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어디로 가나

14. 뜬 구름

오늘의 쉼터 2014. 8. 26. 12:51

14. 뜬 구름
 
   " 어어이 온다. 19가 온다."


   창문 옆에서 장기를 뜨는 것을 구경하던 75가 소리를 지르자

저쪽 구석에서 동전내기 육백을 치던 36이 화투장을 쥔 채

   " 어데, 정말 19맞나 ?."


   하고, 확인이라도 하듯 이 족으로 건너왔다. 


   " 어이 몇 자나 나왔노 ?."
   " 보나마나 뻔하지 뭐."
   " 히히히 조용하거라."

   그래서 모두들 재미 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 가 시침을 뚝 떼고 다시 하던 일을 계속하는 채 했다.
   여기서 19니 36이니 하는 것은 용달차의 끝 번호를 말한다.

주차장에서는 기사의 이름 대신 부르기 싶게 각자 차의 끝 번호를 사용했다.
   이윽고 급제을 하는 소리가 나고 문짝 닫는 소리가 떨어져 나갈 듯이 요란하더니

19가 베니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섰다.

그러자 화투를 치던 패들과 장기를 두던 패가 일제히 19의 입술을 쳐다보고 화 하고 웃었다.

역시 입이 댓발이나 쿡 튀어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 재미 씹팔 미친 개고기를 처묵었나 히히득거리기는...."
   " 와, 한 뭉티기 안 주더나 ?."
   " 누굴 약을 올리는 기가 . 순 얌체 같은 노랭이 !."
   그러면서 열쇠 뭉치를 마루 바닥에 획 집어 던지며
   " 제미 씹팔 천지에 이런 경우가 또 어딨노. 인부 삯은 7천 원이고 천만 원짜리가 넘는 용달을 몰고 가서 같이 짐을 실어 주고 내려 준 놈의 운임은 겨우 4천 원이니, 그것도 뭐 다른 물건 같으면 거리가 짧아서 3천 원인데 이삿짐이라 놔서 천 원을 더 준다나. 에에이 퇴퇴."
   19는 정말 불꽤하다는 듯 땅 바닥에다 대고 퇴퇴 침을 뱉았다.
   " 누구를 원망하겠능기요. 형님이 좋아서 가 놓고요."
   고소하다는 듯 36이 빈정대자 19가 버럭 화를 내면서
   " 내가 좋아서 가다니. 임마 원칙으로 이삿짐은 85순 번 아이가."
   이삿짐은 시간과 장소가 미리 예약이 되어 있었다.
   " 그 원칙을 누가 깨뜨렸는 데요."
   다들 웃고 떠들고 하는 데도 말없이 눈을 감은 채 한 쪽 구석에 처박혀 있던 강희도 듣기가 별로 좋지 않았던지 한 마디 했다. 
    19는 아주 이기주의자였다. 출생지를 어디에 두어야할지 모를 정도로 낯 간지러운 짓을 자주했다. 이럴테면 주차장 단골 거래처인 짐을 싣고 가면서도 다음에 짐이 나오면 자기의 차를 불러 달라고 집 전화 번호와 차의 번호가 적힌 명함을 주었고, 그래서 하루에도 여러 번 19를 찾는 조카가 아니면 형님,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래서 너는 어찌 그리 형님도 많고 조카도 많느냐고 물으면 놈은 넉살 좋게도
   " 임마 우리 집안이 얼마나 넓은 데."
   하면서, 교환양에게 어디서 전화 온데가 없느냐고 물어대는 것이다.
   그러던 그도 오늘은 작전이 미스였든지 4천 원짜리 이삿짐을 실어다 주고 오는 데 무려 2시간이나 걸렸다. 그것도 이삿짐이라고 하여 운임을 많이 받을 줄 아고 일부려 자기 순 번이 다가오자 신문지를 들고 변소에 들어가더니 아예 나올 줄 몰랐다.
   으윽고 이삿짐을 실으려 갈 약속 시간을 일이 분 앞두고 전화벨이 울렸다. 교환양이 차마 변소에까지 뛰어가서 연락을 할 수가 없어서 대신 35가 갔다.
   " 어이 19 알 놓나. 뭐하노 ? 얼른 일 나가거라 일."
   " 일, 어딘데 ?."
   " 박 고물이다."
   박 고물은 주로 인근 보세공장에서 옷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커다란 마대에 넣어 태산 갗이 실어 오는 고물상이다. 물론 짐을 많이 실은 만큼 많은 시간이 걸렸으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운임은 늘 3천 원 안밖이다. 그래서 모두들 박 고물이 차를 보내라고 하면 상을 찡그렸다.
 
