳에다 이런 공사를 해 놓으셨다.
(1608) 주면 받는다-20
“만나서 반갑습니다.”
조철봉도 웃음 띤 얼굴로 여자를 보았다.
“조철봉입니다.”
“전 반디라고 해요.”
반디의 얼굴은 맑았다. 전혀 팔자가 억센 여자 같지가 않다.
둘이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을 때 기태가 일어섰다.
“사장님, 저는 준비할 일이 있어서요.”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이자 기태는 예의 바르게 제 누나한테도 목례를 하더니 몸을 돌렸다.
“기태하고는 아버지가 달라요.”
하고 반디가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시선만 주었다.
알고 있었지만 먼저 불쑥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이 좀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기태 아버지가 절 키워주셨죠.
제 아버지는 어릴 적에 돌아가셔서 기억도 안 납니다.”
눈을 가늘게 뜬 반디가 잠깐 초점 없는 흐린 시선으로 창밖을 보았다.
“제 친아버지 같아요. 저한테 참 잘해주셨거든요.
제가 여기까지 온 건 모두 아버지 덕이죠.”
나이로 따지면 반디가 다섯살 때부터 스물두살 때까지일 것이다.
반디가 시선을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전 내무부 국장실 비서로 근무하고 있어요. 공무원이죠.”
“아아, 그렇습니까?”
기태가 그것까지는 밝히지 않았으므로 조철봉이 정색했다.
반디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 큰일을 하러 오셨다던데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부탁 드리지요.”
했지만 조철봉은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반디 말마따나 이 일은 큰일이다.
그야말로 거국적 사업인 것이다.
장관급 인사를 움직여야 하는 데다 최종 사인은 국왕이 한다.
내무부 국장실 비서 역량으로는 미흡할 것이다.
조철봉이 점점 혼잡해지는 식당을 둘러보고는 반디에게 물었다.
“자리를 옮길까요?”
“네, 사장님.”
반디가 다시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조용한 곳이 좋겠네요.”
둘이 옮겨간 곳은 2층의 카페였다.
아침시간이어서 식당과는 달리 손님은 그들 둘뿐이었는데 종업원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활짝 열린 베란다의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기태한테서 대충 들었는데 제7공구 유정은 이미 중국측으로 공급권이 넘어간 것 같습니다.”
반디가 이번에도 거침없이 말했다.
그러나 조철봉은 어떤 부담이나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신선한 감동이 온다.
선입견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악의 없이 있는 그대로를 담지 않고 쏟는 이런 성품은 드물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꾸 치여 손해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제가 근무하는 내무부에도 중국 인사들이 자주 찾아왔지요.
유정 공급권 계약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다 연줄로 연결이 되니깐요.”
정색한 반디가 말을 이었고 조철봉도 점점 긴장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제가 모시는 총무국장도 산업부 차관하고 고향 친구 사이거든요.
또 경찰국장하고는 친척 관계이고.”
“…….”
“중국측 로비는 1년쯤 전부터 적극적으로 시작된 것 같아요.”
조철봉이 잠자코 머리만 끄덕였다.
1년 전이면 제7공구에서 원유가 발견되었을 때부터인 것이다.
한국은 개발자가 공급권을 갖는다는 구두 약속만 믿고 후속 조치를 게을리했다.
개발업자뿐만 아니라 정부도 마찬가지.
다 된 것처럼 언론에다 떠들기만 했다가 지금은 발등에 불이 떨어져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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