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 열정(6)
(1569) 열정-11
라스베이거스. 조철봉은 라스베이거스가 처음이다.
그러나 광고나 영화에서 수없이 라스베이거스의 이곳저곳을 봐온 때문인지 곧 익숙해졌다.
거기에다 이재영이 그림자처럼 옆에서 수행해주는 덕분에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날 저녁, 이재영과 저녁 식사를 마친 조철봉은 방으로 돌아왔다.
조철봉과 이재영은 시저스 팰리스 호텔에 투숙하고 있었는데 물론 방은 따로 쓴다.
욕실에서 가볍게 씻고 나온 조철봉이 소파에 앉아 기다린 지 5분쯤 되었을 때
문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조철봉이 문을 열자 박경택과 40대쯤으로 보이는 동양인이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김동수입니다.”
사내가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
사립탐정 로버트 김이다.
인사를 마친 셋이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먼저 김동수가 입을 열었다.
“일의 범위가 넓어서 제가 아주 바빴습니다. 사람도 여럿 고용했고요.”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골드 마켓 사주의 사생활까지 조사시킨 것이다.
이것이 조철봉의 일하는 방식이다.
사업에 관해서는 상대방 가족, 사생활까지 조사하고 약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여자 관계에서도 적용했기 때문에 백발백중이 되었다.
김동수가 말을 이었다.
“골드 마켓의 대주주이자 회장 찰스 골드먼은 77세로 지금 플로리다에 있습니다.
3년 전부터 회사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아들 에드워드한테 경영을 맡긴 상태지요.”
그러더니 김동수가 수첩을 꺼내 메모한 것을 읽었다.
“에드워드 골드먼은 42세, 찰스 골드먼의 둘째 아들인데 하버드를 나왔습니다.
3년 전 큰아들 조지가 암으로 사망하자 경영을 맡았는데 아버지의 신임을 받는 것 같습니다.
3년 동안 매출액을 35%가량 신장시켰으니까요.”
“…….”
“영업담당 중역 마이클 보먼과 부장 존 더글러스는 에드워드의 심복으로 소문이 난 인물입니다.”
“…….”
“그런데.”
수첩에서 시선을 뗀 김동수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가 떠올랐다.
“보먼과 더글러스가 리베이트를 먹었다면 에드워드한테 전해지는지를 알아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일이 훨씬 쉬워집니다.”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김동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작년 오더는 한국 명진전자하고 대만의 자이언트전자가 가져갔는데 올해에도 그놈들이 참가했어요.”
김동수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만일 그놈들이 리베이트를 줬다면 이번에는 더 익숙해져 있겠죠.
그놈들을 감시하면 크게 도움이 될 텐데요.”
“그렇군요.”
눈을 크게 뜬 김동수가 곧 웃었다.
“우리가 선수를 칠 수도 있고 약점을 잡을 수도 있겠습니다.”
“경비는 충분이 드릴 테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모처럼 일할 맛이 납니다.”
건장한 체격의 김동수가 굵은 목을 젖히면서 소리 없이 웃었다.
입술도 두껍고 콧날도 굵어서 영락없는 레슬러였다.
그때 김동수가 상반신을 세우더니 조철봉에게 말했다.
“우리가 타 상사를 감시하고 조사하듯이 타 상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모두 머리를 쓰고 있다고 봐야지요.
그러니까 빠르고 정확해야 이깁니다.”
(1570) 열정-12
밤 10시 정각이 되었을 때 이재영은 전화기를 들고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신호음이 두 번 울리더니 곧 응답소리가 들렸다.
이대건이다.
“사장님, 저예요.”
재영이 말했지만 서울 시간으로 오후 3시에 연락한다고 했으니 누군지 알았을 것이다.
“응, 그래. 준비 끝났지?”
하고 대건이 물었다.
“예, 전시장은 오픈했고 골드마켓측과 스케줄만 잡으면 됩니다.”
재영이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창밖의 야경은 휘황했다.
“그런데 조 사장 말이야.”
대건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열의가 있는 것 같아? 내 말은….”
“네, 사장님.”
재영이 대건의 말을 부드럽게 잘랐다.
“열심히 하십니다.”
“어, 어떻게?”
“먼저 이곳에 직원 한 분을 보내셨더군요. 비서실장 역할을 하시는 분인데.”
“비서실장?”
“네, 미리 시장 조사를 시키셨다고 합니다.”
재영은 박경택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경택과는 공항에서 만났지만 서로 이야기한 적도 없다.
조철봉이 시장 조사차 먼저 보낸 비서실장이라고 소개를 해주었을 뿐이다.
“으음, 그렇군.”
대건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그런데 이 부장.”
“네, 사장님.”
“내가 지금 와서 이런 말 하는 건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네, 사장님.”
“조철봉이, 아니, 조 회장 말이야.”
“말씀하세요.”
“내가 좋은 이야기만 해 주었는데.”
“…….”
“그놈이 여자 관계가 좀 복잡해.”
재영이 다시 머리를 들고 창밖의 야경을 보았다.
눈이 어지럽도록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있었다.
다시 대건의 말이 수화구에서 울렸다.
“그곳에 보낼 만한 관리자가 이 부장뿐이어서 그렇게 되었는데.”
“…….”
“이 부장.”
“네, 사장님.”
“그놈이 이상한 짓을 하면 아주 단호하게 자르도록 해.
오더에 신경 안 써도 된다고.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압니다, 사장님.”
쓴웃음을 지은 재영이 다시 대건의 말을 잘랐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사장님.”
“내가 이 부장한테 미안해서 그래.”
“아닙니다.”
재영이 송화구 위에 손바닥을 덮고 길게 숨을 뱉었다.
대건은 점잖았다.
공사 구분이 엄격했고 직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었다.
그래서 모든 직원의 존경을 받았다.
대건과 친구들간의 관계나 평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재영이 만난 사장 이대건의 친구는 조철봉이 처음인 것이다.
“그럼 자주 연락하고.”
대건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그놈 조심하도록, 내가 조심하라는 내용이 뭔지 알겠지?”
“네, 사장님.”
전화가 끊겼으므로 재영은 이제는 커다랗게 숨을 뱉으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앞쪽 벽을 보았다.
조철봉의 형태를 떠올려 본 것이다.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는 건 여자를 밝힌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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