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주면 받는다(2)
(1591) 주면 받는다-3
이재영은 조철봉이 나눠준 10만달러를 받았다.
10만달러면 대충 1억원이다.
조철봉의 지시를 받은 김동수는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전화 통화만으로 은행에
재영의 새 계좌를 개설하고 10만달러를 입금했다.
이 돈은 엄밀히 말하면 명일전자의 배경호가 횡령한 100만달러 중에서 강탈한 돈이었다.
재영은 잠깐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생각했다.
사기꾼이 횡령한 돈을 빼앗은 것이 죄가 되는가를 따져본 것이다.
죄가 된다.
법은 잘 모르는 재영이었지만 분명히 불법이었다.
그런데 가슴이 왜 이렇게 뛰고 흥분이 될까?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다.
기쁜 것이다.
조철봉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 죽겠다.
더구나 내일 아침이 되면 골드마켓의 전자제품 오더가 다 넘어온다.
이번 오더 물량은 1억2000만달러 정도, 오퍼시트 가격대로라면 10% 정도의 순이익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순이익이 1200만달러, 약 120억원이다.
그것뿐만인가?
그 물량이면 본 공장은 물론이고 하청공장 3개는 풀가동해야 된다.
또한 그것은 약 700명의 반년분 봉급이며 3000명 정도의 생활비가 된다.
소파에 기대앉은 재영은 길게 숨을 뱉었다.
밤 11시 반. 조철봉의 방에서 돌아온 지 벌써 30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안정이 되지 않았다.
불쑥 자리에서 일어선 재영은 냉장고로 다가가 섰다.
냉장고 위쪽 선반에서 양주병을 집어든 재영은 마개를 따고 유리컵에 양주를 반이나 채웠다.
그러고는 생수병 하나만 집어들고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주위는 조용했다.
TV도 아예 꺼 놓아서 창밖의 소음만 희미하게 들려왔다.
위스키를 한 모금 삼킨 재영은 식도를 타고 불덩이가 내려가는 느낌을 받고는 서둘러 생수를 마셨다.
그때 갑자기 목이 멘 느낌이 오더니 물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재영은 슬플 때 말고 기쁠 때도 목이 멘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물병을 입에서 뗀 재영은 길게 숨을 뱉었다.
손등으로 입가의 물기를 닦고 나서 재영은 탁자 위에 놓인 전화기를 들었다.
전화기를 귀에 붙인 재영이 거침없이 버튼을 누르면서 심호흡을 했다.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놀라는 중이었지만 한순간 한 동작에 희열이 느껴졌다.
결코 멈출 일은 없을 것이다.
신호음이 끊겼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는 했다.
“여보세요.”
한국말, 조철봉이다.
조철봉도 신호음이 두 번밖에 울리지 않았을 때 전화를 받았다.
재영이 말했다.
“저예요.”
“어, 이 부장 웬일이야?”
“제가 방으로 가요?”
불쑥 묻고 난 재영이 아랫입술을 물었다.
눈을 치켜뜨자 앞쪽 벽에 걸린 거울에 얼굴이 드러났다.
두 눈이 반짝였고 얼굴에 붉은 기운이 있다.
그러나 아름답다.
그때 조철봉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
이런 바보 같은. 머리 회전은 그렇게 빠르면서도 지금 시치미를 떼는 거야?
뭐야? 재영이 이를 악물었다 풀고 말했다.
“거기서 자고 와도 돼요?”
뚝, 뚝, 뚝, 뚝. 이마의 혈관이 튀는 소리가 귀 안으로 들어가 울린다.
소리가 귀 안에서 들려 밖으로 나왔다.
그 뚝 소리가 열 번쯤 울리도록 조철봉이 가만 있었으므로 재영은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 또한 가슴이 터질 만큼 자극적이었다.
조철봉이 거부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는다.
제 입으로 색을 밝힌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때 조철봉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울렸다.
(1592) 주면 받는다-4
“안 돼.”
가운 차림으로 소파에 앉은 조철봉이 정색하고 말했다.
