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98. 열정(15)

오늘의 쉼터 2014. 9. 9. 15:17

498. 열정(15)

 

 

(1587) 열정-29 

 

 

 

 

 슈워제네거 지사 저택에서 개최된 만찬 모임의 명칭은 환경정화 후원행사였다.

 

그래서 환경단체의 간부들은 물론이고 지역의 상공인, 유지, 기관장 대부분이 참석했다.

 

참석 인원은 대략 3백여명. 저택의 정원에다 연단과 테이블을 설치하고 뷔페식 식사를 대접했지만

 

영화 장면처럼 세련됐다.

 

할리우드에서도 유명 배우 10여명이 참석해서 자리를 더욱 빛냈는데 조철봉이 언급했던

 

실베스터 스탤론에다 브루스 윌리스까지 와 있었다.

 

조철봉은 브루스 윌리스의 다이하드를 10번도 더 보았다.

 

행사는 슈워제네거의 짧은 인사말, 환경단체 대표의 답사에 이어서 후원금 모금 순서로 진행됐지만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식사를 하면서 후원금을 내고 슈워제네거가 후원단체 대표인 금발의 중년여자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골드먼이 저기 있군.”

오렌지주스잔만 든 채 테이블에 앉지도 않고 서성거리던 조철봉이 먼저 골드먼을 찾아냈다.

 

같이 찾던 이재영이 반색을 하고 조철봉이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골드먼은 홍보 담당 중역 푸시먼과 함께 뷔페 음식을 그릇에 담는 중이었다.

“가지.”

조철봉이 앞장을 섰으므로 재영은 서둘러 뒤를 따랐다.

 

마침 실베스터 스탤론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지만 조철봉은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들이 다가갔을 때 골드먼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아, 오셨군요.”

이 말은 재영이 통역하지 않았다.

“저쪽으로 가십시다.”

하고 골드먼이 조철봉의 어깨를 한팔로 감싸안듯이 하고 발을 뗐을 때도 재영은 통역하지 않았다.

 

조철봉도 다 알아들은 듯이 머리를 끄덕이며 발을 뗐다.

 

그들은 정원 끝쪽의 나무 밑에 섰다.

 

주위에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슈워제네거가 서있는 연단과는 30m 정도, 지금 1천불을 낸 아웃렛 대표가 슈워제네거의

 

포옹을 받는 중이었다.

“서류는 읽었습니다.”

골드먼이 웃음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재영의 통역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골드먼의 말이 이어졌다.

“아주 솔직하게 보여 주셨더군요, 미스터 조.”

이번에는 성을 제대로 불렀다.

“감사합니다.”

대답은 조철봉이 영어로 했다.

 

그러고는 골드먼의 시선을 받았다.

 

둘은 마주본 채 3초쯤 서 있었다.

 

재영은 중간에 서서 그동안에 심호흡을 한번 했다.

 

이제 조철봉이 거래 조건을 말할 차례인 것이다.

 

어제 샌타모니카 별장에서 그렇게 말한 터라 골드먼은 기다리고 있다.

 

재영이 고인 침까지 삼켰을 때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골드먼씨, 환경정화 후원금을 얼마 내실 계획입니까?”

재영의 통역을 들은 골드먼이 쓴웃음을 지었다.

 

재영에게는 어이없다는 표정 같았으므로 등이 서늘해졌다.

“그건 왜 물으십니까?”

조금 짜증난 표정으로 골드먼이 물었지만 조철봉은 말을 이었다.

“제가 도와 드리려고 그럽니다,

 

골드먼씨. 골드마켓과 대성전자가 공동으로 후원금을 내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그러자 통역을 들은 골드먼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이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재영의 목소리도 딱딱해져 있었다.

 

그러나 조철봉이 정색했다.

“그럴 필요가 있지요.

 

공동으로 내는 것이 그렇다면 골드먼씨가 대신 내시든지요.”

 

 

 


 

(1588) 열정-30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데.”

얼굴을 굳힌 골드먼이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통역을 한 이재영은 아예 눈을 감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자다가 헛소리하는 꼴이었다.

 

뜬금없이 이게 무슨 수작인가?

 

후원금을 같이 내다니,

 

아무리 이쪽에서 많이 낸다고 해도 골드마켓이 그쯤으로 넘어갈 회사인가?

 

지난번 10만불로 골드먼을 감동시켰다고 오해한 모양인데 오늘은 그 오버질이 역효과가 되었다.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오갔고 재영의 분위기는 침체되었다.

 

그때 조철봉이 말했다.

“골드먼씨, 내가 1백만불을 드리지요.

 

이 돈으로 후원금을 내시든지, 비자금으로 쓰시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그러고는 저고리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재영의 통역이 끝날 때까지 조철봉의 손에 쥔 봉투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봉투는 그대로 손에 잡힌 채 허공에 떠 있었다.

 

재영의 말을 들은 골드먼이 봉투만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옆에 선 푸시먼도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재영은 이마가 서늘해진 느낌이 들었다.

 

배어나온 진땀이 식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윽고 골드먼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뭐라고 하셨지요? 이 돈을 후원금으로 내든지,

 

비자금으로 쓰든지 맘대로 하라고 했습니까? 미스터 최.”

재영의 목소리는 더 굳어져 있었다.

 

통역을 듣고 난 조철봉이 다시 입을 벌렸을 때 손바닥으로 입을 막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저놈의 입, 그때 조철봉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골드먼씨, 왜냐하면.”

조철봉은 ‘비코스(because)’를 아는 것 같았다.

 

그말이 끝나자마자 말을 이은 것을 보면 그렇다.

“이 돈이 당신 돈이기 때문입니다. 골드먼씨.”

그래놓고 조철봉은 아직도 손에 쥔 봉투를 흔들어 보였다.

 

통역을 하면서도 놀란 재영이 눈을 크게 떴고 골드먼과 푸시먼도 긴장했다.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잘 들으십시오. 골드먼씨.”

그렇게 안해도 둘은 귀를 세우고 숨까지 죽이고 있다.

“이 돈은 당신 회사 중역인 보먼과 영업부장 더글러스한테서 각각 30만불씩 빼낸 돈에다가

 

작년에 그들과 담합했던 대만의 자이언트전자한테서도 30만불을 걷은 돈입니다.

 

합이 90만불, 거기에다 순수한 대성전자 후원금 10만불을 보태서 1백만불이 되었지요.”

물론 영문을 알지 못한 골드먼이 침만 삼켰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에 다시 그들이 담합할 눈치를 보이길래 폭로하겠다니까 순순히 돈을 내놓더군요.

 

필요하시다면 보먼과 더글러스, 그리고 자이언트전자 측에 보낸 메일과 증거 사진,

 

보먼과 더글러스의 사생활과 재산에 대한 자료를 넘겨 드릴 수가 있습니다.”

재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통역을 마쳤을 때 조철봉이 빙그레 웃었다.

“아니, 그 자료는 보셔야 할 겁니다.

 

제가 이 행사 끝나고 바로 보내 드리지요.”

“그, 그럼.”

마침내 골드먼이 입을 열었다.

“보먼과 더글러스가 업체와 짜고 오더를 줬단 말입니까? 미스터 최.”

“돈을 받고 오더를 준 겁니다.”

골드먼의 말을 들은 조철봉이 정정해서 말했다.

“로비 자금을 받은 거죠.

 

그렇게 해왔기 때문인지 그 둘은 굉장한 재산이 있습니다.

 

물론 숨겨 놓았지만 말이죠.”

그러고는 조철봉이 다시 봉투를 내밀자 골드먼은 홀린 듯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받았다.

 

그것을 본 재영은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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