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85. 열정(2)

오늘의 쉼터 2014. 9. 9. 14:37

485. 열정(2)

 

 

(1561) 열정-3 

 

 

 

 

 방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말을 그친 이대건이 한 모금 소주를 삼켰으며 조철봉은 앞쪽의 벽을 보았다.

 

조철봉도 사업가이긴 하다.

 

본래 자동차 영업 사원이었다가 지금은 기업체를 여럿 소유한 오너가 되었지만 경영자가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나 자격, 또는 전문 지식에 대해서 공부한 것도 없다.

 

그리고 조철봉 주변의 경영자 대부분도 대동소이했다.

 

다들 열심히 일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가만 보면 공통점 하나는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열정이다.

일에 대한 열정, 조철봉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사업가가 갖춰야 할 첫째 조건이었다.

 

건성으로 되는 일은 없다.

 

구멍가게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몸과 정신, 재물까지 투자를 해야만 이뤄지는 것이고

 

열정이 있어야 그것이 가능하다.

 

사업가가 많아야 사회가, 나아가서 국가가 부강해진다.

 

한때, 조철봉이 청소년 시절에 서울 시내의 횡단보도를 건널 때 뒤에서 ‘사장님’하고 불렀더니

 

앞에서 걷던 사람들이 다 뒤를 돌아보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유행되었었다.

그리고 그때가 가장 경기가 좋았던 시절인 것 같다.

 

조철봉이 시선을 돌려 이대건을 보았다.

 

물론 열정만으로 사업에 성공할 수는 없다.

 

때가 맞아야 하고 운이 따라야 하며 자본금도 필요하고 두뇌 인력도 갖춰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것을 열정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건은 그 기본 동력이 되어야 할 자신감을 잃은 것 같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대건이 불쑥 말했다.

“너, 내 대신 일 좀 해주라.”

눈만 크게 뜬 조철봉을 향해 대건이 멋쩍게 웃었다.

“놀라는 건 당연해. 하지만 난 꽤 오래 숙고한 거야.”

“무슨 일인데.”

해놓고 조철봉도 따라 웃었다.

“뭐, 대신 오입을 해 달라거나 그런 일은 언제나 웰컴이다.

 

예를 들어서 여기 전 사장을 대신 어떻게 해 달라든지.”

“그건 네 맘대로 해.”

“정말이냐?”

“정말이라니까. 난 아무 관계가 없어.”

“그럼 접수했다.”

정색하고 조철봉이 말했을 때 대건이 시선을 주었다.

 

그늘진 표정이었으므로 조철봉이 조금 긴장했다.

“야, 철봉아. 20일쯤 후에 라스베이거스에서 골드 마켓의 전자제품 구매 전시회가 있는데

 

우리 회사도 신청을 했어.”

하마터면 웬 라스베이거스? 하려다가 대건의 분위기가 무거웠으므로 조철봉은 참았다.

 

대건이 열띤 표정을 짓고 말을 이었다.

“거기서 골드 마켓 구매팀이 내년분 전자제품 구매를 하는데

 

우리 아이템만 해도 8천만불 물량이 된다.”

“…….”

“그중 10분지 1인 8백만불 오더만 따내도 우리 회사 생산량의 거의 절반이 돼.

 

그 물량만 따내면 회사가 살아나.”

“…….”

“그런데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한 대건이 술잔을 들었다가 내려놓더니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오더를 따낼 능력이 없어. 그래서 네가 내 대신 해 주었으면 해서.”

“내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조철봉이 되물었을 때 대건이 정색했다.

“준비는 다 되었어. 난 네 능력을 들어서 안다.

 

우리 회사는 네가 필요해. 네가 이번 한 번만 도와주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다.”

조철봉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대건의 표정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1562) 열정-4

 

 

 골드 마켓은 세계적인 대형 할인점으로 미국에만 700여개,

 

전 세계에 1000여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한국에도 30여개가 진출했다.

 

그러나 조철봉에게는 생소한 업체였다.

 

골드 마켓이 물품을 어떻게 조달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

 

조철봉의 표정을 본 대건이 말을 이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아메리칸 호텔에 각 상사가 자사 제품을 전시해 놓으면 골드 마켓 구매단이

 

샘플과 오퍼시트를 걷어가서 구매 결정을 하는 거야.

 

우리는 참가 신청을 해놓았고 전시품도 다 준비해 놓았어. 그래서 떠나기만 하면 돼.”

“그런데?”

하고 조철봉이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너나 담당 중역이 나가지 않고 사기꾼으로 이름난 나더러 대신 나가라는 이유가 뭐냐?

 

이 ‘전자’의 ‘전’자도 모르는 놈한테 말야.”

“작년에도 우리가 전시회에 나갔어. 그때는 뉴욕에서 열렸는데.”

대건이 동문서답을 했다.

 

이제는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을 향해 대건이 말을 이었다.

“가격이나 납기, 품질 조건이 우리가 더 좋았는데도 오더를 한국 명진전자하고 대만 회사에 빼앗겼어.

 

그놈들은 1억불짜리 오더를 5000만불씩 나눠 먹었지.”

그러더니 대건이 눈을 올려 뜨고 이 사이로 말했다.

“그놈들이 로비를 했기 때문이야.

 

담당한테 리베이트를 먹이고 오더를 낚아챈 것이지.”

“그럼 너도 하면 될 거 아냐?”

조철봉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건을 보았다.

“간단한 일을 가지고 왜 그래?”

“바로 그거야.”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인 대건이 곧 길게 숨을 뱉었다.

“난 그 짓을 못할 형편이거든. 그런 소질도 없고.”

“뭘 못한다고?”

“로비 말이야.”

그러고는 대건이 정색하고 조철봉을 불렀다.

“야. 철봉아.”

“말해.”

“네가 나 대신 로비를 해주라.”

“이런 미친 놈이.”

“네가 요령 좋고 수단이 뛰어나다는 건 동창들이 다 알아. 발도 넓고.”

“내가 인마, 여자 문제라면 몰라도….”

말을 삼킨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뜨고 대건을 보았다.

“이거 정말 웃기는 놈이네. 내가 무슨 로비스트야? 아니, 이건 그것도 아니네.”

그러더니 얼굴을 굳혔다.

“인마, 난 영어도 몰라. 헬로, 오케이가 끝이란 말이다.”

“통역이 있어. 불편한 건 하나도 없어.”

다시 절실한 표정이 된 대건이 말을 이었다.

“무역부장이 널 수행할거야. 넌 로비만 하면 돼.”

“로비 자금은 얼마나 준비했는데?”

조철봉이 묻자 대건이 헛기침부터 했다.

 

그러고는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그걸 너하고 상의를 해서 결정해야 돼.”

“…….”

“네가 싫다면 안 해도 돼. 없는 일로 하겠어.”

“…….”

“로비자금이 없어.

 

그것이 너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첫 번째 이유가 될 거야.

 

네 로비 능력은 두 번째고.”

이제는 대건이 시선을 내렸지만 그래도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오더가 성사되면 이익금을 배분한다는 각서를 써줄게. 로비자금까지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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