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22장 내분이 일어나다 [2]
(453) 22장 내분이 일어나다 <3>
경찰총감 이경주가 부장관 최봉주를 노려보았다.
이경주가 연상인데다 북한군 시절 계급도 위였지만 이곳에서는 최봉주가 상급자가 되었다.
“부장관 동지, 이런 식으로 밀리면 신의주는 몽땅 남조선 차지가 될 거요. 양보하면 안 됩니다.”
부장관실에는 둘뿐이었지만 이경주가 목소리를 낮췄다. 오후 5시 반, 이경주가 말을 이었다.
“노동조합은 남조선에도 다 있는 것 아니오?
교직원은 물론이고 공무원까지 노동조합을 만들어놓고 있단 말이오.
그런데 신의주에서는 안 된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오?”
“글쎄, 총감 동무.”
입맛을 다신 최봉주가 지그시 이경주를 보았다.
“노동조합 이야기를 꺼냈다면 신의주 자치령은 물론이고 특구도 서 장관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걸 아셔야 해요.”
“그럼 이대로 두잔 말입니까?”
이경주의 시선을 받은 최봉주가 외면했다.
이경주의 배후에는 노동당 선전선동부가 있다.
이 부서의 본래 임무는 전당과 모든 사회를 김일성주의로 만드는 것이니
북한에서 가장 강력한 당 기관인 것이다. 이경주가 말을 이었다.
“자치령이 발족된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각 단위 사업장에 배치된 북조선 근로자가 벌써 15만이오.
이 동무들을 이대로 놔두었다가는 장악하기 힘듭니다.
먼저 비밀 조직이라도 만들어야 된단 말입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각 사업장의 고용원 임면권을 수정해야 됩니다.
이것은 우리 측 입법위원이 한 달이면 통과시킬 수가 있어요.”
최봉주가 다시 외면했다.
그것이 되더라도 장관이 거부해 버리면 끝장이다.
“어쨌든 각 사업장에 조직 간부들은 투입시켜 놓았으니까
안팎에서 손발을 맞춰줘야 한단 말입니다.”
그때 최봉주가 물었다.
“밀입국자 10명을 시범적으로 총살시키자고 했습니까?”
“그랬습니다. 어제 장관께 건의했더니 잠깐 보류시키자고 합니다.”
“앞으로 그런 제안은 먼저 저하고 상의해 주시지요.”
그 순간 이경주가 눈을 치켜떴다.
“부장관, 그것도 내가 즉흥적으로 꺼낸 말이 아니오.
당과 협의하고 나서 장관에게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최봉주를 무시했다는 말이나 같다.
쓴웃음을 지은 최봉주가 이경주를 보았다.
“총감 동무, 나는 신의주의 공식 북조선 대표이고 내 보고선은 내각 부총리를 거쳐
지도자 동지께 직보됩니다. 총장 동무의 보고선은 어떻게 되시오?”
“그것은….”
말은 그친 이경주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최봉주가 정색했다.
“총감 동무의 보고가 선전선동부를 거쳐 지도자 동지께 전달되는지 확인이 됩니까?”
이경주가 어깨를 부풀린 채 숨만 가쁘게 쉬었으므로 최봉주는 입맛을 다셨다.
“과욕은 화근을 일으킵니다.
나는 지도자 동지의 원대한 이상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경주가 최봉주의 옆모습을 한동안 응시하더니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알겠습니다. 부장관 동지.”
“앞으로 자주 들러 주시지요.”
따라 일어선 최봉주가 이경주에게 손을 내밀면서 덕담을 했다.
“우린 모두 당과 지도자 동지께 충성을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454) 22장 내분이 일어나다 <4>
“한 달에 약 3000만 불이 북한으로 송금되고 신의주 주변의 북한 지역이
생필품 생산지역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행정부 경제부장 오영복이 보고했다.
“주변 북한 지역으로부터 수입되는 석탄에서부터 농작물, 수산물에 이르는
각종 수입 금액이 월 1000만 불, 계획보다 훨씬 빨리 물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서동수가 머리만 끄덕였다.
오후 2시 반, 장관 집무실에서 서동수는 오영복으로부터 월간 경제보고를 받고 있다.
배석자는 비서실장 유병선과 감찰비서관 조기택, 경찰부총감 박재성이다.
이제 신의주의 첫발은 단단하게 디뎌졌다.
6개월 만에 신의주 산업의 매출액은 월 3억 불에 이르렀다.
아직도 수백 개의 공장과 호텔, 유흥시설이 건설 중이고 건설 노동자만 6만여 명이다.
송금액 증가는 북한 노동자의 경우 ‘신의주 법’에 의하여 임금의 절반을
북한으로 송금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북한계 입법위원은 물론이고 경찰총감까지 다 포함이 된다.
이것이 신의주 6개월 만의 실적이다.
1년 후에는 2배가 될 것이고 3년 후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윽고 서동수의 시선이 감찰비서관 조기택에게 옮겨졌다.
“조 비서관, 말해 보시오.”
기다리고 있던 조기택이 허리를 펴고 서동수를 보았다.
“오늘 오후에 부정부패를 저지른 건설부 제2과장 유백상과 선정위원 4명,
그리고 뇌물을 준 성호상사 대표와 담당 이사까지 7명을 반역 혐의로 구속 수감할 예정입니다.”
부총감 박재성은 잠자코 있었지만 경제부장 오영복이 긴장했다.
그때 유병선이 말했다.
“구속시키기 전에 장관께서 각료회의에서 통보하실 것입니다.”
유병선이 말을 이었다.
“부총감께서 반역범 체포 발표를 하신 후에 경제부장께서 따로 신의주의 경제계획을
6개월 단위로 발표해 주시면 분위기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알아들은 오영복이 앞에 놓인 서류를 접었다.
어서 나가서 준비하겠다는 시늉이다.
그때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이제는 내부의 적과 싸워야 됩니다.
한국과 북한에서 해온 타성을 이곳에서는 완전히 개조해야 됩니다.”
둘러앉은 간부들을 훑어본 서동수가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이곳에서 새 한국을 만듭시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는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안다.
한국인 개개인의 능력으로 본다면 세계 제일이다.
과장이 아니다.
근래의 예만 들어도 2차대전 후의 독립국으로 선진국 대열에 든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19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20년간의 눈부신 성장이 선진국가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런 전례가 없는 것이다.
이 위대한 국민에게 다시 한번 신바람을 불러일으켜 이끄는 것이 신의주의 목표다.
회의를 마친 서동수가 혼자 소파에 기대앉아 있을 적에 탁자 위의 전화벨이 낮게 울렸다.
전화기를 들었더니 비서가 말했다.
“장관님, 장치 교수님이십니다.”
마침내 장치가 신의주에 도착한 것이다. 전화기를 귀에 댄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갈증난 사람한테 물잔이 놓여진 것 같다. 그때 장치가 말했다.
“여보세요?”
한국어다. 요즘 장치는 한국어를 배워서 제법 의사 소통이 된다.
“응, 지금 어디야?”
“공항에서 관사로 가고 있어요.”
장치의 목소리에 애교가 넘쳐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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