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어디로 가나

8. 변호사의 집

오늘의 쉼터 2014. 8. 26. 02:05

변호사의 집
 
 
   강희는 황변호사의 집으로 일잘리를 옮기고부터 자기의 직책이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빴다.
   새벽에 일어나서 밥을 떠는 둥 마는 둥 온천장에서 버스를 타고 대신동에 있는 황변호사의 집으로 7시 안으로 도착하면 송아지만한 세파트 두 마리와 불독 한 마리가 철장 안에 똥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마치 그 집의 사모님의 눈갈처럼 잡아 먹을 듯이 자기를  노려 보고 있다.
   그 놈들은 하루 두 번씩 꼭꼭 자기의 집을 청소해 주고 밥까지 갔다 주는 데도 그 공을 모르고 항상 도끼눈을 하고 노려 보았다. 그것은 마치 잠시라도 무슨 일을 못 시켜서 안달인 변호사의 여편네와 어찌 그리도 닮았는 지, 고기 덩어리에 쥐약이라도 발라주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 일어 났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고깃덩어리만 처먹고 호의호식 하는 놈들만 남의 사정을 모르는 줄 알았더니, 역시 그 놈들 집에 있는 개라는 놈도 주인을 닮아서인지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생각하는 자체가 똥개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놈들은 짖을 때도 사람을 보아가면서 짖었다. 사모님의 친구나 영감님의 동료가 그의 숙소 앞을 지날 때면 허우대에 어울리지 않게 제법 꼬리를 칠 줄 알았고, 월부 책장수나 잡상인들에게는 본채만채 했다. 그 놈들이 가장 적수로 느끼는 것은 아무래도 그 집 수준으로 운전기사인 듯 황변호사의 친구분이 타고온 자가용 기사가 어쩌다 들어오면 잡아 먹을 듯이 날뛰였다.
   황변호사의 집에서 동식물을 통하여 가장 서열이 낮은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운전기사요, 그 다음으로는 가정부 처녀, 그 다음은 세파트와 불독, 황변호사, 여고에 다니는 막내딸 역시 불독과 비슷하게 생긴 사모님이 단연 그 집에서는 랭킹 일위로 무서운 존재였다.
   요즘 세상에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주인과 하인의 차별 대우가 한 나라의 최고 국가고시의 관문을 통과하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법조계에 몸담아 온 변호사의 댁에서 거짓말처럼 행하여 지고 있었다.
   사모님 역시 최고의 학부를 졸업하고 한때나마 고등학교 교사까지 지낸바 있는 지성인이었다.
   우선 음식에 엄청남 차등을 주었다.
   남의 식구라야 가정부와 기사 뿐인데, 그들이 먹으면 얼마나 먹는 다고 그러는 지, 사모님은 악착 같이 김치 하나라도 그들과 같은 재로를 쓰지 않았다. 이럴테면 배추의 떡잎 부분이라든가 알통을 담고 남은 찌꺼기와 무김치도 하얀 꼬리 부분을 따로 담아 두었다가 아랫 사람들을 먹게 했고 혹시 시어빠질 정도가 되어서야 알통 김치도 불하를 했다. 그 흔에 빠진 김치에까지 그런식으로 나오니 하인의 상에 멸치 한 마리라도 온전한 것이 올라 올리 만무했다. 그래도 날이면 날마다 처먹고 똥만 싸 재끼는 세파트와 불독은 고기가 떨어질 날이 없었다. 그러니 그 집에서 가정부와 기사는 개새끼 보다 훨씬 대우가 나쁜 편이었다.
   강희는 황변호사를 사무실에 출근을 시켜주고 나서 차는 항상 집에 돌아와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점심은 변호사 댁에서 먹었다.
   처음 그가 그 집에서 점심상을 받았을 때는 그래도 갑자기 준비가 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고 이해를 하고 먹었다. 역시 덩어리가 진 찬밥에다 양아치 시절에 먹어 본후 처음으로 구경해보는 이상한 김치에다 죽은 똥파리 같이 꺼무티티한 멸치 대가리가 띠염띠염 섰인 두부찌개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것도 식당이나 방 안이 아니고 마룻바닥에다 상을 차려 주었다. 그것이 식은 밥 보다도 그의 마음을 더욱더 상하게 했다.
   강희는 언제나 변호사댁에 출근을 하기가 바쁘게 집부터 청소를 해야 했다.  부삽으로 개집 안에 쌓여 있는 똥을 치우고 모트 펌프를 틀어 우물로 빗질을 하여 바닥을 말끔히 씼고 나면 어느새 금태 안경을 낀 황변호사의 헛 기침소리가 형관 안에서 출근을 알려온다.
   " 야 이군아, 너는 어찌 그리 꾸물대노. 아직 멀었거든 영감님을 묘셔다 드리고 와서 해라."
   사모님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홈 드레스를 입고 남편에게 서류가방을 내밀었다.
   강희는 얼른 호수와 빗자루를 제자리에 갔다 두고 손을 씻을 겨도 없이 차에 올랐다.
   황변호사의 사무실은 법원 앞에 있었다.
   그는 사무실 앞에 차를 세우고 시동를 끄지 않은 채 핸드 부레이크을 당겼다 . 그리고 얼른 내려 뒷 도어를 열었다.  황변호사는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내릴 줄 모르는 위인이었다. 그것은 사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강희가 처음 출근을 하던 날 사무장에게 불려가서 꾸중을 들었다.  윗 사람을 모시는 태도가 걸러먹었다는 것이다.
   " 사무장님, 대신동에서 여기까지 승하차를 포함해서 10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10분이 흐르는 동안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 지 통 생각이 나지 않는 군요. 그러니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요."
   " 이 사람아 자네 집에는 어른도 안 계시는 가 ? 영감님은 지위를 떠나서도 연령으로 보나 자네 부친 뻘이 아닌가 그런데도 문을 따주지 않고 어른이 타고 내리는 데 빤히 보고만 있었나."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차를 세워도 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우물주물 하다가 헛기침을 하고 있던 변호사의 생각이 났다.
   할 말은 많았지만 아버지와 같은 연배라는 데는 달리 말을 할 수가없어서
   " 죄송합니다 .사무장님.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하고, 사죄했다.
   그 후 그는 황변호사가 타고 내리면 언제나 차에서 내려 문을 열어주고 닫아 주며 허리를 굽신거렸고 , 치사 하지만 사모님에게도 그렇게 했다. 그것도 처음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서 낯이 뜨겁고 창피하여 당장 그짓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래도 사무장의 말마따나 자기 부모와 같은 연배이기 때문에 그렇게 추해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동료기사들은 어디로 갔는 지 차는 벌써 여러 대가 길 좌우로 세워져 있었으나 아무도 눈에 뜨이지는 않았다. 보나마나 한 패는 지하다방에서 또 다른 패는 어느 구석에서 화투판에 벌어져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거기에 어울릴 팔자가 못 되었다. 그래서 도청 뒷길러 해서 집으로 돌아 와 차를 대문 앞에 세워두고 대강 먼지를 털었다.
