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90. 열정(7)

오늘의 쉼터 2014. 9. 9. 14:49

490. 열정(7)

 

 

(1571) 열정-13

 

 

 로비도 기술이다.

 

무조건 준다고 다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런 놈은 없다.

 

앞뒤 재고나서 먹어도 뒤탈이 없다는 판단이 서야 먹는 것이다.

 

따라서 먹는 놈도 주는 놈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먹는 놈은 먼저 상대방의 신뢰도, 리베이트의 양과 조건에 대해서 검토한다.

 

먹는 놈은 항상 이번 일로 끝나기를 바란다.

 

다시 시작할 때는 하더라도 돈 먹고나면 아예 모르는 사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돈 준 놈이 이권은 가져가되 죽어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 다음은 준 놈의 입이 거북이처럼 굳게 닫쳐져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다음은 크게 먹는 놈들한테서 가끔 드러나는 현상인데 제가 리베이트를 먹고

 

이권을 줌으로써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했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한다.

 

먹는 것에 대한 합리화가 필요한 것이다.

 

주는 놈이 그 부분까지 신경을 써준다면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있다.

 

다음날 오후 5시가 되었을 때 조철봉의 방에는 다섯이 모였다.

 

오늘은 조철봉과 박경택, 김동수에다 이재영과 또 한명의 동양인까지 둘러앉은 것이다.

 

이재영에게 김동수하고 또 다른 사내는 초면이었지만 조철봉은 소개도 시켜주지 않고

 

둘러 앉자마자 말했다.

“그렇다면 대만 자이언트전자가 로비를 하고 있다고 봐야겠군. 그렇지 않습니까?”

김동수에게 묻는 것이다.

“예, 회장님.”

정색한 김동수가 탁자 위에 봉투를 내려 놓았다.

“자이언트전자의 영업담당 중역 찰스왕하고 더글러스가 만나는 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두놈은 나이트클럽에서 만났다가 나중에는 여자들을 데리고 호텔로 들어갔습니다.”

“작년에 같이 오더를 따간 명진전자는 어떻습니까?”

조철봉이 묻자 김동수가 머리를 저었다.

“사장하고 전무가 와 있는데 둘 다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감시를 붙여 놓았으니까 파악이 됩니다.”

“하지만.”

머리를 든 조철봉의 시선이 앞에 앉은 박경택에서 끝쪽의 이재영까지 차례로 훑어갔다.

 

차갑게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감시만 할 수는 없지.”

혼잣소리처럼 말한 조철봉이 김동수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먼저 자이언트전자부터 시작합시다.”

“자이언트전자부터.”

따라 말한 김동수가 굳어진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어떻게 말씀입니까?”

“그래서 내가 저분을 보자고 한건데.”

조철봉이 눈으로 김동수의 옆에 앉은 사내를 가리켰다.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사내는 조철봉의 시선을 받자 와락 긴장했다.

 

흰 피부에 마른 체격이었고 얼굴의 선도 가늘었다.

 

옅게 콧수염만 기르지 않았다면 남장 여자 같았다.

 

조철봉이 사내에게 물었다.

“보먼의 e메일 주소를 찾아낼 수 있겠지요?”

그러자 김동수가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골드마켓 담당 중역이야. 더글러스의 상관이지.”

“예, 그쯤은.”

사내가 머리를 끄덕이자 조철봉이 만족한 듯 웃었다.

“그럼 보먼한테 e메일을 보내도록 해요.

 

발신은 자이언트전자의 직원인 것처럼 하고 말이지.

 

30만달러를 내지 않으면 지난번에 자이언트전자에서 먹인 리베이트를 폭로하겠다는 내용으로,

 

증거도 다 갖고 있다고 해요.”

조용해진 방안에 조철봉의 목소리가 울렸다. 

 

 

 

(1572) 열정-14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사내가 이윽고 머리를 끄덕였다.

“예, 회장님, 그렇게만 보내면 됩니까?”

“추적이 안 되도록 해야 됩니다.”

“문제없습니다.”

사내가 웃자 흰 얼굴이 붉어졌다.

정말 여자 같은 미남이다.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이재영의 시선을 받더니 말했다.

“이분은 컴퓨터 도산데 여기 계신 김 사장님 회사 직원이죠.”

그랬다가 잊었다는 듯이 소개했다.

“이분은 날 도와주시는 김 사장님, 이분은 대동전자의 이재영 부장님.”

김동수는 머리만 숙여 보였으므로 이재영도 앉은 채로 인사만 했다.

 

그때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보먼이 그 e메일을 받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습니까?”

“지난번에 리베이트를 먹었다면 긴장하게 되겠지요.”

쓴웃음을 지은 김동수가 말을 이었다.

“먹지 않았다면 경찰에 신고할지도 모릅니다.”

“자이언트 전자와의 관계를 끊으려는 게 목적이니까 반응을 지켜봅시다.”

결론을 낸 조철봉의 시선이 박경택에게로 옮겨졌다.

“명일전자 상황은?”

“예,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경택이 노트를 펴더니 읽었다.

“명일전자는 작년에 2억5000만원 흑자를 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는 부채가 150억원이 넘습니다.

 

그 이유는….”

재영은 숨을 죽였다.

 

경쟁업체인 명일전자에 대해서 재영은 잘 나가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50억원의 부채가 있다니.

 

그때 경택의 말이 이어졌다.

“대주주이고 회장인 유경도가 골프장 인수, 유통업체인 신화마켓 주식 매입에

 

220억원을 투자하는 바람에 명진전자에서 얻은 이익금도 다 쏟아부은 겁니다.

 

골프장은 환경 문제에 걸려서 오픈도 못하게 되었고 신화마켓은 외국계 투자자가

 

빠져나가는 바람에 주가가 절반으로 떨어져서 85억원의 손해를 입었습니다.”

놀란 재영이 조철봉을 보았다.

 

그러나 조철봉은 머리만 끄덕였고 경택의 보고는 계속되었다.

“이곳에 와있는 명일전자 사장 이금택은 두 달 전에 영입한 은행 출신 바지사장이고

 

전무 배경호는 작년에 골드마켓 오더를 따낸 공신이죠.

 

그 공로로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로비의 주역이 될 것 같습니다.”

“자금 사정은 별로 좋지 않겠는데.”

조철봉이 혼잣소리처럼 말하자 경택이 머리를 들었다.

“회사가 망하기 직전이라 필사적으로 달려들지도 모릅니다.”

“그렇겠군.”

그때 김동수가 말했다.

“보먼의 계좌에는 2만5000달러 정도가 있지만 뉴포트비치에

 

전처 나타샤 명의로 된 요트와 별장이 있습니다.

 

시가 600만달러 정도가 되지요.

 

아무래도 위장이혼한 것 같습니다.

 

나타샤는 가구 수입상인데 재산이 많습니다.”

그러고는 김동수가 얼굴에 주름을 만들며 소리 없이 웃었다.

“더글러스도 재미있지요,

 

역시 이혼을 했고 전처 헬렌은 파리에서 삽니다.

 

그런데 잠깐 알아보았더니 두 아이가 스위스의 사립학교에 다니더군요.

 

1년 학비가 20만달러 가깝게 드는 학교이고 헬렌은 파리의 고급 아파트에 삽니다.”

김동수가 다시 웃었다.

“헬렌의 직업은 화가로 되어 있어요.

 

그렇지만 그림은 한 장도 팔지 못한 화가더군요.

 

그건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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