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어디로 가나

15. 아 빠

오늘의 쉼터 2014. 8. 26. 13:03

15. 아 빠
 
   미란이 핏덩이를 두고 간 강희의 인생은 그 날로 어두운 그림자가 떠날 날이 없는

고통과 죽음 보다 더한 삶이 이어졌다.
  그래도 세월은 흘러 유진이 어느새 중학 1학년이 되어 있었다.
   그도 이제 조금은 철이 들어서인지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따뜻한 진지 한 끼라도

지어 드리고 싶어 이른 새벽에 부엌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벌써 일어 나셨는 지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살을 씻고 밥을 지었다.
   그 날은 마침 개교기념 일이라 학교가 쉬기 때문에 전날 밤 아버지 몰래 시장에 가서

조기 한 마리와 두부 한 모를 사두었기 때문에 매운탕을 끓일까 하다가

무엇을 어떻게 넣어야 할지 몰라 조기는 후라이팬에 굽고 두부는 파를 쓸어 넣고

먹다 남은 김치로 된장 찌개를 끓였다.
   유진은 상을 들고 아버지 방으로 들어 갔다.
   " 아빠, 진지 드세요."
   아버지는 깊이 잠이 들었는 지 원고 뭉치가 쌓인 낡은 책상에 업드려 꼼작도 하지 않았다.
   " 아빠 진지 드세요.네."
   그래도 깨어나지 않자 유진은 밥상을 내려두고 아버지의 어깨를 흔들었다.
   " 아빠 . 아빠 !  왜 이러세요 ?."
   아버지의 손에 잡혀 있던 만연필이 방바닥으로 떨어 졌다.

손을 쓸 사이도 없이 아버지는 힘없이 책상 옆으로 꼬구라 졌다.
   일터에서 돌아 와 밤낮없이 쓰던 소설도 끝을 맺지 못한 채 아버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나 셨다.
   아빠는 죽음을 애견하고 계셨던지 비망록에는 이런 시도 올라 있었다.
 
 
     어 어이 여기가 어딘가
     수 많은 날들에 떠밀려
     나는 어느 새
     요당강 둑 위에 서 있다
 
     강 건너 저 편엔
     나 먼저 떠난 친구 서넛이
     초점 잃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 보고 있다
     그 옆엔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또한 한결 같이 무표정한 얼굴들이다
 
     어 어이 거기 재미가 어떤가
      왜 대답이 없나
     오라는 손짓도 없는 데
     어느새
     내 뒤에선 바람이 부네
 
     
   " 아빠. 우리 아빠 ! 전 이제 어떡하면 좋아요 ?

엄마 없이 자라면서 그 동안 아빠에게 저지른 불효를 어떻게 갚으러고 이렇게 갑자기 떠나셨나요.

아빠 정말 죄송해요. 생각하면 할 수로 아빠를 괴롭히기만 한 제 자신이 죽도록 미워져요.
   그 때는 엄마와 헤어진 아빠가 원망스럽고 미웠어요.

그래서 아빠의 말을 듣지 않고 못되게 굴었어요.
   아빠,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요.

제 아랫도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을 때 일터에서 돌아오신 아빠는

 병원에 데려갈 생각은 하지 않고 얼른 밖으로 뛰어나가 약솜과 생리대를 사 오셨지요.
   그래서 약솜으로 피를 딱아 주며
   " 얘. 네가 어느새 처녀가 되어 가는 구나 !

여자 아이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한 달에 한 번씩 거기서 피가 나오는 법이란다."
   그러면서 부끄러워하는 저에게 손수 생리대를 채워 주셨지요.
  " 아빠. 병원에 안 가도 돼 ?."
  " 그래. 한 삼 일만 참으면 저절로 났는 단다."
   " 치. 돈이 아까우면서."
   그 날 밤 아빠는 성 교육에 대한 책 한 권과 동화책 세 권을 내밀면서
   " 잘 읽어 보거라. 책속에는 실재 체험하지 못한 지혜가 있단다."
   아빠 지금 생각하니 제가 또 아빠를 슬프게 한 일이 생각나는 군요.
   어느 토요일 학교에서 돌아 오다가 문득 아빠의 일터에 가 보고 싶어서

거제리에 있는 용달차 주차장으로 찾아 갔을 때 아빠는 저를 중국집으로 데려 갔어요.

