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어디로 가나

4. 아 내

오늘의 쉼터 2014. 8. 26. 01:19

4.  아 내
 
 
   차밭골의 겨울 밤은 소나무 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에 깊어만 갔다.
   열두 시가 가까워 오자 소영의 마음은 더욱더 불안하고 가슴을 조이는 초조가 왔다.

강희가 일을 나가는 날이면 언제나 그러했다.
   운전사의 아내.

더욱이 택시기사의 아내란 이렇게 늘 마음을 조이며 살아야 하는가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말 자기의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부모님의 반대를 무럽쓰고 몰래 집을 뛰쳐나올 때 가난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다. 젊음을 믿었던 것이다.

오히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떳떳이 부모님 앞에 나타나 지난날을 사죄하고

어른들의 생각에도 잘못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리라 다짐했는 데,

과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모두가 부모님의 말씀대로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삶 자체에 대한 고달픔이지

사랑하는 사람을 얻었다는 행복한 마음에야 어찌 비할 수 있으랴.
   소영은 언제나 괴로울 때면 이 모두가 다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운명을 거역할 수없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조용히 운명을 받아 들이자.그러노라면 언젠가 우리에게도 행복이 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다소 불안이 가시는 듯 했으나 밖으로 나오니

쏴 하고 나무가지 끝을 스치는 찬바람이 가슴속으로 파고 들어 와 또 다시 슬퍼졌다.

   ( 왜 여태 안 오실까 ? 혹시....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  절대로.)

   소영은 대문 밖으로 몇 번인가 들락날락 하다가 기어이 차고에까지 내려오고야 말았다.

거기엔 이미 여러 대의 자가용과 많은 택시들이 들어와 있었으나 역시 자기네 차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경비원 아저씨에게
 
 " 아저씨 우리 차 안 들어 왔어요 ?"
   하고, 물었다.
   " 글세요. 아직 안 들어 왔구만요. 곧 들어오겠지요."
   " 12 시가 다돼 가는데, 무슨 연락이라도 없었나요 ?."
   " 예. 연락이 있으면 어른히 전해 주려구요."
   " 그 때 마침 두 대의 해드라이트 불이 차고 안으로 들어왔다.

한 대는 픽업이었고 다른 한대는 택시였으나 남편이 몰고 온 차는 아니었다.
   가 건물로 지은 주차장 벽시계가 12 시를 치고 있었다.
   소영은 거의 절망에 가까울 정도로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 색시, 그만 돌아가 주무시구려. 아마 장거리를 갔다가 자고 오는 모양이요."
   그래도 소영은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이제 다리마져 후들후들 떨려서 걸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주차장은 원예 고등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파출소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뒷골목으로 잘만 빠져들면 통금에 걸릴 염려는 없을 것 같아서

소영은 기다리는 데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코트라도 걸치고 올걸.)

   소영은 전신이 오들오들 떨려왔다.

그것은 초조와 불안 때문에 더 했다. 

   ( 어쩜 벌써 12 시가 넘었네 ! )

   주차장 담벼락 밑에서 소영은 가로등에 시계를 비춰봤다.

통금시간이 5분이나 지나 있었다.

   " 정말 안 오시려나 봐."

   그녀는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며 집으로 발걸으을 돌렸다.

때마침 온천 국민학교 쪽에서 해드라이트 불빛이 비쳐왔다.

얼마나 속력을 내었는지 자동차 불빛은 금방 차고 안으로 사라졌다. 

   " 아 정말, 그이구나 !."

   소영은 긴장이 한꺼번에 풀려서 전신에 힘이 쫙 빠졌다. 현기증이 왔다.
   주차장에 택시를 넣기가 무섭게 차고에서 뛰어 나오던 강희는 담벼락에 쭈거리고 않아 있는

여인을 발견하고 우뚝 걸음을 멈췄다. 


   " 여보세요.... 아니 당신이 여기에....?"

   그는 소영을 안아 일으켰다.
   " 아니 이 추운 밤에 코트도 입지 않고...."
   강희는 운전복을 벗어 아내에게 덮어주고 어깨를 껴안으며 집을 향해 걸었다.
   " 다시 이러지 말랬는 데..."
   " 미안해요. 자기 운전하는 데 신경 쓰일까 봐 안 내려오려고 했는 데 방에 있으니 자꾸 마음이..."
   " 아니야. 그렇게 불안해 할 것 없어. 운전이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위험한 것이 아니라구.

운전사들은 아무리 복잡한 시장통이라도 걸어가는 것 보다 차를 몰고 가는 게 훨씬 수월해.