조철봉이 옆에 놓인 리모컨을 쥐고는 버튼을 눌러 TV를 켰다.
이재영이 가만 있는 것은 반응이 예상 밖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눈을 가늘게 뜬 조철봉이 베란다를 보았다.
그러자 베란다 유리창에 제 모습이 비쳤다.
조철봉이 제 모습을 보면서 다시 말했다.
“이 부장, 지금은 때가 아냐.”
재영은 여전히 입을 다물었고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다른 때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
“…….”
“지금은 싫어.”
그때 전화가 끊겼으므로 조철봉은 폐에 머물고 있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렇다. 위선이다.
마음에 없는 소리를 주절거렸다.
재영이 방으로 온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아랫도리에 불끈 힘이 들어간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말은 정반대로 나갔다.
그것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증거일 것이다.
아까 넷이 모였을 때 주면 받으라고 한 말은 다르게 표현하면 주고 받는다는 뜻이다.
주면 당연히 받아야 된다는 말도 된다.
대가다.
그 말을 새겨들은 재영이 10만달러를 받고 나더니 뭔가 주고 싶은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물론 싫은 상대한테는 100만달러를 받았더라도 방으로 온다는 소리는 안 했을 것이다.
이쪽에서 섹스에 대해서 다 오픈한 상태에서도 온다고 한 것을 보면 끌렸다고 봐도 된다.
자리에서 일어선 조철봉이 냉장고로 다가가 섰다.
그러고는 위스키 병을 집었는데 공교롭게도 재영이 집은 술이었다.
역시 유리잔에 위스키를 따른 조철봉은 냉장고를 열고 얼음을 꺼내 잔에 넣었다.
“흥, 난 인내심 하나는 끝내주는 놈이다.”
중얼대며 소파로 돌아간 조철봉이 위스키를 한 모금 삼켰다.
알코올이 화끈한 기운을 내며 위장까지 떨어져 내리는 것을 조철봉은 지그시 음미했다.
참고 참고 또 참는다.
날 모르는 놈들은 저놈, 그저 색만 밝히는 놈, 해대지만 놔둬라,
일일이 해명할 필요가 있는가?
나는 여자를 기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곧 섹스의 목적이었다.
기쁜 여자를 봐야 내 목적이 달성된 느낌이 들었고 존재의 가치를 확인했으며 열등감에서 해방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욕망을 참고 참고 또 참아야만 했던 것이다.
조철봉에게 섹스에 대한 충동만큼 원기를 일으키는 재료는 없다.
불끈 욕정이 치솟는 순간 삶을 버티고 나갈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계산이다.
확인이며 인내가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냥 제 욕심만 채우고 싸 버렸다면 지금의 조철봉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한 모금 술을 삼킨 조철봉은 베란다 창에 비친 제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이쪽 저쪽에서 뜯은 자금은 다 썼다.
100만달러는 후원금으로, 40만달러는 김동수와 박경택, 이재영한테까지 다 나눠주었고
자신은 빈손이다.
그러나 1억2000만달러의 오더가 떨어질 테니 이대건이 얼마쯤은 떼어줄 것이다.
또 안 주면 어떠냐?
돈에 대한 욕심은 없다.
돈이란 자꾸 집착할수록 저는 물론이고 주변도 더러워진다는 것을 겪었다.
돈보다도 이곳에서 큰 비즈니스를 경험한 것이 더 큰 소득이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로비스트가 되는 것이 어떨까?
사업은 이제 궤도에 올랐으니 본격적으로 나서도 될 것이다.
그때 벨이 울렸으므로 조철봉은 퍼뜩 머리를 들었다.
문에서 다시 벨이 울렸다.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소리쳐 물었다.
“누구요?”
“저예요.”
예상했던 대로 이재영의 목소리였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2. 주면 받는다(4) (0) | 2014.09.11 |
---|---|
501. 주면 받는다(3) (0) | 2014.09.11 |
499. 주면 받는다(1) (0) | 2014.09.11 |
498. 열정(15) (0) | 2014.09.09 |
497. 열정(14) (0) | 2014.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