근데 아빠는 달랑 짜장면 한 그릇만 시켰어요.
  " 어서 먹어."
   " 아빠는 ?."
   " 난 조금 전에 먹었단다."
    그 때 겨우 12시가 넘었는 데, 아빠가 그새 점심을 먹었을리 만무한데, 저는 왈칵 눈물이 났어요.
   " 왜  짜장면이 싫으냐 ?."
   저는 고개를 흔들었어요.
   " 그럼 어서 먹어 곧 일을 나가야 해."
   아빠. 그때처럼 가난이 원망스러울 때가 없었어요."
   그 후 어느 날 학교를 파하고 교문을 나서는 데,

저 멀리 전신주 아래에서 어떤 아주머니 한분이 양산을 뒤로 재치고

이편으로 걸어오면서 저를 빤히 바라 보았어요.
   한 눈에 봐도 그 분이 저의 엄마라는 직감이 왔어요.
   " 얘, 혹시 네 아빠 성함이 이강희씨 아니니 ?."
   " 아닌데요."
   저는 발걸음을 획 돌렸어요.

짙은 화장과 옷차림이 너무 화려한데 분한 마음까지 들었어요.
   " 얘야 잠깐만...."
   그래도 저는 뒤돌아 보지도 않고 달렸어요.
   몇 일 후 다시 그 아주머니가 나타 났어요.
   " 얘야 잠깐만 내 말 좀 들어 보거라. 네 이름이 뭐니 ?."
   " 이유진인데요."
   " 이유진 ! ...  유진 ! 네 이름이 참 좋구나 !."
   아주머니는 저를 겨안을 듯이 팔을 벌렸어요. 눈물을 글성이면서요.
   제가 한 발자욱 뒤로 물러서자
   " 얘 잠간만. 유진아 이거...."
   " 그게 뭔데요 ?."
   " 네 옷이란다."
   아주머니는 제법 큰 백화점 봉투를 제 앞으로 내밀었어요.
   " 아줌마가 왜 저한테 옷을 주세요 ?  전 싫어요."
   저는 또 내달렸어요.
   무슨 사연이 있어서 헤어진지는 몰라도 그때부터 가난한 아빠가 더 미워졌어요.

화려한 엄마의 자태도 밉고요.
   아빠. 지금 또 생각 나는 게 있어요.

제가 유치원에 다녔을 대 아빠의 용달차를 타고 집으로 오다,

중도에서 차를 세우는 사람이 있어서 그 때 아빠는 저에게 과자 값을 쥐어 주면서
   " 넌 여기서 내려 집에 가 있어라. 아빠는 짐 한 바리 실어다 주고 올께.

저 문방구 옆으로 가면 우리 집인 걸 알지 ?,"
   " 네."
   저는 차에서 내려 집으로 가다가 생각 나는 게 있어서 문방구로 들어 갔어요.

언젠가 색종이를 사려 갔다가 벽에 걸어 놓은 가지각색의 예쁜 머리띠를 보았거든요.

그 때는 돈이 없어서 사지 못했지만 정말 갖고 싶었어요.
   " 아저씨 이거 주세요."
   " 그래. 예쁜 걸 골랐구나 ! 돈은 ?."
   " 여기 있어요."
   저는 아빠가 주고 간 돈을 다 주었어요.
   " 이게 얼만데 ?...얘 이거 갖고는 안 돼. 돈이 더 있어야 돼."
   그래도 제가 머리띠를 놓지 않고 만지작거리며 한참 그렇게 서 있으니

주인 아저씨도 불쌍하고 안 돼 보였든지
   " 그럼 갖고 가거라. 다음에 필요한게 있으면 사러오고."
  " 네 고맙습니다. 아저씨 !."
   저는 빤짝이가 수 놓여진 머리띠를 하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했어요.

