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어디로 가나

9. 열 풍

오늘의 쉼터 2014. 8. 26. 02:08

열 풍
 
 
   허씨로 성씨 마져 바꾸어 버린 순영이 그처럼 애타게 그리워하며 찾고 있던 오빠, 강희는 그 무렵 주식회사 해륙실업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황변호사 집에서 나와 해륙실업으로 옮기기까지 한 달이나 걸렸다. 그 한 달 동안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여전히 직장에 다니는 채 아침 7시에 집에서 나와 저녁 7시경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마도 그 때 였으리라. 무려 12시간을 할일 없이 바깥에서 보내야 하는 일은 정말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처럼 또 아내가 부담스럽고 불쌍한 존재로 느껴지기도 처음이었다. 세상에 부부간에 비밀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는 하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허구헌날 그 모양이니 이제 남편의 체면도 체면이러니와 차마 또 다시 실직을 하였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와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홀로 슬픔을 감수했던 것이다.
   해륙실업은 항만 하역업 외에도 특별 보세운송을 겸하고 있어서 각종 중 장비와 승용차만 하여도 여러 대나 있었다.
   강희가 모시고 있는 사장님은 1.4후퇴 때 월남한 함경도 단청 태생이고 부사장은 반공 포로 출신으로 역시 같은 도의 북청 사람이었다. 그리고 전무와 상무, 그 외의 또 한 분의 상무까지도 그 지방 출신이었다.
   윗 지방에서 난 사람에게 정부 요직을 맡기기가 좀 불안한 것처럼 반대로 해륙실업에서는 이북 출신이 아니면 진급에 지장을 받았다. 그래도 남의 눈이 두러워서인지 더 이상 압녹강 근방에서 태어난 인재를 구하지 못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부장직에는 상당수의 남부지방 출신을 기용하고 있었다. 실제로 회사의 일은 그런 사람들이 처리해 나갔다. 윗 사람들은 거래처의 접대를 빙자해서 골프장이나 술집으로 돈이나 쓰고 다녔다.  특히 사장님이 하는 일은 오전 9시에 출근을 하여 결재를 조금하다가 눈에 거슬리는 숫자라도 발견하면 당장 담장자를 불러다 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다음 12시 쯤으로 해서 중앙동으로 사라진 후 무엇을 하는 지 대게 다시 사무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강희는 사장님을 중앙동에 내려 두고 차는 언제나 사무실로 돌아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노라면 보통 저녁 9시 경에 차를 전매청 옆으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그래서 부랴부랴 차를 몰고 가면 약속 장소에는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다.적어도 거기서 이 삼 십 분 더 기다려서야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우루루 몰려 나왔다. 모두가 중앙동 바닥에서 돈푼께나 만진다는 사장족들이었다. 그 분들은 그 좋은 외재 자가용은 다 어디로 보냈는 지, 방향도 체면도 없이 항상 사장님의 차만 탔다.
   벌 떼처럼 차에 오르기가 무섭게 누가 얼마를 땄다느니, 누가 얼마를 잃었다느니 웃고 떠들면서도 실상 딴 사람도 잃은 사람도 기사한테 밥값 한 푼 주는 사람이 없었다.
   조금 전에 있었던 노름이나 마작판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뿐, 대화는 어느새 바뀌어 어느 다방 바담의 그것은 남자의 무엇을 깍깍 씹는 다느니, 새로 온 미쓰 장의 젖이 함지막만 해도 왼쪽 꼭지는 손톱에 찍힌 빈대처럼 폭 기어들어 갔더라는 둥 별아별 음담패설을 다 늘어 놓았다. 그러다가 이제 화재는, 정력으로는 토롱탕 외에는 덮을 것이 없다느니, 무어니 무어니 해도 자기가 먹어 보니 뱀탕이 제일이라는 경험담이 나오고, 그 방면으로 수십 가지 처방이 나와야 겨우 종착지에 도착하는 것이다.
   운동장으로 해서 영주토널을 거쳐 오는 동안 승객은 세 명으로 줄어 들었고, 본 역 앞으로 해서 사장님 댁이 있는 초량까지 오면 최후로 증권과 사채업을 하는 오사장 혼자만 남았다.
   옛날 선박 대리점을 하였다는 오사장을 남천 삼익 아파트에 내려 주고 대연동에 있는 회사 차고에 차를 집어 넣으면 거의 10시가 되었고, 거기서 버스를 갈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대게 11시가 넘었다. 그래도 그는 차고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할 수가 없었다. 언제 어느 때 모가지가 되어 또 어느 직장으로 옮겨야 할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늘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밤 늦게 집으로 향해야 했고, 그 피료가 채 풀리지 않은 시간에 다시 버스에 오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보통 6시 반만 되면 사무실이 있는 건물 지하 차고에는 한두 대 밖에 차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 한두 대 중에 사장님의 뿌죠 3306호는 언제나 빠지지 않았다. 퇴근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출근을 하는 건지 6시가 땡 하면 집어타고 사라지는 차는 늘 그러했고, 그렇지 않은 자가용이라도 6시가 조금 지나면 일단은 지하차고를 빠져 나갔다. 그러면 강희는 혼자 남아 차안에서 책을보거나 지나간 주간지 나부랑이를 뒤적였고, 그것도 싫증이 나면 하루 종일 참았던 담배를 사서 연거프 태우며 집으로 돌아갈 줄 모르는 사장님을 욕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6시가 조금 지나자 언제 사무실에 돌아와 계셨던지 사장님이 차에 올랐다. 이런 날은 어래이 중앙동 아지트로 다시 가지 않으면 반도호텔 근방에서 모령의 아가씨를 태워 송도로 향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장님은 바로 집으로 가자고 했다.
