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7장 중국손님 (29)

오늘의 쉼터 2014. 9. 3. 16:31

제17장 중국손님 (29)

 

 

 

 

한편 이 무렵 용화 김유신은 하주의 식구들과 헤어져 금성 옛집에 기거하며

하루하루 비참한 세월을 살고 있었다.

낮에는 주로 잠을 자고 저녁때가 되면 같은 처지의 상수들과 어울리거나

혹은 혼자서라도 주점을 찾는 것이 하루의 정해진 일과였다.

술에라도 취하지 않고는 견딜 재간이 없었고, 그러구러 주량도 점차 늘어나서

매일 한 말쯤은 마셔야 굳은 안색이 조금씩 풀리니 늘 술독에 빠져 지낸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밤새 마셔대다가 정신을 잃고 곯아떨어지면 주막 주인이나 몸종 소천(昭天)이

그 기굴한 체구를 들쳐업고 집으로 돌아오느라 비지땀깨나 흘리곤 했다.

10여 세의 어린 소년 시절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떨치며 국선의 반열에까지 올랐던

용화향도의 우두머리가 이처럼 자포자기에 빠져 술로 세월을 탕진하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놈의 상수질 때문이었다.

상수들의 일과란 게 조석으로 병부에 들러 점고를 맞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달리 할 일이 없었고,

그렇다고 하루라도 점고에서 빠지면 감독을 맡은 관리가 당장 조사를 나오는데,

만일 적간을 해서 뚜렷한 사유가 없을 시엔 일정 기간 병부 관사에 갇혀 지내야 하는 벌을 받았다.

게다가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아니하고 외주의 본가에까지 그 사실을 연통하여 가문의 허물로 삼으니

상수 노릇 잘못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게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오죽하면 귀양 살지 상수질 안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상수들은 철저히 매인 몸이 되어 하루도 금성을 벗어날 수 없었고,

친구나 가족, 따르는 낭도들을 만나는 것도 그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불가능하였다.

말이 상수 노릇이지 실상은 빈틈없는 유배 생활에 감옥살이였다.

비단 유신뿐 아니라 속절없는 세월을 사는 거의 모든 상수들이 아까운 청춘과

차오르는 울분을 달래느라 만나기만 하면 술을 마셔댔다.

항차 유신은 상수로 불려온 직후에 해론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

그는 해론이 금산의 당주로 가서 죽었다는 말을 듣자 며칠 동안 먹고 자는 것을 잊고 눈물을 흘렸다.

뜻만 같아서는 당장 그날로 70여 명에 달하는 낭도들을 이끌고 해론의 원수를 갚고 싶었으나

관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금성의 경계마저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자신의 처지였다.

유신은 하늘을 우러러 세상과 시운을 한탄하고 볼모로 붙잡힌 자신의 처지를 원망했다.

그가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다.

이후로 유신은 날마다 주막을 찾아다니며 폭음을 일삼았다.

맨정신으로 보내는 날이 달에 하루가 어려웠다.

해론이 죽은 뒤 그나마 가끔씩 어울려 외로움과 울분을 달래던 눌최와 계두마저 중국으로 떠나고 나자

유신의 마음은 더욱 고적하고 황량해졌다.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우두머리가 절망과 무력감에 빠져 연일 술로 소일한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각지의 용화향도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유신을 찾아왔다.

그러나 유신은 이미 전날의 유신이 아니었다.

“장부로 세상에 태어나 마음속에 제아무리 큰 뜻과 기개를 품는다 한들

그것이 대저 무슨 소용이 있던가?

심신을 닦고 병법과 무예를 익혀 바람처럼 들판을 내달린다 한들

그것은 또한 무슨 소용이 있던가?

장부가 뜻을 세워 천추만대에 그 이름을 남기자면 반드시 세 가지를 잘 만나야 하거늘,

곧 나라와 때와 현명한 임금일세.

그런데 이놈의 나라는 영걸을 시기하여 사지로 몰아 죽이고,

때는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지 못하며, 당최 눈을 씻고 보아도 현군은커녕

장차 현군이 될 인물조차 없으니 우리 따위가 제아무리 가슴에 청운대지(靑雲大志)를 품어본들

결국은 풍랑 심한 바다를 걱정하는 물고기 꼴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니 뜻을 품었거든 서둘러 없애버리게나.

술이야 마시면 취하기라도 하지,

그놈의 이루지 못할 꿈은 사람의 정신과 육신을 모조리 황폐하게 만들 뿐이요,

때로 악운을 만나면 해론처럼 개죽음을 당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네.”

이에 몇몇 낭도들이 유신을 위로하고 설득했는데,

특히 비녕자와 죽죽(竹竹) 같은 이들은 여러 차례 유신의 집을 찾아와,

“화랑께서 하루빨리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 다시 전날처럼 우리를 인도해주십시오.

상수에서 풀려나시는 날까지 우리는 부순을 따라 전과 변함없이 매운 수련을 다니기로

이미 공론을 마쳤습니다.”

하고 간곡히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신은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풍류황권에서 아예 이름자를 지울 것이다.

너희들 가운데 우정 남의 낭도 노릇을 해야겠다 싶거든 시급히 다른 풍월주를 찾도록 하라!”

이것이 유신의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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