이건 조금도 거짓말이 아니야. 그러니 이후로는 절대로 그런데 신경을 쓰지 말아요."

   강희는 아내의 손을 꼭 쥐었다.

   " 오래 기다렸나 봐."

   " 아뇨. 조금...."


   " 손이 찬 걸 보니 꽤 오래인 모양인데 그래."

   소영의 등은 남편의 가슴에서 따뜻한 체온을 느끼게 했다.

기름 냄새인지 땀내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그가 씌워준 운전복에서 났지만 싫지는 않았다.


   " 근데,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늦었어요 ?."


   흔히 차가 고장이라든가 엉뚱하게도 시골에서 올라온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친척 집을 찾아 주느라고 늦은 때는 더러 있었지만 오늘처럼 통금을 넘긴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 자기 수입 때문에 무리하게 운전하는 거 나 싫어요."

   소영은 오늘의 수입금이 육천 원이 훨씬 넘는 데 신경이 쓰여서 물어 보았다.

   " 응, 그건 아니야."

   숭늉을 물리치고 남편은 이불보에 비스듬이 등을 기대며 무슨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 그럼 제가 알면 안 되나요 ?."

   " 이불 좀 펴 주겠소. 나 눕고 싶은 데."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누울 자리부터 찾았다.

그는 언제나 그러했다. 택시를 하고 부터는 모든 것이 귀찮은 듯 그저 틈만 있으면 잠을 잤다.
   운전은 택시 한 대를 가지고 둘이 하루씩 교대를 하면서 했다.

그가 일을 나가는 날에는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곯아 떨어지기가 바빴고,

쉬는 다음 날도 거의 계속 잠속에 있었다. 그가 좋아하던 책도,

사랑하는 아내도 안중에는 없는 듯 그저 잠만 잤다.
   그래서 잠 속에서 날을 보내고, 다음 날 나가면 또 그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집어치울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할부차를 인수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만길씨의 말씀대로 할 걸.)

   소영은 강희가 택시 운전을 하려고 할 때 차마 사랑하는 사람을 직업 운전사로 만들 수가 없어서

자기의 수중에 있는 돈을 몽땅 털어 계약금을 치르고 택시를 할부로 구입하여 손수 운영을 하게 했다.
   처음 그녀가 그런 계획을 말했을 때 만길은 반대를 했다.

강희도 좀 경험을 얻은 후에 하자고 하였으나 소영은 남편에게 차주라는 이매지를 심어주기 위해

고집을 꺾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택시 사업은 그들이 생각한 대로 잘 되어 주지 않았다.

그와 교대를 하는 짝지 운전사는 온천장에서 가장 수입을 많이 올린다는 젊은 총각으로

역시 만길이 소개를 하여 주었고, 그는 과연 소문대로 기름 값과 자기의 일당을 떼고도

5천 원에서 6천원까지 들여 놓았다.
   그러나 강희는 경험이 없어 그런지, 차주라고 차를 아껴 몰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연료비를 포함해서 총 매상이 5천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니 월말이 되면 세금과 할부금을 포함해서 늘 삼사만 원이 부족했고,

그것을 온 이웃에서 끌어들였다. 또 그 빚을 갑는 데 적어도 일 주일이나 걸렸다.
   69년도의 택시 사업은 기막힐 정도로 어려웠다.

손님이 차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택시가 손님을 찾아 눈이 나오도록 헤매어도

공차 운행이 7할이 넘었다.

그때는 기름값이 사서 연료비에 그렇게 신경을 써지 않아도 좋았으나 비포장 도로가 많은데다

너무 돌아다녀서 타이어는 3개월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다달이 회사에 바칠 지입료와 세금 하나만은 까무라칠 정도로 배보다 빼꼽이 컸다.


   다음 날이었다.
   그 날도 늦게 자리에서 일어난 강희는 밥상을 물리치자 마자 또 잠속으로 빠져 들었다.

   ( 어쩌면 저렇게도 고단할까 ! )

   소영은 뜨개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 물끄럼히 잠자는 남편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너무나 안스럽고 측은 해서 얼른 시선을 거두고 다시 뜨개질을 시작하였으나

실오락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

   " 아니. 무, 무슨 일이야 ? "


   강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구석을 더듬으며 입성을 찾았다.

   " 내 옷.  내 옷...."

   " 아니 왜 그러세요 ? 무슨 꿈이라도..."

   " 꿈이라니. 방금 울음소리 같은 게 들렸는 데  ?." 


   " 아니에요. 주무세요, 더..."

   소영은 울음을 삼키느라 돌아 앉으며 뜨개질 감을 만지작거렸다.

