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사 미 승
" 스님, 주무시옵니까 ?."
" 왜 그러느냐 ?."
" 웬 젊은 보살님이 한사코 큰 스님을 뵙고자 하는 데요."
"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다음 날 보자고 하여라. 내 몸이 몹시 고단하구나 !."
" 그렇게 여러 번 일렀는 대도 막무가넨데요."
하루 종일 꼼짝 않고 부처님께 합장하여 있노라고 비구니가 일렀다.
" 그래 ! 할 수 없구나. 얼른 안으로 들라 일러라."
그래서 순영이 비구니를 따라 주지의 방으로 들어가니 정말 몸이 불편한지 큰 스님은 자리에 누운 채 대뜸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 네,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넘어서 왔습니다 스님."
그 말이 순영의 입에서 떨어지자 큰 스님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 그럼 너는 이미 속세를 떠나 출가를 하였단 말이냐 ?."
순영은 말없이 주지스님께 삼배를 드리고 나서
"이 외로운 중생을 불제자로 인도하여 주소서."
" 그건 안 될 말이로다. 보아하니 너는 네 자신의 번뇌를 잊고자 산사를 찾아 온 모양인데, 그로인해 수행자의 길을 걷고자 함은 당치도 않아. 그것은 참다운 구도자의 경지로도 극복할 수 있네. "
" 스님, 지금 제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안 사옵니다. 더욱이 제가 걸어 온 길이 보이지 않는 데, 어찌 돌아가라고만 하시옵니까. 원컨데 부처님의 자비로 눈 먼 이 중생이 앞으로 나아 갈 길을 열어 주서서."
" 정 너의 결심이 그러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로다. 비구니를 따라 행자의 처소로 가거라."
이래서 순영은 출가의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행자의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더욱이 불타에 뜻한바 있어 길 떠난 몸이 아니고 보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내면의 모순과 갈등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불가에서도 초기 불교의 실천 덕목을 정견에 두었는 지도 몰랐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한 각성이요, 그 각성을 통해서 자기의 변혁과 인격의 전환에 목적을 두었으며, 그럼으로 자기모순, 즉 번뇌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집착에서 벗어나야 했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집착에 있기 때문이었다.
승가에서 처음 출가한 행자에게 궂은 일을 많이 시킨다. 그 또한 그들을 부려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견디기 어려운 일을 통해 인욕하고 정진하라는 뜻에서다. 제 몸 하나 다스리지 못하여 집을 나온 사람에게 공허하고 사변적인 이론이란 사실상 무력한 것이다. 그래서 견디기 어려운 일을 통해서 번뇌하는 틈을 주지 않고 또 일을 통해서 새로운 이치를 터득하게 할 뿐 아니라, 그럼으로서 인간이 재구성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순영은 단지 고통을 주기 위하여 비생산적인 일을 시킨다는 것은 참으로 불꽤했으며 불교의 교리에 대하여 비애를 느키기까지 했다.
그가 행자로서 처음 맡은 일은 채공( 음식을 만드는 중)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절간 뒤에 있는 채소 밭을 뒤지라는 명령과 함께 광에서 꺼낸 꼭갱이 하나를 지급 받았다. 그야 말로 무른 땅에 단 한 번 찍으면 자루가 남아나지 않을 낡은 것이었다. 삼척동자가 아니라 두 척 바보가 생각해도 그것으로 얼어 붙은 땅을 파 헤친다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순영은 아예 밭에는 가보지도 않은 채 겨우내 비워진 김치독을 꺼내어 딱기 시작했다. 대 가족의 부식을 저장했던 것이라 독의 높이가 그의 키와 맞먹었다. 그런 것을 세 개째로 마지막 씻어서 옆으로 옮기려다 산그늘이 내리면서 얼어 붙은 빙판에 미끄러져 독을 안고 넘어졌다. 말할 것도 없이 엉금엉금 기어 일어나 보니 독은 두 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그 일로 순영은 대중방에 불려가서 호된 추궁을 받았다. 이럴테면 징개에 회부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행자의 돌리를 어겼으니 산문출송(사찰에서 옷을 벗고 쫓겨나는 것 )하여야 한다고 노발대발을 했고, 또 일부에서는 고의로 독을 깬 것이 아니니 자비를 배풀어 용서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는 스승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데 있었다. 그것이 비록 자신의 판단으로 불자의 가는 길이 아니라 하더라도 행자는 무조건 스승의 가르침에 순종을 해야 한다. 그런데 순영은 케케묵은 제도로 자신을 시험하려 하는 데 모욕마져 느끼고 거기에 반항이라도 하듯 시키지도 않은 엉뚱한 일을 하다 시물을 못 쓰게 만들었으니 무사할리 없었다.