   " 아 잠간 ! "
   차가 막 지하 차고를 올라왔을 때 사장님은 핸드백을 들고 사무실에서 뛰어 나오는 비서 윤양을 발견하고 잠시 차를 멈추게 했다.
   " 무슨 일인가 ?."
   " 아니예요. 저 퇴근을 하는 길이예요."
   " 그래, 근데 너의 집이 어디라고 했더라 ?."
   " 아이 사장님도. 초읍이라고 몇 번이나 말씀 드렸잖아요."
   " 참 그랬지 ! 그럼 나 집에 가는 길이니까 가는 데까지 태워다 줄까 ?."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윤양은 벌써 앞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퍽 당돌한 아가씨로 생각되었으나 강희로서는 모처럼 일찍 퇴근을 하는 길이기 때문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사장님은 초량에 있는 집 앞 약방에서 내리며 수고스럽지만 윤양을 초읍까지 태워다 주고 들어 가라고 했다.
   " 아저씨 죄송해요. 제가 아님 좀 더 빨리 집에 들어가서 쉬실텐데."
   " 할 수 없지. 지엄하신 사장님의 분부신데."
   " 아이 그렇게 말 씀하심 더욱더 죄송해 저요."
   " 그래. 많이 죄송하라고."
   " 아저씨 죄송하는 김에 좀 더 죄송하고 싶은데, 진짜 그래 주실래요 ?."
   "......."
   " 저 드라이브 하고 싶어요."
   " 드라이브는 지금 하고 있잖아."
   " 이런 드리이브 말구요. 좀 더 조용하고 시원한데로 요."
   " 허 참, 큰 일 났군 !. 요즘 아가씨들은 속에 바람이 들었나 보지."
   " 어머 ! 저 먼저 데이트를 신청한 아가씨가 있었던가 봐."
   " 점점, 이젠 드라이브가 아니고 데이트인가 ?."
   " 그게 그거 아니에요 ?."
   " 응, 솔직해서 좋군 ! 근데 윤양은 아직 데이트 하기엔 너무 어리잖아. 그리고 내가 아저씨라는 것도 알고 있겠지 ?."
   " 물론이죠."
   " 그런데도 ?."
   " 무슨 상관이에요. 난 아저씨들이 더 좋더라."
   윤양은 방그레 웃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 할 수 없는 웃음이었다.
   " 밤 바다가 보고 싶어요. 저녁은 제가 살께요."
   " 뭐, 네가 저녁을 산다고 ?."
   윤양은 고 삼 실습생으로 입사하여 졸업을 한지 겨우 일 년 남짓한 풋내기 여사원이었다. 직책은 사장님의 비서직을 맡고 있으나 아직 정 사원이 되지 못한 처지라 겨우 교통비 정도에 해당되는 급료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돈은 남자 사원의 부장급 이상으로 잘 썼다. 자기의 말로는 집에서 돈을 가져다 쓴다고는 하나 풍문에 의하면 별로 잘 사는 집안이 아닌 듯 했다.
   그런데 거의 매일 바꾸어 입는 옷도 유명 메이크의 제품이 아닌 것이 없고 핸드백도 나이에 얼울리지 않게 대담한 것으로 자주 바꾸었다. 거기에다 여사원들의 군것질까지도 도맡아 했고 출 퇴근도 거의 택시로 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집안에 대해서는 돌료들에게도 일체 말을 해주지 않아서 아무도 그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아직 귀밑에 솜털도 떨어지지 않는 것이 남자 관계는 괴나 복잡하여 하루에도 외부에서 수십 통이나 전화가 걸려왔고, 6시가 땡 하기 무섭게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잠은 집에서 자는 지 어쩐지는 몰라도 하루도 빼 놓지 않고 집과 정 반대 방향인중앙동 쪽으로 사라졌다.
   여사원들의 말에 의하면 통장이 서너 개는 되는 데 얼마나 많은 숫자가 기록되어 있는 지 아무도 펼쳐 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피부는 희고 얼굴은 둥글넙적하여도 어린애처럼 작아서 제법 귀업게는 생겼으나 아무 남자나 보고 헤시시 웃다가도 때에 따라서는 말을 걸기조차 무안할 정도로 쌀쌀하게 외면을 하고 지나치는 걸 보면 무서운 요부같기도 했다. 개미 같이 가늘고 하늘거리는 허리에 비해 유방은 자기의 말마따나 자기 몸의 살이 거기에 다 모인 듯 사내에서 연령을 초월하여 단연 최우위로 컸다.
   강희는 윤양이 어떻게 보면 좀 모자라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또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앙큼한 것 같아서 항상 불안한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그에게만은 항상 거리감을 두고 업무 외에는 일체 농담 같은 것을 하지 않았는 데, 오늘은 공교롭게도 좀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하도 떼를 쓰며 응석을 부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차를 해운대로 몰았기 때문이었다.
   둘은 동백섬을 돌아 극동호텔 옆 해변에서 해삼 한 사라와 멍개 한 접시를 뚜껑없는 포장마차에서 먹었다. 강희는 소주 한 잔을 곁들어 마셨고 윤양은 김밥 일인 분을 시켜서 먹었다.
   윤양이 한사코 내려는 돈을 강희는 도로 집어 넣어 주고 자기가 지불했다.
   " 미안해. 숙녀를 이런데서 먹게 해서."
   " 아니에요. 일류 음식점 보다 무드가 있어서 더 좋아요 !."
   " 고맙구만 !."
   " 아저씨 우리 이제 라이트 가요."
   돈은 또 자기가 낼테니 염려 말라고 했다.
   " 나 춤출 줄 모르는 데."
   " 저두 그래요."
   " 모르면서 거긴 뭤하러 ?."
   " 구경하고 싶어요. 스트렙 쇼도 한데요."
   " 스트렙쇼 ? 그건 여자가 하는 거 아니야 ?."
