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7. 열정(14)
(1585) 열정-27
오전 10시, 조철봉의 방에 모인 인원은 다시 네 명이다.
조철봉과 박경택, 김동수에다 이재영이었다.
재영은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조철봉의 말을 들었지만 시치미를 뗀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먼저 김동수가 보고했다.
“자이언트전자의 찰리라는 사내가 30만불을 내겠다고 합니다.
보먼도 역시 30으로 합의를 했으니까 둘 합해서 60만불이 되겠습니다.”
그러고는 동수가 빙그레 웃었다.
“더글러스도 30 내겠다는 메일이 왔습니다.
와이프 재산을 추적하겠다고 했더니 금방 꼬리를 내리는군요.”
“수사기관에 신고할 가능성은?”
조철봉이 묻자 동수가 머리를 저었다.
“없습니다. 여러 가지 방향으로 검토를 했지만 신고하면
자폭하는 것이나 같은 상황이 될 테니까요.”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동수와 경택은 노련한 팀원이었다.
조철봉이 큰 그림을 그려주면 알아서 만들어 채우는 것이다.
동수가 말을 이었다.
“송금은 이 계좌로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동수가 탁자 위에 쪽지 하나를 내려놓았다.
계좌 번호와 비밀번호까지 적혀 있다.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에게 이번에는 경택이 말했다.
“오늘 오후에 배경호를 잡겠습니다. 준비는 다 끝냈습니다.”
“50만 가져오도록.”
조철봉이 마피아 보스처럼 말하자 경택과 동수가 동시에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재영은 억누르고 있던 숨을 가늘게 뱉었다.
아까부터 심장 고동이 빨라지고 있었는데 얼굴까지 달아올랐다.
온몸의 에너지가 팽창되는 느낌이 들었고 누가 몸의 한곳을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았다.
그때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재영을 보았다.
“이부장.”
“네에.”
재영은 제 대답이 너무 큰 것을 듣고는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오늘 슈워제네거 지사하고 만나고 나서 골드먼하고 합의를 하게 될 거요.”
조철봉이 말하자 재영은 이제 머리만 끄덕였다.
“그러니까 오더 서류를 다 들고 가도록 해요.”
“오퍼시트 말씀입니까?”
“오더를 받을 수 있도록 말이지.”
“알겠습니다.”
제 몫이 정해진 재영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졌다.
“저기.”
조철봉이 다시 두 사내에게 말했다.
“오늘 오후 6시까지 수금을 끝낼 수 있을까?”
“6시까지라면.”
동수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경택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경택이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보더니 말했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회장님.”
“그럼 6시에 다시 이곳에서 만나기로 합시다.
먼저 만나고 나서 슈워제네거한테 가야겠어.”
“예, 회장님.”
동수와 경택이 동시에 머리를 숙여 보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덩달아서 일어선 재영이 눈치를 보았지만 조철봉은 시선을 주지 않았다.
동수와 경택의 뒤를 따라 방을 나온 재영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긴장이 풀렸다기보다 어쩐지 허전했기 때문이다.
그때 앞쪽에 있던 경택이 몸을 돌리더니 재영에게 말했다.
“저기, 이것 받으시지요.”
경택이 봉투를 내밀었다.
“5천불 들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입고 갈 옷을 사라는 회장님 지시올시다.”
(1586) 열정-28
샌타모니카의 골드먼 저택은 예상과는 달리 평범했다.
단층 구조의 목재 건물로 앞쪽에 잔디밭이 있었을 뿐 뒤는 낮은 구릉에 가려져 경치도 좋지 않았다.
다만 도로에서 3백미터쯤 떨어진 외진곳이었고 공기가 맑았다.
사방이 숲과 구릉으로 이어진 황무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바다는 1킬로미터쯤 뒤쪽이라고 했다.
오후 7시가 되었을 때 저택의 응접실에는 넷이 둘러앉았다.
탁자 위에는 미리 준비한 감자 튀김과 닭다리 볶음, 거기에다 누가 먹으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두루마리 휴지통 만큼이나 큰 햄버거가 두개 놓여져 있었다.
음료수는 오렌지주스와 콜라, 집안에 넷 뿐인 것을 보면 홍보이사 푸시먼이 시내에서
사들고 온 것 같았다.
“자, 드시죠.”
하고 골드먼이 정색하고 그것들을 권하더니 저는 햄버거를 집었다.
“이게 조지 푸시먼식 만찬이올시다.”
그렇게 말한 골드먼이 웃지도 않고 햄버거를 한입 먹었다.
“먹으면서 상담을 하죠.
자, 거래하실 것이 뭡니까?
저하고의 정당한 거래라고 하셨는데.”
“여기.”
통역을 들은 조철봉이 한 손으로 닭다리를 집으면서
다른 손으로 재영이 가져온 서류를 골드먼에게 내밀었다.
“대동전자의 3년간 손익계산서올시다.
자금 현황, 영업 실적, 향후 계획까지 다 있습니다.
경영자 관리 현황을 모두 밝혀 드리는 겁니다.”
골드먼은 재영의 통역을 듣고 별로 감동을 받은 눈치가 아니었다.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이며 입안의 음식을 삼킨 골드먼이 물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보지요. 그런데 거래하실 내용은?”
“제품의 품질과 가격, 조건이 다른 상사보다 우수하다면 오더를 받을 수 있겠지요?”
재영의 통역을 들은 골드먼이 바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 콜라를 벌컥이며 삼켰다.
“당연하지요.”
골드먼이 말하자 조철봉이 다시 물었다.
“다른 상사하고 모든 조건이 같을 경우에는 어떻게 업체를 선정합니까?”
“그건 우리 골드마켓의 기준에 따라 정합니다.”
통역을 들은 조철봉이 빙그레 웃었다.
“그 기준을 말씀해주실 수는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미스터 최.”
재영이 미스터 최라고 부른 것까지는 통역하지 않았다.
초절봉이 힐끗 재영에게 시선을 주고나서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실무 책임자들이 골드마켓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통역을 들은 골드먼이 손등으로 입가를 씻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색한 골드먼이 묻자 조철봉은 똑바로 시선을 주었다.
“먼저 이 말씀부터 드리지요.
한국 대성전자의 품질과 가격, 그리고 다른 조건은 세계 어느 회사보다 뒤지지 않습니다.
최고 수준이죠.”
재영이 상기된 얼굴로 또박또박 말했지만 골드먼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냥 시큰둥한 표정이다.
“내일.”
조철봉이 아직까지 들고 있던 닭다리를 종이 박스 위에 던지듯 내려놓으면서 말을 이었다.
“슈워제네거 지사의 만찬석상에서 거래 내용을 말씀 드리지요.
후원금도 내야 할테니까.
그동안 서류 검토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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