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7장 중국손님 (27)

오늘의 쉼터 2014. 9. 3. 16:17

제17장 중국손님 (27)

 

 

 

 

“용춘은 나의 사위요, 일국의 부마이며, 전왕의 독생자다.

왕가의 적통이 명백한데 어찌 그를 진골로 삼을 수 있더란 말인가?

이는 왕실의 체통과 권위에 관한 일이다.

그대들은 너무 무엄하지 아니한가?”

왕이 진노하자 그때껏 잠자코 있던 병부령 칠숙이 허리를 굽혀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노여움을 거둡소서. 신 등이 용춘공의 품계를 거론하는 것은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며, 오히려 왕실의 위엄을 칼날같이 세워 전하의 왕업과

신라의 사직을 안전하게 해두려는 뜻에섭니다.

전하께서 방금 말씀하셨듯이 용춘공은 나라에 하나뿐인 국서요,

진지대왕의 독자이며, 그 인품과 자질이 호걸의 기백을 갖추어 조정 안팎에

그를 흠모하고 따르는 무리가 적지 않습니다.

또한 국법에 역모를 꾀한 자는 문벌의 높고 낮음과 지위의 귀천을 가리지 아니하고

구족을 멸하기로 명시돼 있거니와, 그가 전날의 반역죄에도 불구하고 멸문지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전하의 사위요,

공주의 부군이기 때문이었나이다.

그런데 이제 갑자기 그를 불러내어 다시금 나라의 중책을 맡긴다면 많은 사람들이

국법의 공정함을 의심하게 될 것이며, 그에게 나랏법을 넘어서는 특별한 권세가 있는 줄 알고

추종하는 무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하물며 지금은 나라 안팎이 소란스럽고 민심이 예전 같지 않아 심히 어지러운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와 같은 때에 용춘공을 중심으로 불경한 뜻을 품은 세력이 운집해 다시금 역모를 꾀한다면

나라는 걷잡을 수 없이 도탄에 빠지고야 말 것입니다.

신 등은 오직 신라의 사직과 전하의 보위를 걱정하는 마음밖에 없습니다.

부디 일의 위중함을 통찰하시어 신 등의 충절을 거두어주소서!”

왕은 자신을 걱정하는 칠숙의 장황한 진언을 듣고 약간 마음이 풀렸으나 그렇다고

용춘의 품계를 깎아내리는 일만큼은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대부분의 신하들이 만구일담으로 용춘의 전과를 거론하자

궁리 끝에 백반을 불러 이 문제를 의논하였다.

모든 일이 백반에게서 나온 계략임을 조금도 알지 못했던 왕은 왕실의 체통과 위엄을 내세워

백반의 협조를 구하고자 하였다.

“중신들이 그런 소리를 다 했단 말씀입니까?”

백반은 왕과 독대하여 이야기를 듣고 나자 짐짓 놀라는 시늉을 하였다.

그리곤 혀를 차며 우선 왕의 마음을 달랬다.

“다른 것은 다 고만두더라도 천명을 봐서나마 어찌 용춘의 품계를 깎아내리겠습니까.

부당한 일이올습니다.”

“그러니 아우가 중신들을 한번 설득해보게.”

왕이 근심 어린 얼굴로 부탁하자 백반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하오나 전하의 보위를 염려하는 중신들의 주장도 무턱대고 나무랄 일만은 아닌 듯합니다.”

하며 조심스레 말하기를,

“실은 얼마 전에 용춘이 신의 집에 와서 진골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고서 비로소 용춘과 만났던 일을 슬그머니 털어놓았다.

백반에게서 사정 얘기를 듣고 난 왕은 종시 애운한 얼굴로 땅이 꺼지도록 탄식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벼슬을 살리지 않았으면 않았지 어찌 진골로 삼는단 말인가!

신하들이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를 불러내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차제에 용춘을 진골로 만드는 것은 백반에게는 일생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그런데 왕의 말을 들으며 곰곰 생각하니 이러다간 자칫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것만 같았다.

그는 왕을 설득할 만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함을 직감했다.

“신의 소견으론 용춘을 진골로 삼는 대신 그에게 전고에 없던 나라의 중책을 맡겨

큰 권세를 주는 게 어떨까 합니다.

이는 신하들이 염려하는 보위를 튼튼하게 하는 일인 동시에 용춘으로 하여금

대신들이 방약무도해지는 것을 견제하여 왕실의 권위를 칼날같이 세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찌 묘책이 아니오리까.”

왕은 용춘을 진골로 삼는다는 말이 비록 마음에 탐탁치 않았지만,

“전고에 없던 중책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하고 물었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7장 중국손님 (29)  (0) 2014.09.03
제17장 중국손님 (28)  (0) 2014.09.03
제17장 중국손님 (26)  (0) 2014.09.03
제17장 중국손님 (25)  (0) 2014.09.03
제17장 중국손님 (24)  (0) 2014.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