   변소 안에서 무슨 수작을 꾸미는지 혀를 차는 소리가 나고 신문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19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하면서 다음 순번을 보래라고 했다.
   " 야 누가 좋아서 가겠노. 퍼뜩 나오거라."
   " 안 나오는 똥을 우짜란 말이고."
   19는 버럭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주차장 뒤편 담밑에 붙어 있는 간이 화장실에서 똥 냄새을 맡아 가며 순번을 바꿔 간 것이 그 모양이니 그로서도 울화통이 터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제미 시팔, 내라카는 세금은 악착 같이 다 내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끓어 모우고 빚까지 내어서 산 용달차의 운임은 우째서 4천 원이고, 다 같이 짐을 싣고 내려 줬는 데도 인부의 삯은 7천 원이고 말이다. 이거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이가."
   " 그래. 19 니 그 말 한 마디는 옳다. 하지만은 우짜겠노. 어진 백성이야 떠들어 보았자가 아이더나."
   77처럼 입으로는 그렇게 위로를 하는 채 하여도 모두들 속으로는 고소해 하는 눈치였다.
   " 85형님은 와 또 그렇게 목을 타러내고 있는 기요 ?."
   잠을 깨우기가 안 되었든지 77은 그렇게 지끌이며 담배불을 좀 빌려 달라고 했다.
   강희는 눈을 감은 채 찌그러진 쇼파에서 몸을 움직여 말없이 성냥을 꺼내 밀었다. 모두들 웃고 떠들고 야단법석을 해도 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두 달째 밀린 유모의 급료와 내일 모래로 다가오고있는 용달차의 할부금을 마련할 수 있을 까가 문제였다. 아니 그보다도 더 급한 것은 오늘 당장 사가지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애기의 우유인지도 몰랐다.
   새벽부터 아침을 굶은 맏며느리의 상단때기처럼 찌부둥하던 하늘은 기어이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두어 시간이 더 있어야 점심때가 된다고는 하나 한참 일이 나올 시간에 이렇게 빗방울을 보이니 오늘도 싹수가 노란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강희는 지금까지 겨우 두 탕을 했다. 19와 순번을 바꿔 간 박 고물한테는 역시 3천 원을 받았다. 그러나 두번째로 간곳에서는 4천 원을 받아 재수 없게도 회전 위반으로 천 원을 보태어 5천 원을 날려버렸다. 그러니 현재 자기의 주머니에는 천 원짜리 두 장만 남아 있었다. 그것으로 또 이달치 주자장비 5천 원을 물어야 하고 최소한 점심으로 라면 한 그릇 정도는 먹어야 한다.
   (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리들 태평일까 ?.)
   비야 오든 말든, 일이야 나오든 말든, 동전 내기 화투판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 형님요. 고마 이리로 오이소. 하늘을 쳐다 본다고 오던 비가 안 오겠능기요. 오늘도 일당하가는 틀렸승께 이리로 와서 한판 쪼이소. 기름값 안 들고 얼마나 좋은 기요'
   35가 화투장을 쥔 채 시죽거리며 손짓을 했다. 그래서 강희는 어색한 표정을 지우며 창가에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삿짐을 실으려 갔다 내다 버리려고 한 쇼파를 누가 실어 왔는 지, 그것도 하도 낡아서 스프링이 꺼지다 못해 아예 땅에 붙어 버렸다. 그래도 찌그럭거리는 나무의자 보다는 한결 편안했다.
   강희가 용달차를 구입하여 운행을 한지도 어언 반 년이 넘었다.
   그는 아내가 통장에 넣어 둔 3백만 원과 역시 그녀가 넣다만 5백만 원짜리 적금을 해약하고 거기에다 4백만 원이나 빚을 내어 할부로 용달차를 구입했던 것이다.
   그는 이제 남의 차를 운전할 형편이 못 되었다. 가는 곳마다 엉뚱하게도 정신적인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이유를 달아 쫓아 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먹고 살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다. 더욱이 지금은 만길이 대신 맡아 양육을 하던 미란이 두고 간 자기의 애기와 유모겸 가정부까지 인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만길이 순영을 찾아 절간으로 어디로 헤매고 다니는 바람에 가정을 돌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진작 자기가 맡아서 길러야 마땅한 도리였으나 그때만 해도 그만한 정신이 자기에게는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그에게 맡겨 놓았던 자기의 부양가족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배운 것이 운전이라 강희는 무리인 줄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시작한 것이 돈이 모이기는 커녕 세 식구 입에 풀칠 하기가 바빴고 빚은 빚대로 쌓여만 갔다.
   " 허어 그 참 !."
   지금이라도 비만 거쳐 준다면 자기 앞으로 세 대가 밀려 있으니 어두워질 때까지 두어 탕은 무난히 뛸 수 있을 것이고, 한 탕에 최소한 3천 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애기의 우유정도는 살 수 있을 것이고, 가정부 아주머니에게도 찬 값으로 얼마 내어줄 수도 있겠는 데, 망할 놈의 하늘은 얼마나 세게 구멍이 뚫렸는지 이제는 빗방울이 아니라 대야로 물을 붓는 것처럼 쏟아져 내리기만 했다.
   " 제미 씨팔 이왕 오려거든 싹 쓸어 가도록 오거라."
   19는 창 넘으로 손님을 싣고 달려가는 택시를 바라 보면서 혼자 망하기가 억울 하다는 듯 그렇게 투들거렸다.
   " 참 85는 와 이왕 살려거든 택시를 사지 되지 못한 용달을 사가지고 이래 끙끙되는 기요. 저기 보소. 얼마나 좋은 기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손님이 없어서 걱정인기요. 장대 같이 비를 맞고 짐을 싣고 내려주는기 거정인기요. 모두가 자동 아닌기요. 가자카면 가고 서라카면 세워서 가만히 앉아서 돈만 받아 챙기면 되는 그런 좋은 직업을 버리고 와 다 같은 돈을 주고 이 고생이고 말입니더."
   " 그래. 니 놈의 눈에는 역시 남의 밥그릇에 든 콩이 커 보이겠지만 85형님 생각은 그게 아니라네."
   그러다가 35가 생각난 듯
   " 아니, 니 주둥아리로 그런 말이 나오나 ? 85형님이 용달을 산 것도 순 니 놈의 그 주둥아리 때문이었단다."
   " 와, 내가 억지로 사라켔나 ?."
   " 임마 사라켄 것 보다 더 했지. 85형님이 처음 우리 주차장으로 찾아 왔을 때 니 식당에서 뭐라켔노 ?."
   " 35가 다그치자 19는 고소하다는 듯 식 웃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그 때 놈이 지껄이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듣지 않았더라면 지금 쯤 용달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했을 지도 몰랐다.
   강희는 처음에 개인택시와 용달을 놓고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고심했다. 택시는 69년도에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선 용달편을 알아 보려고 몇 군데 주차장을 들린 일이 있었다. 그 때 옆식탁에서 6백 원짜리 된장 찌개를 먹고 있던 기사 하나가 19를 보고 얼마나 벌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놈은 태연하게 아직 3만 원은 못했다고 했다.
   " 아제. 용달을 택시한테 비할라고 하능기요. 이게 사람은 좀 지저분해서 그렇지 몸도 편하고 세금 같은 것도 택시의 삼 분의 일 박에 안 되지요. 우선 해만 지면 퇴근 아닌기요. 아제는 몸이 약해서 택시 보다는 아무래도 용달이 나를 끼요."
   그러면서 일이 나오기 전에 얼른 먹어야 한다고 하며 주문한지 5분도 되지 않은 두부찌개가 나오지 않는다고 투들 댔다.
   강희는 우선 점심을 먹으려 와서 3만 원을 올리지 못했다고 주고 받는 그들의 이야기에 현옥되었다.
   오전에 3만 원을 채 못 올렸다고 하면 그에 가싸운 액수를 번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하루에 3만 원정도 올린다는 개인택시 보다야 수입면으로도 훨씬 나를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을 굳히고 구입한 것이 그름잡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 형님 너무 그리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이소. 돈이란 때가 되어야 붙는기라요."
   19는 그렇게 위로하는 채 하면서 강희더러 어째서 운전경력이 15년이 가깝다고 하면서 그 흔해 빠진 개인택시 한 대 타지 못하고 생돈을 주고 용달을 구입했느냐고 물었다.
  " 허허 누가 줘야 말이지요."
   " 와요. 사고라도 낸 일이 있는기요 ?."
   강희는 말없이 고개만 흔들었다.
  " 그라면 와요 ? 내 친구는 10년도 안 됐는 데도  벌써 탔는 데요."
   " 모르지요. 그 동안 편안히 자가용 운전을 해 먹고 살았다고 그러는 지 아예 신청도 받아 주지 않더군요."
   " 그 참 ! 돈 복이 없는 사람은 할수 없다 카이. 나도 그 놈의 여자만 아니었다면 벌써...."
   19는 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영업용시절 자기 차에 받힌 여인을 욕하며 그 여자 때문에 절로 굴러 들어오게 된 개인택시를 놓쳤다고 투덜 댔다.
   요행이라도 바라는 것일까.
   아무리 비가 억수 같이 퍼부어도 간혹 비와 상관 없는 짐이 나와 그것이 시외로 빠져서 엉뚱하게도 돈이 되어 주는 수가 없지도 않았다. 그래서 비가 그치기는 아예 틀린 것 같은 데 아무도 집으로 돌아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혹시 그 행운이 자기에게 오지 않을 까 하는 바램으로
   " 아 짐이다 !."
   오래간만에 흑색 전화기에서 벨이 울리자 여러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 네네, 잘 안들리는 데요 ?."
   빗소리 때문인지 감이 멀어서인지 교환양은 한 쪽 귀를 막고 뒤돌아 서면서 소리를 질렀다.
   " 여보세요. 좀 크게 말씀하세요. 네. 이사짐이라고요 ?."
   " 돌았구만 비가 장대 같이 오는 데."
   화투장을 든 채 이편으로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던 19가 자기 순번도 아니면서 투들 댔다.
   " 네, 이강희씨요. 네에 난 또 이삿짐이라는 줄 알고..."
   교환양이 멋쩍은 얼구로 강희에게 수화기를 내밀기도 전에 전화는  뚝 끊어졌다.
   " 참 이상하네요. 공중전화는 아니 것 같은 데..."
   " 무슨 전화야 ?."
   " 85아저씨한테 온 전환데요."
   " 뭐, 85형님한테. 여자더냐 ?."
   19가 시죽 웃으며 물었다.
   " 네, 감은 멀었지만 참 고운 음성이었어요."
   " 어어 그라머 이거 아이가. 85형님의."
   19가 새끼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시죽거렸다.
   " 생각이 날만도 하지요. 창 밖엔 추적추적 비가....."
   말이 끝나기도 전 다시 전화벨이 울리자 36은 장기 알을 든 채 입을 다물었다.
   " 네, 잠간만요. 85아저씨 전화 받으세요."
   강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을 떠난 후 일 년이 훨신 넘었어도 소영에게는 전혀 연락이 없었다.  풍문에 의하면 예편을 한 아버지를 따라 케나다로 이민을 갔다고는 하나 정말 아내가 떠났는 지알아 보지는 않았다.
   지나고 보니 너무나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는 하루도 그녀를 그리워하지 않는 날이 없었고, 소식이라도 전해 와 주기를 기다리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러나 그와의 인연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어 버렸는 지 전화속의 음성은 유진의 유모였다.
   " 아주머니가 ,웬일로 ....?."
   " 네 애기가 갑자기 아파서요."
   혼자 병원에 가려고 아기를 안고 나왔으나 비가 와서 그런지 택시를 잡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좀 나와 줄 수 없겠느냐고 했다.
   " 네 가야지요. 가구 말구요."
   그러나 수중에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뿐이다.
   무슨 병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돈을 가지고 병원으로 들어 설 용기는 도저히 없었다. 그래서 수화기를 놓지 못하고 있으니
   " 집 앞 공중전화예요. 담배 가게가 있는."
   그래도 전화를 끊지 않고 있자.
   " 아빠 병원비는 염려 마시고 얼른 오세요, 네."
