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 저런인생(11)
(1387) 저런인생-21
최갑중과 임학진이 방을 나갔을때 조철봉은 소파에 등을 붙이고 두 다리를 길게 뻗었다.
한랜드의 임차는 성공한 사업으로 판명되었다.
관리 책임자인 김재석은 내년부터 한랜드는 수익을 올릴 것이며 5년 이내에 투자비용
전액을 뽑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카자흐스탄뿐만 아니라 미국과 남미에서도 교민들의 이주 신청이 오고 있는 것이다.
한랜드의 관리 책임자이며 한랜드 경영을 위해 설립된 ㈜한랜드 기조실장인 김재석이
조철봉의 방에 들어섰을 때는 오후 3시쯤이었다.
“사장님, 카자흐스탄 이주민 건은 잘 처리하셨습니다.”
김재석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오후 6시에 베트남으로 가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정색한 김재석이 조철봉을 보았다.
“내일 북한 부수상이 방문할 예정인데 만나셔야 될 것 같은데요.”
“아니.”
머리를 저은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대외관계도 김 상무가 맡아서 처리하세요. 직책도 그렇게 만드시고.”
“하지만 사장님이….”
“난 내 분수를 압니다.”
이제는 조철봉이 정색하고 재석을 보았다.
“난 임기응변이 빠르고 감을 잘 잡지요. 육감이 좋다는 말입니다.”
조철봉이 손가락 두개로 뭔가를 집어내는 시늉을 해보였다.
“쉽게 표현하면 소매치기하고 비슷한 감입니다.
그래서 잔재주는 있을지 모르지만 큰일 앞에서는 당황하고 어색해질 때가 많습니다.”
“사장님….”
이제는 재석이 당황한 표정이 되어서 입을 열었을 때 조철봉이 손을 들어 막고선 말을 이었다.
“물론 모든 책임은 내가 집니다. 그러니까 함께 부담을 나눠 갖도록 합시다.”
내일 찾아오는 북한 부수상은 탈북자의 한랜드 수용에 대해서 경고를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한랜드는 러시아령이었고 러시아 당국도 한랜드의 방침을 암묵적으로 지지했다.
탈북자의 수는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었고 러시아의 고려인, 중국의 조선족, 한국 이주민,
러시아 원주민과 함께 한랜드의 5대 집단이 될 것이었다.
6시에 한랜드의 뉴서울 공항을 출발한 조철봉이 하바로프스크, 방콕을 거쳐
호찌민시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오후 3시쯤이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하룻밤을 보냈기 때문이다.
공항에는 현지법인 사장인 유경수가 마중을 나와 있었는데
그 옆에는 버스 5백여대를 소유한 국일교통의 상무가 된 마키가 서 있었다.
마키는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한국어가 능통했다.
그들이 차에 올랐을때 조철봉이 앞좌석에 앉은 마키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건강하신가?”
“예, 회복하셨습니다.”
마키가 얼른 대답했는데 손으로 머리까지 긁는 것이 꼭 한국인 같았다.
마키의 아버지 박씨는 한국으로 떠난 후에 연락도 하지 않는 바람에 어머니는
재가해서 힘들게 살았다.
박씨는 실직하고 자식들한테까지 버림을 받아서 폐인처럼 지내다가 마키를 만난 것이다.
물론 조철봉이 통역 마키의 사정을 듣고 그렇게 만들어준 것이다.
그 후에 마키는 조철봉이 세운 국일교통에 입사했고 박씨도 베트남으로 데려와 새생활을 시작했다.
마키의 어머니도 재혼한 후에 다시 미망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조철봉이 넌지시 물었다.
옆에 유경수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집안에 별고 없지?”
(1388) 저런인생-22
“예, 별일 없습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마키가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마키의 씨다른 동생이며 지금은 대형 슈퍼마켓의 경영자가 되어 있는 수엔에 대해 물은 것이다.
수엔은 마키의 어머니가 베트남인과 재혼해서 낳은 딸이었으므로 한국과 인연이 없었지만
한국을 동경했다.
그러다가 조철봉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차가 호텔 앞에서 멈췄을 때 조철봉이 유경수에게 말했다.
“난 쉬려고 온 것이니까 공식 스케줄 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하면 내가 연락을 하지요.”
“예, 알겠습니다.”
그러나 유경수는 조철봉의 방 앞까지 따라와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방 안에 들어선 조철봉이 짐을 정리하는 마키를 바라보며 웃었다.
“마키, 오랜만이구나.”
“예, 일년 만에 오셨습니다.”
조철봉의 가방을 정리하면서 마키가 대답했다.
전문경영인 유경수에게 일임한 베트남 사업은 연평균 2배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었다.
조철봉은 일을 맡기면 이래라저래라 하는 성품이 아니다.
따라서 베트남에 자주 올 일이 없었던 것이다.
“수엔의 사업도 잘 된다니 다행이야.”
조철봉이 다시 말하자 마키가 허리를 펴더니 정색했다.
“예, 사장님.”
“남편은 뭐하는 사람이라고 했지?”
그러자 마키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마키가 침을 삼켰다.
수엔은 반년 전에 결혼을 한 것이다.
서울에 있던 조철봉은 결혼하겠다는 수엔의 전화를 받고 진심으로 축하를 해 주었다.
결혼 선물로 호숫가의 별장과 자동차, 거기에다 슈퍼마켓 소유권도 모두 수엔 앞으로
이전해주었던 것이다.
그때 마키가 입을 열었다.
“저, 수엔은 지난달에 이혼했습니다.”
마키가 시선을 내리더니 더듬거렸다.
“저, 실은 결혼식만 올려 놓고 별거한 것이나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어머니 때문이죠.”
머리를 든 마키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어머니는 수엔이 당신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생각하신 겁니다.”
“기다리는 세월이 얼마나 길고 잔인한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저희들한테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으니까요.”
“… ….”
“그래서 그 친구하고 결혼을 서두르게 하셨지만 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것 같던
수엔이 결혼식을 하자마자 반발을 한 것입니다.”
“…….”
“그런데 웬일인지 어머니도 그런 수엔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다 나 때문인데.”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길게 숨을 뱉었다.
“내가 무책임했고 무절제했기 때문이야.”
“아닙니다.”
눈을 크게 뜬 마키가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사장님은 저희 가족의 은인이십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물론 저나 수엔까지도.”
“아니다.”
“아닙니다, 사장님.”
이제 마키는 필사적인 표정이 되어서 한걸음 다가서기까지 했다.
“어머니도 사장님을 원망하시지 않습니다.
그냥 수엔의 기다림을 안타깝게 여기셨다가….”
말을 멈췄던 마키가 이윽고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냥 운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표현하신 것을 따라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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