   " 이이 그러믄요."
   " 그렇다면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잖아. 돈을 주고 말이다."
   " 어디 공짜로 보여 주는 데가 있나요 ?.'
   " 그래. 집에 가서 거울을 들여다 봐."
   " 아이 아저씨도 !."
   윤양은 고운 눈으로 강희의 팔을 꼬집으며  
   " 누가 자기의 것을...."
   남의 것을 보고 싶단다.
   " 자, 이제 그만 가지 그래. 순진한 아가씨가 그런데 가면 쓰나. 윤양은 특히나 더....."
   " 왜요 ? 이래 뵈두 전 이제 미성년자가 아니라구요."
   " 그래도 그렇지. 그러다가 누가 차고 가면 어쩔려구 ?."
   " 누가 바본가요 뭐."
   하다가 강희를 빤히 쳐다보며
   " 어저씨가 좀 채 가주실래요 ?."
   하고, 잦난스럽게 웃었다.
   " 그래 내가 채 가주지. 어서 타라고."
   강희는 윤양을 태우고 해운대를 빠져나왔다.
   " 에이 난 또 좋은 데로 간다고......"
   " 잔소리 말고 집에 가서 얌전히 책이나 보던지, 뜨개질이나 하라고. 그래야 이담에 커서 얌전한 신부가 되지."
   차가 어느듯 서면 로타리에 이러자 윤양은 내려 달라고 했다.
   " 왜, 집이 초읍이라며 ?."
   " 그냥 이대로 어떻게 들어가요. 괜히 사람 마음만 들뜨게 해 놓구서. 아저씬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안 들었다 야."
 
   다음 날 사장님은 윤양을 어디까지 태워다 주었느냐고 물었다.
   " 서면 로타리에 내려 줬는 데요."
   해운대로 드라이브를 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 그런데 얘가 웬일일까 ?."
   윤양이 아무른 연락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강희는 가슴이 뜨끔했다. 그가 결근을 한 이유가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물어 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더 이상 변명을 할 길이 없고 , 그렇게 함으로써 더 의심을 살 것 같이서 대수로운 일이 아닌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글피 되던 날 윤영은 여니 때처럼 출근을 했다. 무단결근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 보지도 않았고. 그래서 알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 일은 별탈 없이 그럭저럭 넘어갔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은 지 몇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사장님을 동래 골프장에 내려 드리고 나무 밑에서 동료들과 잡담을 하고 있는 데, 대기실에서 전화를 받어라는 마이크 소리가 울렸다. 그는 혹시 사장님이 무엇을 빠뜨리고 가서 전화를 해온 것이 아닌가 하여 급히 뛰어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 아저씨 저예요. 미쓰 윤."
   " 응, 네가 웬일이야 ?."
   " 저 태광산업 앞에 와 있는 데, 좀 내려와 주실래요 ?."
   " 왜, 무슨 일이 있어 ?."
   " 아이에요. 별 일은 없구요. 그저 좀 심심해서 나와 봤어요. 여기 공중 전화니까요."
   여러 소리 말고 만나서 얘기 하자는 투다. 그래서 이 번에도 본의 아니게 차를 몰고 골프장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태광산업 길 건너 공중전화 박스 앞에 서서 차를 기다리던 윤양은 낮익은 자동차가 미끄러지 듯 가까이 닦아오자 어린애처럼 팔작팔작 뛰면서 좋아했다.
   사장님의 골프가 끝나려면 아직도 5 시간이나 남아  있었기 때문에 둘은 경부 고속도로로 해서 양산 통도사를 향해 달렸다. 거기서 도토리묵과 산나물 반찬으로 점심을 먹고 단풍속을 거닐면서 낙엽도 줍고, 그러다가 둘은 무심결에 손도 잡았다. 윤양은 아직도 나이가 어리고 강희의 눈에는 적어도 순진하게만 보여서 더 이상 이성으로 써 선을 넘지 않게 신경을 썼으며 행여나 무드에 젖어 철없는 행동을 해 오지 앟을 까 염려가 되어 될 수 있는 대로 한적한 곳을 피했다. 그러나 개울 가 바위에 올라 앉아 있어도 이 바위에 부딪쳐 저 바위 옆으로, 그러다 낙수에 곤두박질치며 어디론가 꼬리를 물고 떠내려 가고 있는 낙엽을 바라보니 생의 허무 같은 것이 가슴에 와 닿아 마음을 허전하게 했고, 그래서 낙엽을 밟으며 단풍 속을 걸어도 마음은 역시 쓸쓸하여 누군가을 그리워하고 싶어졌다.
   " 우리 그만 내려갈까 ? 웬지 마음이 쓸쓸해지는 구만 !."
   " 저두 그래요! 아저씨가 제 옆에 있고, 제가 아저씨 곁에 있는 데도 말이예요."
   " 허허 ! 우리 그만 내려 가자."
   " 그래도 더 있고 싶어요."
   강희는 떼를 쓰는 윤양을 달래어 차에 실었다.
   통도사에서 부산 톨케이트까지는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사장님의 골프가 끝나려면 아직도 두어 시간이나 남아 있었기 에 강희는 윤양을 싣고 시립 고원 묘지로 갔다.
   가을의 고요와 지나가는 계절의 아쉬움은 거기에도 있었다. 마치 벌집을 뜯어 이어 놓은 것과 같은 묘지 사이사이에 들국화는 그럴 닮은 수 많은 조화속에 슬픔을 먹음고 있었다.
   " 아저씨."
   " 응 ?.'
   " 왜 하필 이런델 오세요 ?."
   " 왜, 좋지 않아. 자 보라고 저렇게 따게 따게 붙어 누워 있는 게 말없이 다정해 보이지 않느냐고 ? 너와 나처럼 !."