   한참 있어도 전 같이 사모님이 나오지 않기에 벨을 눌렸다.
   " 아니 너는 남 목 빠지는 줄 모르고 여태 어디로 돌아다니다 인제사 오노."
   사모님은 무릎위에 올라오는 짜리몽땅한 스커트를 입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기사를 노려 보았다.
   " 벌써 와 있었는 데요."
   " 그럼 왔다고 연락을 해야지 바깥에서 그대로 있으면 안에 있는 내가 우째 아노."
   언제는 그렇게 했던가. 강희가 사무실에서 돌아 오기도 전에 사모님은 언제나 외출 준비를 하고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무얼 그리 꾸물대고 있나. 얼른 차를 집어 넣고 들어오지 않고."
   홈 드레스를 미니 스커트와 흰 스웨트로 바꿔 입은 걸 보면 오늘은 아무래도 집안에서 잔소리깨나 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희는 차고에 차를 넣고 현관 앞으로 걸어갔다.
   " 어서 올라와서 순이 하고 이거 마자 까거라. 벌써 몇 일째고."
   누구를 두고 하는 소린지 사모님은 혀를 끌끌 차면서 욕실로 들어갔다.
   ( 제미 뜨그랄 ! 내가 이 집 식모가 ?...보자 보자하니 이제 별아별 걸 다 시키네.)
   강희는 속으로 그렇게 투들거리며 순이와 마주 앉아 멸치 포대를 끌어 당겼다.
   " 치 !.'
   이건 또 무슨 지랄인지,순은 옆으로 획 돌아 앉으며 뽀루통한 얼굴로 하던 일을 계속했다.
   " 야, 인제 너까지 나를 우섭게 보는 구나 !."
   그러자 순이는 시비조차 하기 싫다는 듯이 발딱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강희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멸치의 머리를 따고 똥를 데어 내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것은 그 날로 3일째 접어든 작업이었으며 충무에 있는 사모님의 친정에서 부쳐 것이었다. 그것을 작만하여 미국에 있는 큰 딸과 서울에서 사는 아들 집에 보낸다는 것이다.
   " 야 이군아. 똥을 섞어서 개를 주면 어쩌노. 머리만 골라서 주어라."
   " 예."
   " 저거 봐. 똥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나. 나무 밑에 묻어야지....너는 어찌 일일이 시켜야 하노. 그런거 좀 알아서 못하나."
   사모님은 그날 오전 내내 온 집안 구석을 돌아 다니며 잔소리를 늘어 놓고 오후 1시에 계모임이 있어서 송도에서 내렸다.
   " 내 있다 끝나면 전화를 할테니까 집에 가서 순이 일 좀 도와 주거라. 화단에 풀도 좀 뽑고, 개집에 페인트칠도 좀 해야 겠더라."
   강희는 대답도 없이 사모님이 내리고 난 도어를 꽝 닫았다. 그러자 그녀는 횟집 안으로 들어가 말고 되돌아 서며
   " 너는 어째 그리 심통이 싸납노. 그런 힘 두었다가 일 하는 데 좀 쓰거라."
   또 혀를 끌끌 차면서 안으로 사라졌다.
   " 재미,돈은 주지도 않고 페인트 칠을 하라고."
   강희는 획 차를 돌렸다. 오늘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기의 돈을 주고 그것을 사서 바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사모님은 연탄 집개라든가 못 등, 심지어 약값까지도 돈을 주지도 않고 사오라고 했고, 그것도 일일이 영수증을 갔다 받쳐야 돈을 내어 주었다. 그러니 사오백 원짜리를 사면서 영수증을 달라고 할 수 없어 돈을 떼인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시장에가서 잔돈이 없어서 그러니 돈을 꾸어달라고 했고, 빌려간 후로는 깜깜 무소식이었다.
   한 번은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몽땅 털어 주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돈을 달라고 하였더니
   " 참 그렇지 ! 나이가 드니 건망증이 심해서... 그데,내가 얼마를 꾸었더라 ?."
   " 2천3백원인데요."
   " 참 그렇지."
   방 안으로 들어갔다가 한참 후에 나온 사모님은 천 원짜리 두 장과 10원짜리 동전30개를, 그것도 여러 번 세어본 후 강희 앞으로 내밀었다.
   그는 송도에서 집에 까지 오는 동안 여러 번 페인트집을 지나면서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그러나 끝내 집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페인트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말았다.
   검은색 페인트 두 홉과 붓 한 자루를 천오백 원을 주고 샀다.
   " 순, 아가씨 밥좀.....

   강희는 차고에다 차를 넣고 페인트 통을 들고 나왔다.
   " 지금 몇 신데 밥을 달래요 ?."
   " 몇 시나마나 밥을 안 먹었으니 달라는 거 아니야."
   이 집은 어떻게 된 건지 되지 못한 가정부까지도 주인을 닮아서인지 기사를 얇잡아 보았다.
   "야, 순아. 제발 잠에서 좀 깨어나라. 네가 무슨 영감님의 양녀라도 된 기분이냐 ?."
   " 순아 순아, 하지 말아요. 순이가 늬집 강아지 이름이에요."
   " 정말 생긴대로 노는 구나 !."
   " 그러는 자기는...."
   " 어어 농담이라도 제발 그런 소리는 말어. 너의 자기가 되었다가는 나 삼 일도 못가서 굶어 죽을 거야."
   " 치, 떡 줄 사람한테 물어 보지도 않고."
   " 그래 너도 운전수한테는 시집 안 가겠다는 이 말씀이군 !."
   "....."
   " 역시 대답하면 잔소리라 이거군 !너도 네 푼수를 알아라."
   가정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던 빨래만 하고 있었다.
   " 제발 이러지 좀 말자. 우리는 서로가 미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 이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네가 나한테 쌀 한 톨, 연탄 한 장 아껴서 늘 먹다 남은 찬과 밥을 준다고 해서 네가 이 집을 떠날 때 그만한 보상을 해 줄줄 아느냐 ? 천만이다 너."
   " 어머나 ! 아저씨는 저를 그런 사람으로 보셨나요 ? "
   " 그럼, 뭐야 ? 네가 나에게 대하는 태도가. 넌 이 집의 피가 섞이지 않은 걸로 아는 데, 어쩌면 똑 같이 그렇게 노느냐 말이다."