   하고, 이제는 먼저 저편에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유모는 젊었다. 강희보다 한 살 위인지 아래인지 잘 모르지만 초혼에 실폐한 여인답지 않게 발란하고 얘뻤으며 아직도 처녀 티가 났다. 동년배 비슷한 주인에게 아저씨라고 부르기가 뭤했든지 처음에는 애기 아빠라고 하드니 만길의 아파트에서 자기의 집으로 옮기고 부터는 애기 자를 빼고 아빠라고만 불렀다. 남들이 듣기에는 아내가 자기의 남편을 브르는 것 같아서 아저씨라고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을 불러 달라고 하였으나 그때마다 뽈그래 낮을 붉이면서 부를 때는 늘 아빠다.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매와 같이 눈치도 빠르고 영리했다. 그것이 때로는 강희의 마음에 부담을 주기도 하였으나 아기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게 하여서 좋았다.
   넉넉지 못한 그나마도 두 달치 급료도 주지 못했는 데 돈은 어디서 구했는지, 먼저 눈치를 채고 돈 걱정은 하지 말란다.
   차를 세우기도 전에 유모는 구멍가게 처마 밑에서 애기를 들쳐 안고 뛰어 나왔다.
   " 어디가..... ?."
   " 모르겠어요. 몸이 불덩이 같아요."
   애기는 울 힘조차 잃었는지 포대기에 싸인 채 숨소리만 거칠게 냈다.
   비가 억수 같이 퍼부어도 병원 안은 역시 일기와는 관계없이 환자와 그 가족들로 붐볐다.
   강희는 간호사의 제지를 받고 복도 의자에 않아 진찰실 안으로 사라지는 그들을 넋나간 사람처럼 멍청히 바라 보고만 있었다.
   안에서는 무엇을 하는지 한참 있어도 아무른 반응이 없었다.
   그는 궁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모두들 진료실 안으로 친지들이나 가족을 보내 놓고 결과를 기다리는지 그 쪽으로 시선을 준 채 초조한 얼굴들이다. 그래서 그도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중병은 아니어야 할 텐데. 그는 무엇보다도 병원비가 겁이 나서 그저 주사 한 두 대로 치유될 수 있는 가벼운 병이었으면 싶었다. 그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아까운 것은 역시 택시비와 약값이었다. 그래서 그는 좀처럼 택시를 타지 않았고, 여태 아스피린 한 알 사먹은 일이 없었다.
   (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 까 ? 병원 놈들은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도 방금 어떻게 되는 것처럼 날뛰는 버릇이 있다니까. 젠장.)
   그래서 그가 진찰실 안으로 들어 가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급히 유모가 도어를 밀고 나왔다.
   " 여깁니다. 아주머니."
   듣고도 못 들은 채 하는 것인지 유모는 뒤돌아 보지도 않은 채 급히 접수부 쪽으로 뛰어갔다.
   " 여깁니다. 아주머니."
   강희는 자리에서 일어 나 손을 흔들었다.
   " 네 잠간만요.:
   " 아니 급하게 어디로....애기는 ?."
   강희가 앞을 가로 막고 서자
   " 네 입원 수속을 밟으려구요."
  " 네. 입원을 요 ?."
   " 예. 폐럼이라는 군요. 그래서 몇 일 입원을 해야 된다고 해서...."
   강희는 무의식 중에 자기의 포켓을 더듬었다. 역시 손에 잡히는 것은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뿐이었다.
   유모는 가볍게 강희를 밀치고 접수부 쪽으로 걸어갔다.  그래서 접수부를 돌아 나온 그녀는 복도에 우두커니 서있는 강희 곁으로 와서
   " 그럼 아빠는 이제 가서 일 보세요. 애기는 제가 돌볼께요.네."
   남이 들으면 너무나 다정한 아내의 음성이다.
   정말 미워해야 할지 고마워해야 할지, 강희는 그저 어색한 얼굴로 병원에서 밀려났다.
   비는 여전히 억수 같이 퍼붓고 있었다. 지금 주차장으로 들어 가보았자 짐이 있을리 없었다. 설사 가뭄에 콘 나 듯 있다 하더라도 끝 순번이면 적어도 자기 앞으로 칠팔 대가 밀려 있을 것이고 한 시간에 한 대식 빠저준다고 하더라도 내일 아침이 아니고서야  자기의 순번이 다가 오기는 틀린 일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집으로 들어가기에는 또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평소에 자기를 반겨 줄 사람이 집에 있는 것도 아니지만 오늘은 더욱이 미워할 사람조차 없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
   병원에서 떠밀려 나온 강희는 차에 올라 앉아 어디로 가야할지 잠시 머뭇거렸다.
    그는 한참 후에야 뒤따라 오던 자동차의 크락숀에 놀라 울꺽 앞으로 전진했다.
   어디로 가나.
   차는 벌써 그의 집과 반대 방향인 주차장을 지나고 있었으나 어찌할바를 몰라 앞차의 꽁무니를 따라 계속 움직이기만 했다.
   " 여보세요. 여보세요."
 신호가 걸렸는 지는 몰라도 가던 차가 서니 그도 뒤따라 부레이크에 발을 올렸다. 그러자 성애가 뽀얗게 낀 조수대 차문을 뚜드리는 소리가 두어 번 나더니 벌컥 도어가 열렸다.
   " 아저씨 이 차 어디까지 가세요 ?."
   " 네, 어디까지 ....?."
   " 네, 어디까지요 ?."
   비에 젖은 아가씨는 벌써 차에 올라 앉았고, 신호가 바뀌었는지 앞선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강희도 차를 출발 시키며
   "이건 택시가 아닌데....? "
   " 네, 알아요. 아저씨 가 데까지만 태워다 주세요."
 시선을 창 밖으로 둔 아가씨의 단발 머리에서는 계속 빗물이 뚝뚝 덜어지고 있었다.
   강희는 다시방에서 타올을 꺼내어 밀면서 아가씨는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 전 아가씨가 아니에요."
   조금 앙칼진 음성에 울음이 섞인 것 같았다.
   " 아 그렇습니까. 그럼 아주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차비는 염려말고 차가 가는 데까지 태워다 달라고 했다.
   " 차가 가는 데까지 ?."
   강희는 또 다시 멈칫했다.
   (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 까 ?.)
   뒤따르던 자동차들이 대답 대신 크락숀을 눌렸다. 그래서 그는 얼른 악세레타에 발을 얹고 까마득히 길모퉁이로 사라진 앞 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달리면서도 아무리 생각을 해도 갈 곳이 없었다.
   " 차가 고장이에요 ?."
   " 아, 아닙니다."
   " 그럼 다 왔나요 ?."
   " 갈 곳이 없군요
   " 네 에 ?."
   그제서야 손님은 차창 밖으로 둔 시선을 강희에게로 돌렸다.
   " 어머나 ! 이 기사님이 아니세요 ?."
   " 오오 미스 정 !."
   둘은 와락 껴안으려다 겨우 손을 잡고 흔들기만 했다.
   " 미스 라니요 ?."
   " 참 그렇지 ! 그래 아이는 잘 자라고 있겠지 ?."
   정양은 시선을 떨군 채
   " 우리 어디 가서 얘기나 해요. 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 그래. 그건 나도 마찬가지 였어."
   강희는 다시 차를 몰았다.
   " 우리 어디로 갈까 ?."
   " 조용한대로 가요."
   " 비 오는 날 조용한데라고는 방안 밖에 없는 데."
   " 방안은 갑갑해요. 그리고 자연의 시끄러움은 시끄러움이 아니잖아요."
   " 그래. 그럼...?."
   " 바닷 가 ?."
   " 산으로 가요."
   " 산...?."
   " 네."
   " 이렇게 비가 오는데. 차는 어떡하고."
   아이 등산 말고. 숲이 있는 산길로 드라이브를 해요."
   " 허허 용달을 타고 드라이브라 !."
   " 어때요. 낭만이 있잖아요. 승용차 보다."
   정양은 빙그레 미소까지 지었다.
   " 숲 속의 산길이라. 그런 곳은 이 근교에는 없는데."
   " 그럼 어떡하죠 ?."
   " 그러지 말고 바닷가로 가지. 비오는 날 숲 속은 오히려 음산하고 답답하지 않을 까."
   " 그렇기도 하겠네요."
   자동차는 하마정 신호대에서 좌회전을 하여 양정 신호대에 들어섰다.
   강희는 1차선에 차를 세우고 죄호전 신호를 넣다가 생각난 듯 신호기를 끄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진을 하여 망미동 고개로 해서 해운대로 가려는 가 했더니 청신호가 들어오자 2차선 차량과 함께 우회전을 하여 차머리를 시내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 아이 바닷가로 간다고 하구서...."
   " 가다보면 나오겠지."
   " 네 ?."
   " 부산은 삼 면이 바다야."
   " 참 그렇군요."
   정양은 빙그레 웃었다. 아직도 가슴 서린 모성에의 한을 풀지 못해서일까. 웃음의 꼬리에 짙은 서러움이 젖어 있었다.
   " 왜 한숨을 쉬세요 ?."
   " 그러는 너는 ?."
   " 어머 ! 저도 한숨을 쉬었나요 ?."
   정양은 소녀처럼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녀는 한 때 강희가 자가용을 몰았던 모 재벌 사장의 씨받이가 된 여비서였다. 본의 아니게 씨받이가 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기를 빼았기고 나서 생각지도 않았던 모성애 때눈에 늘 사장님의 성 밖을 맴돌며 애태우는 여인이 되어 있었다. 물으나 마나 오늘도 그로인하여 비를 맞으며 거리를 방황하다 우연히 강희의 용달차에 몸을 실었으리라.
   " 그래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  언젠가 신문 을 읽었어요. 이 기사님의 구속 경위에 대해서 말이에요. 그래서 구치소에 찾아 갔더니 이미 떠나고 없더군요. 굳이 알려고 하면 찾을 수도 있었지만 저의 신상도 그렇고 해서 그만 두었지요. 근데 언니는 잘 있나요 ?."
   " 언니라니 ?."
   " 아이 이 기사님의 사모님 말이에요."
   " 떠났어."
   " 떠나다니요. 왜요 ? 그처럼 착하고 다정하시던 언니가요. 혹시 부모님이 찾아 오셨나요. 신문을 보시구요 ?."
   " 그랬었지. 하지만 원인은 나에게 있었어."
   " 이 기사님이 강제로 떠나 보냈군요. 더 이상 고생을 시키지 않으려구요."
   " 그게 아니었어."
   " 그르면요 ?."
   " 나에게 다른 여자한테서 생긴 아기가 있었거든."
    " 어머나 ! 어쩜."
   강희는 그간에 있었던 일을 요약해서 정양에게 들려 주었다.
   " 어쩌면 그럴 수가 있어요. 한 가정의 불행은 생각지도 않고 뻔뻔스럽게도 아빠가 분명하지도 않은 어린 것을 그렇게 팽기치고 달아나다니요. 그 여자에게는 모성애 같은 것도 없었나 봐."
   " 모성애 보다도 자기 편의주의가 더 강했겠지. 유진 엄마는 그런 여자였어."
   " 그래. 어쩌자고 이 기사님은 착한 아내를 두고 그런 여자를 가까히 하셨죠. 정말 남자 속은 알다가도 모른다니까. 그저 치마만 둘렀다 하면 천이고 만이고 다....."
   미스 정은 혀를 껄껄차며 천벌을 받아 싸다고 했다.
   차는 어느새 태종대 입구를 들어서고 있었다.
   정양은 핸드백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어 강희 앞으로 내밀었다. 깔깔한 만 원짜리였다. 주차장에서는 그것을 배추잎이라고 했다.
   " 어디 가십니까 ?."
   " 어디로 가다니요 ?."
   매표원은 돈을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이상한 얼굴로 물었다.
   " 짐을 실으려 오지 않았소 ?."
   " 짐이라니요. 우리는 태종대를 구경하러 왔는 데요."
   " 아 그렇습니까, 난 또 용달차이기에 짐을 실으려 온 줄 알고."
   매표원은 그제서야 돈을 받고 거스름 돈과 표를 내밀었다.
   둘은 멋쩍게 웃었다.
   강희는 매표원에게서 받은 거스름 돈을 정양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정양은 차비조로 넣어 부라고 했다.
   " 무슨 소리. 매표원 말마따나 이 차는 택시가 아니라 용달차야 짐을 실어주고 운임을 받는."
   그러다가 그는 생각난 듯
   " 어어 ! 언제 비가 거쳤지."
   하며 유리를 내리고 바깥을 보았다. 흐르는 구름 사이로 몇 군데 파란 하늘까지 보였다.
   " 정말 그러네요.우리 어디 내려서 구경을 해요."
   정양은 즐거운 듯 손벽까지 첬다. 그러나 강희는 시계를 들어다 보며
   " 아니야. 가야 해."
   " 가다니요 ? 이제 겨우 목적지에 와 놓구서."
   " 아니야. 상황이 달라졌어 !."
   " 상황이 달라지다니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 가긴 어디로 가구요 ?."
   " 주차장으로 ....아직도 어두워지려면 많은 시간이 있거든."
   " 그럼 주차장으로 일을 하러 가신단 말씀이세요 ?."
   " 그래. 돈을 벌어야 해. 다만 몇 푼이라도 말이야."
   " 알았어요. 그 일이라면 이 차 오늘 제가 대절 하겠어요."
   " 몇 번을 말 해야 아나. 이건 택시가 아니라 용달차야. 짐을 실어주고 돈을 받는 망할 놈의 용달차."
   그러면서 태종대 순환 도로를 거의 다 돌아가도록 차를 세울 기세를 보이지 않자 정양은 벌컥 도어를 열며
   " 정말 세우지 않으면 뛰어 내릴거에요."
   하고, 위협했다. 그러자 강희는 할 수 없이 우측 자연석 축대 옆으로 차를 붙혀 세우며
   " 제발 날 좀 봐 줘. 난 가난해. 애기도 입원해 있고. 돈 들 일이 너무나....."
    말이 떨어지기 전에 정양은 토라진 얼굴로 차에서 내려 버렸다.
 