그런데 그때 옆 골목에서 초등학교 언니 둘이 뛰어 나오면서 저를 불러 세웠어요. 
   " 얘 꼬마야. 그 머리띠 참 예쁘구나 ! 내 한 번 써보고 줄께."
   그러면서 강제로 제 머리띠를 뺐어 쓰고 도망을 갔어요.
   저는 악을 쓰고 울면서 그 언니들을 쫓아 가다가 길을 앓었어요.
   어디를 얼마나 헤매었는 지 어느새 거리엔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 아빠. 아빠...엄마."
   저는 그 때 아빠가 엄마는 하늘 나라로 가셨다고 하였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엄마가 저를 아빠 곁으로 데려다 달라고 빌면서 자꾸자꾸 걸었어요.
   " 아빠. 엄마."
   이제 흐느끼는 울음소리도 간신히 목구멍으로 넘어 왔어요.
   " 얘야. 길을 잃었니 ? 너의 집이 어디니 ?."
   지나가던 젊은 아주머니 한 분이 저를 길 옆으로 세우면서 물었어요.
   " 아줌마 우리 아빠한테 좀 데려다 주세요. 네."
  " 네 아빠가 어디 계시니 ?."
   " 몰라요."
   " 모른다고 ?  그럼 네 집은 어디야 ?."
   " 문방구 옆 골목인데요."
   " 어느 문방구 ?."
   저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어요.
   " 참 딱하기도 하구나 !."
   아주머니는 손수건으로 저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 그래. 울지 말거라. 내 꼭 너의 집을 찾아 주마. 그런데 너의 집 전화 번호는 ?."
   " 전화 없는 데요."
   " 그래. 그럼 네가 살고 있는 동네는 ?."
   " 온천장인데요."
   " 그래. 여기가 온천장은 온천장인데....혹시 너 학원이나 유치원 같은 데 안 다니니 ?."
   " 유치원에 다녀요."
   " 응 그래. 어느 유치원인데 ?."
   " 새싹 유치원요."
   " 그래. 그럼 됐다."
   아주머니는 저를 데리고 한참 걸어서 새싹 유치원을 찾아 갔어요.

그러나 어두운 밤이라서 유치원은 문이 닫힌 채 불이 꺼져 있었어요.
   아무리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뚜드려도 인기척이 앖자 아주머니는
   " 얘야. 오늘은 안 되겠다. 내일 날이 밝거든 다시 오자."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저를 데리고 버스에 올라 한참 가서 내렸어요.
   " 얘야 다리가 많이 아프겠다. 내 등에 업히렴. 비탈 길이라 놔서..."
  저는 아주머니의 등에 업혀 좁은 골목 길을 오르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어요.
   " 얘야 밥을 먹고 자거라. 얼마나 배가 고팠겠니 !."
   어깨를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 났어요.
   " 아빠. 아빠....."
   " 응 그래 아직 잠이 덜 깨었나 보구나 ! 울지 말고 이리로 내려 와서 앉아라."
  형광 등불이 희미하게 비치는 창가 윗목에는 작은 텔레비전 옆으로

유아원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의 사진틀이 놓여 있었어요.
   " 얘야, 얼른 밥을 먹어라. 얼마나 배가 고팠겠니 !."
   저를 눕혀두고 밥을 지었는 지 아주머니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과 여러 가지 반찬이 담긴 작은 밥상을 제 앞으로 내밀었어요.

 거기에는 잘게 설은 김도 있었구요.
   아주머니가 쥐어 주는 숫갈을 들고 눈물을 글성이자
   " 내가 좀 떠먹여 주련 ?."
   저는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 자 이것두."
   아주머니는 젓가락으로 뼈을 바른 고기를 손수 저의 숫갈 위에 얹어 주기도 했어요,
   그 날 밤 제가 잠을 못 이루자 아주머니는 제 가슴을 토닥거리며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 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그 노래 말고도 난 생 처음 들어 보는 자장가를 수없이 불러 주었어요.
   얼마나 밤이 깊었는 지 제가 꾼을 꾸다 살푼 잠이 깨었을 때 아주머니는