   " 그동안은 죄송했어요 ! 저두 모르게 자꾸만 신경질이 나고. 심술을 풀데도 없고....어저씨가 마늘 같은 것을 깐다든지, 배추 같은 것을 작만하는 걸 보면 더욱더 미워저요. 속도 없는 남자 같아서요."
   뜻밖이었다. 그래도 강희는 모르는 채 능청을 떨었다.
   " 그 참 이상하구나 ! 그건 모두 너의 일을 도아 주느라고 해 준건네."
   " 어저씨는 절 바보로 아시나봐. 그것이 정말 저를 위해서 해주신 일이라면 제가 왜 아저씰 미워하겠어요."
   " 그래, 네 말이 맞다 ! 하지만 어떡하니. 가난이 유죄가 아니냐."
   " 그래도 아저씬 그만한 기술을가지고 왜 이 집에서 ?... 머슴도 아니고."
   " 사람은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단다. 그런데 그러는 너는 왜 이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느냐 ? 요즘 세상에는 발에 채으는 것이 운전수지만 그래도 가정부 구하기는 여름 하늘에 달 보기와 같다든데 ?."
   " 저는 당분간 못 떠나요."
   " 왜 ?."
   순는 폭 한숨을 쉬고 나서 사모님이 월급조로 계를 넣었다고 했다.
   " 그것이 벌써 두 번째예요. 끝날 무럽에 또 넣었다 잖아요. 저도 모르게 말이에요. 정말 속상해 죽겠어요."
   " 그래. 너도 단단히 올가미에 걸렸구나 !."
   " 아저씨도 그래요 ?."
   " 나는 그 반대란다."
   " 그 반대라니요 ? 아이 내 정신 좀 봐 ! 밥 차려 드릴께 조금만 기다리세요."
   순은 하던 일을 놓고 주방으로 들어 갔다.
   황변호사 댁은 외식 집을 내부만 양식으로 개조한 단층 기와 집이었다.
   " 식당으로 들어 오세요."
   " 식당으로 ?.'
   그는 아직 한 번도 거기에서 밥을 먹어 본 일이 없었다.
   " 누가 오면 어쩌려구 ?."
   " 어때요. 사람이 식당에서 밥 먹는 게 잘못인가요."
   그건 너무나 당연한 소리다. 그러나 이 집에서는 하인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고 식당도 같이 쓰지 않았다. 남의 식구는 무조건 불결하게 생각했다. 그것은 직급이 낮을 수록 더 많은 병균을 보유하고 있는 첫처럼 여겼다.
   " 왜 그러고 있어요. 얼른 들어 오시지 않고요."
   " 종전 대로 하자고."
   그는 아무래도 마음이 꺼름직 했다.
   " 그럼 제 방으로 오실래요 ?  머슴도 아닌데 마루에서 어떻게...."
   " 허허 오늘은 네가 내 마음을 훤히 들어다 보고 있는 것 같구나 ! ."
   " 아이 어서 들어 가세요. 상을 거리로 옮길께요."
   강희는 처음으로 순이의 방으로 들어 갔다. 차가 늘 집에서 대기하고 있었지만, 노는 방은 많아도 기사가 쉴 방은 내어 주지 않았다.
   " 야 이건 영감님의 밥그릇이 아니야 ?."
   사모님은 남편이 집에서 식사를 하든 안 하든 밥 한 그릇을 다 보온 밥통에 넣어 두게 했다. 그것을 순이가 가져온 것이다. 반찬도 어마어마 하게 많았다. 전복과 쇠고기를 섞은 장조림도 있었고, 철없는 죽순 무침도 있었다.
   강희는 우선 은으로 된 황변호사의 밥그릇에 압도되어
   " 밥이 없으면 라면이라도 끓이지 않고, 이걸 가져오면 어쩌지 ?."
   " 괜찮아요. 이건 어치피 저녁에 제가 먹어야 하는 밥이거든요."
   " 그래도 갑자기 들어 오시면 어쩌려구 ?."
   " 그래서 조금 안쳐 두었어요. 금방 될 거에요.'
   강희는 부랴부랴 식사를 했다. 그는 어쩐지 훔쳐 먹는 기분이 들어서 그 좋은 음식도 별 맛을 느끼지 못했다. 차라리 종전 대로 식당 옆에 붙은 쪽마루방에서 김치 나부랑이와 먹는 식은 밥 보다도 못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밥 한 그릇은 없어 졌고. 그래서 바깥으로 나가려고 문을 연 방 안으로 먼저 순이가 찌개 냄비를 들고 들어 오다가 실망한 얼굴을 했다.
   " 어머나 ! 벌써 다 잡수셨어요 ?"
   " 응, 또 요리가 나오는 줄 알았으면 좀 천천히 먹을 걸 그랬지."
   " 그럼 그대로 잠간만 앉아 계세요."
   " 물은 나가서 마시지 뭐."
   " 아이 그냥 앉아 있으래두요. 남자가 주방에 나와 물 마시는 거 저 싫어해요."
   순은 숟갈도 데지 않는 냄비를 상위에 얹어 주방으로 나갔다.
   강희는 마음대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엉거주첨 방문 앞에 앉아서 담배 한 개피를 피워 물었다.
   " 허 참 !."
   순이가 숭융 대신 가져온 커피를 마시면서 강희는 몹시 불안을 느꼈다.
   그 날 오후 늦게 돌아 온 사모님은 개집에 페인트 칠을 검은 색으로 하였다고 잔소리를 늘어 놓았다. 자기는 이번에 초록색으로 바꿀 계획이었다고 했다.
   " 그럼 진작 그렇게 일러 주시지 않고요. 전 원래 검은 색으로 되어 있길래...."
   그러면서 페인트 값이 얼마나 들었느냐고 물어 보지도 않고 안으로 사라진 후, 강희의 포켓에서 나간 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집안 식구들이 없을 때면 순이는 맛 있는 음식들을 표나지 않게 조금씩 가져다 주었고 점심도 더운 밥이 오를 때가 많았다.
   그러나 사모님의 광기와 악착스러움은 날로 더 해갔다.
   하루는 광복동에서 동광동 아주머니에게 갔다 주라고 하면서 봉투에 넣지도 않은 만 원짜리 한 뭉치를 강희 옆자리에 던져주고 내렸다.
   " 차는 부산은행 앞으로 오거라.'
   " 네 알겠습니다."
   그래서 동광동 아주머니에게 돈을 건네 주고 막 대문을 나서려는 데
   " 아저씨, 아저씨."
   하고, 불렀다. 돈이 7천 원이나 모자란다고 했다.
   " 돈이 얼마래요 ?."
   " 모르겠는 데요. 그냥 전해주고만 오라고 해서...."
   " 그럼 아저씨가 한 번 세어 보세요."