" 너는 어찌하여 시키지도 않은 독을 닦으려고 하였느냐 ?."
눈을 감은 채묵묵히 염주를 돌리고만 있던 주지스님이 이윽고 눈을 뜨며 순영에게 물었다.
" 때가 일러 땅이 녹을 동안 먼저 독을 씻으려고 하였습니다."
" 그래 !."
주지승은 자리를 고쳐 앉으며
" 실수는 네 스승이 했네 ! 자네는 벌써 행자의 경지를 넘어선 것 같으이 !."
꾸중은 고사하고 큰 스님은 비구니에게 당장 순영을 삭발시켜 중이 되게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의식을 갖추어 삭발을 시작 했으며 그의 멀카락이 마지막으로 땅에 덜어질 무렵 만길이 절간 안으로 뛰어 들었다.
그렇지만 그 날 만길은 기어이 순영을 불가에서 구해 내지 못했다. 여기에서 구해 내지 못했다고 함은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의 경우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적어도 이 세상에 신이 있다고 하면 지금 쯤 이 지구상에는 악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에는 선을 배풀고도 고통속을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이것은 신이 있으면 병신이거나 믿어 보았자 별 볼일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이것을 두고 신의 추종자들은 선을 배푼자는 죽어서 극락이나 천당에 간다는 감은이설로 변명을 게을리 하지 않는 다. 그러면 또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대로, 악한자는 악한대로 부정하개 끍어 뫃은 재물로 시주를 하거나 헌납을하여 죽어서 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냐.
만길은 순영이 출가를 한 이유가 자신의 번뇌를 잊고자 함이라든가, 해탈을 하여 불행한 중생을 구하고자 함이 아니라 단지 양어머니에 대한 속죄에 있다고는 하나, 사람이 일단 믿음에 빠지면 최면술에 걸린 것처럼 헤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를 환속 시키지 못한 안타까움은 비할 길이 없었다.
그가 발신인의 주소도 이름도 없는 전보를 받고 순영을 찾으려 내원사로 달려 갔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그가 절간 아래에 택시를 버리고 숨을 헐뜩이며 경내에 뛰어 올라 갔을 때 순영의 머리카락은 마지막으로 비구니의 면도날에 짤려 당에 떨어지고 있었다.
만길은 풀썩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집을 나설 때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순영을 데려 올 자신이 있었는 데 그녀의 머리카락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그리고 또 그의 사늘한 눈길과 마주친 순간, 틀렸구나 하는 절망과 가슴을 섬뜩하게 하는 무엇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 어쩌면 사람이 저처럼 변할 수가 있을 까 ?.)
그때 그는 자기의 지론을 의심했다. 신의 조화가 아니고서야 멀정한 사람의 얼굴이 저처럼 웃음과 귀여움과 온화함은 간 곳이 없고, 돌부처처럼 싸늘한 차가움만 있을 까.
벌써 부처의 경지에 도달이라도 했단 말인가.
만길은 굳게 가젔던 마음을 하나도 행동에 옮기지 못한 채 귀신에 쫓긴 사람처럼 허둥지둥 절간을 물러났다.