 
         폭우가 휘몰아 간
         먼 훗 날
         메마른 모새밭 위에 길 잃은
         부평초 한 잎
 
         이제 태생을 슬프한 너의 삶에
         유랑는 면하여도
         이슬만 먹고 살기에
         오가는 밤 너무나 짧아
 
         별을 해며 애태우는
         너는
         차라리
         물결치는 바다가 그리우리라
 
 
   강희는 기어이 저양을 태종대 소나무 아래 내려 두고 홀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일을 나갔는지 그렇지 않으면 짐을 기다리다 못해 집으로 돌아 가버렸는 지는 몰라도 주차장엔 3대의 차만 남아 있었다.
   " 어어 집에 간 줄 알았는 데, 설마 비가 그쳤다고 다시 나온 건 아니겠지."
   36이 팔베개를 풀고 돌아 누우며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그래서 강희도 대답없이 그 옆에가서 신발을 신은 채 들어 누웠다.
   " 어머 어저씨 언제 오셨어요."
   교환양은 화장실에 갔다오는지 대야에 손을 씻은 후 먼저 일지에다 85순번을 적고 나서 강희더러 조금 전에 전화가 왔더라고 했다.
   " 뭐, 전화 ?."
   강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 병원이라고 해 ?."
   " 아니요. 그런 말은 없구요....."
    그는 놀란 가슴을 쓰러내리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 정양이었나 ?.)
   또 다른 후회와 슬픔이 한숨을 몰고 왔다.
    (이래서 모두들 나를 돌았다고 하는 것일까. 거기가 어딘데. 더욱이 자기의 애기를 빼았기고 슬픔을 달랠 길 없어 비를 맞고 헤매는 그 불쌍한 것을......)
   " 아저씨."
   " 응 ?."
   " 제 말 듣고 있어요 ?."
   " 응, 그래 무슨 말 ....?."
   " 낮에 처럼 강희씨라는 분이 그 주차장에 있느냐고 묻고요. 우리 주차장이 어디 쯤에 있느냐고도 물었어요."  
   " 그럼 낮에 왔던 그 여자 ?."
   " 네. 그 아가씨 음성이었어요. 누구냐고 물으니 전화를 끊어 버리더군요."
   " 85형님 정말 큰 일 저질러 놓은거 아닌기요."
   자는 줄 알았더니 19가 이편으로 몸을 뒤체며 농을 걸었다.
   누구일까. 그는 다시 힘없이 뒤로 기대 누우며 도대체 무엇이 무엇인지 머리가 어지러워 견딜수가 없었다.
 자기의 이름 석자를 알고 있는 사람은 집 떠난 아내와 유진 엄마 그리고 유모, 조금전 태종대 소나무 아래에 버리고 온 정양, 또 속세를 떠나 출가한 누이 동생 하나 뿐이데 도대체 누가 고운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왔단 말인가. 참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는 이제 자기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돈을 벌기 위한 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걸려 왔다는 고운 음성의 주인공이 혹시 자기의 아내가 아닐까 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해가 지고, 날이면 날마다 벌떼 같이 모여 있던 용달차의 주차장이 텅텅 비어도 짐을 실으려 오라는 전화도 그를 찾는고운 음성의 여인도 종래 나타나지 않았다.
   강희는 그렇게 홀로 누워 있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 지 그가 전화벨 소리에 놀라 눈을 떴을 때는 어디가 어딘지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방은 칠흑 같이 어둠에 쌓여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겨우 책상 위를 더듬어 수화기를 들었다.
   " 아빠세요 ?."
   " 예, 누구신지 ?."
   " 저예요. 아빠. 유진 유모."
   " 아 난 또 누구라고. 깜박 잠이 들어서...."
    " 네. 그래서 여태 집에 들어가지 않았군요 ! 밥을 지어 놓고 아빠를 기다리다가 병원에 와 있어요."
   강희는 아빠라는 말이 조금 불꽤한 것 같아도 참고 유진은 좀 어떻냐고 물었다.
  " 네 많이 좋아졌어요. 아빠."
   또 아빠다.
   강희는 그 놈의 아빠라는 말을 좀 뺄 수 없느냐고 하려다
   " 정말 수고가 많습니다. 아주머니."
   하고, 아주머니를 강조했다.
   그러자 저편에서는 눈치도 없이
   " 뭘요. 그럼 얼른 들어 가셔서 식사를 하시고 쉬세요. 아빠. 전 아무래도 여기서 밤을 세워야 겠어요."
   했다.
   " 젠장 !."
   강희는 수화기를 놓고 사무실을 나섰다.
   ( 이럴 줄 알았으면 정양의 말동무나 되어 줄 걸.)
   생각할 수록 분하고 얼굴이 간지러웠다.  그처럼 같이 있어 달라고 애원하다 십이 하던 정양을 버리고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보자고 주차장에 들어 왔는데, 끝내 어둡도록 일 한 바리 하지 못하고 돌아서려니까 뒤통수가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차에 올라 시동을 걸면서도 혹시 누가 보는 사람이 없나 하고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역시 주차장은 텅텅 빈 채 아무도 없었다. 그는 안도의 숨을 쉬며 차를 몰고 큰 길로 나왔다.
   " 어이 용달."
   누군가가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이편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강희는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열었다.
   " 짐 한 바리 실읍시다."
   청년은 숨을 헐떡였다.
   강희는 웬 떡이냐는 듯 다소 흥분된 음성으로
   " 짐요 ?."
   " 예. 보아하니 집으로 들어가는 모양인데 시간이 시간이고 하니 내 운임은 후하게 들이리다."
   사나이는 미리 준비한 자동차 번호가 적힌 쪽지와 만 원짜리 한 장을 강희 앞으로 내밀며
   " 요위 삼거리 공터에 가면 짐을 실은 자가용 트럭이 있을 거요. 그 차의 짐을 받아싣고 영주동 산복도로로 해서 덕원 공고 앞으로 가시요."
   " 아저씨는 요 ?."
  차가 부레이크가 듣지 않아서 기사가 사람을 좀 받았다고 하면서 자기는 피해자와 해결을 보고 갈테니 혼자 그리로 가라고 했다. 화주와는 연락이 되어 있으니 사람이 미리 나와 있을 거라고도 했다.
   " 지금 빨리 가시요. 짐을 옮겨 실어 줄 일꾼 두 사람을 보내 놓았으니 벌써 와 있을거요."
   과연 거제리 안동네에 있는 삼거리에 가보니 일꾼 둘이 짐을 가득 실은 트럭 앞에서 담배를 태우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돈이 생기는 일이라 그런지 저녁 때가 훨신 넘었는 데도 배가 고픈 줄을 몰랐다.
   짐은 잘 건조된 약초였다. 덩어리가 크도 가벼워서 짐을 옮겨 싣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희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휘파람이라도 나올 듯한 기분으로 차를 몰았다.
   이런 행운이 하루에 한 두 번만 자기에게 와 준다면 유모의 급료도 그 망할 놈의 보험료는 물론 애기의 입원비 같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재수 없는 놈에게는 손톱만한 행운이라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 이틀 후 강희는 검은색 포니에 실려 동래경찰서 수사과로 연행되었다. 이유는 장물 운반 혐의였다.
   " 장물 운반이 죄가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
   " 네. 그렀습니다."
   " 그럼, 네가 지운 죄를 시인하는 가 ?."
   " 그것이 장물인 줄은 몰랐는데요."
   " 모르다니 ? 자네의 입으로도 화주가 나와 있을 거라고 한 장소에 그 화주가 아닌 처음 짐을 실어라고 한 그 사람이 나와 있더라며 ?."
   " 네. 저도 그것이 좀 수상해서 이상한 표정을 하니까 저편에서 먼저 피해자와 상상외로 빨리 합의가 되어서 급히 택시를 타고 왔다더군요."
   " 그럼 밤중에 한두 개도 아닌 짐을 인가도 아닌 학교 정문 앞에서 내려 달라고 할 때도 전혀 눈치를 체지 못했단 말인가 ?."
   " 네. 그것도 그 분이 짐을 들일 곳이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그 아래 골목이라고 하길래."
   " 그러지 말고. 우리 다 알고 있으니 순순히 자백을 하게. 조회를 해보니 전과는 없더구만. 생활이 어려운 것고 알고 있고. 사람이 살다 보면 환경에 따라서 본의 아니게 일을 저지럴 수도 있지. 그래서 법에서도 초범자에게 한해서는 관대하거든."
   " 네. 그럼 저를 같은 도둑놈으로 취급하는 겁니까 ?."
   강희는 발끈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형사는 수갑을 찬 채 책상을 마주하고 저편 구석에 앉아 있는 범인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럴태면 욕 한 마디 없느냐는 것이다.
   " 첫만에요. 나는 짐을 실어다 주고 운임을 받은 것 뿐이니까요."
   " 운임. 참 그래 운임은 얼마나 받았는 가 ?."
   " 만 원을 받았습니다."
   " 뭐, 만 원 ?."
   장형사는 새로운 단서라도 발견했다는 듯
   " 거제리에서 영주동까지 만 원이나 나오는 가 ?."
   " 메타에는 3천 여원이 나올 겁니다."
   " 그런데 어째서 만 원이나 받았는 가 ?.'
   " 주길래 받았습니다."
   " 주길래 밥았다. 그럼 보통 거기까지 얼마를 받는 가 ?."
   용달 운임을 메타대로 받지 않는 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그 운임을 현실에 맞게 잘 책정해 주신양반 밖에 없으신 모양이었다.
   " 5천 원 정도 받습니다."
   " 그렇다면 이제 여러 소리 않겠지. 운임까지 보통 때 보다 두 배나 더 주는 데도 수상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변명은 할 수 없을 테고. 그러니 설사 공모가 아니더라도 장물 운반 협조 내지 방조가 아니겠는 가."
   " 참 딱두 하십니다 !  당신이나 나나."
   " 뭐, 당신이나 나나 ?."
   " 네에. 그토록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당신이나, 장물을 장물로 알아 보지 못하고 실어 준 이 석두나 말이요."
   " 뭐라구 ? 이 사람이 순순히 대해 주니 이제 사람을 마구 놀리려 드는 구만 ! 그러고 보니 이게 순 악질 지능범이 아니야."
   장형사는 책상을 꽝 치며 눈알을 뿌릅뜨고 얼굴을 울그락 불그락 했다.
   ( 나는 돌아가야 한다. 누가 무어라 하던 한 시 바삐 주차장으로 돌아 가 배차를 받고 한 푼이라도 더 돈을 벌어야 한다.)
   강희에게는 지금 오직 그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다소 불쌍한 음성으로 돌아 가도 좋으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나 장형사는 빽 소리를 지르며. 네 진정 공범이 아니더라도 범인이 너에게 도움을 준 만큼 그 댓로 고통이라도 받아 보라는 듯 서류를 챙겨들고 범인을 앞세워 다른 방으로 가버렸다.
   이럴두고 인권 유린이라고 해야 할지, 월권행위라고 해야 할지 강희는 알지 못할 분노를 느끼며 안절부절을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장형사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강희는 기다리다 못해 옆에 있는 직원들을 잡고 애원을 했다. 제발 돌아가게 해달라고. 그러나 모두들 하나 같이 자기와 무관한 일이니 담당자가 돌아 올 때까지 기다려 보라고만 했다.
   ( 그래, 될대로 되어라, 지금 주차장으로 들어가 보았자 한 두 바리 밖에 더 하겠느냐.)
   그것이 그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돈이 되어 줄 리는 만무하다. 더욱이 재수 옴 붙은 자기에게 후한 운임을 주는 짐이 돌아올 리도 없을 테고. 그러다가도 그는 내일 모래로 물어야 하는 두 달치 밀린 유모의 급료는 뒤로 제쳐두고 라도 오늘 당장 퇴원을 시키지 않으면 하루에 2만 원이라는 거금이 더 추가되는 유진의 입원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생각만해도 가슴이 곽 메었다.
   발광 직전에 장형사가 들어왔다.
   "좀 반성을 했는 가 ?."
   " 네."
   " 그래. 어떻게 반성을 했는 가 ?."
   " 눈물이 날 정도로 한심하다는 것을 느꼈습나다."
  " 장물을 운반해 준 네 행위에 대해서 말인가 ?."
  " 천만에요. 수많은 시간을 두고도 선악을 구분할 줄 모르는 나리 같은 석두를, 그래도 수사요원이라고 내세워 놓고, 나도 낸 세금으로 그동안 봉급을 준 것이 원통하다는 것을...."
   " 뭤이 ?."
 