   " 맞겠지요 뭐. 세어 보나마나."
   " 무슨 뜻이지요 ?."
   " 아주머니가 받으신 대로라는 뜻입니다."
   " 알았어요. 그럼 나중에 사모님한테 전화를 할테니까 아저씨는 그렇게 알고 돌아 가세요."
   강희는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안았지만 별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모님은 한사코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펄쩍 뛰면서 강희를 의심했다.
   " 돈을 받아서 세어 보지 않은 것은 제 잘못입니다만 분명히 천 원짜리는 보이지 않았는 데요."
   " 뭐라구, 그러면 내가 7천 원을 덜 줬단 말가 ?."
   " 사모님 혹시 그러신지도 모르니 집에 가서 세어 보십시요."
   ? 뭐, 세어 보라고 ? 내가 집에 있는 돈을 얼마나 가져왔는 지 또 얼마나 남았는 지 무슨 재주로 아나 ?."
   하기사 그것은 맞는 말인지도 몰랐다. 땡전 몇 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 주머니 사정을 거울 들여다 보 듯 하지만 부잣집 금고 속을 주인인들 어찌 파악할 수 있으랴.
   앞에까지 씨끈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몹시 기분이 언잖은지 자동차가 집 앞에 서기가 무섭게 벌컥 도어를 열고 내려 신경질적으로 벨을 눌러 댔다.
   " 누구세요 ?."
   " 내다. 무슨 지랄을 한다고 이제사 나오나 ?."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는 데도 사모님은 빽 소리를 치면서 순을 밀치고 오리 궁둥이를 흔들며 안으로 사라졌다.
   강희는 차고에 차를 넣고 먼지를 털면서 혹시 차 안에 돈이 떨어져 있지나 않나 해서 쌋쌋이 살펴보았으나 역시 없었다.
   조금 있으니 순이가 나와서 사모님이 찾는 다고 했다.
   그는 급하게 두어 모금 담배을 빨고 나서 불을 끄고, 순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을 들어서니 사모님은 마루방에 나와서 숨을 헐떡이고 서 있었다.
   " 바른대로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우리 집에 못 있는 다."
   " 사모님 무슨 말을 하라는 겁니까 ? 나가라면 언제든지 나가 드리겠습니다. 그까짓 거 깡통만 안 찾다 뿐이지 이까짓 대우야 어디 간들 못 받겠습니까. 그러나 나갈 때는 나가더라도 시시한 누명을 쓰고는 나가지 못하겠습니다. 그 점 통촉해 주십시요."
   " 야가 정말 애비 애미도 없이 컸다더니....그래 니가 왜 돈을 안 빼돌려으면 동광동 아주머니가 돈을 세어 보기도 전에 도망을 갈라고 했나. 돈을 주고 받을 때는 그 자리에서 세어 보는 게 상식이 아닌가. 그리고 또 그 아주머니가 세어 보라고 내밀어도 너는 마다했다며 ?."
   그것이 다 부족한 돈에 대한 책인을 지지 않으려고 한 짓이 아니냐고 몰아 붙혔다.
   "사모님, 그러면 사모님은 저에게 돈을 주셨을 때 얼마라고 일러 주셨습니까, 세어볼 틈을 주셨습니까 ?."
   " 니가 그 약점을 이용한 거 아이가 ?."
   이젠 노골적으로 도둑놈으로 몰았다.
   강희는 하도 기가 차서  
   " 정말 검사 출신 변호사님의 사모님다운 추리십니다."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을 꿀컥 삼키고
   " 사모님, 사모님의 눈에는 사모님 식구가 귀엽고 착하게 보이시면 남들도 좀 그렇게 보아 주십시요. 사람은 누구나 거의 마찬가집니다. 제가 아무리 가진 것이 없지마는 적어도 7천 원에 제 양심을 팔만큼 형편없이 가난하지는 않습니다."
   강희는 아무리 왈가왈부 해보아야 승산이 없음을 느끼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는 지금까지 그리 오래 살아 보지는 않았지만 여자라는 것은 많이 배운 사람이나 적게 배운 사람이나 숨통이 막힐 정도로 소견이 쫍고 이론이 통하지 않은 동물로써 아예 시비조차 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다음 날 강희는 여느때와 같이 출근을 했다.
   벨을 누르니 가정부가 나와서 대문을 열어 주었으나 차고 벽에 걸어 둔 차고의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순이에게 물으니 어제 밤 사모님이 가져가는 것 같더라고 했다.
   " 그럼 좀 받아 줄래 ?."
   " 사모님이 나가고 안 계시는 데요."
   그러면서 영감님한테 물어 보겠다고 안으로 들어갔다.
   " 아저씨 좀 들어 오시래요."
   " 응, 그래."
   황변호사는 출근 준비를 하고 응접실에 나와 있었다.
   " 내 시간이 없어서 짤라 말하겠는 데, 자네는 내 집에서 더 일을 하고 싶은가,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두고 싶은가 ?."
   강희는 문득 집에 있는 아내가 생각 났다. 또 모가지를 당했다고 하면 얼마나 실망을 할까. 그는 아직도 자의로 직장을 그만 둔 일은 없었다.
   자의이든 타의이든 실직이란 부양가족에게 물심 양면으로 고통을 안겨 준다. 더욱이 지금까지 그러한 고통을 많이 주어 온 강희로서는 차마 못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수모를 당하던 이 위기를 모면하고 싶었다.
   " 우리 집 사람이 좀 별라다는 것은 알고 있네. 그래서 사건에 대한 잘못을 따지고 싶지 안 네만, 자네는 어른을 모시는 태도가 좋지 않은 것 같아. 물론 어릴 때 조실부모하여 가족생활을 해 보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은 성인이 아닌가. 그런데 자네 모친 벌 되는 집 사람한테 감히 그렇게 대들어서야 되겠는 가 ?."
   " 죄송합니다. 어저께는 하도 억울해서 그만...."
   " 그래, 젊은 혈기로 그럴 수도 있겠지 ! 그러나 이 사람아, 집 사람이 심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네가 그래서야 쓰나. 젊은 사람이 참아야지. 그리고 나는 바빠서 택시를 타고 갈테니까 자네는 집 사람을 찾아가서 빌게."
   사모님은 아침 일찍 절에 갔다고 했다.
   그녀가 다니는 원불교는 구덕산 기슭에 있었다.
   강희는 일단 불을 껐다고 생각은 되었으나 소갈머리 없는 사모님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그는 응접실을 물러 나와 씁스레한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모님에게 사죄를 하러 절간을 가는 길이었다.