 텔레비전 옆에 세워져 있는 아이의 사진틀을 쓰다듬으면서
 
 
     아가야 내 아가야 어디로 가니
     구름 타고 바람따라 멀리 저 멀리
     우는 엄마 여기두고 너만 가느냐
 
 
   가늘게 노래를 부르면서 울고 있었어요.
   이튿 날 유치원 차를 타고 우리 집으로 왔을 때 아빠는 일터에도 나가지 않은 채

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이 울고 있었어요.
   " 아빠."
   " 응, 유진. 유진아 ! 어디 갔다...?"
   아빠는 저를 껴안고 한참 동안 어깨를 들멱였어요.
   " 이 아이. 아빠 되세요 ?."
   아빠가 저를 내려 놓자 아주머니가 물었어요."
   " 아 예 !...근데, 당신은 ?."
   " 강희. 강희 아저씨 아니세요 ?."
   " 오. 미스 정 !."
   아주머니는 아빠가 자가용 운전을 하였을 때 사장님의 여비서라고 하였습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아주머니는 사장님의 씨받이였다고 했습니다.
   " 아빠 이 아줌마가 내 머리띠 사주셨다."
   " 응 그래. 참 예쁘구나 !."
   그 후 그 아주머니는 종종 우리 집으로 놀러 오셨고,

그때마다 맛 있는 과자와 저의 레이스가 달린, 삼 단으로 된 원피스도 사주셨어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 아주머니가 우리 집으로 자주 놀러 오는 바람에

어릴 때부터 저를 키워 주셨던 유모가 집을 나가셨고,

그때부터 아빠가 손수 밥을 지었어요.
   유모가 집을 나가자 저는 그 날부터 아빠 방에서 함께 잤지요.
   " 유진아. 얼른 자거라. 그래야 내일 또 유치원에 가지."
   아빠는 원고를 쓰다 말고 제 곁에 누워 저의 가슴을 토닥거리며 잠을 재워주셨어요.
   " 아빠 자장가 불러 줘."
   " 뭐, 자장가 ?."
   " 응. 자장가 !."
   " 다 큰 아이가 웬 자장가는 ?."
   " 아빠 회사 여비서였다는 그 아줌마 있잖아."
   " 응 그래. 정양 말이냐 ?."
   " 그 아줌마가 엄마처럼 제게 '푸른하늘 은하수'라는 자장가를 불어 주셨어."
   " 응, 그래."
   " 아빠 그 노래 몰라 ?."
   " 알지.
   " 그럼 불러 줘. 응."
   " 그래."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 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몇 번이나 불러줘도 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어요.
   " 아빠 그거 말고 ' 아가야 내 아가야 어디로 가니' 하는 노래를 불러 줘."
   " 아가야 내 아가야.....그건 모르는 노랜데 ?."
   " 그럼 그 아줌마한테 물어 봐."
   " 그래. 오늘은 이만 자자. 내 다음에 물어서 불러 줄께."
 
   질곡을 넘다 넘다 지쳐 쓰러진 강희의 장례는 그의 친구 만길의 설두로 외롭고 슬슬하게 끝이 났다.
   화장을 하여 더 넓은 바다에 뼈골을 뿌려주자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고 만길은 집 떠난

그의 아내나 동생이 찾아 와도 그의 흔적이라도 볼 수 있게 자기의 돈으로 공원 묘지를 사서

무덤을 만들었다.

그것도 그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가까운 팔송 공원 묘지를 택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자 유진은 아버지가 쌓아 둔 원고를 정리하며
   " 아빠. 제가 아빠의 뒤를 이어 탈고를 하겠어요. 제게 힘을 주세요, 네 아빠."
   유진은 그 길로 학교도 가지 않은 채 밤 낮 없이 글을 썼다. 

글을 쓰다 지쳐 잠이 들면 꿈 속에서 스토리가 전계되기도 했다.
   ( 이러다 나도 아빠처럼 죽는 것이 아닐까 ?.)
   의사 선생님은 아빠가 영양 실조에다 과로로 돌아 가셨다고 했다.
   아빠는 유모 아주머니가 집을 떠난 후 먹는 것이 말이 아니었다.