어둠은 아직도
숲 속에 차지 않았는 데
돌뿌리는 어찌하여
내 발가락을 멍들게 하는 가.
뜻두고 찾아 온
이 몸은
할 말을 잃고 떠나는 데
냇물아 너는 무슨 사연이 많아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리 조잘 대느냐.
아아 세상은 왜 이다지도 뜻대로 되지 않는가. 쫓아가면 달아나고, 쫓아 오지 않으면 섭섭하고, 그래서 다시 쫓아 가면 엉뚱하게 저편에서 달아나 버리는 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인생이란 삶 자체가 영원히 행복을 추구할 수 없는 고통이란 말인가.
만길은 전보를 받아 쥐고 집을 나설 때는 정말 자신이 만만했다. 순영이 비록 삭발을 하고 중이 되었다 하더라도 기꺼이 자기를 따라 나설 줄 알았다.
그 첫째 이유로는 수많은 사찰를 두고 하필이면 자기가 살고 있는 부산과 가까운 내원사를 출가 본사로 택한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무의식중에 구원의 손길이 쉽게 뻗어올 것을 기대하였기 때문이었으리라.
둘째로는 평소에 그를 너무나 따랐고 인생의 반려자가 되어 달라고 애원하다 싶이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중이 되었다고, 비록 말은 걸어보지 않았지만 사람을 모르는 채 하다니. 그는 이제 배신이라도 당한 듯 분노마져 느꼈다.
만길은 산사를 헐씬 벗어나서야 차츰 제 정신이 돌아왔고, 그렇게 정신이 돌아오자 괘심한 생각이 더 들었다.
( 좋다. 두고 보아라, 나에게 생명이 있는 한 너를 꼭 내 것으로 만들겠다.)
만길은 복수하는 마음으로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순영을 불가에서 끌어낼 결심을 했다
그러나 인간의 뜻이 좀처럼 바라는 곳에 머물러 주지 않듯 그 후 순영은 늘 구름 저편에서 만길의 가슴을 애태우게 했고, 한 사나이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 찻잔을 내어 가도록 하여라. "
" 네, 큰 스님 ?."
연심( 순영의 법명 )은 어리둥절하여 큰 스님을 쳐다 보았다. 근엄한 얼굴로 눈을 감은 채 열심히 염주 꾸러미만 돌리고 있었다.
" 왜 그러고 있느냐. 이제는 귀까지 멀었단 말이냐 ?.'
" 네, 스님 !."
연심은 얼른 찻잔을 받혀 들고 어찌할 줄을 몰랐다.
차가 잘못 다려졌단 말인가. 뒷말에 가시가 잇는 듯 하여 차를 거부하는 큰 스님의 심경을 헤아릴 수 가 없었다.
차를 싫어하는 선승이야 없겠지만 이 곳 큰 스님은 다른 선승처럼 차를 마시는 데는 까다로운 격식을 두지 않았으나 차를 다리는 데는 온 정성을 쏟게 했고, 그것을 남달리 좋아 했다. 그래서 연심은 하루 일과 중 그것에 제일 많이 신경을 썼다.
다로에는 아직도 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연심은 다시 바위틈에서 흘러 대나무 사이를 타고 흐르는 찬물을 길러와서 정성껏 다구를 씻고 물을 긇였다. 불이 사서 그런지 다관에서는 금방 솥바람 소리가 들리고 힘차게 김이 뿜어 올랐다.
연심은 정성껏 찻잔과 차관을 뜨거운 물에 가셔낸 다음 끓는 물을 70도 정도로 알맞게 식혀 차를 넣은 차관에 물을 붓고 뚜껑을 닫았다. 그래서 2분 쯤 우려서 잣잔에 따랐다.
녹황색이 감도는 찻잔에는 맑고 은은한 향기가 나는 김이 가늘게 피어 오르고 있었다.
연심은 소리나지 않게 뚜껑를 닫고 조심스럽게 차반을 받혀들고 다시 큰 스님의 방문을 열었다.