   사모님이 다니는 원불교는 깊은 산속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걸어서 20여분이면 갈 수 있었다. 신축 당시는 어떠했는 지 모르지만, 지금은 주택 속에 둘러 싸여서  멀리 기와지붕만 웅장하게 보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역시 깊은 산속의 절간처럼 웅장하고 풍경 소리도 들릴 듯 고요했다.
   강희는 그 넓은 곳 어디에 사모님이 계시는 지 누구에게 물어 볼 사람도 없어,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우선 부처님에게 절이나 하려고 법당 문을 열었다.
   " 아니 니가 ?..."
   사모님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안으로 들어 서려는 강희를 밀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계조직을 위해 불제자가 되었는 지는 몰라도 신도들이 엎드려 기도를 드리고 있는 부처님 옆에서 곗돈을 세고 있었다.
   " 여기는 우째 왔노 ?."
   자기의 치부를 들킨 듯 다소 얼굴 빛을 붉히며 물었다.
   " 영감님이 가서 빌라고 해서요."
   강희도 송구하여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 그래, 너 잘못은 알겠더냐 ?."
   " 네 죄송합니다. 어제는 하도 억울해서...."
   " 억울하다니 ? 그러면 돈은 기어이 네가 안 가져갔단 말인가 ?."
   " 네, 그것만은."
  " 그래, 알았다. 차는 가져왔나 ?."
   " 열쇠를 ..."
   ' 참 그렇지 !."
   차고 열쇠는 피아노 위에 있으니 지금 내려가서 차를 몰고 오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사모님은 다시 법당 안으로 사라졌다.
   부처님 옆에서 돈을 세다 들키지 않았으면 그렇게 쉽게 화가 풀어질 사모님이 아니었다. 그래서 강희는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그 감사를 정성스럽게 드리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얼마 가지 않아서 사모님은 또 발작을 했다.
   " 너 배짱 하나 좋구나 ! 주인이 나가라는 데도 못나가겠다고 ?."
   " 네 사모님. 저는 변호사님을 만나 보지 않고는 절대로 못나가 겠습니다."
   " 그렇다면 너를 내보낼 힘이 나에게는 없단 말인가 ?."
   " 그런 것은 아닙니다."
   " 그러면 뭐야. 나를 갈보는 거냐 ?."
   참으로 기가 막힌다는 얼굴이다. 적어도 그 집 서열로서는 단연 영감보다 위인 자기를 몰라 보고란 듯이.
   " 사모님은 왜 자꾸 저를 못된 인간으로 몰아붙이십니까. 제가 감히 사모님을 얕잡아 보다니요. 저는 다만 이 집에서 쫓겨나야할 하등의 이유를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변호사님에게 봉급을 받아왔고, 또 변호사님의 허락으로 일해 왔습니다.."
   " 그러니 영감님의 말을 들어 보지 않고는 한 발자욱도 물러날 수 없단 말이지 ?."
   강희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사모님은 오늘 모 판사따님의 결혼식장에서 갑자기 차에 으르더니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녀는 식장 앞에서 내릴 때 바로 계모임에 간다고 하며 기사에게 꼼짝 말고 차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그런데 계모임에는 가지 않고 너닷 없이 집으로 가자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숨을 헐떡이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금방 가정부를 시켜 아예 자동차 열쇠를 가지고 들어 오란다고 전했다.
   " 무얼 꾸물대노.  빨리 가져오지 않고 ?."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강희가 열쇠를 쥐고 마루에 올라서자 마자 사모님은 획 자동차 키를 나꿔챘다.
  " 배은 망덕하게 어른 앞에 한 손으로..."
   "제가 드리기도 전에 사모님이 뺐어 가시구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
   " 야가 이제 말 대꾸까지 척척....너 아까 박군 그놈하고 무슨 말을 했나 ?."
   강희는 그제서야 앗차 싶었다. 박군이란 자기 앞에 황변호사의 차를 몰았던 사람이었다.
   " 별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 데요."
   " 내 화장실에서 다 들었다. 바른 대로 말해라. 니 놈들이 나를 늙은 야시라고 안 수군댔나."
   " 그건 제가 한 말이 아니고 그 분이...."
   " 잔소리 말거라. 너도 한 통속 아닌가."
   " 아닙니다. 저는 단지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 분이 사모님 댁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구요. 그런데 제가 처음 만난 사람과 무슨 헌담을 늘어 놓았겠습니까."
   " 그래, 박군 그놈이 무슨 이야기를 했어 ?."
   " 그건...."
   " 우물거리지 말고 들은 대로 말해라. 내 그 놈을 당장 명예훼손으로 ....."
   박군이라는 사람은 나이가 상당히 든 분으로 강희에게는 인생으로 보나 운전 경력으로 보나 대 선배였다. 그는 운전기사답지 않게 용모가 단정하고 퍽 젊잖아 보였고, 그도 어느 수산회사의 사장님을 모시고 예식장에 왔다고 했다. 그는 처음 강희를 보고 그 집에 온지 얼마나 되느냐고 묻고 아직도 사모님의 변덕이 야시 뭐 같느냐고 했다.
   " 당신 정말 젊은 사람이 용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두 달만에 그 집에서 모가지가 되었다고 했다.
   이유는 주인 행세를 했다는 것이었다.
   " 주인 행세라니요 ?."
   그는 그 해 여름 사모님과 함께 국제시장에 선풍기를 사려갔다고 했다.
   풍체가 좋은 것이 유죄였던지 전자제품 종업원들이 기사를 보고 사장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려고 사모님에게 이런색갈이 어떠냐고 선풍기를 고르는 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 수 더 떠서 한다는 소리가
   " 역시 사장님의 눈이 보통이 아니십니다.  그렇지요 사모님 ?... 제가 보기에도 하늘색 날개가 훨씬 시원해 보이는 군요.!."
   하고, 장사꾼 특유의 알랑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사모님은 더 이상 못참겠다는 듯 빽 소리를 지르면서
   " 저리 비켜요. 떡 줄 사람도 몰라보는 주제에 무엇이 어째 ?."
   하고, 화를 내며 바같으로 나가 버렸다.
   그 길로 황변호사 앞에 불려가서 꼼짝없이 사표를 썼다고 했다.
   " 이 사람이 운전수면 운전수답게 놀아야지. 감히 어디라고 집 사람 남편 행세를 해. 나는 처음 자네 복장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 되지 못하게 넥타이에 카다마이까지..."
   " 그게 아닙니다 . 변호사님.'
