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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부여헌(扶餘軒) (23)

오늘의 쉼터 2014. 8. 27. 09:35

제16장 부여헌(扶餘軒) (23)

 

 

 

“자네 생각이 과연 거기에밖에 미치지 못하는가?”

변품은 허리를 곧추세우며 두 눈을 부릅떴다.

“지금 나라의 근본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은 백반 한 사람의 탓만은 아니야. 어찌 한 사람의 신하가 들어 만조의 백관들을 일제히 허깨비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대부분의 신하들이 일신의 영달과 족친의 평안함을 도모하느라 나라에 옳은 일과 그른 일을 보고도 본래의 소임을 다하지 않기 때문일세! 간신에게는 간신의 길이 있고 양신에게는 양신의 길이 따로 있는 법이야. 황작과 홍곡이 같은 높이로 하늘을 날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그는 잠시 말허리를 끊었다가 타이르는 듯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자네가 오상과 오계를 제대로 배웠다면 그 가운데 으뜸은 충(忠)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네. 가잠성을 잃은 것이 어찌 가벼운 일이며, 찬덕의 원수를 갚는 일이 또 어찌 자네 혼자만의 사사로운 일이겠는가? 외주의 군사를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은 혹 불충이 있을까 경계하여 만든 법규일 뿐이네. 더욱이 이번에 3주의 군주를 교체할 때 전날 가잠성을 구원하지 못한 것을 핑계로 삼았으니 이제 군사를 내어 그곳을 얻는다면 제아무리 백반이라 할지언정 달리 할말이 없을 것일세. 비록 어린 자식놈 하나를 금성에 상수로 두고 왔지만 그런 일에 연연해할 내가 아니네. 나라에 덕이 되는 일을 행하다가 죽는 것은 신하된 자의 자랑이거늘 대체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모든 것은 하늘의 뜻과 장차의 시운에 맡길 따름이야. 자네는 더 이상 가잠성의 일을 자네 혼자만의 일로 말하지 말게!”

해론은 변품의 절개와 기상에 감동하여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신라가 아직 망하지 않은 것은 바로 나리와 같은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 어찌 가잠성의 일을 함부로 논하오리까. 오직 나리의 뜻에 따를 것이니 하명을 하십시오.”

가잠성 회복에 뜻을 합친 두 사람은 그로부터 제법 오랫동안 무릎을 맞대고 뒷일을 숙의한 끝에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헤어졌다.

해론을 보내놓고 변품은 이튿날 국원 소경으로 장춘을 찾아가서 가잠성의 일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장춘은 무예가 뛰어나고 용맹스러운 사람으로 상대등 수을부가 극찬하던 인물인데, 수을부가 죽고 대궐에서 밀려나 소경의 정사와 방비를 맡고 있었다. 그는 한산주의 군사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는 변품의 청을 받자 이를 쾌히 수락하면서,

“윤허를 받지 않고 군사를 낸다면 십중팔구 사후의 문책을 면키 어려울 게 아니오? 가잠성을 얻어도 찬사보다는 책망이 뒤따를 바이지만, 만일 실패를 한다면 패가망신은 고사하고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외다.”

하고서,

“그런데 공은 백제를 절대로 호락호락 보지 마시오. 백제왕 부여장은 전조의 왕들과는 그 격이 다른 인물이오.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라도 그가 우리 신라에 숨어들어와 허무맹랑한 노래 하나를 지어 퍼뜨려서 선화 공주를 데려간 것만 봐도 얼마나 비상하고 책모가 뛰어난 자인가는 쉽게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오? 백제는 작년의 백제가 아니고 일이십 년 전의 백제는 더욱더 아니외다. 이곳에 있다 보면 백제의 융성한 국운을 피부로 느낄 기회가 많을 것이오. 하니 가잠성을 칠 때는 나도 군사를 내어 함께 돕겠소. 그것이 가잠성을 찾는 데도 보탬이 될 것이지만, 만일 뜻을 이루지 못했을 적에도 공이 혼자서 감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오. 설마하니 조정에서 우리 두 사람을 모두 징벌하기야 하겠소?”

하고 제안하였다. 변품으로선 실로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었다. 그는 장춘의 깊은 배려에 거듭 고마움과 경의를 표하고 한산주로 돌아왔다.

그리고 휘하의 군사들을 훈련시키며 해론에게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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