가끔가다 정양이 가져다 두고 간 밑 반찬도 딸을 먹이려고 남겨 두었고,

자기는 거의 시장에서 사 온 김치 하나로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래서 유모 아주머니가 떠난 후 눈에 보이게 수척해 갔고 오직 원고 쓰기에만 몰두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아기자기 하지 않았던 부녀간에는 더욱더 말이 없어지고, 

내성적이라 친구와 잘 어울리지도 못했던 유진도 학교가 파하면

곧 바로 집으로 돌아 와 방구석에 틀어 밖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한 그를 아버지는 제발 밖에 나가 친구들도 사귀고 뛰어 놀아라고 했다.
   " 뭐, 돈 ?...친구들과 노는 데도 돈이 있어야 하니 ?."
   유진은 친구들이 맛 있는 과자도 사먹고 만화방에 들락거리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방구석에 들어 앉아 할일 없이 아빠가 사 준 동화책과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의 책장에 꽂혀 있는 각종 문학 전집을 모조리 읽어 치웠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원고를 메워 가던 어느 날 오후 늦게 단임선생님이

짝지 진숙을 앞세워 집으로 찾아 왔다.
    " 유진아. 유진아. 집에 있니 ?."
   그래도 대답이 없자 선생님이 미닺이 문을 열었다.
   " 유진아, 자니 ?."
   친구 진숙이 방에 들어와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유진은 눈을 비비며 일어 나 앉았다.
   " 어머 ! 진숙이 아니니 ?  네가 어떻게....?
   " 얘 선생님도 오셨다. 너네 집을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먹었다고."
   평소에 짝지인 진숙과는 집 근방에까지 왔어도 초라한 집을 보여주기가 싫어서

언제나 문방구 근처에서 쫓다 싶이 보냈던 것이다.
   " 어머 ! 선생님 죄송해요. 안으로 들어 오세요. 방이 너무 누추해서...."
   유진은 방안을 두리번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 그래 너도 안거라. 네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구나.

정말 미안하게 되었다.
   " 아니예요. 너무 갑자기 당한 일이라 경황이 없어서 미쳐 연락을 못 드렸어요."
   " 그래 얼마나 슬프겠냐 ! 몸도 많이 지쳤구나 !."
   " 아니예요. 원고를 쓰느라고 몇 일 잠을 못잤더니 잠시 깜박 했나 봐요."
   " 뭐. 원고.....?."
   " 예. 아빠가 몇 년 전부터 써오던 소설인데 채 끝내지 못하고 돌아 가셔서...."
   " 그래. 그걸 네가 탈고 하겠다고 ?."
   선새님은 유진의 등을 토닥이던 손으로 와락 껴안았다.
   " 그래 장하다. 네 아빠의 소설이 출간 되도록 내 힘써 주마."
   유진의 단임은 국어선생이었고 시인이었다.
   " 네 얼굴이 많이 생했구나 ! 우리 나가서 저녁이라도 먹자."
   선생님은 유진과 짝지 진숙을 데리고 가까운 중국 집으로 갔다.
   " 뭐 먹을래 ?."
   " 짜장면요 ."
   얼른 진숙이 빵긋 웃으며 말했다.
   " 너는 ?."
   " 저두요."
   유진은 가늘게 대답했다.
   선생님는 심부름하는 중국집 아이를 불러 짜장면 세 그릇과 꾼만두 두 쟁반을 시켰다.
   " 자 먹자. 유진이 배 고프겠다.."
   " 저는 요 ?."
   진숙은 작난스럽게 토라지며 말했다.
   " 응 그래 너도...."
   유진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짜장면과 난생 처음 보는 노릿노릿하게 꾸어진 만두 그릇을 보니

울컥 눈물이 났다.
   ( 아빠는 짜장면 한 그릇도 겨우....불쌍한 우리 아빠 !.)
   " 왜 ? 아직 입맛이 안 돌아 온 모양이구나 ! 그럼 이 단무지부터 먼저 먹고."
   선생님은 나무 젓가락으로 단무지 한 조각을 집어 유진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 보는 바나나 같이 생긴 꾼만두도 집어 주셨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표현 할 수 없이 맛이 있었다.
   식사가 끝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 온 선생님은 아버지가 남겨둔 원고 뭉치와

그 뒤를 이어 유진이 써 오던 원고를 보자기에 싸서 가지고 가셨다.
   " 그래 아무 염려말고 네 원고가 끝나거든 선생님에게  가져 오너라.