큰 스님은 아직도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염주꾸러미를 돌리고 있었다.
" 큰 스님, 차를 드소서."
" 왜 이다지도 성가시게 하느냐. 차는 개울에 버리고 얼른 떠날 차비를 하도록 하여라."
" 네, 떠나다니요 ?."
" 나무관세음보살."
" 큰 스님. 제 잘못을 뉘우치지 못한 미거한 소승을 깨우처 주소서."
" 너는 빛을 잃었어 ! 차에 향기가 없음은 네 마음이 흐려져 있음이 아니겠는 가. 수행자가 빛을 잃으면 그 둘래에까지도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게 되느니라."
"........"
" 왜 그러고 있느냐 ? 날이 어둡기 전에 얼른 떠날 차비를 서두러지 않고."
죄인처럼 엎드려 합장하고 있던 연심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 뒤돌아 보아라."
" 네 ?."
" 네가 갈 길이 보이느냐고 물었다."
" 하오면....?."
" 그래. 지금도 네가 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는 않겠지 ?."
" 정녕 산문출송( 사찰에서 옷을 벗고 쫓겨나는 일 ) 하라는 분부시옵니까 ?."
" 애초에 이루지 못할 뜻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변혁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 아니옵니다, 큰 스님. 앞으로 더욱더 열심히 정진하겠아오니 잠시 부처님을 소흘이 한 소승을 용서하여 주소서."
" 네 귀에는 지금 무엇이 들리느냐 ?."
큰 스님은 대뜸 그렇게 물었다.
" 네 ?."
" 무엇이 들리냐고 물었다."
" 소슬바람 소리만....."
" 자세히 들어 보도록 하여라."
" 그것 밖에는 달리....."
" 그래. 그럼 얼른 떠날 차비를 하여라. 내 한 번 더 너를 두고 보겠다."
연심( 순영의 법명 )은 가까스로 산문출송을 면하여 길을 떠났다.
그가 청성산의 깊은 산중에 있는 암자로 길을 떠날 때는 아무도 몰랐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큰 스님은 연심을 사찰 후문으로해서 오솔길로 빠져 나가게 했다.
" 네 정녕 불도에 뜻이 있다면 암자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듣고 보지도 않아야 하느니라."
그것을 몇 번이나 강조하며 홀로 전송을 해 주었다. 그리고 또 큰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내 궂이 너를 떠나 보내려는 것은 네 존재에 대하여 자각을 하라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홀로 있는 것이 필요 해."
" 하오면 쉬히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아옵니까 ?."
" 외부와의 잡음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훨씬 자기 내심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겠느냐. 그래서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응시 함으로써 지헤로운 변혁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열반이 아니겠느냐."
바랑은 어찌 이다지도 무거운가. 든 것이라고는 몇 권의 불경책과 자질구래한 세면도구 뿐인데.
산은 넘고 넘어도 암자는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든 것일까.
연심은 허기진 몸을 바위 위에 올려 놓고 한숨 대신 " 나무관세음보살 "을 외웠다.
바위 아래로 개울물이 유유히 흐르는 데, 어디서인가 낙수물 소리가 산골짜기를 진동했다.
물이 너무 맑아서일까. 돌바닥이 훤히 들어다 보이는 냇물 속에는 고기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 아아 어찌 이끼 한 점 없단 말인가.
그러다 연심은 갑자기 맑은 냇물 위에 유령처럼 나타난 그림자를 발견하고 얼른 검정 고무신을 신은 발을 거두었다.
" 나무관세음보살 . 나무관세음보살."
연심은 일그러진 자기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일어 나려다 도포자락을 밝고 다시 바위 위에 주져앉았다.
눈을 감으니 봇물 터지 듯 억압되었던 뭇 상념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그러나 아무리 손에 쥔 염주 꾸러미를 빨리 돌려도 번뇌의 물결은 멈추어 주지 않았다.