   강희는 자동차의 뒷문을 열어 두고 윤양과 나란히 앉아 묘지 아래를 내려다 보며 진담인지 농담인지 그렇게 찌끌렸다.
   " 다정요 ? 참 그러구 보니 그런 생각도 드네요. 호호 !."
   둘은 통도사 앞에서 사온 군밤을 까 먹으면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강희의 시선이 자꾸만 묘지 앞에 꽂혀 있는 화려한 조화와 그 옆으로 초라하게 피어 있는 가날픈 들국화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자 윤양은 마음이 이상해졌다.
   다음 날 사장님은 곧 바로 회사로 출근을 하지 않고 초량 중앙극장 앞에 차를 세우게 하고 먼저 양과점 안으로 들어가며
   " 자네 이리로 좀 들어 오게."
   했다.  
   강희는 사장님이 케이크를 사가지고 거래처 손님이라도 만나려 가시는 줄 알고 얼른 뒤따라 들어 갔다.
   " 이리로 와서 좀 앉게."
   " 괜찮습니다. 사장님."
   " 앉으려도 그러네."
   이외로 짜증스러운 고성이었다. 홀 안은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푸론트에 아가씨 한 분만 앉아서 포장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 자네는 무얼 먹겠는 가 ?.'
   "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는 데요. 조금 전에 아침을...."
   " 그래, 그럼 빵 두 개와 우유 두 잔...."
   주문이 끝나자 사장님은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보아하니 케익을 사려온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굳어진 표정에 눈빛이 날카로웠다.
   여 종업원이 주문한 빵과 우유를 가져오자 사장님은 그것을 강희 앞으로 내 밀며 이윽고 입을 열었다.
   " 내 자네한테 한 가지 물어볼 말이 있는 데...자네 윤양하고는 언제부터 친했나 ?."
   " 네 ?."
   " 자네 내 말귀를 못 알아 듣는 모양이구만 ! 윤양과 사원의 관계를 넘어서 친하게 지난 것이 언제부터냐 이말 일쎄."
   강희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좋을 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 왜 말을 못하나 ?."
   "....."
   "내 질문이 너무 엉뚱하다 이건가 ? 그렇다면 내 한 가지 더 물어 보겠는 데. 어저께 윤양을 만난 일이 있는 가 ?."
   강희는 응급결에 없다고 했다. 사실대로 말을 하려고 해도 유류 절감을 하라고 쥐어짜는 판국에 쓸데없이 기름을 낭비하고 다녔다고 야단을 맞을 까 봐 차마 실토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래, 자네는 끝까지 나를 속일 셈인가 ?."
   " 사장님을 속이다니요. 어제는 공휴일이라 사장님을 모시고 골프장에 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녁 7시 경에 사장님을 집에 모셔다 드리고 곧 바로 차고에 들어갔는 데요."
   " 아니 이 사람이....이래도 거짓말을 할텐가 ?."
   사장님은 고리가 달린 똥그랗고 노란 시계를 탁자 위에 꺼내 놓았다. 그것은 어린 아이 손톱만치 적은 것이 상당히 고가품으로 보였다.
   " 그것은 목걸이에 달린 시계가 아닙니까 ?."
   " 알기는 아는 구만 ! 그래, 그래도 잡아뗄 텐가 ?.'
   " 그것이 윤양과 저와의 관계에 무슨 연관이라도 있다는 말슴입니까 사장님 ?."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것은 사장님이 동남아 여행에서 돌아 오면서 윤양에게 선물을 한 18금목걸이에 달린 고급 시계였다.
   사장님은 그것을 어저께 골프를 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어르다가 뒷시트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주었던 것이다.
   " 그럼, 기어이 어저께 윤양을 만난 적이 없단 말이지 ?."
   강희는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밀고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좋아. 그럼 회사로 가세."
   그날 당장 사장님은 차고에 있는 경비 일지를 일 년 전까지 몽땅 가져오게 하고 총무과 직원을 불어 날자 별로 승용차의 출고 시간과 입고 시간을 뽑아 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것을 운행일지와 대조하게 하였으나 운행 일지는 한 달 전의 것이 보관되어 있지 않았다.
   경비의 말에 의하면 무슨 까닭인지 몇일 전부터 사장님의 차가 몇 시에 들어왔느냐고 확인 전화가 밤마다 걸려 온다고 했다. 전에 없는 일이었다. 직원들에게는 승용차 기사들이 유류 절감은 하지 않고 퇴근을 하고도 차를 끌고 놀러 다닌다는 소문이 있기에 그것을 알아 보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지나 간 경비 일지까지 낱낱이 들추어서 조사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확인 전화를 걸어올까. 그 이유는 강희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그도 실상 어째서 그토록 집요하게 윤양과의 관계를 파고드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날이 가면 갈 수록 사장님과 강희의 사이가 서먹서먹해 졌다. 출근 외에 사장님은 차를 타지 않았다. 혹시 타더라도 말이 없고, 항상 화가 난 얼굴로 기사의 뒤통수를 노려 보며 저주하는 것 같았다.
   강희는 여러 번 빽미러를 통해서 그러한 것을 보고 느꼈다. 그는 하루하루가 지겹고 초조하고 불안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나면서부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염려스러웠고, 출근을 하고 나서는 어서 퇴근 시간이 다가오기를 빌면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강희는 기어이 차고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뚜렸한 이유는 없고, 떠도는 말에 의하면 단순히 유류 절감이라고 했다.
   초량에 있는 사장님 댁에서 중앙동 회사로, 거기서 다시 얼마 가지 않아서 있는 중앙동 아지트에 두어 번 왕래하는 것이 고작인데 그 큰 차를 나오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말로는 택시 기본 요금 밖에 나오지 않은 것이라 그것을 이용하면 된다고 했다.