   " 변명은 듣고 싶지 않네. 자네 말마따나 종업원이라는 놈이 잘못 알고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자네는 어찌 자네의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닌데 이 색갈이 좋으니 저 색갈이 어떤니 하고 간섭을 했나 ? 그건 분명히 자네의 직분을 넘어 선 행위가 아닌가. 건방스럽게 시리. 그런 식으로 나갔다간 나중에 큰 일 낼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하도 매씨껍고 속이 뒤틀려서
   " 보소 변호사님요. 내가 아무리 쳇바퀴를 돌려 먹는 운전수지만도 그 비개덩어리 불여우한테 남편 행세를 하겠능기요. 사람 좀 똑 바로 보고 착각을 하이소. 자, 열쇠 여기 있습니다. 사모님이 하루에도 열두 번이나 내 놓으라고 하는 자동차 열쇠 말입니더."
   그 길로 그는 한 달이 다 되어가는 급료도 포기한 채 자기의 집으로 돌아 오고 말았다고 했다.
   강희는 화장실 밖에 나와서 그분의 이야기를 마자 들었기 때문에 정말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모님은 화장실 밖에서 한 이야기가 궁금한지 유도 신문을 계속했다.
   " 그래 너는 그놈 말만 듣고 있었단 말이지 ?."
   " 네, 사모님."
   " 아니 이 사람 좀 보게. 내가 다 들었는 데도 딱 잡아 떼는 구나...뭐 자리를 구할 때까지,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리를 들었는 데도 ?."
   " 네 그건 다름이 아니구요. 그 분 말이 저더러 하루 바삐 자리를 구해서 뜰 생각을 하라고 하더군요."
   " 그래, 그럼 오늘 당장 떠나게. 너 같은 작자들은 이제 필요 없네."
   그러면서 우리 집이 운전수들의 임시 대기소인 줄 아느냐고 떠들어 댔다.
   사모님은 자기의 헌담을 들은 데 대한 분노 보다도 기사를 쫓아낼 명분을 찾는데 더 고심을 하는 것같았다.
   " 사모님 정말 섭섭합니다. 제가 사모님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그만 두라는 말씀을 숨쉬듯 하십니까. 가자면 가고 서라면 서고, 기다리라고 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꼼짝없이 한 자리에서 한 번이라도 오라는 시간에 단 일 분이라도 어긴 일이 있습니가. 운전기사에게 더 이상 무엇을 원하십니가. 매일 아침이면 산더미 같이 샇인 개똥을 치우고, 청소도 하고 시장 바구니까지 들고 다닌 제가 아닙니가. 제에게도 더러운 냄새를 싫어하는 코가 있고, 배추나 생선 두부 콩나물이 들은 시장 바구니를 들고 따라다닐 때면 남들 보기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모님 저는 월급15만 원에 팔려 온 노예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노예처럼 일해 왔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사모님이나 변호사님이 저의 부모님 뻘이 되지 않았다면 있어 달라고 잡아도 벌써 이 집을 떠났을 것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는 기분으로 일해 온 저의 정성을 어찌 사모님은 그렇게도 몰라 주십니까."
   사모님은 이외로 한참 동안 듣고 있더니
   " 그래.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한 것 같구나 ! 이 번 일은 없었던 걸로 하자구나."
   이래서 강희는 또 한 번 쫓겨날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사모님의 마음은 박기사의 말마다나 야시 뭐 같아서 오래 가지 않았다.
   그 무렵 몇해 전에 그 집에서 차를 몰았던 청년으로 부터 사모님에게 종종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군에서 부대장의 차를 몰았던 사람으로 제대를 하고 바로 황변호사의 집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사회의 물정을 모르고 변호사 부부를 마치 자기의 상관 대하듯 하였다고 했다.
   이른 아침에 출근을 하여 먼저 차를 깨끗이 닦은 후에 그의 매일 왁스를 먹였다. 그리고 나서 자기의 돈으로 구두약을 사서 영감님의 구두를 파리가 나자빠지게 닦았고, 심지어는 사모님의 구두와 자동차 타이어까지 약칠을 하는 위인이었다. 그리고 나서 변호사 부부가 아침 산보를 하는 동안 잔듸를 깎고 폼푸를 틀어 정원에 물을 주고 집안 청소까지 말끔히 하였다고 했다. 실로 그 집에서 기사에게 궂은 일을 시키기 시작한 것이 그 후부터라고 했다. 단 몇 분이라도 앉아서 못배기는 그가 어느날 갑자기 몸이 아파서 그만두겠다는 전화 연락을 준 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핑계였다. 그는 좀 더 나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금은 무슨 일로 모가지가 되어 황변호사의 집을 기웃거리는 중이었다.
   사모님은 그런 것도 모르고 늘 그 놈의 자랑을 했고.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안달이었다.
   " 이군아, 너 알고나 있거라."
   사람이 없어서 너를 데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듯, 사모님은 조금만 기사가 눈에 거슬려도 그런 말로 엄포를 놓았다.
   강희에게 언제 다시 있어 달라고 했느냐는 듯 황변호사가 동남아 여행에서 돌아오자 사모님은 먼저 남편에게 기사를 내보내달라고 악을 썼다.
   " 나는 다시 그놈이 모는 차는 안 탈테니 당신 알아서 하세요."
   " 아니 왜 또 그러우 ? 당신이 지금 기사를 내 보내고 안 내 보내는 데 신경을 쓰게 되었소. 얼른 병원부터 갑시다."
   " 싫어요. 내 병은 내가 알아요."
   기사만 내 보내면 금방 병이 나을 테니 그 일부터 처리하라고 했다. 
   " 내 병이 왜 났는 지 당신 알기나 하고 그래요. 순전히 그 놈 때문이에요. 글쎄 나는 주인이 아니니 내 말만 듣고는 못 나가겠다는 군요."
   사모님은 남편이 여행중에 있었던 일을 풍선처럼 부풀려서 고해 바쳤다.
   " 당신 정말 왜 그렇소 ? 그까짓 운전수 하나를 가지고 왜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느냐 말이요. 내가 보기에는 그 중에 제일 착실해 보이던데."
   " 뭐라구요 ? 흥 이제는 당신까지 나를 개 발싸게 만도 못하게 생각하니 천상 내가 이 집을 나가는 수 밖에 없군요."
   사모님은 내일 당장 서울 아들네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 아니 병원에  갈 사람이 도로 자리에 누우면 어떻게 해. 정 그렇다면 내 다른 사람을 구해 볼테니까 얼른 일어나서 병원부터 갑시다..'
   " 구하긴 누굴 구해요. 먼저 있었던 허군..."
   " 그래. 어쨌든 그건 병원에 갔다 와서 얘기 합시다.
   황변호사는 달래고 구슬리고 하여 겨우 아내를 차에 태웠다.
   거리에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 사무실에 잠시 들렸다가 복음병원으로 가 주게."
   " 네."
   황변호사의 사무실은 법원 옆으로 해서 비탈길의 막바지에 있었다. 법원과는 불과 100M의 거리에 있지만 상당히 경사가 진 고지대에다 막다른 골목이라 차는 항상 출발하기 편리하게 돌려서 세워두었다.