   강희가 경찰서에서 풀려 나 주차장으로 돌아 왔을 때는 일일 용달의 영업시간이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는 일몰 직전이었다.
   모두들 집으로 돌어 갔는지 일을 하러갔는지는 몰라도 주차장엔 아무도 없었다. 교환양 마져도 퇴근을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잘만하면 일을 한 바리 정도는 할 수 있겠으나 그의 머리에는 일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일 쯤 유진을 퇴원시켜도 좋겠다는 연락을 어제 밤에 받고 있는 터다.
   입원비를 어떻게 구해야 좋을지 몰랐다. 오늘도 아침 7시에 출근을 했고, 어제처럼 세 번째로 순번을 달았다. 그러나 일이 좀 늦게 터지는 바람에 10시까지 기다려 겨우 4천 원짜리 고물 한 탕을 했고, 주차장으로 돌아 오자마자 곧 바로 경찰서로 연행되어 가는 통에 여태 점심도 굶은 채 허탕를 치고 있는 터다. 그러니 설사 운이 좋아 한 바리를 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유진의 입원비에 큰 보뎀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장형사의 말마따나 그놈의 도둑님 때문에 얼마나 골탕을 먹고 금전상으로도 손해를 보았는지 몰랐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놈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왜 하필이면 해골이 복잡하고 불쌍한 사람에게 그런 짐을 실었을 까.
   ( 제기랄 안 되는 놈은 앞으로 넘어저도 굴러온 돌이 뒤통수를 깬다더니, 19의 말마따나 고사를 지내지 않아서 그럴까. )
   가만히 생각하니 주차장에서 좋지 않은 일은 자기에게만 생기는 것 같았다. 남들은 위반을 하더라도 딱지를 떼이지 않고 잘도 해결을 본다는 데, 자기는 어찌된 영문인지 3천 원짜리 짐을 실으려 갔다가 3만 원짜리 스티커에. 적재량의 두 배가 넘는 만 5천원짜리 짐을 싣고 울산으로 가다가 2만 4천 원짜리 앞 타이야를 파스 시킨 것 하며 하나하나 따지자면 목이 메이는 일 뿐이었다.
   이 놈의 팔자는 누가 만들어 준 것인지 되가 들어오면 반드시 말이 나가야 하는 일 뿐이니. 그렇다고 입을 봉하고 있을 수도없는 노릇이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수사관의 머리가 돌대가리라 해도 도둑인지 아닌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한 눈에 판단할 수 있을 텐데, 무슨 다른데 꿍궁이 속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도무지 사람을 놓아 줄줄 모르고 애를 먹였다. 하다 못해 몇 시간 전에만 보내 주었더라도 동료들을 잡고 사정이라도 해 보았을 텐데 아무도 없는 지금 이 시간에 어디에 가서 돈을 구한단 말인가.
   강희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아무도 없는 사무실 마루바닥에 누워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이 밤이 지나면 또 하루의 일당이 훨씬 넘는 입원비가 붙는다.
   ( 유모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 까 ? 물론 가난한 주인이 입원비를 구해오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겠지. 어쩌면 기다리다 못해 다 나은 유진을 침대에 눞혀 두고 달아 났을 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그녀는 천성이 착하고 눈물이 많았다. 그래서 그 고생을 하면서도 강희의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전화벨이 몇 번째 울리고 있어도 강희는 수화기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깊은 생각 때문에 벨 소리를 듣지 못했으나 나중에는 그것을 느끼고 더욱더 수화기에 손을 대지 못했다. 지금 이 시간에 일 전화라고 믿어지지가 않아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 아빠 또 잠이 드셨나 봐 !  오래토록 전활 안 받는 걸 봄."
   " 아아 무얼 좀 생각하느라고...."
   강희는 여러번 망설이다 할 수없이 수화기를 들고 진땀을 흘렸다.
   " 아주머니 죄송하지만 하루 밤만 더 수고해 주십시요. 오늘은 아무래도 너무 늦어서 ....그러니 내일 퇴원을 시킵시다.."
   " 아이 아빠. 퇴원은 벌써 했어요."
   " 아니, 퇴원을 하다니....그럼 입원비는....?."
   강희는 무의식 중에 그런 말이 튀어 나왔다.
   " 입원비라니요 ? 그럼 아빠가 입원비를 내지 않으셨단 말이예요 ?."
  어찌된 영문인지 유모가 도로 강희에게 물어 왔다.
   " 참 이상하네요. 병원 창구에는 입금이 되었으니 퇴원을 하라든데.... 어쨌든 일이 끝났으면 빨리 들어 오세요. 유진은 지금 막 잠이 들었어요. 방금 우유를 먹구요."
   강희는 멍청한 얼굴이 되어 한참 동안 수화기를 놓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다가 베니야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 누구일까 ? 유진의 입원비를 지불하고 간 사람이.)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입원비를 내어 줄만한 사람이 기억나지 않았다. 만길이 그 놈은 절간으로 들어 간 그의 연인이자 강희의 누이 동생인 순영을 찾으려 떠난 후 여태 소식조차 없는 형편이 아닌가.
   ( 아 그 여인이 아닐까 ?.)
   그는 언듯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에게 요즘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온 전체불명의 여인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유진의 입원사실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이제 겨우 강희의 소재 유무를 물어 올 정도의 여인이.
   그렇다면 누구일까 ?.
   미스 정 ? 그럴는 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씨받이로 자기의 애기를 빼았기고 부터 얼마나 많은 모성애에 가슴 알이를 하고 있는지. 그런 사람에게 그의 애달픈 심정을 하나도 헤아려 주지 못하고 단지 벌어지지도 않은 돈 몇푼 때문에 태종대 소나무 아래 홀로 팽기쳐 둔 채 주차장으로 돌아 온 행위가 또 다시 그의 얼굴에 뜨거운 부끄러움을 가져왔다.
   ( 나는 왜 이렇게 졸렬할까. 이래서 모두들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일까 ?.)
   도무지 대범한 데라고는 한 군데도 없다. 비록 내일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체면을 차릴 줄 알고 인내하여야 하는데, 쌓여만 가는 채무를 생각하면 또 금방 마음이 바뀌여 졌다.
   그는 어쩌다 이렇게 주지 못하는 인간이 되었는지, 두고두고 갚아도 끝도 한도 없는 인생살이가 서글프기 비할데 없었다.
   다음 날 강희는 더욱더 쫓기는 심정으로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다. 더 이상 안의하게 주차장에서 짐을 기다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를 더 있어야 날이 밝아질 것인지 사방은 아직도 어둠에 쌓여 있었다.
   그는 미등만 켠 채 잠시 어디로 갈 것인지 망스렸다.
   엔진은 벌써 열이 올랐는지 처음보다 다소 조용해 졌다.
   ( 어디로 가야 하나 ?.)
   막상 차에 올랐으나 그에게 짐을 실어 줄만한 보장된 곳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마냥 그렇게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차고를 빠져 나왔다.
   거리는 죽음의 도시처럼 한산했다. 그처럼 붐비는 대낯에도 어느 누구 하나 짐을 실어 달라고 손을 드는 사람이없었는 데,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은 이 오밤중에 누가 차를 잡으라. 그게 또 어쩌면 정신 나간 짓이 아닐까. 그렇지 않아도 자기의 사정을 모르는 놈들은 되어 놓고 그를 돌았다고 하지 않든가.
   강희는 남이 볼까 봐 응근히 겁이 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미리 약속이라도 해둔 짐을 실으려 가는 것처럼 바쁜 듯이 속력을 내어 차를 몰았다. 차가 어디로 가고 있는 지 자신도 몰랐다. 그저 가는 데로 달릴 뿐이었다.
   " 어이. 용달."
   어디 쯤이었을 까. 누가 뒤에서 부르는 것 같아서 강희는 속력을 줄이고 빽미러를 보았다. 어떤 사람이 손을 흔들며 이편으로 뛰어 오고 있었다.
   " 이 차. 어디로 갑니까 ?."
   " 네 ?."
   " 짐을 실으려 가는 중이냐 구요 ?."
   " 아 네....아닙니다."
   강희는 어떻게 대답을 해여 좋을 지 몰라 어물거렸다.
   " 배추 한 바리 싣겠소 ?."
   " 네. 배추요 ?."
   감전 새벽시장에 가서 싣고 충무동에 내려주면 7천 원을 주겠다고 했다.
   " 됐소, 안 됐소 ?."
   " 됐습니다."
   차는 교대 앞을 지나 거제리리 평화유지 앞에 서 있었다.
   " 그럼 갑시다."
   " 네."
    강희는 그렇게 대답을 하고도 얼른 차를 출발 시키지 못했다. 감전 새벽시장이라고 하니 차를 돌려 만덕 터널로 가야할지, 그렇지 않으면 가야로를 타야할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손님 어디로 갈까요 ?."
   " 여태 뭘 들었소 ?."
   " 아 그게 아니라....."
   강희는 응급결에 차를 출발 시켰다.
   " 아, 어디로 가는 거요 ?."
   차가 거제리 굴다리 앞을 통과하자 대뜸 손님이 물었다.
   " 감전 새벽시장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
   " 그럼 만덕 터널로 가야지."
   " 아 네. 그래서...."
   차는 어느덧 하마정 가까이에 와 있었다. 거기까지 와서 다시 차를 돌려 만덕 고개를 넘어 간다는 것도 우서운 일이어서 강희는 또 다시 어물거렸다.
   " 그대로 갑시다."
   차가 하야리아 후문을 지나가야로에 들어서자 강희는 겨우 제 절신이 돌아왔다. 그는 정신이 돌아오자 이제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 서글픔 후에는 또 알지 못할 분노 같은 것이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택시는 손님을 가려가면서 태운다든데 이 놈의 용달은 어찌된 신판인지 하찮은 채소 장수한테까지 이렇게 쩔쩔 매어야만 하는가. 강희는 다 같은 돈을 투자하여 시작한 사업을 잘못 선택한 자신이 원망스럽고, 또 무사고 운전을 15년이나 넘게 하면서도 남의 자가용만 운전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흔해 빠진 개인택시 한 대 배당 받지 못하고 남의 돈을 긇어 뫃아 차를 구입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한 당국의 처사에도 불만이 컸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그를 서글프게 한 것은 하나 같이 그를 궁지로만 몰아 넣는 자신의 운명이었다.
   ( 내 생애에 무슨 몹쓸 죄를 저질렀기에 이렇게 가혹한 삶을 주는가 ? 신이여 입이 있다면 말을 해 주오.)
   절에 가서 부처님을 찾지 못한 것도. 교회에 가서 예배를 올리지 못한 것도 순전히 너희들이 나에게 너무나 각박한 생활을 주었기 때문이 아니냐.
   " 이 째째한 병신들아."
   속으로 신을 원망하며 욕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중얼거리 듯 강희의 입 밖으로 새어 나오자, 손님은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 하며 주례 삼거리에서 차를 세우라고 했다.
   " 네. 차를 세우라구요 ?."
   " 내 더러워서 재수가 없을라니까 새벽부터..."
   " 아니 왜 그럽니까, 손님 ?."
   강희는 영문을 몰라 그렇게 물었다.
   " 내 당신 차는 안 타겠소. 얼른 차를 세워요."
   강희는 어리둥절 하여 차를 세웠다.
   " 내 별놈 다 보겠네. 새벽부터 재수 없게스리 !."
   침이라도 뱉 듯 둘은 다 같이 그렇게 생각했다.
   손님은 내리고 문짝은 떨어져 나랄 듯 요란하게 닫혔다.
   강희는 까닭없이 화를 내고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타고 가는 차의 후미등이 멀리 사라지고 나서 한참 후에야 자기의 용달을 출발 시켰다.
   어디로 가나 ?
   차는 계속 앞으로 가고 있었다.
   개 뼈따기를 핥던 소리를 하고 내린 그 채소장수는 감전 새벽시장에 간다고 했겠다. 그렇다면 그 분 말고도 용달차에 채소를 실어갈 사람이 더러는 있겠지. 어쨌든 차가 그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가 보는 수 밖에.
   " 아니 저 건 !.'
   강희는 배추를 가득 실은 용달차 한 대가 반대편에서 힘겹게 올라오고 있는 발견하고 속으로 놀랐다. 그것이 정말 배추인지 하이빔을 켜서 확인 하고는 알지 못할 반가움에 속력을 내어 달렸다.
   저 사람은 언제 새벽시장에 갔길래 저렇게 벌써 짐을 싣고 오는 가 싶었다. 그래서 시장 앞에 도착해 보니 벌써가 아니었다. 상인들은 차를 잡지 못햐여 큰길까지 나와서 아우성이었다. 부산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십게 의심스러웠다.
   강희는 하도 차를 잡는 사람이 많이 몰려와서 다소 우쭐하는 기분이 되어 우선 운임을 많이 주겠다 화주를 골라 옆에 태우고 시장 안으로 들어 갔다.
   이게 웬일일까. 화주의 안내로 안으로 들어 서자마자 벽에 부딛친 듯 눈 앞이 꽉 막혔다. 부산의 화물차들은 거기에 다 모인 듯 배추를 건물 천정까지 가득 실은 대형 트럭이 수도없이 즐비해 있는 좌우로 벌떼처럼 각종 소형 트럭과 용달차들이 달라 붙어 짐을 받아 싣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를 파고 들어 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 아니 여기는 처음이요 ?."
   " 네, 그렇습니다.."
   " 양보는 바보요 !. 무조건 밀고 들어갑시다."
   강희는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아닌게 아니라 짐을 싣고 나오는 차에 양보를 하다 보니 목적지가 얼마 아닌데도 30분이 넘게 걸린 것 같았다. 시간이 걸린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배추 600여 포기에다 장소를 서너  군데 옮기면서 무우며 각종 채소류를 산더미처럼 싣고 나오는 데 1시간이나 더 걸렸다. 그래서 목적지인 반송에 도달하니 9시 반이 훨씬 넘었다.
   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은 그 놈의 택시 때문이었다.
   놈은 아직도 주례 삼거리에서 가야로 입구까지 1톤 미만의 트럭이 1차선에 다녀도 좋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지. 되지 못한 용달이 무엄하게도 1차선을 주행하고 있다고 한참 동인 크락숀을 치고 라이트를 깜박였다. 그래서 강희가 2차선으로 피해주니까 이제는 차를 앞질러 막으며 택시가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속력으로 용달의 진로를 방해하고 나섰다.
   놈의 팔에는 모범 운전사의 완장이 채워져 있었다.
   손님이 타고 있지 않아서 저렇게 여유 만만하게 골탕을 먹이고 있는 것인지, 당장 뛰어 내려 놈의 멱살을 잡고 길 바닥에 팽게쳐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이 강희에게 있었다. 그의 차에는 운전대 바닥에 드러누운 사람 말고도 두 명이나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시비를 하다가 정원을 초과한 것이 탈로라도 난다면 손해는 결정적으로 이편에 있기 마련이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만덕 터널로 가는 건데.)
   그것도 한 화주가 짐을 너무 많이 실었기 때문에 만덕 고개를 차고 올라가기가 무리일 겄 같다고 하기에 이 길을 택한 것이었다. 그러니 잘 못은 기사를 갖고 노는 화주측에 있었다.
   ( 제기랄 어쩌다 용달이 이 모양 이꼴이 되었나 ! )
   강희는 응근히 부화가 치밀며 또 다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서글픈 생각은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반송 시장 통에서 서너군데 짐을 내려주고 나니 10시가 훨씬 넘었는 데도 운임이라고 주는 것은 겨우 만 원이었다. 물론 메타상으로는 5천 원이 될가말가 하였지만 소요시간은 5시간이 더 걸렸다. 그러니 운임을 주는 측도 받는 측도 적다 많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5시간에 만 원이면 한 시간에 2천 원꼴이다. 천만 원이 훨씬 넘는 자본금에 한 사람의 노동을 포함한 수입이 한 시간에 2천원이라면, 이건 누가 들어도 한숨이 나오지 않겠는 가. 그것도 순 이익이라면 모르겠으나 거기에는 상당한 보험료와 세금과 또 유류대 외에도 차량의 검사비와 감가 삼각을 빼고라도  주차장비 등 하나하나 들자면 끝이 없었다. 그래도 당국에서는 메타대로 요금을 받지 않는 다고 아우성이며 1년에 한 번씩 그 망할 놈의 허무앵랑한 요금 메타기를 수리 해야 하고 검사를 받기 위해 상당한 시간은 물론 또 그에 따른 수수료도  내어야 한다.
   가만이 생각하면 당국에서는 가장 일선에서 수고를 하는 사람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그에 따른 부서만 살지우기 위하여 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강희는 담배 한 까치를 거내 물었다. 역시 화풀이를 할데라고는 담배 뿐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통이 터지는 일 뿐이라서 그는 연거프 또 한 까치를 꺼내 물었다. 생각 같아서 는 당장 말할 몸의 용달차를 태종대 바다 속으로나 징게장으로 처넣어 버리고 싶었지만 솔 잎을 먹던 송충이가 그 솔 잎에 방충제가 처졌다고 해서 입을 봉할 수 없는 노릇이어서 더욱 분통이  터지기만했다.
   속으로야 곪아서 터지든 말든 차를 가만히 세워둘 수는 없는 형편이라 그는 바로 주차장늘 들어갈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다시 감전 새벽시장으로 가볼 것인지 잠시 망스렸다.
   지금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적어도 대여섯 대가 자기 앞으로 순번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것이 다 바져나가자면 오후 2시경이나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지금도 그렇게 일거리가 있을까.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복잡하긴 해도 주차장에서 가만히 짐을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으나 과연 새벽시장에 지금까지 짐이 있으리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만약 일이 없어 그 먼길에 가서 허탕을 치고 돌아 온다면 그날 일은 완전히 잡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강희는 또 가는데까지 가볼 생각으로 일단은 주차장을 향해 차를 몰았다.
   " 어저씨. 아저씨."
   석대 꽃 밭 버스 정유장에서 웬 아주머니가 손을 흔들었다.
   " 이 차 어디로 가세요 ?."
   " 이 차는 용달인데요."
   혹시 자가용인 줄 알고 가는데까지 공짜로 태워다 달라는 줄 알고 강희는 그렇게 말했다.
   " 네, 알고 있어요."
   짐은 화분 네 개였다.
   빈 택시를 기다리다 못해 지나가는 용달을 잡은 모양이었다.
   강희는 얼른 화분을 뒤에 싣고 넘어지지 않게 밧줄을 밀어 붙혔다.
   " 집이 망미동이라고 하셨습니까 ?."
   " 네, 통합병원 앞이에요."
   그는 차에 오르자 마자 습관처럼 요금 메타를 꺾었다.
   석대에서 망미동까지는 통상 4천 원을 받는다. 보아하니 비록 짐은 짐 같지 않으나 부인이 마음이 좋게 생겼을 뿐 아니라 돈도 많아 보이니 천 원 한 장은 더 내어 놓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벌써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감전 새벽시장에서 반송까지 5시간이 걸려 채소 한 바리에 만 원밖에 받지 못했으나  돌아오는 길에 4천 원짜리 짐을 실었으니 결과작으로는 만4천 원을 번셈이다. 시간도 12시가 되려면 아직도 두 시간이나 남았다. 잘만하면 이대로 주차장으로 들어가더라도 한 바리 정도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것이 비록 3천 원짜리라 하더라도 오늘 오전에는 만7천 원을 버는 셈이다 . 이는 전에 없는 일이다.
   그렇게 속으로 계산을 하다가도 그는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늘 손님이 얼마를 줄 것이라고 예상만 하면 상상외로 짜게 운임을 내어 놓고 달아나는 경우를  여러번 당해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날도 생각을 다른대로 돌리려고 애쓴 보람도 없이 부인은 요금메타를 보고 3천 원을 내어 주면서 거스름 돈을 요구했다. 메타에는 2천2백원이 올라 있었다.
   " 강희는 기가 찬 얼굴로 돈을 받아쥔 채 멍하니 서 있었다.
   " 잔돈이 없어요 ?"
   부인은 재촉하듯 짜증스럽게 물었다.
   " 아, 네."
   강희는 얼른 천 원짜리 한 장을 도로 내어 주었다.
   이런 멍청하고 순진한 부인에게 탔다고만 하면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3천 원이 용달의 운임이라는 것을 설명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 나도 잔돈이 없는 데 ?."
   " 그냥 두십시요."
   강희는 차에 올랐다.
   " 허 허 !."
   그는 알지 못할 웃음을 속으로 흘렸다. 그렇게 웃다가도 언듯, 어쩌면 저 여인이 현실에 아주 적합하게 용달 요금을 잘 책정해 주신분의 아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는 또 거룩하게도 당국에서 잘 만들어 준 법을 준수한 죄로 또 다른 선량한 사람이 본의 아니게 원망의 눈총을 받는 것이 아닐까 하여 죄송스럽기도 했다.
 