   강희는 이제 미칠 것만 같았다. 벌써 3 일째 차고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첫날은 그럭저럭 보냈다. 그러나 3 일이 지나자 주리가 틀리기 시작했다. 불안과 초조와 오랜만에 만난 중장비 기사들이 술을 마시게 했다. 퇴근 시간이 훨씬 넘어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않고 있었다.
   " 야 편안한 백성은 화색부터 다르구나 !."
   부사장의 기사였다.
   " 야 말도 마라. 겉 다르고 속 다른 건 백로만이 아니란다 !."
   " 그렇다고 이렇게 죽치고 앉아 술만 축내면 어떻게 하나.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 오늘은 일찍 끝났구나 !."
   " 열 시가 일찍냐 ? 너도 누굴 닮았구나 !."
   " 음, 벌써 그렇게됐나."
   둘은 다른 동료들은 그대로 두고 술집을 나와 다방으로 들어갔다.
   " 야 정말 귀신이더라 귀신 ! 오늘 낮에 사장님이 내 차를 타고 가면서 대뜸 이렇게 묻지 않아."
   " 어떻게 ?."
   " 너 지난 달에 내가 서울 가던 날 윤양을 집에까지 태워 준 일이 있느냐고 말이야."
   " 그래서 ?."
   " 정확한 날자는 모르지만 서면 로타리까지 태워준 일이 있었거든. 그런데 무엇을 알고 묻는 것 같은 데, 갑자기 변명할 말이 떠올라야지. 그래서 울산 시외버스 종점에 통신을 찾으려 가는 길에 서면까지 태워준 일이 있다고 했지."
   " 그랬더니 ?."
   " 그 다음은 아무 말이 없었어. 그런데 아무한테도 말을 하지도 않고 본 사람도 없는 데, 그걸 어떻게 알았는 지 정말 귀신이 탐복할 노릇이더라."
   그래서 그는 더 무엇을 물어볼까 봐 화제를 바꾸느라고
   " 사장님 이 기사는 상당히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던데요. 혹시 자기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 사장님이 차를 타시지 않는 게 아닌가 하구요."
   " 응, 사내에 좀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별로 차를 탈 일도 없고."
   하더니, 내일 항망청 손님과 골프 약속이 있어서 차를 나오라고 할 계획이라고 했다.
   " 야 아무래도 너가 윤양과 드라이브 한 것을 아는 눈치더라."
   " 그래, 그걸 어떻게 알았을 까 ? 그런데 난 또 그것도 모르고 딱 잡아 뗐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이야."
   " 그러니 더욱더 의심을 살 수 밖에."
   " 그럼 어떡하면 좋지 ?."
   " 야 그러지 말고 솔직히 있었던 그대로 말씀 두려라. 네가 염려한 것처럼 사장님의 노여움이 기름을 낭비하고 돌아 다닌 데 있는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니 말이야."
   " 그럼 역시 윤양과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었단 말가 ?."
   " 두 말하면 잔소리지."
   " 그래, 그럼 실상 내가 윤양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치자. 그렇더라도 그렇지 윤양이 지 딸이라도 됀단 말이가. 그렇지 않으면 지 마누라라도 된단 말인가. 이건 꼭 지 여편네와 간통이라도 한 듯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날뛰니 원."
   " 그러니 뻔 하잖아."
   " 뭐가 ?."
   " 사장님과 윤양..."
   " 아무려면 사장님이 그 어린 것을...."
   " 야, 지나 간 역사를 더듬어 보거라. 비서라고 거쳐간 아가씨들 중에 그 렛텔을 떼이지 않은 년이 어디 있었나. 네가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나간 황양은 결혼을 한지 5년이 넘도록 아직 애기를 못 낳는 다더라."
   " 애기를 ?."
   " 그래, 비서시절에 정량을 다 뽑아 버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쨌든 아기가 생기지 않는 다더라."
   " 소파 수술을 같은 것을 받았던가. 혹시 그것이 잘못되어...."
   " 그래도 야, 그 애 신랑은 자기 신부에게 염소를 사다 고아 먹이고 별아 별 좋다는 약은 다 먹인다는 구만."
   " 병신 같은 새끼 ! 돈 있는 놈이 갔고 놀다 뚫어 놓은 풍선에 제아무리 바람을 불어 놓어 본들...."
   " 그래, 그러고 보면 돈 있는 놈들은 참 뻔뻔스럽지 !."
   " 야 년 놈들이 다 똑 같아. 그런 몸으로 그래도 시침을 뚝 떼고 면사포를 쓴 년이나....그리고 왜 저기 거기서 온 민양이라고 있었지 ?.'
   " 그래, 내가 입사한지 두어 달 후에 나간 쌍꺼풀 말이지 ?."
   " 그래, 그것도 한 동안 사장님이 해 줬다느니 길전무가 해 줬다느니 시비가 자자했지. 근데 그 애 말이 또 가관이지."
   " 뭐라고 했는 데 ?."
   " 내 농담이 좀 심한 건 너도 알지 근데, 어쩌다가 그 애와 농을 할라치면 이건 펄쩍 뛰는 거야. 아저씨가 감히 이 순진한 숙녀한테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 그럼 그 애가 전무하고도....?
   " 전무님과 놀아 난 아가씨가 그 애 뿐인 줄 알아."
   " 어이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혹시 여사원들은 그것이 자기 직무의 일부로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
   " 그럴리야. 민양 말마따나 처음에야 그 애들도 순진은 했겠지."
   " 그런데 어떻게 쉽게 ?."
   " 한 마디로 넘어 간 거지 뭐."
   " 어떻게 ?."
   " 임마 내가 무슨 수로 그걸 알아."
   " 하긴 그래. 당해 본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가 없을 테지."
   강희는 언젠가 총무과 정미란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하니 그때도 아마 길전무가 정양을 어찌해 보려고 수작을 부린 것 같았다.