   자동차가 도청을 지나 사무실 앞에 도착하니 차창 안으로 습기가 끼어서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황변호사는 급히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올라가고 사모님은 사흘 굶은 시어머니가 되어 뒤시트에 도사리고 앉아 있었다.
   강희는 차를 돌리려고 후진 기어를 넣었다. 사모님이 타고 있어서 뒤 유리의 습기를 수건으로 딱기도 거북하고, 그렇다고
딱아 달라기도 할 수 없어서 그대로 조심스럽게 후진을 했다.
   그런데 앗차 하는 순간 부레이크 페달에 얹었던 발이 빗나가며 차가 그대로 옆으로 굴렀다. 그가 다시 부레이크를 밟고 차를 정지 시켰을 때는 벌써 후미에서 와자작하는 소리가 난 후였다.
   강희는 눈 앞이 아득했다. 그는 시동을 끄고 핸드 부레이크를 당긴 후 얼른 도어를 열고 밖으로 나왔다.
   차는 정말 운 좋게 종이 한 장 차이로 우측 건물 벽에 다일 듯 멈추어 있었다. 얼른 보기에는 아무른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들은 소리가 있었기 때문에 몇 번이나 자세히 살펴 보았지만 역시 부서진곳은 보이지 않았다.
   ( 분명히 와장창 하는 소리가 났는 데 ?)
   그는 허리를 굽혀 자동차의 밑을 들어다 보았다. 쓰레기를 담은 프라스틱 바케스가 박살이 난 채 차 밑에 깔려 있었다.
   강희는 안도의 숨울 내어 쉬고 다시 차에 올라 앞으로 뺐다 다시 후진을 하려고 뒤돌아 보니 사모님이 보이지 않았다.
   ( 그새 내려 사무실에 갔을 까 ?.)
   강희는 차를 돌려 사무실 앞에 세웠다. 조금 있으니 황변호사가 내려왔다.
   " 집 사람 어디 갔는 가 ?."
   " 네 차를 돌리려고 보니 안 계시던데요."
   "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 그래.  집 사람이 내리는 걸 보지 못했단 말인가 ?."
   " 네."
   " 자네는 차에 없었는 가 ?."
   " 있었는 데요."
   " 있었는 데도 사람이 내리는 걸 못 봤단 말인가 ?."
   강희는 조금전에 있었던 일을 대강 황변호사에게 말했다.
   " 그래. 그럼 이 사람이 그새 어디에 갔을 까 ?."
   황 변호사는 차에 올라 문을 열어 둔 채 아내를 기다렸다. 그는 아내가 소변이라도 보려간 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조금 있으니 사환이 뛰어 나와 전화가 왔다고 했다.
   " 이 사람이 병원에 가다 말고 갑자기 다방은 ?."
   황변호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 한참 있으니 또 사환이 찾아왔다.
   " 이기사님 영감님이 좀 올라 오라는 데요."
   " 어디, 다방으로 ?.'
   " 아뇨. 사무실로요."
   어느새 또 거기로 갔단 말인가.
   강희는 열쇠를 뽑아 차를 잠그고 3층에 있는 사무실로 올라 갔다.
   황변호사는 무슨 일로 화가 났는 지 책상 앞에 토시고 앉아서 들어 오는 강희를 잡아 먹을 듯이 노려 보고 있었다.
   " 자네는 아무래도 내 집에서 나가 줘야 겠네."
   " 그게 무슨 말씀 입니까 ? 변호사님."
   " 자네는 어디 사람인가. 한국 사람이 한국 말을 못 알아 듣다니...다른대로 일 자리를 옮겨 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야."
   " 변호사님이 그만 두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저에게 그만한 이유라도 있는 지요 ?."
   " 이 사람 좀 보게... 아니 사람을 벽에 부딪쳐 죽이려고 했는 데, 그게 어디 그 이유만으로 되겠는 가. 엄격히 따지면 살인 미수야, 살인 미수."
   강희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허허 웃었다.
   " 아니, 이 사람이 정말 실성을 했나 ? 감히 누구 앞에서 ....내 그간의 성의를 생각해서 곱게 보내려고만 했더니.'
   " 네, 법대로 하십시요, 변호사님. 살인 미수라면 아무리 에누리를 하더라도 몇 년을 살아야 겠지요."
   강희의 입에서 이외의 야유 비슷한 반발이 나오자 황변호사는 다소 기가 꺽이며
   " 나는 조금 전에 자네가 한 말을 들려 주었네. 그런데 집 사람은 그게 아니라는 거야. 살기가 등등한 눈으로 자기를 노려 보면서 후진을 하여 그대로 벽에 쳐박아 버리더라는 거야."
   " 그것은 사모님의 지나친 신경 과민이십니다. 사모님을 죽이려고 처박은 차가 어째서 손톱 하나 끓인 자욱이 없습니까 ?."
   " 그건 그렇다 치고, 집 사람을 뚫어지게 노려본 이유는 뭔가 ?."
   " 그것도 마찬 가집니다. 후진을 하자면 뒤돌아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 후진을 하면 뒤에 탄 사람을 노려 보아야 하는 가 ?."
   " 뒷 유리에 습기가 차서 ..."
   " 이 사람아, 습기 찬 거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가 ?."
   " 습기 때문에 뒤가 잘 안 보여서 크게 뜬 저의 눈과 사모님의 시선이 어쩌다 마주쳐졌겠지요."
   " 음, 그건 타당성이 있는 말 같군 ! 아까는 내가 좀 지나친 말을 했네. 그러나 이제는 아무래도...솔직히 말해서 나에게는 자네 보다 집 사람이 더 소중하네. 그런데 집 사람은 어쩐지 자네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니 난들 어쩌겠는 가. 더욱이 집 사람은 환자야. 지병인 고혈압과 심장 질환 말고도 요즘 식욕이 없고 피로가 온다고 하여 병원으로 가는 길인데 저러고 있으니 원."
   강희는 변호사 앞으로 열쇠를 내밀었다.
   그러자 좀 안 되었다는 얼굴로  
   " 그럴께 아니라. 우리는 여기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갈테니까 자네는 차를 집에 갔다두고 내일 집으로 와주게."
   남은 이야기는 그때 하자고 하면서 황변호사는 바삐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이튿 날 황변호사도 사모님도 집에는 없었다. 어제 그 길로 사모님은 입원을 하였다고 했다. 집안 분위기로 보아 병이 심각한 모양이었다. 언제 연락을 받았는 지 서울에 있는 아들 내외와 딸 사위까지 와 있었다. 미국에 있는 큰 딸에게도 전화를 하고 야단이었다.