시간은 얼마를 흘렀는 지 어느덧 바위위에 합장하고 앉아 있는 사미승의 머리 위에 빤짝이던 햇빛도 사라지고 어두운 산그림자가 내리고 있었다.
" 내 한 눈을 팔지 말라고 그렇세 일렀거늘, 너는 어찌하여 여태 그러고 있느냐. 썩 일어나 길을 떠나지 못할까."
" 네. 큰 스님 !."
사미승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라곤 칠흑 같은 어둠 뿐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조차 없었다.
"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부처님 모쪼록 빛을 주소서. 소승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 미련한 놈 ! 눈이 어두우면 귀로 가면 되지 않느냐."
" 네, 귀로 가다니요 ?."
" 네 귀에 지금 무엇이 들리느냐 ?."
" 바위 틈으로 흐르는 냇물 소리와 산등성이를 스치는 솔바람소리 뿐이옵니다."
" 그래. 그럼 네 앞으로 흐르는 냇물이 네 허허로운 마음을 씼어 주더냐 ?."
"......"
" 왜 대답이 없느냐 ?."
" 하오면 산등성이의 솔바람이 소승의 가슴을....?."
" 왜 그리도 말이 많으냐."
큰 스님은 앉아서 염불을 할 작전이냐고 꾸짓었다.
사미승은 바랑을 어깨에 걸고 다시 솔바람 소리가 나는 산등성을 향해 길을 떠났다.
아직도 연심의 마음이 흐려 있기 때문일 까.
바람소리가 나는 산 봉우리를 향해 아무리 기어 오르고 올라도 정작 바람소리는 가까운 듯 멀리서 들려왔다. 이거야 말로 구름 잡는 격이 아닐 수 없었다.
사미승은 벌써 몇 번째 재를 넘고 산을 넘었는 지 모른다.
귀신에 홀린 듯 바람소리를 쫓아 어두운 숲을 헤치고 산마루에 오르니 하늘은 넓고 별빛은 밝았으나 갈기갈기 찢어진 장삼 자락을 펄럭이는 산 바람은 사미승의 허허로운 가슴을 달래 주지는 못했다.
밤이 얼마나 깊었을 까.
사미승은 하체에 몹시 아픈 통증을 느끼고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딘가.
낮고 어두운 천정엔 세월에 그을린 석가래가 들잔불이 일렁이는 대로 구렁이처럼 꿈틀그렸고, 흙벽 통나무 기웅에는 싸리나무 껍질을 엮어 만든 망태기 하나가 떵그란히 걸려 있었다.
" 어머나 !."
사미승은 후다닥 몸을 우추렸다.
누군가가 그를 등지고 그의 하체를 내려다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아 이제야 정신이 좀 드나 보군요."
돌아 앉는 걸 보니 장발을 한 노인이었다. 손에는 약초를 짓이겨서 산 삼배수건을 들고 있었다.
" 아 그대로 누워 계십시요, 스님."
그렇지 않아도 자제력으로는 도저히 일어 나 앉을 수 없어, 간신히 장삼자락으로 옷매무세만 여미었다.
" 어쩌다 이렇게 몸을 상하셨소. 가씨에 끍힌 상처도 상처지만 왼 발목이 몹시 삐었군요."
그러면서 노인은 다시 돌아 앉아 상처에 약을 발라 주고 발목에도 지왕을 찌어 수건으로 동여 매어 주었다.
" 처사님. 혹시 조개암이라는 암자를 알고 계시는 지요 ?."
" 조개암이라구요 ?."
" 네."
" 조개암은 한 등 넘어 있소만...."
" 그럼 죄송합니다만 소승을 좀 일으켜 주십시요."
" 아니 됩니다, 스님. 이런 몸으로는 도저히. 이 한밤중에...."
더욱이 그 암자에는 지금 아무도 기거하지 않는 다고 했다.
" 아무 염려하지 마시고 몸조리나 하세요, 스님."