   그 때 길전무는 자기의 통장을 꺼내주면서 돈 20만 원을 찾아 오라고 했다.  그래서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와 보니 전무는 어느새 골프를 치려가고 없었다.
   그 날은 토요일이라 사무실에서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서 실로 난처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골프장에서 전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교환을 거치지 않고 직통으로 온 것이다.
   " 참 그러고 보니 오늘이 토요일이었지. 그럼 말이야 사무실에서 기다릴수 없으니 일단 집에 들어 갔다가 6시까지 한강다방으로 나와. 내 맛있는 거 사 줄께."
   그리고 나서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그만한 돈이면 얼마든지 경리부에서 가불해 갈 수 있었을 텐데 왜 사람을 귀찮게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정양은 상사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어서 유치원에 다니는 조카를 데리고 6시에 약속한 다방으로 나갔다.
   전무는 언제 면도까지 하였는 지 말쑥한 턱을 가지고 벌 써 너와 있었다.
   " 어어 ! 얘는 누구야 ?."
   뜻밖이라는 듯 손을 잡고 들어오는 조카를 보더니 겉으로 반가운 채 하면서 무슨 기대가 문어지는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 제 조카예요."
  " 그래, 참 예쁘게 생겼구나 ! 제 어머니가 꽤 미인인가 보지 ?"
   " 그렇지도 않아요. 저를 닮았거든요."
   " 네가 왜 ?... 나는 미인 중에 미인으로 보이는 데 !."
   " 아이 전무님도."
   정양은 돈과 통장을 내밀었다.
   " 오늘은 정말 미안한데 !."
   전무는 꼬마한테 천 원자리 지폐 한 장을 억지로 쥐어 주고 정양에게 저녁을 먹으로 가자고 했다.
   " 아니에요. 얘를 언니 집에 데려다 줘야 해요."
   그 말에 전무의 얼굴이 환해지며
   " 그럼 내 여기서 기다릴까 ? 조카를 데려다 주고 올 때까지."
   " 아니에요. 꽤 오래 걸려요."
   " 언니 집이 어딘데 ?."
   아무래도 전무의 눈빛이 이상해서 정양은 언니 집이 온천장이라고 했다.
   " 그럼 우리 택시로 바래다 주고 온천장에서 갈비라도 먹을 까 ?."
   거기 가면 갈비를 전문으로 하는 골목이 있다고 했다.
   정양은 그 날 길전무를 뿌리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 후로도 그와 비슷한 수단으로 여러 번 접근해 온 일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도 이제 그 방면으로 소문이 좀 나 있어서 과연 지금까지 온전하다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었다.
   " 야 그 노랭이 얌채가 글 쎄, 그 날 정양한테 택시를 타고 가라면서 돈 만 원을 주더라고 하잖아."
   그러한 그가 여태 본전을 내 버리고 그냥 있을리 없었다.
   길전무는 사 내에서도 얌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업무에 책임질 있이 있으면 부하 직원에 게 쓸적 미루었고, 가능성이 확고 하고 칭찬을 받을 일이 있으면 아랫 사람의 공을 스스로 떠 맡았다.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자기의 호주머니에 들어 올 것이 있으면 서슴치 않고 나섰고, 단순히 거래처 손님과 술 추념만 할 자리에는 상무를 보냈다. 그는 사원 뿐만 아니라 승용차 기사 들에게도 왕소금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가 그래도 인기를 잃지 않고 있는 곳은 역시 골빈 여사원들 뿐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훤칠한 키에 허여멀쑥한 귀공다다운 용모에다 끼 있는 여자라면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은은한 미소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성 아닌 남자의 입장으로 그를 자세히 뜯어 보면 이건 태생을 초월하고도 남는 전형적인 서울 얌체 타입이었다.  그가 자기의 배 위를 거쳐간 여자들은 누구나 다 두 번 다시 자기를 거들떠 보지 않을 때에야 비로서 그의 인품을 알고 후회를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또 동료들 간에는 여자 관계가 깨끗한 남자로 정평이 나 있었다.
   미운 것이 뭐 한다고 그는 지독하게 차를 많이 타고 다녔다. 에누리를 조금 한다면 백 미터가 넘는 곳이면 절대로 걸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택시를 타고 가는 것도 아니고 10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곳에 20분 30분 기다렸다가 업무용 포니가 아니면 부사장님의 레코드를 타고 갔고, 그것이 없을 때는 사장님의 뿌죠까지 서슴치 않고 이용을 했다. 그러면서도 공휴일이나 거래처 손님과 골프를 치려갈 때를 제외하고는 아직 어느 기사도 그에게 밥값을 받아 본 사람이 없었다.
   주중이라도 몸이 근질근질 하면 거래처 사람들을 충동질 하거나 사장님에게는 거래처 아무개와 골프를 치려간다고 속이고 회사 돈을 축 내었고, 그럴 때면 의레히 부사장 차를 타고 갔다가 그냥 돌려 보낸 후 몇 시까지 업무용 포니를 보내라고 했다. 어느 차든지 타고 갔다가 대기 시켜 두면 남들처럼 기사에게 식대를 주지 않을 수가 없어서 그런 양채짓을 했다. 회사에서도 가끔 점심시간에 자기의 집으로 타고 가서 사모님을 싣고 광복동이나 남포동 횟집에서 내린 후 차를 돌려 보내고 나서 나중에 총무과로 전화를 걸어 다른 차를 어디로 보내라고 했다.
   그렇게 자기의 주머니에 들어 온 돈을 내 보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길전무도 여자 앞에서는 별 수 없이 가마속의 눈덩이처럼 맥을 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도 일단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상황이 급변하여 본성으로 돌아 갔다.