그 동안선생님은 네 아버지의 원고를 검토해 보고 출판사와 의논해 보겠다."
   삼 일 후 유진은 마자 쓴 원고를 들고 학교로 갔다.
   교무실에 들어가니 모든 선생님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 얘가 그 소설의....?"
   " 아 예. 아버지 보다 글 솜씨가....! "
   "허허 우리학교에 훌륭한 이제가 났군 !."
   선생님들은 우루루 몰려와서 유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을 해 주셨다.
   그로부터 한 달 후 < 저산 저 넘어 >라는 소설이 출간 되었다.
   책이 나오자 어떻게 알았는 지 신문사회면에 대서 특필이 되었고

여러 언론사와 잡지사에서도 인터뷰를 해 갔다.
   책은 금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출판사에서는 유진에게 대학까지 장학금을 대어 주겠다고 하였고.

그가 다니는 중학에서도 졸업때까지 학비를 면제해 주겠다고 했다.
 
   소영은 강희와 헤어진 후 끝내 배신의 슬픔을 달래지 못해 부모님을 따라 케나다로 이민을 갔다.

거기서 대학을 나와 그곳 현지에서 중학교 교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 언니 이 책 한 번 읽어 봐. 한국에 가니까 이 책 때문에 야단이더라. 야단 !."
   집안 일로 고국에 갔다 온 동료교사 P양이 책 한 권을 내밀었다.

그렇지 않아도 늘 고국의 소식이 그리웠던 소영은 얼른 책을 받아 들었다.
   " 어머 !."
   책 아래 부분에 적혀 있는 이강희라는 저자의 이름이 눈에 확 들어왔다.
   ( 그럼.내 남편 그이가 ?.)
   소영은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그녀는 책 표지 안 쪽에 붙어 있는 남편의 사진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가슴에 품었다.
   이역만리에 와 있어도,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아직 그녀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고

지금은 오히려 못견디게 그리워지기 까지 했다.
   소영은 그 길로 집으로 달려가서 간단하게 짐을 챙겨 공항으로 나갔다.
   그녀는 기내에서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고 또 닦으면서 책을 읽었다.  

모두가 자기들이 살아 온 이야기 들이였다.
   남편은 그를 떠나게 한 불륜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같은 회사의 여직원이었던 정양의 갖은 유흑에 어쩔 수 없이 넘어 가

불륜을 저지르게 되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내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

남의 화장실에 들어가서 잠시 소변을 본 것처럼

조금도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다는 대목에 가서,

남자라는 동물의 본성이 아리송 하기만 했다.

자기가 너무 과잉 반응을 한 것이 아닌가도 싶었다.
   그러나 그도 때로는 그러한 것이 엄청난 후회를 가져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지

아빠라고 매달리는 유모의 유흑을 뿌리치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홀로 살아왔는 지 도 모른다.
   소영은 진작 그를 용서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고 마치

그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도 들었다.
   ( 불쌍한 사람 !.)
   슬픔을 글로나마 달래려고 쓰던 소설마저 끝을 내지 못하고 과로로 돌아 가셨다는,

그래서 어린 딸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원고를 마감하였다는 대목에 가서 소영은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러자 무슨 일인가 하여 스튜어디스가 놀라서 달려왔다.
   " 손님 무슨 일입니까 ? 어디가 아프세요 ?."
   모든 승객의 시선이 이리로 몰렸다.
   "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소영은 책을 덥고 눈물을 닦았다.
   " 손님 이걸 한 번 들어 보세요."
   스튜어디스가 내미는 신경 안정제를 물과 조금 마시고 나니

 마음이 조금 깔아 앉는 것 같았다.
 
   유진은 새책 한 권을 예쁘게 포장해서 가방에 넣었다.

