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 열정(9)
(1575) 열정-17
“한국 대동전자 조찰봉 회장, 10만달러.”
사회자가 수표를 들고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을 때 장내에 환호성이 울렸다.
‘조철봉’을 ‘조찰봉’으로 읽긴 했지만 이름이 어떻든 금액이 최고액이다.
슈워제네거도 놀란 듯 일순 눈을 크게 떴다가 활짝 웃으면서 조철봉의 손을 쥐었다.
그러더니 와락 껴안고 등을 네 번이나 두드렸다.
이재영은 그때 옆으로 비스듬히 서있어서 조철봉의 얼굴 표정을 다 보았다.
눈을 반쯤 감은 조철봉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아니, 그 이상이다.
황홀한 표정이라고 해야 더 어울리는 표현이 될 것 같았다.
“미스터 최, 고맙습니다.”
슈워제네거도 조씨를 최씨로 바꿔 불렀지만 상관없다.
대동전자만 분명하면 된다.
재영이 통역하자 조철봉이 열띤 얼굴로 말했다.
“난 선생님 팬입니다. 선생님 영화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보았지요.”
재영이 통역하자 슈워제네거는 이제 조철봉의 어깨를 한 팔로 감싸 안았다.
그때의 표정은 영화 트루 라이즈의 한 장면 같았다.
“미스터 최, 내일 밤 내 집에서 열리는 환경단체장들과의 만찬에 오시지 않겠습니까?”
슈워제네거가 물었고 재영이 통역했다.
재영도 상기되어 있었다.
통역을 들은 조철봉이 대번에 머리를 끄덕였다.
“가지요, 지사님. 영광입니다.”
“그럼 초청장을 드리지요, 미스터 최.”
슈워제네거가 다시 조철봉의 등을 두드렸고 잠시 멈췄던 행사가 계속되었다.
조철봉과 재영이 자리로 돌아와 앉자마자 정장 차림의 사내가 다가와 섰다.
“지사 비서 유진입니다.”
먼저 명함을 내밀고 인사를 한 사내가 조철봉의 명함을 받더니 재영에게 물었다.
“초대장을 어디로 보내 드릴까요?”
“저희들은 라스베이거스의 시저스 팰리스 호텔에 투숙하고 있습니다.”
“아, 예.”
사내의 표정에서 존경심이 더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므로 재영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자 어깨가 더 펴졌다.
“알겠습니다. 내일 오전까지 초청장 두 장이 도착할 겁니다.
파티는 저녁 8시에 시작됩니다. 부인.”
정중하게 말한 비서가 덧붙였다.
“내일 저한테 저택으로 출발하시기 전에 계신 장소를 말씀해주시면
귀빈용 리무진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비서가 조철봉에게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정중한 태도였다.
재영의 통역을 들은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미국은 돈값을 제대로 쳐주는 나라 같구먼, 아주 정직해.”
“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재영이 눈을 크게 떠 보였지만 조철봉은 말을 이었다.
“내가 최찰봉이 되었지만 상관없어.”
“…….”
“로비가 통하는 나라란 말이오.”
그러고는 조철봉이 재영을 보았다.
웃음 띤 얼굴이었다.
“진짜 로비 말이지, 지금까지 내가 해 온 그런 로비 말고.”
재영은 조철봉이 어떤 로비를 해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음성적이며 부정한 내용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들었다.
그때 조철봉이 다시 혼잣소리를 했다.
“물론 이곳에서도 그렇게 해온 놈들이 있겠지.
이제 그놈들하고의 승부를 내야 될 것 같구먼.”
(1576) 열정-18
이재영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것은 그로부터 10분밖에 안 되었을 때였다.
“실례합니다.”
사내 하나가 다가왔으므로 재영은 와락 긴장했다.
그들은 학교 앞의 주차장에서 막 차에 타려는 참이었다.
발을 멈춘 조철봉의 표정도 굳어졌다.
사내의 뒤에는 에드워드 골드먼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 선 사내가 먼저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전 골드마켓 홍보담당 푸시먼입니다.
잠깐 저희 골드먼 사장께서 시간을 내주셨으면 합니다만.”
재영의 통역을 들은 조철봉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러지요.”
골드먼은 재영의 말을 듣더니 앞으로 다가와 섰다.
푸시먼의 옆에 서서 다 듣고 있었던 것이다.
“대동전자라면 이번 저희 회사의 구매전시회에 참석한 회사 아닙니까?”
골드먼이 차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재영의 통역을 들은 조철봉이 다시 웃었다.
“그렇습니다, 골드먼 사장님.”
“아, 그렇군요.”
머리를 끄덕인 골드먼이 조철봉에게 손을 내밀었다.
“작년에도 참가하셨지요.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골드먼의 얼굴에도 엷게 웃음기가 번졌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어서 좀 놀랐습니다.”
재영의 통역을 들은 조철봉이 어색한 듯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제가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팬이긴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 사람이 나온 영화는 다 보았지요.”
조철봉의 말을 통역하면서 재영의 가슴이 다시 조마조마해졌다.
또 람보 이야기가 나올까 봐서였다.
여기서는 람보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것 같다.
그때 골드먼이 물었다.
“슈워제네거 주지사가 내일 만찬에 초대하셨지요?”
“예, 그렇습니다.”
재영이 대답하자 이번에는 골드먼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내일 초대를 받았지요.
그래서 미리 인사를 드리는 겁니다.
어차피 전시장에서도 다시 만날 분이시고 하니까요.”
“그렇습니까? 영광입니다.”
재영의 통역을 들은 조철봉이 정색한 얼굴로 골드먼을 보았다.
그러더니 재영에게 말했다.
“이 부장, 통역을 아주 정확하게 또박또박 잘 해주세요.
중요한 순간이니까.”
재영이 버릇처럼 입을 딱 벌렸다가 저한테 말한 것을 알고는 숨을 삼켰다.
그때 조철봉이 제가 말한 것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골드먼 사장님,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사장님을 만나려는 의도였지요.
더 자세히 말하면 사장님께 대동전자라는 브랜드를 기억하게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통역을 듣고 난 골드먼이 눈을 크게 떴지만 표정이 변하지는 않았다.
그때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난 사장님한테 로비를 한 겁니다.
슈워제네거한테 준 10만달러도 결국 골드마켓이 낸 기부금으로 인정받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일 슈워제네거한테 골드먼씨의 권유로 후원회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말할 테니까요.”
재영의 통역에 열기가 더해졌고 조철봉의 목소리도 더 높아졌다.
“내일 환경단체 모임에도 기부금을 내지요.
그리고 대동전자의 제품과 품질, 가격에 이상이 없는 조건에서 골드마켓과의 거래를 원합니다.
저하고 골드먼 사장님과의 정당한 거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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