   강희는 드디어 대기 발령이 해제되어 출근을 했다. 그러나 사장님의 노여움은 풀리지 않았는 지 인사를 하여도 못 본 채였다.
   사원들도 자기를 보는 눈빛이 이상했고, 삼사 년이 지나간 듯 낯설어 분위기 마져 이상했다. 특히 여사원들은 보고도 못 본 채 지나갔고, 그렇게 죽자 살자 덤비던 정양도 샐쭉하게 토라져 있었다.
   회사에서는 기사가 사장님의 비서를 건더리려다 들통이 나서 대기 발령을 받았다는 소문이 쫙 퍼져 있었다. 심지어는 그 어린 것을 강제로 태워 어쨌다는 소문까지도 들렸다. 그 중에서도 머리가 좀 돌아 간다는 사람은 사장님 쪽을 의심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순진한 사원들은 그런 생각을 못했다.
   강희의 대기 발령이 해제 되던 그 날부터 기사들은 교환실이나 비서실 출입이 금지 되었다. 동시에 윤양에게는 자가용 승차 금지령이 내렸고 사장님의 일상생활에도 이변이 생겼다.
   종전 같으면 밤 10시고 12시고간에 자기의 차를 타고 퇴근을 했으나 연락이 없으면 강희에게 퇴근을 하라고 했다. 출근도 종잡을 수 없게 아무리 일찍 사장님 댁으로 차를 몰고 가도 사장님은 벌써 나가고 없었다. 그래서 그는 사장님 댁을 들렸다가 사무실로 돌아 오곤 했다. 그러면 어떤 때는 먼저 사무실에 나와 있을 때도 있었고, 한참 후에 들어 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으레이 이삼 분 아니면 5분 후에 반드시 윤양이 뒤따라 출근을 했다.
   윤양은 가끔 사장님이 없을 틈을 이용하여 동료 비서 김양에게는 오빠를 만나려 간다든지, 동생이나 친구를 만나려 잠간 다녀 오겠다고 하고는 두어 시간이 지나서야 돌아 오곤 했다. 그 때는 출근 때와는 반대로 먼저 윤양이 들어 오고 오륙 분 후에 언제나 사장님이 나타나곤 했다. 그럴라 치면 바보 같은 김양은 손벽을 치고 감탄을 하며 " 
 " 너는 참 귀신이다 애 ! 어쩌면 그렇게 오래 있다 와도..."
   들키지 않고 꼭꼭 사장님 앞에 들어 오느냐고 감탄을 했다.
   그는 어쩌다 화장실에 간 사이에 찾아서 야단을 맞고 종종 꾸중을 들었기 때문에 아직 한 번도 사장님의 잔소리를 듣지 않은 윤양을 부러워했다.
   사장님은 무슨 의도에서였는 지 그 후 서울 출장을 갔다 오면서 강희에게 윤양과의 관계를 털어 놓았다.
   그의 고백에 의하면 윤양이 학생복을 입고 견습생으로 입사한지 한 달이 채 못되어서부터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강희는 처음 차 속에서 사장님이 씨부리는 그런 말을 듣고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추풍령을 넘어서면서부터 마시기 시작한 캔 맥주에 취해서 그런지, 그렇지 않으면 윤양은 자기의 것임을 못 밖아 두기 위하여 술의 힘을 빌리려고 캔 맥주를 6개나 샀는 지는 알 수 없으나, 단순히 잠을 쫓기 위해 쓴 커피만 마신 강희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갑자기 속에서 울컥 구역질이 나고 현기증이 왔다. 그 통에 뿌죠는 S자로 요동을 쳤다.  100K가 넘는 속력에 상당한 위험을 준 후 강희는 핸들을 바로 잡았다.
   지나가는 차나 뒤따라 오던 차가 없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 아니  왜 갑자기 그러나 ?...졸았는 가 ?."
   " 아닙니다. 현기증이..."
   " 뭐, 현기증이라고 ?."
   사장님의 놀란 얼굴이 갑자기 또 다른 표정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 이 놈이 윤양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해 !)
   이유는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서면 로타리에 있는 양과점으로 불려가서 사장님의 추궁을 받았다.
   " 사장님, 그 때는 정말 마음대로 차를 끌고 다니며 기름을 태웠다고 야단을  맞을 까 봐 말씀 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윤양과는 딱 두 번 드라이브를 하였습니다."
   " 그건 알고 있어."
   그것은 윤양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는 투다. 얼마나 족쳤으면 자기에게 불리한 줄 알면서도 불었을 까. 그는 그 후 한 번도 윤양을 만나 보지 못했다. 그런 기회를 사장님이 강희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은 자네들의 관계가 어디까지 갔나 이걸세."
   " 사장님 윤양한테 어떤 말을 들었는 지 모르지만, 단순이 드라이브 외엔 절대로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믿어 주십시요."
   " 그렇다면 어째서 내 얘기를 듣고 자네가 상이 노래지나 ?."
   " 하도 기가 차서 그럽니다 사장님."
   하려다가 강희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 왜 대답을 못하나 ?.'
   " 사장님 저는 가난합니다."
   " 가난하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
   " 돈이 없이는 불륜....그 보다도 저에게는 다른 여성에게 눈을 돌려서는 안 될 아내에 대한 양심의 빚이 있습니다."
   " 음, 그게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네만, 내 자네의 양심을 믿고 자네한테 한 가지 부탁이 있는 데..."
   사장님은 다소 비굴한 미소를 뛰우며
   " 자네도 보아서 알겠지만 그 애는 나이도 얼마 되지 않은 것이 남자 관계가 좀 복잡한 곳 같아. 어디다 그렇게 전화질을 하는 지 원."
   그 동안 강희를 의심하게 된 한 가지 원인은 혼선이 된 전화 속에 강희의 음성과도 같고 서울 말씨 비슷한 남자와 통화를 하는 윤양을 사장님은 사장실 직통 전화에서 들었던 것이다.