시장에 들려 향과 과일도 몇 개 사고 작은 술도 한 병 샀다.
   버스를 타고 팔송에서 내려 한참 동안 걸어서 아빠가 묻혀 있는 시립 공원묘지로 향했다.
   그는 다른 묘지 앞에 놓여 있는 꽃다발을 보고 놀라며

다시 꽃을 파는 버스정유장으로 향하다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길 옆에는 하얀 들국화와 가지각색의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다.
   유진은 다시 발걸음을 돌려 길 옆에 피어 있는 꽃들을 예쁜 것만 골라 꺾으며 올라 갔다.
   아빠의 묘지는 거의 산꼭대기에 있었다.

아래로는 까마득히 점찍어 놓은 듯 여러 묘지들이 즐비해 있었다.
   유진은 아빠의 묘지 앞에 손수 만든 꽃다발을 내려 놓고

그 옆으로 가져 온 책과 과일을 꺼내어 나란히 한 후에 향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나서 병을 따고 종이컵에 조심스럽게 술을 부었다.
   " 아빠. 제가 왔어요. 생전에 그렇게도 아빠 마음을 상하게만 했던 아빠 딸 유진이가요 !."
   유진은 왈칵 눈물이 쏟아져 두 번 절을 한다는 것이 그대로 엎드려 일어나지 못하고

흐느끼다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 지,

그리고 또 꿈인지 생시인지 가느다란 염불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 누, 누구세요 ?."
   가사 장삼을 헐렁하게 차려 입은 여승 한 분이 자기 옆에 결가부자를 하고 염불을 하고 있었다.
   유진은 혹시 아빠의 천도를 위해 만길 아저씨가 보내신 스님이 아닌가도 생각되었으나

어쩐지 염불소리가 흐느낌처럼 들여서
   " 스님은 어디서 오셨나요 ?."
   하고, 물었다.
   " 오 잠이 깨었나 보구나 ! 얼마나 고단했으면.....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스님은 학생이 망자의 따님이냐고 물었다.
   " 네. 유진이에요."
   스님은 눈을 감고 조용히 염주만 돌리 셨다.

염주을 돌리는 손이 떨리는 가 했더니 깜은 눈고리에서 눈물 방울이 맺히기도 했다.
   그 때 저 아래에서 택시 한 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만길 아저씨의 차였다.
   유진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 났다.
   " 어머 아저씨 !."
   " 그래. 네가 벌써 와 있었구나 !."
   그때 만길 아저씨의 차에서 내려 뒤따라 오던 낯선 여인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검은 양장을 한 여인의 손에는 하얀 국화 꽃다발이 안겨져 있었다.
   " 오오 당신 ! 당신은 순영씨가 아니오 ?."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만길 아저씨가 눈을 뚱그렇게 뜨고 스님을 바라 봤다.
   " 순영아 . 나다 나. 네 오빠 친구 만길이 !."
   만길 아저씨가 껴안을 듯이 듬벼들자 스님은 한 발자욱 뒤로 물러나며 눈을 감고
   "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를, 계속하며 염주꾸러미을 열심히 돌려댔다.

떨리는 손의 염주꾸러미는 점점 속도가 빨라졌다.
   만길 아저씨는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머리를 쥐어박고 가슴을 두르리며
   " 순영아, 제발 인간으로 돌아와 다오.

죽어서 부처가 되더라도 인간인 지금,

네가 인간을 위해서 살아야지 부처가 되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그것은 마치 부처님이 자기에게 하는 소리와도 같았고,

큰 스님의 꾸중 같이 들리기도 했다.
   그 때 검은 양장을 한 여인이 들고 있던 꽃다발을 묘지 앞에 내려 놓고

두 번 절을 하고 나서
   " 아가씨 이걸 받아 주세요."
 핸드백에서 조그마한 인형을 거내어 여승 앞으로 내밀었다.
   " 어머 ! 이 인형은 ?."
   여승은 자기도 모르게 염주을 땅에 떨어 뜨리고 그 손으로 인형을 받았다.
   " 오빠가 주신 아가씨의 인형이에요."
   순영은 떨리는 두 손으로 인형을 받아 가슴에 품었다.

그러자 얼어 붙었던 온몸이 소리가 들릴 듯이 녹아 내리기 시작했다.
땅으로 떨어진 염주꾸러미는 아래로 까마득히 굴러가 형채조차 보이지 않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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