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 열정(13)
(1583) 열정-25
다음 순간 이재영은 숨을 멈췄다.
분위기에 이끌려 불쑥 그렇게 말을 뱉었지만 행동으로 옮길 자신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못한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으면서 재영은 몸이 오그라지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뜨겁다고 느껴졌던 하체도 굳어져서 감각이 없다.
그때 조철봉이 빙그레 웃었다.
“말은 그렇지만 행동으로 옮기려면 아주 힘든 법이지.”
과연 도사구나,
재영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이 사장이 이 남자를 조심하라고 경고한 것도 떠올랐다.
그 순간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난 여자를 많이 겪었어. 아주 많이.”
이제는 차츰 냉정을 찾아가는 재영이 눈만 크게 떴고 조철봉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어떤 놈은 날보고 짐승 같다고 했지만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지.”
“…….”
“난 여자한테 상처를 준 적이 거의 없어.
아니, 난 뭘 줬다고 자부해. 물질이건 쾌락이건 간에 말야.”
“…….”
“그거 알아?”
조철봉이 다시 눈을 가늘게 떴으므로 재영의 가슴이 다시 철렁했다.
“난 여자하고 섹스하면서 거의 대포를 발사하지 않았어.”
말을 알아들은 재영의 귀가 대번에 붉어졌지만 조철봉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게 뭘 의미하는가를 알 거야.
난 쾌감을 절제하는 거지. 아니, 이를 악물고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는 거야.”
“…….”
“내가 즐기면 그렇게 안돼.
거창한 말 같지만 날 희생해야 여자가 절정의 쾌락을 맛보게 되는 것이라구.”
“…….”
“난 이 부장도 알다시피 무식해. 3류야. 고상한 취미도 없고 언행도 경박해.”
“…….”
“사기성은 뛰어난 편이어서 운 좋게 사업은 잘 되었지만.”
그러고는 조철봉이 상 위에 놓인 소주병을 들어 잔에 따르더니 한입에 삼켰다.
이제 밥 생각이 달아난 재영은 눈만 깜박이고 앉아 있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여자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내 유일한 취미이고 낙이야.”
재영은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대화는 처음이다.
남자한테서 섹스할 때 절제하고 희생해서 여자를 홍콩가게 만든다는 말도 처음 들었다.
그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아주 엄숙한 표정을 짓고 말하는 남자한테 지금 웃어야 할지
정중하게 대해야 할지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이 한 가지는 있다.
이 남자가 진심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감으로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숨을 두어번 뱉고 나서야 재영은 자신의 몸이 어느덧 다시 풀려 있는 것을 깨달았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조철봉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덮여 몸이 더워졌다.
도대체 어떻게 절제하고 희생한다는 말인가?
여자하고 섹스하면서 거의 대포를 발사하지 않았다니,
그 순간 재영은 시선을 내리고 조금 전에 조철봉이 따라준 소주잔을 집었다.
눈 앞에 조철봉의 대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짓이야? 하고 스스로 매섭게 꾸짖었지만 금방 귀가 붉어졌고 눈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지우려고 해도 조철봉의 대포가 눈 앞에서 어른거렸다.
어떻게 생겼을까?
버섯 큰 거만 할까?
이를 악문 재영이 퍼뜩 시선을 들고 조철봉을 보았다.
화가 났기 때문이다.
(1584) 열정-26
“유치해요.”
재영의 입에서 그렇게 말이 나왔다.
말은 감정을 다 전달해줄 수가 없다.
인간에게 말과 글이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되지만 말은 즉흥적이며 단순하다.
생각을 순간적으로 집합하여 토해내는 기능은 아무리 단련시켜도 글보다는 못하다.
그렇다고 글로써 만족하게 표현되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재영은 스스로 그렇게 말을 뱉고 나서 뒤가 어수선한 느낌이 들었다.
첫째로 정직하지 못했다.
유치하다는 표현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튀어나왔다.
조철봉의 말에 달아올랐던 자신에 대한 반발심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그때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갑자기 이 부장한테 내 알몸을 보인 셈이 되었을 테니까.”
그 순간 재영은 숨을 들이켰다.
내가 방금 이 남자의 고추를 떠올렸던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 과잉 반응이다.
“염려하지 않아도 돼요.”
다시 소주잔을 든 조철봉이 웃음 띤 얼굴로 재영을 보았다.
“이 사장이 아마 나 조심하라고 했겠지만 난 공사를 분간 못하는 사람이 아냐. 그리고.”
조철봉의 눈이 다시 가늘어졌다.
“싫다는 상대한테 억지로 접근한 적이 없어. 그건 진짜 짐승이 하는 짓이지.”
그러고는 조철봉이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밥 다 먹고 이야기 끝났다는 표시였다.
식당을 나와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밤 10시반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다.
“저기, 내일은 어떻게 할까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재영이 조철봉의 등에 대고 물었다.
재영은 이제 조심스러운 표정이 되어 있었다.
“오전 10시에 내 방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조철봉이 정색하고 재영을 보았다.
“내일 김 사장이 명일전자 배경호를 체포하는 날이거든.”
“내, 내일요?”
놀란 재영이 말까지 더듬었다.
그러자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이며 발을 떼었다.
“보먼하고 더글러스 작업건도 상의를 해야 될 것이고,
그것도 시간을 끌면 안 되니까 말야.”
조철봉의 뒤를 따르며 재영은 어금니를 물었다.
이 작업도 불법이다.
아무리 보먼과 더글러스가 부정행위로 치부했다고 해도 그렇다.
명일전자 배 전무한테 한국에서 파견된 특수수사대를 사칭해서
돈을 강탈하려는 행위는 말할 것도 없다.
“저기.”
재영이 조철봉의 등에 대고 말했다.
“꼭 그렇게 하셔야 돼요?”
그 순간 발을 멈춘 조철봉이 몸을 돌렸다.
복도에는 그들 둘뿐이었다.
재영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정색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런 돈을 보고도 가만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
조철봉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내가 그 생각을 못했구먼. 마음에 걸린다면
이 부장은 내일 오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도 돼요.
그건 우리들이 알아서 진행시킬 테니까.”
“…….”
“대신 내일 저녁에 슈워제네거 지사 저택에서 열리는 모임에는 나하고 같이 가도록 하지.”
그러고는 조철봉이 빙그레 웃었다.
“그런 파티에는 이 부장이 어울릴 거야. 예쁘게 하고 나와요.”
몸을 돌리려던 조철봉이 잊었다는 듯이 덧붙였다.
“이 부장은 미인이니까 아무것이나 입어도 어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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