   " 분명히 그 애와 내통하는 사람이 사내에도 있는 것같아."
   직원중에 서울 말씨로 여자 관계가 좀 그런 사람은 길전무와 총무과장이라고 하면서 그들의 동태를 잘 살펴 달라고 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사장님은 처음 한동안은 퇴근 시간을 맞추어 송도 국제호텔이나 서면 태화극장 근방에서 내리고 차를 돌려 보내고 윤양과 몰래 만나는 것 같더니 ,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거센 애욕의 불길에 휘말려 이제는 아예 기사 따위는 의식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놀아 났다.
   공휴일이면 그렇게 좋아하던 골프도 마다하고 버젓이 비서를 옆에 태우고 국내 관광지를 두루 돌아 다니며 사장님 특유의 드라이브를 즐겼다. 그럴 때마다 강희는 라듸오의 보륨을 높이고 빽미러를 위로 재겨 버렸다. 그래도 뒤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괴성 때문에 구역질이 나고 눈에 핏발도 섰지만, 언덕 아래로 핸들을 꺽고 싶은 충동을 수없이 억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이 양심을 버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엄청 나고 끝이 없는 데 놀라움 보다도 먼저 비애가 왔다. 더욱이 그를 슬프게 하는 것은 가장 순진한 채 하였고, 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어린 윤양이 이제는 자기가 무슨 사장 사모님이라도 된 것처럼 강희 앞에서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뻔뻔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데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회사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급속히 발전해 갔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그들 자신이 하나하나 폭로해 갔다. 오해로 인하여 강한 질투를 느낀 나머지 기사를 대기 발령 시킨 주책과 커피 심부름 따위나 하던 말단 여비서가 총무과장의 말을 우섭게 알고 덤비는 것 외에도 그 들은 사장실에서 이상한 짓을 하다 들키곤 했다.
   진작부터 눈치를 채고 있던 길전무는 결재를 받으려 사장실에 들어 갈 때는 언제나 노크를 하고도 한참 기다렸다가 안으로 들어 갔고, 그럴 때마다 윤양은 비서실에 있지 않고 사장님 옆에서 걸레를 들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 무렵 사장님이 출장을 가는 날은 대게 윤양도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그 날은 언제나 자기 나름대로 임무를 띠고 사장님과 출장지에서 만났고, 그것을 강희는 서울 출장중에 우연히 사장님이 투숙한 호텔 커피숍에서 둘이 모닝 커피를 들고 있는 것을 목격했던 것이다.
   한 번은 그 방면에 조금 어두운 부사장이 결근 후 결근계를 낸 윤양을 혼내어 주려고 결근 사유대로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떼어 오라고 호통을 치다가 전무의 귀띔으로 멀쑥하게 들어간 일이 있었다.
   한 가지 웃지 못할 일은 진짜 사모님의 말씀이다.
   " 김양 걔는 대학까지 나왔다는 애가 전화 하나 제대로 못 받아 ,그래."
   김양이란  시집을 가기 위해 맨 뒷줄에 서서 겨우 초급 대학을 나온 사장님 친구분의 고명한 따님이다. 그는 어떻게 보면 좀 모자라는 것 같고, 또 어떻게 보면 너무 순해 빠진 것 같은 아가씨로 인물도 내다 버리가 그리 아깝지 않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배운 것을 머리에 많이 넣어 두지 못하였기 때문에 비서실에 앉혀두고 청소나 하고 심부름이나 하게 했다. 그렇게 우둔한 아가씨고 보면 사모님이 불평도 하겠으나 주야로 자기 남편의 정력을 송두리째 뽑고 있는 윤양을 칭찬하고 나오는 데는 우섭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바보가 축구를 보고 비웃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윤양 그 애는 어찌나 싹싹하고 친절한지 원 !."
   차를 탈 때마다 자기의 전화를 친절하게 잘 받아 준 것을 사모님은 자랑했다. 그럴 때마다 강희는 속으로 피씩 웃었다.
   대게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자기에게 친절해 주기를 바란다. 더욱이 가진자는 만인이 자기 앞에 발발이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지나친 친절 뒤에는 반드시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 그런데 되지 못한 인간은 그것을 깨닭지 못하고 침묵을 불친절로 나무라는 것이다.
   융양과의 드라이브 건은 이럭저럭 흐르는 시간 속에 묻혀져 갔다. 그와는 반비레 해서 사장님과 비서와의 관계는 이제 절정에 다달은 듯 아무리 에누리를 하고 보아도 눈꼴이 씨어서 도저히 못 보아 줄 상태로 비약해 갔다.
   심지어는 서울 출장 비행기표를 사두고 출발 전에 둘이서 어디로 사라졌다가 나타나서는 급하게 비행장르로 차를 몰게 했다. 출장에서 돌아 오는 날도 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날이 없었다. 공항에서 오는 도중 공중 전화가 있는 곳에 차를 세우게 하고  한참 통화를 한 후 프라자 호텔이나 크라운 호텔로 가자고 했다.
   " 자네는 그만 집으로 들어가게. 나는 여기서 기관장 리셉션이 있어서 ."
   끝나면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 그런 것도 윤양과 드라이브 사건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그때는 이발을 하거나 집 앞에서 목욕을 하더라도 차를 한없이 대기 시켜 두었다가 타고 가는 사람이었다.
   " 사장님 구구한 변명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집으로 들어가라는 데는 미워할 까닭이 없었다. 그런데 어쩐지 별로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그럴 때는 늘 있었던 것처럼 그가 범일 전화국 앞에서 우회전 신호를 받고 있을 때 윤양을 실은 택시가 그의 옆을 지나 황급히 크라운 호텔로 꺾어 들어가는 것을 빽미러로 보아 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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