   이날 밤 강희는 어깨가 문어져 내리는 것 같은 통증에 눈을 떴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모로 쓰러졌다.
   " 아니 웬일이세요. 이 밤중에..... ?."
   그것은 유모도 묻고 싶은 말이었다.
   " 혹시 아기에게 무슨 일이라도....?.
   유모는 안스러운 얼굴로 고개만 흔들었다. 강희는 다시 한 번 일어나려고 시도 하다가 쓰러졌다. 엉덩뼈가 아파서 도저히 몸을 추스릴 수가 없었다.
   정작 밧줄이 끊어져 길바닥에 떨어졌을 때는 그렇게 아픈 줄은 몰랐는데 이제는 어깨보다 엉덩이에 더욱더 통증이 많이 왔다.
   ( 왜 왔을 가 ?.)
   유모는 요를 펴고 강희를 그 위에다 눕혀 주고 말없이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애기에게 무슨 일이 있어 건너온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막상 들어와 보니 사람이 끙끙 앓고 있어서 차마 돈 이야기를 하지 못하였으리라.
   강희는 이를 악물고 책상 다리를 잡고 일어 나서 벽에 걸어둔 바지을 당겼다.
   비록 막탕에 목욕탕으로 가는 고물을 태산 같이 싣고 바를 메다가 줄이 끊어져 다치긴 하여도 새벽4시부터 헤매어서인지, 그렇지 않으면 운이 좋은 날이라 그런지 돈은 3만 원이 훨씬 더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두 달째 밀린 유모의 급료가 되기에는 너무나 적은 액수였다.
   " 아니 자다 말고 돈은 왜 세고 그러세요. 아빠 ?."
   물수건을 들고 안으로 들어오던 유모가 눈이 뚱그래서 물었다.
   "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요즘은 벌리가 좀 시원찮아서....자 이거라도 우선...."
   "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자다 말구요. 정말 열이 많으신가 봐 !."
   유모는 물수건으로 강희의 이마에 돋아 난 땀방울을 찍어 냈다. 그녀는 아기의 오줌을 누이려고 일어났다가 앓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건너 왔단다.
   " 아빠.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돈이 억지를 부린다고 벌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 정말 죄송합니다. 제때에 드리지 못해서."
   "아이 아빠. 돈 돈하지 마세요. 전 돈때문에 이 집에 온게 아니에요."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남의 아기 기저귀를 빨아 주고 남남인 남자의 밥까지 지어주고 빨래를 해준단 말인가.
   듣고 보니 말속에 뼈가 있는 것 같았으나 우선 빨그레한 뺨과 속살이비쳐 보이지 않는 데도 살아 움직일 듯이 뚜렸한 젖가슴이 밉지는 않았다.
   " 어떠하지요. 약방은 문을 다 닸았을 텐데요."
   강희의 뜨거운 눈길을 피하며 여인은 물었다. 손은 이불자락을 만지작그리고 있었다.
   갑자기 분위가 이상해졌다.
   강희의 이마를 문지르는 여인의 손에 가벼운 경련이 일었다.
   브라자를 하지 않아서일까.
   여인의 잠옷 속에 든 젖가슴이 강희의 눈 앞에 다가와 잡아 잡수라는 듯 사나이의 욕정을 자극했다. 실로 얼마만에 느껴보는 감정인지 몰랐다.
   그는 아내가 떠난 후 여태 여자라고는 몰랐고 가까히 하기를 피해 왔다. 그보다도 산다는 것에 지쳐서 그만한 여유가 없었는 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 보다도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인지도 몰랐고, 또 언젠가는 다시 돌아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 유진 어머니 "
   " 어머나 ! 저를.....?."
   강희는 물수건을 쥔 여인의 손을 잡았다. 어느편 때문인지는 몰라도 잡히고 잡은 둘의 손을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 그만 건너가 주무세요."
   강희는 잡았던 손을 얼른 놓았다. 더 이상 함께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 약은 드시지 않아도 되겠어요. 아빠 ?."
   " 괜찮을 겁니다. 한숨 더 자고나면."
   차마 짐을 싣고 밧줄을 메다 그것이 터져서 길바닥으로 나가 떨어졌다는 말은 할 수가 없어서 그저 무거운 짐을 싣느라 몸살이 조금 난 모양이라고 했다.
   " 네, 그랬군요. 전 감짝 놀랐어요. 아빠가 앓으시는 소릴 듣구요."
   " 여인은 마치 자기의 남편을 대하 듯 다정스럽게 이불을 다둑그려 주면서 속삭이 듯 말했다.
   " 아줌마 ?.
   ( 이 남자가 조금 전에는 유진 엄마라 했다가 이제는 왜 또 갑자기 아줌마래 ? )
   유모는 금방 섭섭한 얼굴이 되어 빤히 강희를 내려다 봤다.
   "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떠나세요. 제 인생은 남이 살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 무슨 말씀이세요 ?."
   " 다만 인정 같은 것에 끌려 일자리를 옮길 수 없는 처지라면 말입니다."
   " 아이 아빠. 전 지금의 이 일이 직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 그렇다면....?.
   여인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한참 후에 그녀는 엉뚱하게도 유진을 자기에게 줄수 없겠냐고 물었다.
   " 유진 말입니까 ?."
   " 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용서하세요."
   " 아 아닙니다. 역시 아기 때문에 떠나지 못하셨군요. 하지만 그 점은 염려 마십시요. 제가 달리 유모를 구해 볼테니까요."
   말은 그렇게 해 놓았으나 거기에는 상당한 문제가 따랐다. 그래서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시름에 젖어 있는 데 머리 맡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그 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습니다. 용서하십시요. 그러나 이제는 아무 부담감을 가지지 마시고 이 불행의 그늘에서 벗어 나도록 하세요."
   " 아빠. 그게 아니에요."
   유모는 안타까운 듯 어깨를 흔들면서 변명을 하려고 하였으나 강희는 입을 열 틈도 주지 않고
   " 아주머니의 심정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저의 가난 때문이지요. 나에게는 물론 아기를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신데 대한 대가는 너무나 보잘 것 없고, 그마저 제 때에 드리지 못하였으니 나로서는 더 이상 무슨 염치로...그러나 고생을 하시는김에 이삼 일만 더 참아 주십시요."
   " 아빠. 전 유진을 달라고 했지 이 집을 떠나겠다고는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것은 한갓 인간의 양심을 미화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으리라. 강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디에 가서 돈을 좀 구하나.
   이제 당장 급한 건 두 달치 밀린 유모의 급료다.
   강희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때문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여니때 같으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골아 떨어져 있을 시간이다.
   오늘은 새벽 4시에 일을 나가 돈은 제법 많이 벌어서 밧줄이 끊어져 몸을 다쳤어도 별로 아픈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유모가 다녀가고 부터는 하찮은 몇 푼의 수입 때문에 아픔의 고통을 잊고 있은 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더욱이 그를 슬프게 하는 것은 세월이 자기에게 어떤 고통을 주더라도 그 내일에 또 다시 툴툴거리는 용달차를 몰고 거리로 나서야 한다는 현실이다. 그것이 훗날 자신의 삶에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되어 준다면 거기에는 기쁨 같은 것이 있겠으나 아무리 강건너 저편을 보아도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허망한 질곡 뿐이었다.
   유진이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것이 자기의 혈육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아리송한 일이 많은 데도 억지로 떠맡아 많은 양육비를 들여가면서 키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나. 현상 유지도 되지 않은 용달차를 가지고 과중한 보험료와세금, 그리고 돈 벌이가 되던 안 되던 날이면 날마다 물어야 하는 주차장비와 엎친데 덮친격인 교통비 등등 이것 저것 주고 뜯기고 남는 것은 빈털트리에 쌓여가는 빚 뿐이니 이 또한 남을 위해 사는 꼴이 아니겠는 가.
   빚을 내어서까지 투자를 하여 가장 일선에서 땀범벅이 되도록 일을 한 사람의 수입은 항상 불투명하고 조그마한 관계로 뒷전에 앉아 책상만 지키고 앉아 있는 양반의 수입은 꼬챙이에 뀌어 놓은 것처럼 야무진 것이다. 그것은 한 국가가 법이라는 이름하에 엄하게 규정을 지어 놓았기 때문에 아무도 어길 수는 없는 것이다. 돈을 적게 벌었다고 해서 정해 놓은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빚을 내어서라도 보험료는 물어야 한다. 그리고 또 고의이던 실수던 더 많은 벌금을 물지 않으려면 돈을 꾸어서라도 해결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는 다면 내일로 당장 입을 봉해야 할판이니 이거야 말로 울며 겨자 먹기의 인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강희는 몇 번인가 넘어지려고 비틀거리다가 겨우 책상을 잡고 일어났다.
   창 밖은 아직도 그의 마음만큼이나 어두웠다. 그러나 도어 넘어 들창 위로 희미하게 불빛이 넘어 오고 있었다. 유모의 방인지 식당 옆 학생의 방인지 문을 열어 보지 않고는 판별하기가 어려웠으나 그는 그에 개의치 않고 책상 위를 더듬어 손목시계를 찾아서 불빛에 비춰 보았다.
   시간은 어느새 4시가 되어 있었다.
   강희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불빛은 부엌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새들어 사는 두 집이 함께 사용하는 곳이어서 누가 거기에 들어 있는 지 알 수는 없었다.
   강희는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소리나지 않게 수돗가에 나가 세수를 하고 돌아와 부랴부랴 옷을 찾아 입었다. 일을 하려 나가려는 것이다.  혼자 고민을 하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역시 돈을 벌지 않고는 해결 될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것이 비록 이 사회의 제도가 잘못이 되어 그의 생에 멍에를 씌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한 푼이라도 더 돈을 버는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헤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친 곳의 통증은 어제보다 더한 듯 했고 몸은 천건만근 무거웠다.
   조금 움직이면 나을 건지. 지금의 이 상태로 라면 겨우 운전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내친 걸음이니 나가 보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소리나지 않게 방문을 열었다.
   " 어머나 !."
   " 아니 아주머니가 ? "
   강희는 방문에 받혀 마룻바닥으로 떨어지려는 차반을 간신히 받았다. 급하게 도어를 열었더라면 박살을 내고야 말았을 차반에는 조금 기울러진 커피 한 잔과 달걀후라이가 뾰쪽이 내다보이는 토스트 두 줄과 함께 옆으로 솔려 있었고, 때 아닌 놀라움에 옆으로 쓰러지려던 유모는 잠시 강희의 품속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 어머나 !."
   그래서 유모는 또 한 번 놀라며 사나이의 품에서 빠져 나와 도로 차반을 받아 들었다.
   " 죄송해요. 하지만 노크를 할 틈도 없었어요."
   유모는 소녀처럼 수집어 하면서 한 손으로 옷깃을 여미었다.
   " 아 아닙니다. 근데 이건 ?."
   " 드시고 나가세요. 어제 아침에는 정말 미안 했어요 ! 다음부턴 일찍 나갈 일이 있으심 미리 이야기를 해 주셔요. 그래야 진지를 지어 드리지요."
   " 아닙니다. 이 밤중에 진지라니요.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밥이야 때가 되면 사먹으면 되니까요."
   " 그래도 집에서 먹는 거와 같나요."
   마치 아내가 남편을 생각해서 하는 말 같았다.
   강희는 그러한 유모가 못마땅 하지는 않았으나 어쩐지 마음에 부담감 같은 것이 생겨서 꺼림직 하기도 했다. 그러나 토스트를 먹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나니 배도 든든한 것 같고 잠을 설쳐 흐리멍텅 하던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밖은 여전히 어두웠고, 그 어둠 속으로 가끔가다 라이트를 켠 자동차들이 지나가기도 했다.
   오늘은 어디로 갈 것인가 망설일 것도 없이 만덕 터널을 향해 차를 몰았다. 감전 새벽시장으로 가려는 것이다.
   낮에는 40분이나 넘어 걸리던 거기까지 그렇게 달리지는 안 했는 데도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어제처럼 그렇게 붐비지는 않아도 짐은 금방 실을 수 있었다.
   다행이 화주는 남자가 두 분이서 배추 700포기를 그들이 실었다. 처음엔 강희가 올라 배추를 몇 개 받아 실었다. 그러자 한 아저씨가 내려오라고 했다.
   " 보아하니 배추는 처음 실어 보는 모양인데, 채소를 실어 먹으려면 짐 짜는 것부터 배워야지."
   그러면서 그는 빠른 손 놀림으로 배추를 받아 싣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700여 포기를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칼로 두부를 배 듯 반듯하게 쌓아 올렸다. 정말 기막힌 솜씨였다.
   " 자 갑시다."
   조금 있으면 길이 막혀 1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하면서 화주측에서 서둘러 댔다.
   손발이 맞아서인지 골목은 쫍았으나 짐을 내리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원래 하차지가 복잡할 수록 타인의 불편을 사지 않으려고 서두러는 것이 상례이긴 하여도 오늘처럼 빨리 짐을 싣고 내려보기는 처음이었다. 운임도 8천 원이나 주었다.