노인은 약 그릇을 챙겨 싸리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어떻게 해야하나 . 큰 스님은 암자에 도착하기 전에는 절대로 한 눈을 팔지 말라고 하였는 데. 승복을 입고 산중 속가에 누워 있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짓인가.
사미승은 " 나무관세음보살"을 외우며 다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몸은 조금도 움직여 주지 않았고, 몹시 아픈 통증만 왔다.
문풍지가 울고 어디서인가 솔바람소리가 쏴 하고 들려왔다.
바람소리를 따라 가라고 하셨는 데. 그러나 여전히 일어 설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연심은 몇 번인가 일어 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제풀에 지쳐 잠이 들었다.
한참 후, 부엌으로 나간 노인이 미음을 끓여와도 사미승은 눈을 뜨지 않았다.
" 스님, 몸이 몹시 허하옵니다. 이 미음을 좀 드소서."
장삼자락을 잡고 흔들어도 눈을 뜨지 못하자 노인은 할수 없이 미음을 떠서 사미승의 입에 부었다.
무의식 중에서일까. 노인은 마치 손주나 아기에게 암죽을 먹이 듯 미음을 뜬 숫가락을 자기의 입에 넣어 조금 빨고 나서 호호 분 후에 연심의 입에 부어 넣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 지. 미음 그릇이 조금 줄어 들었을 때 사미승은 희멀건 눈을 떴다.
" 이제 기력이 좀 드시는 지요 ?."
연심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둘바를 몰라했다.
" 그런데 여기는 어디옵니까 ?."
" 예. 요 아래 서넷 가호 사는 한덤이라는 마을이 있지요."
" 그럼 여기에는 처사님 홀로....? "
" 예. 약초나 케며 죄 많은 여생을 보내고 있다오."
노인은 길게 한숨을 쉬었고 연심은 누운 채 염주꾸러미를 더듬어 잡고 돌리며 " 나무관세음보살 "를 외웠다.
" 스님은 어인 일로 이 밤중에...."
사미승은 내원사에 출가를 해서 수도를 하다가 조개암으로 발령를 받아가는 도중 길을 잘못 들었노라고 했다.
" 그 빈 절간에 스님 홀로 어찌 감당하시려고...."
노인은 난감한 얼굴로 혀를 껄껄 차며 먹다 남은 미음 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어디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사미승은 후다닥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금방 제자리에 모로 쓰러졌다. 삔 말목이 체중을 자탱해 주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날은 언세 밝았는 지 비틀어진 문틈으로 서너 줄기 햇빛이 창살처럼 방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노인은 없고 , 곁에서 잔 흔적도 없었다. 벽에 걸려 있던 망태기도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는 나뭇가지에 끍혀 군데군데 찢어진 그의 바랑이 걸려 있었다.
어디로 간 것일까.
사리문 옆에는 갓 준비한 듯한 누릎나무 지팡이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연심은 그것을 짚고 바깥으로 나왔다.
먼 계곡 아래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고, 건너 숲 속에서는 길 잃은 새 한 마리가 간헐적으로 울어 댔다. 웬일인지 바위틈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도 적막하게 들리고 가끔가다 장삼자락을 펄럭이게 하는 바람마져도 어찌할바 를 몰라해 하는 사미승을 허허롭게 했다.
"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노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약초라도 케려간 것일까.그래서 연심은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 후일 다시 들려 인사를 드리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암자는 노인의 말마따나 한 등 넘어 멀지 않는 곳에 잇었으나 산이 험하고 길이 쫍아 지팡이를 짚고가기에는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큰 스님은 거기에 대해서 아무련 언급이 없었으나 노인은 분명히 암자에는 아무도 기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방금 안에서 사람이라도 나올 듯이 앞뒤 뜰이 깨끗이 비질이 되어 있었고, 법당으로 올라 가는 돌계단 좌우에도 풀을 뽑은 흔적이 있었다.
지나가던 등산객이나 불제자가 청소라도 한 것일까.