   사표를 내고 남은 급료를 받으려 갔던 강희는 그 길로 손님을 태워 병원으로 시장으로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황변호사도 어제의 일을 거론 하지 않았고 몹시 초최한 얼굴로 사모님의 병환에만 온 신경을 쓰고 있었다.
   진단 결과는 간암이라고 했다. 심장이 나빠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라 앞으로 숨을 쉴 수 있는 날은 길어야 3 개월 정도라고 했다. 수천 년이나 수 만 년 살 것처럼 인간의 의리와 양심을 버린 채 오직 부를 축척하는 데 온 영육을 바쳐온 사모님도 머지 않아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시한부 인생이 되고 말았다.
   가족들은 모두 그녀의 사형선고를 알고 있었으나 아무도 본인에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가 무슨 불사조라도 되는 것처럼 문병온 사람들을 오히려 위로하기도 하고 나무라기도 했다.
   " 야들이 왜 이래 초상난 얼굴을 하고 있나.  내 곧 일어난다. 염려 말거라."
   그 말을 들은 작은 딸은 하도 어머니가 딱하고 불쌍해서 돌아 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 가만히 누워 있으니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이 탈이지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의사양반이 왜 퇴원을 못하라고 하는 지 원."
   아무래도 그 놈들이 돈을 더 끓어 내려고 생사람 잡는 다며 나중에는 욕까지 했다.
   " 엄마 그게 아니에요. 아무려면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려구요. 조금만 참고 완괘 되거든 퇴원을 하도록 하세요."
   " 아니다 얘야. 그까짓 소화 좀 안 되는 건 전에 같이 안 돌아 다녀서 그런 거다."
   정말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날이 가면 갈 수록 병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어만 갔다. 이제 얼굴에는 병색이 깊었고, 먹은 음식이 가끔 목으로 넘어 왔다. 명치 아랫배가 불러 오기도 했다. 간이 부어서 아래로 처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금방 일어 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사모님도 이제 조금은 죽음 같은 것을 느꼈는 지 한불 꺾인 얼굴로 찾아 온 목사님에게 조용히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고, 의사를 잡고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기도 했다. 병이 들기 전에 거의 하루도 빼 놓지 않고 그처럼 열심히 드나들었던 원불교는 진심으로 믿은 것이 아니었는 지는 몰라도 지금은 어느새 기독교 신자가 되어 급히 세레까지 받았다. 돈을 많이 내면 천당으로 갈수 있는 줄 알았던지 남편더러 신축 중인 교회에 아끼지 말고 돈을 주게 했고, 그래서 혹시 잘못되어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천당에 가서 편안하게 지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강희는 어릴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각이 났다. 그의 아버지도 간암으로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도 운전기사에게 기름을 많이 썼다고 야단을 쳤고, 제 시간에 조금만 늦게 도착을 해도 신경질을 부리며 모가지를 시킨다고 엄포를 놓았다.
   지금 가만히 생각하면 그 때 아버지는 자기의 기사를 너무 학대하고 못 살게 굴었던 것 같았다. 평일에도 밤 10시 안에 집으로 보내 준 일이 별로 없는 데다가 공휴일이면 어김없이 바다 낙씨를 다녔다. 그런 날은 차를 새벽 4시까지 집 앞에 대기 시켜야 했고, 단 10분이라도 어기는 날에는 아버지가 택시를 잡을 때까지 차를 도착 시켜도 기어이 자기의 차를 타지 않고 잡은 택시를 타고 가는 성미였다. 혹시 낙시를 가서 자고 올 때도 자기들은 민박이나 인근 여관에 들어가서 자면서도 기사한테는 돈을 주지 않고 차 안에서 자게 했다.
   강희는 그것을 어렸을 때 기사 아저씨들 끼리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그처럼 자기의 기사를 푸대접 하였기 때문에 그 아들인 자기가 그 죄 갚음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모님은 악화 된 건강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 동안 기사를 내보내야 한다는 일은 잊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 지 가끔 전화질을 하던 그 기사가 병문안을 하고 갔다 그 후 또 다시 기사를 갈아 치워야 한다는 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들볶이다 못한 황변호사는 강희를 절대로 병실에 들어 오지 못하게 했다. 아마도 사모님에게는 그를 내보냈다고 한 모양이었다.
   3개 월 정도는 살겠다던 사모님은 두 달을 채 보내지 못하고 기어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남편과 의시의 옷자락을 붙들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살을 에는 아픔을 주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 많은 돈을 두고 떠나기가 너무나 억울해서 그처럼 죽기가 싫었는 지도 몰랏다.
   장례식은 기독교 형식으로 했다.
   그래서 지금 쯤사모님은 천당에 있는 교회에 가서 또 다시 계를 모으려 다니는 지는 모르지만, 강희도 이제 황변호사 댁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3일이 되던 날 그는 자진하여 사표를 냈다.
   " 정말 그동안 잘 참아 주었네 ! 실은 자네가 내 집을 떠나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조였다네."
   " 네, 저도 사모님에게 돌아 가시면서까지 기사를 바꾼 사람이라는 오명을 씌워 드리고 싶지 않아서..."
   강희는 그것을 돌아가신 아버지의 잘례식에 참석한 문상객의 기사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부끄러워 했는 지 모른다. 어머니도 그 말을 들었는 지 슬그머니 울음을 그쳤고, 일가친척들의 눈치를 살피며 민망해 하였다. 그는 그때처럼 아버지를 미워해 본 적이 없었다.
   " 어이 저 집 어른은 병원침대에 누워서도 운전기사를 갈아치웠다며 ?."
   " 그러게 말이다. 제딴에는 한 오백년이나 살 줄 알았던 모양이지.'
   " 야 그런거 보면 염라대왕도 눈이 삔 것 같지는 않은 데, 우리 집 꼰대는 왜 안 잡아가는 지 몰라."
   " 임마 그건 순 니놈 덕이야."
   " 내 덕이라니 ?."
   " 니 꼰대를 덜컥 잠아 가 봐. 그 길로 네놈의 밥통은...."
   남의 슬픔은 아랑곳 하지 않고 기사들은 마구 떠들며 웃어 댔다.
   " 내 자네의 깊은 마음에 감복했네 !."
   황변호사는 강희의 어깨를 두드리며 계속 자기의 집에 있어 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기어이 그 집을 나오고 말았다. 이제 그 집에 더 이상 뻐티고 있어야 할 아무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설방 > 어디로 가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 어떻게 하나  (0) 2014.08.26
9. 열 풍  (0) 2014.08.26
7. 한 많은 소녀  (0) 2014.08.26
6. 씨받이  (0) 2014.08.26
5. 산 넘어 산  (0) 201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