   " 기사양반 조금 복잡하더라도 이 쪽으로 가시오."
   해안통을 끼고 냉동회사 뒤에 가면 지금 쯤 한참 배에서 싣고 온 마늘을 경매하고 있을 것이라고 친절하게 일러 주었다.
   과연 거기에 가보니 온 해안통이 마늘 투성이었고, 한 쪽 구석에서는 경매를 하고 있었으며 먼저 물건을 구입한 마늘 장수들은 용달차를 잡지 못하여 아우성이었다.
   강희는 충무동 새벽시장에서 부전시장으로 가는 마늘을 50접이나 실었다. 운임은 화주가 주는 대로 6천 워늘 받았으나 하도 길이 복잡하여 그곳을 빠져 나오는 데만 무려1시간이나 걸렸다 .그래도 그는 부전예식장 옆으로 해서 부전역 앞으로 가는 도중 손을 드는 사람이 있어서 차를 세웠다. 손을 들어서 세웠다기 보다 앞차에 밀려 잠시 차가 멎자 어떤 남자가 무조건 도어를 열고 올라 앉으면서 안으로 들어 가자고 했다.
   " 무슨 짐인데요 ?."
   강희는 자동차들이 꽉 막혀 있는 비들기 예식장 옆으로 차머리를 돌리며 다소 짜증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 수박이요."
   " 네, 수박요?."
   얼마를 실을 것이라는 말도 없이 운임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했다.
   강희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어디까지 가느냐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운임을 달라는 대로 주겠다는 사람치고 제대로 돈을 내어 놓는 사람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짐 치고 대게 과중한 것이 아니면 반드시 상하차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더욱이 속이 상하는 것은 누구 약을 올리자는 것인지 옆에 사람이 타고 있는 데도
   " 이 차 어디로 가요 ?"
   동상동 보다 훨씬 가까운 금사동까지 6천 원에 되었느냐고도 했고, 같은 방향이면 같이 싣고 가자고도 했다.
   그러자 밉게도 옆에 탄 화주가
   " 안 됩니다."
   자기 짐만 하더라도 한 차가 넘는 다고 거절을 했다. 그래도 과일 장수는 차에 매달리기까지 하면서 돈을 더 줄테니 합승을 하자고 했다.
   " 제엔장 ! ."
   무의식 중에 강희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 나오자 옆에 탄 화주는 또 자기 나름대로
   " 그러게 말이요. 길이 이렇게 막혀서야 원 조금만 양보을 하면 될 텐데."
   하고, 엉뚱한데 불평을 했다.
   생각은 정말 자유인 모양이었다.
   다른 차들이야  빠져나가든 말든 길 한 가운데 세워두고 짐을 싣고 있는 용달차와 무슨 일을 하려 갔는 지 길 위에 꽉 들어 차게 차를 세워두고 달아난 자가용들 때문에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 나갈 틈도 없었다.
   앞뒤 좌우를 돌아 보아도 꼬리를 문 차들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나 앞선 차가 빠져 나가기를 기다리는 다른 차의 기사들은 강한 면역이라도 생겼는지 모두들 듬듬히 앉아 있기만 했다. 개중에는 아예 시동을 껀 채 잡담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시동을 꺼지 않은 분들은 아직도 부전시장의 물이 들던 사람인 모양이었다.
   강희도 덩달아 시동 껐다. 그러자 어느 쪽에서 틈바구니가 생겼는지 차가 조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강희는 담배를 꺼고 시동을 걸었다.
   " 아아니 저 새끼가 !."
   " 화주의 입에선지 기사의 입에선지 그런 욕설이 튀어 나왔다.
   지하실에서 청과물을 가득 싣고 나오던 용달차 한 대가 강희의 차가 빠져 나가기도 전 차머리를 깊숙히 집어 넣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꼬리를 물고 움직이던 차들이 다시 꼼작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어느 누구하나 그 사람을 나무라지 않았고, 언젠가는 또 가겠지 하는 표정들이다. 그것은 어쩌면 가타부타해 보았자라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자기도 그런 잘못을 저지럴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자인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답답한 사람은 중간에 틀어 밖인 리어크군과 무거운 과일 상사를 들고 나오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먼저 리어크군이 욕설을 퍼부었다.
   " 보소 보소. 당신 눈이 있소 없소 ?."
   " 눈 없는 놈이 어딨소."
   주제에 입은 있어 용달차 기사가 한 마디 받았다.
   " 그래. 눈깔이 바로 밖힌 놈이 차를 그따위로 몬단 말이요 ?"
   이번에는 자두상자를 다른 용달차의 저재함 귀퉁이에 얹어 두고 차가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던 과일 장수 아저씨가 한 마디 거들었다.
   " 내차가 와요 ?."
   " 이 양반아. 내 차가 와요라니. 눈깔이 있으면 똑똑히 보소. 이래 가지고 다른 차가 우째 빠져 나가겠소 ?."
   그러자 그도 할 말이 없는 지 입을 쭉 다문 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었다.
   " 이 양반아. 먼산만 바라 볼끼 아니라 차를 뒤로 좀 빼소."
   " 뒤로 뺄데가 어딨소 ?."
   똥낀 놈이 성을 낸다고 용달기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실 그 말이 맞기는 맞았다. 그의 뒤에도 빈틈없이 지하에서 올라오는 차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 재미 큰 소리는 !."
   리어크군이 나서서 꼬리를 물고 늘어선 차들을 조금씩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래서 차가 조금 빠져 나가는 가 했더니 몇 바퀴 굴으지 않아서 또 다시 멎었다. 이번에는 지하 상가에서 빠져나오는 차가 잘 빠지게 강희가 차를 우측으로 바싹 붙이는 바람에 그를 뒤따라오던 픽엎 한대가 강희의 차를 앞지르려다 마주오던 자가용과 정면으로 서 버렸다.
   " 당신 부전이 처음이요 ?."
   잘 빠져 나가려던 차가 멎어 버리자 옆에 탄 화주가 언잖은 표정으로 물었다.
   " 네 그렇습니다."
   강희는 대단한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풀이 죽어 대답했다.
   " 여기서 양보는 미덕이 아나요. 자손이란 말이요. 자손."
   자기만 손해라는 뜻인 모양이었다.
   "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강희는 피식 웃었다.
   " 보아하니 기사양반은 모아 둔 돈이 없겠구만."
   " 네. 근데 그걸 어떻게 잘...?."
   " 요즘 세상에 마음이 고우면 돈을 벌 수가 있나요. 허 허."
   과연 과일 장수 아저씨는 자기의 철학대로 운임을 짜게 주었다. 중간치의 수박 2백 개와 복숭과 자두 상자 18 개에다 토마토 2 가구면 적어도 동상동까지 육칠천 원은 받아야 하는데 겨우 5천 원으로 떼우고 말았다. 지하실에 수박을 실으려 들어 들어 가느라고 시간이 걸린 것은 이쪽 사정이요, 짐을 적게 싣든 많이 싣든 운임을 주는 것은 저쪽 사정이었다. 시간이 많이 걸렸건 적게 걸렸건 그래도 나라에서 정해준 메타 보다야 많았기 때문에 어디 가서 하소연 할데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주차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부전으로 내려왔다. 주차장에서 언제까지 짐을 기다리고 있느니 보다도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편이 나을 것 같아서 였다. 그러나 부전시장이라고 해서 항상 짐을 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도 새벽시장처럼 11시가 가까워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산했다.
   그러나 오늘 그는 부전에서 수박 세 바리를 했다. 생각하면 꿈 같이 답답한 현실이었다. 불과 몇 미터 앞에 짐을 두고 언제 거기까지 가서 짐을 실을 수 있을까 하는 답답함과 세계에서 가장 저질인 기사들만 북적대는 지옥속을 헤매다 빠져나온 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답답했다.
   그래도 그는 내일 새벽 또 다시 그 곳으로 짐을 실으려 갈 생각이었다. 그것이 비록 지옥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돈이 생기는 일인데야 마다할 수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강희는 주차장으로 돌아 오면서 이제 겨우 12시가 된 지금까지 얼마를 올렸는지 얼른 계산을 할 수 없을 정도인데 희열을 느끼며 신이 나다가도 유모의 생각이 나서 금방 풀이 꺾혔다. 몇 일을 오늘 같이 번다 하더라도 두 달치 밀린 그녀의 급료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 어디 가서 돈을 좀 구하나.)
   이럴때 만길이라도 곁에 있으면 의논이라도 해 보겠 건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그는 피식 웃었다.  놈은 틀림없이
   " 야 이 머저리 같은 인간아. 그걸 고민이라고 하고 있나 ? 고마 탁 올라 탔비라. 올라 탔비려. 그라믄 다시 유모를 구할 필요도 없고, 월급을 줄 필요도 없는 기라."
   하고, 시죽거릴게 부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그는 지금 쯤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 지 한 달 전에 다시 순영을 찾으려고 길 떠난 후 여태  소식이 없었다.
   주차장엔 오전에 나간 차들이 거의 다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7 번째로 순번을 달아 둔 그대로 였고, 변한 것이라고는 자기의 뒤로 두 대가 더 들어 와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여느 때처럼 언제 순번을 따라 일을 나갈 것인가 염려가 되거나 초조하게 기다려지지는  않았다. 오전에 올린 것만 하더라도 일당이 되고도 남았기 때문이었다.
   " 와아 놀랬눈데 ! 사흘 굶으면 남의 담을 넘지 않는 사람이 없다더니."
   19가 변소에 갔다 오더니 강희의 차에 실린 배추 나부랭이를 발견하고 떠들어 댔다.
   " 허어 85형님이 부전에 다 가다니. 그래, 배추장수는 할만 하던기요 ?."
   35가 또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자 식당 옆 나무그늘 아래서 장기를 뜨던 패들이 무슨 대단한 구경거리라도 있는 듯 이편으로 우루루 몰려 왔다.
   " 그래. 얼마나 했는 기요 ?."
   차는 복잡하지 않더냐 . 짐은 언제든지 가기만 함면 실을 수 있더냐는 등 마치 시합장에서 나오는 선수를 대하 듯 질문 공세를 펴는 측도 있었고,
   " 아이고 형님. 나는 이대로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천금을 준다해도 거기는 못 들어 가겠데요. 그저 생각만 해도 가슴이 꽉 매이는 것이......"
   가슴을 에워싸는 시늉을 하면서 늑두리를 하는 경험파도 있었다.
   " 뭐라카노. 누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돈을 그저 갔다다 주나. 자고로 용달이라는 것은 노력한 만큼 그 대가가 나오는 기라."
   소장이 선배답게 한 마디 했다.
   " 소장님요. 그거는 옛 말입니더. 지금 당장 차를 몰고 부전이 아니라 그 보다 더한데라도 가보이소. 짐 한 바리 싣자고 덤비는 놈이 있는 가."   
   " 임마야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남이 잘 때 일을 하라 이 말이다. 새벽에야 어디 가도 짐이 안 있나."
   " 그거야 85형님에게나 합당한 말이지 어디 36형님한테야..."
   " 와. 36은 돈이 싫은 사람이가 ?."
   " 돈이 싫은 사람이 어디 있는 기요. 형수님이 워낙....그래서 사람을 놓아 주어야 말이지요.히히히."
   " 저 새끼가."
   36이 집어 던진 빗자루를 19는 용케 피하며 화장실 옆으로 달아 났다.
   그때 교환양이 강희에게 전화가 왔다고 일렀다.
   " 아저씨 혹시 짐을 잘못 실어준데가 있어요 ?."
   " 글쎄....그건 왜 ?."
   " 되게 화가 나신 모양이에요. 누구냐고 물어도 소리만 버럭버럭 질러요."
   " 그래."
   강희는 다소 위압감을 느끼며 수화기를 들었다.
   " 여보세요 ?."
   " 야 이 돈에 환장한 놈아 !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생에 혈육이라고 하나 뿐인 네 동생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돈을 버는 데 눈이 어두워 니 떡 내 몰라는 식이냐.이 배은 망덕한 고아 놈아 !."
   " 아아 만길이로구나 ! 그래 거기가 어디냐 ?  언제 돌아 왔느냐 ? 지금 당장 만나고 싶다. 우리 만나서 얘기하자. 뭐라구 ? 야 임마 제발 그런 소리는 말아라. 너도 알다 십이 내 삶이 즐거워서 혈연의 정을 잊은 것이 아니지 않느냐. 나는 다만 내 가족을 부양하여야 한다는 의무 때문에 그러다 보니 도저히.....그러나 나도 통감을 한단다. 내 혈육이 아닌지도 모를 아이를 양육하기 위하여 더욱이 꿈에도 잊지 못할 내 누이 동생을 찾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죄스러움 말이다. 물론 너는 그 아이가 내 혈육이든 아이든 내 동생을 찾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이렇게 밤낮으로 뛰어도 남을 주어야 할 돈이 줄어들기는 커녕 날로 늘어만 가는데, 내어이 이럴 외면하고 길을 떠난단 말인가. 그리고 너에게는 한갓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내 다시 순영을 찾으려 나서지 않는 것은 어느 것이 내 동생에게 행복을 주는 것인지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았서야. 가난한 내가 그를 불가에서 찾아 와 고생을 시키니 보다 차라리 불도를 닦아 승불득달 하는 것이 그의 생에 행복이 되지 않을 까 해서야. 그래 나도 그렇게 믿고 있단다. 그의 행복은 이 오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너에게 있는 것도. 너는 조그마한 재력도 있고, 무었이든지 하려고만 하면 그런대로  잘 되어 주는 인생이 아니더냐. 어디 이 세상에 나만큼 마음 먹은 대로 되어 주지 않는 인생이 더 어디 있더냐. 야, 듣고 있니 ?... 여보세요. 여보세요. 야 임마 듣고 있는 거야. 만길아 ? "
   전화는 벌써 끊어져 있었다.
   " 형님 수화기를 얹어 놓고 기다려 보이소."
   35가 수화기를 받아 놓았다.
   혹시 공중 전화라 통화 시간이 넘어 자동적으로 끊어졌는지 모른다고 하면서 강희를 부축하여 쇼파에 앉혔다.
   사무실은 쥐죽은 듯 조용해 졌다.
   교환양이 타올을 내밀었다. 그것을 19가 받아 강희의 손에 쥐어 주어도 흐르는 눈물을 딲지는 않았다.
 