사미승은 절간을 향해 합장을 한 후 법당으로 들어갔다. 역시 오래 비워둔 것 같지 않게 법당 안에도 깨끗이 정돈이 되어 있었다. 큰 부처 앞 좌우에는 금방 불이 꺼진 촛대 두 개가 나란히 서 있고, 그 바로 옆에 향과 초 봉지가 몇 개 포게어져 있었다.
사미승은 우선 예불을 놀리기 위해 부엌으로 나갔다.
" 어쩌면 !."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커다란 가마솥 옆에는 누가 가져다 놓은 것인지 누더기를 기워 만든 전대에 쌀이 반 넘게 들어 있었고, 싹다리 ( 마른 나무가지 )가 부엌을 마주한 구석진 곳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지나가던 길손이나 등산객이 두고 간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게 많은 불량이었다.
( 그새 큰 스님이 사람은 보내셨단 말인가 ?.)
그러나 큰 스님이 보낸 사람은 한나절이 훨씬 지나서야 도착을 했다.
연심은 이상한 예감이 들어 이튿 날 아픈 다리를 끌고 초막으로 내려갔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연심은 할 수 없이 사리문을 열었다. 역시 방 안에도 노인은 없었다. 토방구석에 놓여 있던 궤짝도 보이지 않고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약초 봉지도 간 곳이 없다.
"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사미승은 부엌으로 가 보았다.
방금 떼어낸 듯 냄비가 걸을린 자욱이 새까만 부엌 아궁이에서는 아직도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아니 ! 이건 ?."
연심은 타다 남은 사진 한 장을 집어 들고 이상한 얼굴을 했다.윗 부분이 새까맣게 타버린 자동차 옆으로는 주름치마를 입은 여자 아이와 바짓가랭이만 보이는 남자 아이. 그리고 어른들은 구두만 보였고, 사진 귀퉁이에는 멀리 가득 쌓인 목재가 보였다.
< x 3 4 5> 그것은 앞 부분이 타버려서 잘 보이지 않고 뒷 부분만 남은 찦차의 번호였다. 자세히 보니 재가 되다만 희미한 앞 부분이 2 자로 짙게 말여 있었다. 아버지의 차 번호가 2345 였다. 그것을 지금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가 막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오빠가 우리집 자동차 번호인 2345도 쓸 줄 모르냐고 핀찬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노인이 누구길래 아버지의 자동차 번호가 있는 사진을 태우고 떠났을 까 ?
( 외 삼촌 ?.)
그렇다. 외 삼촌이 분명했다.
어제 밤에는 등불이 희미해서 잘 보지는 못했지만 ( 사실 자세히 모았더라도 지금은 외 삼촌을 알아볼 수도 없지만 ) 목이 쉰듯한 특이한 음성은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였고,연심의 출생지를 묻고 아버지의 죽음과 외 삼촌 때문에 파산이 되어 천애 고아가 되었다는 것과 두 오누이가 헤어지게 된 이야기를 듣고 돌아 앉아 괴로워하시던 모습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렇다면 그때부터 외 삼촌은 이미 연심이 자기의 조카임을 알아 본 것이 틀림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속죄하는 심정으로 자기의 전 재산인 쌀을 털어 절간에 두고 떠났으리라.
천륜을 버리고 얻은 재물이 오래 가지는 않았던지 그렇지 않으면 그로인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스스로 고행의 길을 택했든가. 부도 빈도 기쁨도 슬픔도 지나고 보면 모두가 다 허무인 것을 !.
"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그 무렵 만길은 거의 매일 순영( 연심)을 만나려고 내원사를 찾았으나 사찰측의거절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 이미 출가한 사람을 잡고 새삼스럽게 무엇을 어떻게 하겟다는 거요. 젊이의 말마따나 잚은이가 그처럼 연심을 아꼈다면 그롸의 해후가 그의 수행에 보탬이 될 수는 없는 게아니겠소."
" 스님, 저희들의 처지러서는 지금 그의 수행이 문제가 아니옵니다. 불교의 실천 덕목이 제도에 있다면 어찌 한 중생의 소원을 이다지도 외면 하시옵니까."
" 때를 기다리시오. 나로서는 지금 이 단계에 연심은 만나게 할 수는 없소. 그가 개안을 한 후 제 스스로 사물을 판단할 수 있을 때를 말이오
" 그 때가 언제이옵니까 ? 스님."
" 그건 나도 모르오. 연심 자신 밖엔."
" 스님, 제발 한 번만이라도 연심을 만나게 하여 주소서. 이제는 그를 환속시켜 달라고 떼를 쓰지는 않겠습니다."
" 그것이 진심이라면 아무래도 그냥 돌아 가는 게 좋겠구려."
만길은 오늘도 할 수 없이 절간을 뒤로 해서 경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산 중턱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행여 뒷뜰에 나온 순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 까 해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원망스러운 얼굴로 눈을 딲고 내려다 보아도 경내엔 승복을 입은 사람 하나 나타나지 않고, 산 그림자는 오늘도 어김없이 만길의 가슴을 저미게만 했다.
" 아아 저기...."
저녁 공양이라도 짓는 것일까.
토담 꿀둑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승복을 입은 여승 한분이 부엌 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순영인지 분간 하기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만길은 바위 아래로 뛰어 내리며 무의식 중에 소리 내어 순영을 불었다.
어느 등산객이 여자 친구의 이름이라도 부르는 줄 알았을 까. " 순영아 "라는 메아리가 되돌아 오기 전 장작개비를 안은 여승은 어디로인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 후 그는 매일 사찰 주위를 맴돌며 순영을 불렀으나 역시 대답은 없고, 절간을 찾아 온 사람들은 미친 놈으로 일소해 버렸다. 아무도 그의 애타는 심정을 알려고도, 그리고 또 알아주지도 않았다.
이제 너무나 지쳐서 일까.
그처럼 미친 개처럼 울부짓으며 순영의 이름을 부르던 그도 한동안 어디로 사라졌는 지 조용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승려들이 기거하는 별채와 마주한 헛간에서 불꽃이 치솓았다.
평소에 재을 뫃아두는 한 쪽 구석을 재외하고는 절에서 사용하는 자질구레한 기구들을 보관하는 창고여서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칠흑 같이 어두운 산정에 불꽃은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 미련한 놈 ! 내 때를 기다리라고 그렇게도 일렀거늘 어찌 이다지도 무엄한 짓을 저지른단 말인가."
토담 넘으로 불을 끄느라 물통을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승려들을 하나하나 눈이 뚫어지게 살피고 있던 만길은 어깨에 지팡이를 맞고 뒤로 벌렁 나자빠 졌다.
" 스님, 지은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하오나 벌을 내리기 전 부처님의 자비로 단 한 번만이라도 연심을 만나게 하여 주소서."
만길은 이슬이 함북 젖은 풀밭에 꿇어 앉아 두 손을 비비면서 애원을 했다.
" 그 일이라면 조용히 떠나게."
" 네, 또 그냥 이대로 말씀이옵니까 ?."
" 네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느냐."
" 하오면...."
" 벌써 떠났네. "
" 네, 어디로 말씀 입니가 ?."
" 그건 나도 모른다네."
" 스님 분명히 말씀해 주십시요. 다른 절간이옵니까. 그렇지 않으면 환속이옵니까 ?."
" 나무관세음보살.나무관세음보살."
힐긋 불꽃이 비친 스님의 이마에 허망한 그림자가 지나갔다.
" 스님, 그대로 돌아 가시면 어떡합니까 ? 연심의 스승이신 스님께서 그의 행방을 모르신다 하심은....재발."
" 딱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라네. 좀 더 때를 기다려 보게나."
순영의 스승은 정말 그의 행방을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깨닭인지 주지스님이 몰래 조개암으로 보내 버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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