   심산 유곡의 밤은 깊어만 갔다.
   그토록 불어 대던 솔바람 소리도 잠이듣 듯 고요한데 가끔 가다 처마 밑에 메달린 풍경 소리가 소영을 잠 못 이루게 했다.
 
 
       잊어야 하는 슬픔이
       배반의 분노 보다 더 고통스러워
       나는 늘
       당신의 저 쪽에서 슬픔을 삼켰다.
 
       네 미움을 아무리 들추어 보아도
       지난 날의 즐거움만 떠 오럴 뿐
       끝내 너의 환상은
       내 곁을 떠나주지 않는 구나
 
       바람아 불어다오
       흐르는 세월아 내게 망각을 다오
       무정한 철새가 남기고 간 헤픈 미소를
       순정으로 착각하고 싶지 않은 이 바보에게
 
 
 
   " 얘야 아직도 그러구 있느냐 ?."
   잠이 깬 어머니가 옆에 누웠던 딸이 보이지 않자 밖으로 나와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 보고 있는 딸을 보고 눈시울를 적셨다.
   " 엄마 죄송해요 !."
   " 그래 세월이 가면 차차 잊어지겠지. 너무 상심하지 말아라. 이 불쌍한 것....!."
   날이 밝자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산사를 내려 왔다. 집으로 가는 가 했더니 그길로 동해를 한 바퀴 돌아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바다는 역시 산속 보다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았으나 짝을 잃은 듯끼럭끼럭 울며 날아 가는 갈매기들이 마치 자기의 신세처럼 슬프 보이기도 했고, 바위에 부딪혀 흩어지는 파도 또한 갈기갈기 찢어진 자기의 마음과도 같았다.
   소영은 처음 멀리 주상절리지를 바라 보고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구나 하고 놀랐다.
   해안이 문어질까 봐 총총 말뚝을 밖아 놓은 것 같은 것이 가까이에 가서 내려다 보니 멀리 육각으로 된 기둥의 윗 부분이 마치 벌집과도 같았다.
   ( 아 저렇게 아름답고 희한한 것을 그이와 함께 보았으면 얼마나 좋을 까 !.)
   하는 ,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소영은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 잊어야 해 ! 잊어야 해 !.)
   소영은 바위에서 일어 나 어머니에게 돌아 가자고 했다.
   서울로 돌아 온 소영은 수차레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았다.
   의사들은 한결 같이 용서부터 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독한 성격 때문인지 그동안 그를 위해 살아 온 것이 너무나 억울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 무렵 진급을 앞둔 아버지는 전역을 신청했고 케나다로 이민 수속을 밟고 있었다. 아예 그 놈이 살고 있는 이 땅을 떠나지 않고는 도저히 딸의 우울증이 치유되지 않을 것 같아서 였다.
   소영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할까도 여러 번 생각했으나 이제 더 이상 불효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떠나기 전 초등학교시절 강희에게서 받았던 인형을 돌려 주려고 그의 누이 동생이 출가 해 있는 내원사로 찾아 갔으나 웬일인지 주지스님은 그가 벌써 떠나고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직접 남편을 찾아 가 전해줄 수는 없었다.
   ( 어떻게 하나 ?.)
  그것을 전해주지 않고는 그것이 자기에게 있는 한 도저히 그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소영은 그 때 법당으로 들어가 부처님 앞에 결가부자하고 103배를 하면서
   수없이 "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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