   " 이상하다. 내가 꿈을꾸었나."

   그러면서 그는 눈을 비비고 길게 하품을 하더니 또 다시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 자기 잠깬 김에 점심 드시는 게 어때요 ? 벌써 12시가 다 됐는 데."


   " 응 당신이나 먼저 먹어. 난 좀 더 자고나서 먹을 께."

   소영은 남편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방문을 열고 나왔다.

거기엔 바로 부엌이 딸려 있고 위로 창이 있는 판자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 나왔다.
   그녀는 거물로 된 망태기를 들고 시장으로 내려갔다.
   남편은 고아 출신 답지 않게 식성이 좀 까다로웠다.

그러나 잘 읶은 김치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을 군소리 없이 먹어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미쳐 준비를 하기도 전에 김장철을 넘겨버려서 동김치를 담지 못했다.

그래서 배추를 서너 포기씩 사서 담아 먹었고, 그것이 떨어지기 전 미리 담구어야 했다.

생각 같아서는 한꺼번에 많이 담고 싶었지만 겨울 채소라 여간 비사지 않아서 그럴 수도 없었다.
   소영은 남편이 좋아하는 물 오징어 두 마리와 배추 세 포기를 사서 망태기에 넣고

김치를 담을만치 갖가지 양념도 샀다.
   혹시 된장찌개가 졸아 들지 않을 까 하여 그녀는 걸음을 빨리했다.
   온천시장은 꽤 먼 거리에 있는 데다 집이 고지대라 숨길이 가쁘고 팔도 몹시 아팠다.

그래도 소영은 쉬지 않고 걸음을 재촉하여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자기 방 앞뜰에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여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 무슨 일일까 ?.)

   그녀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 아아고 새댁, 시장에 갔다 오능기요. 이 일을 우짜면 좋응 기요."

   " 아니 왜 그러세요 ? 철이 어머님."

   " 큰 일 났임더 !..."

   사고가 났다는 이웃 아주머니의 말을 들은 소영은 시장 바구니를 땅에 떨어뜨리며

힘없이 주저 앉았다.

   " 와 이라는 기요. 정신 좀 차리시요."


   이웃 아주머니들이 떠다주는 무을 넘기고 한참 후에 그녀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문도 열리고 방문도 열린채다.

   " 신랑은 벌써 갔심더. 수영 어디라 카던데...."

   소영은 본능적으로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주창으로 달려갔다.

거기서도 자세한 내막은 몰랐다.

경찰서에서 주차장으로 연락이 왔더라고 했다.
   남자여서일까.

소영과는 대조적으로 강희는 주차장에서 정비도 하고 잔심부름도 하는 김군한테서

   " 이씨 아저씨. 사고가 났습니다."

   라고 하는 전갈을 받았을 때

   " 응 그래."

   할, 정도로 태연했다.

   그는 웬지 모르게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그것은 어쩌면 쫓기며 숨어 다니던 범죄자가 경찰에 붙잡혔을 때의 심정 같기도 했고.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좁은 현관에 놓아 둔 금간 독을,

담 넘어로 날아 온 돌멩이가 께어 준 기분이기도 했다.

어쨌든 아까운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 아저씨 빨리 가 보셔야지요."

   멍하니 앉아 있는 그에게 김군이 재촉을 했다. 

   " 그래, 가야지."

   그제서야 강희는 세금을 내려고 모아 둔 돈을 몽땅 꺼내어 포켙에 집어 놓고 집을 나섰다.
   정작 택시 운전은 하였어도 남의 택시를 타보기는 처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사고가 어느정도인지 그에 대한 궁금증이라든가 건심 보다도 몇 발 가지 않아서

요금 숫자가 요금 메타에서 찰각찰각 올라 가는 데 더욱더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이 놈의 차는 왜 이렇게 죽자살자 달리는 지, 당장 세우라고 소리치고 싶도록 불안했다.

그는 택시의 메타를 못 마땅한 얼굴로 노려 보았다.

그런데 이건 또 어찌 된 영문이지 스피트 메다는 겨우 육칠십 안으로 오락가락 하고  있지 않은가.

자기도 그 정도는 늘 내고 있는 속력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운전을 하였을 때도 손님들이

그와 같이 불안을 느끼고 있었을까.


   " 그 참!  이상한 일이다 ! "

   " 무엇 말씀입니까 ? 손님."

   " 아, 아무것도 이닙니다."

   택시는 어느새 망미동으로 해서 수영 삼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태창목재를 채 못 간 주유소 앞에 이르니

수영천으로 흐르는 개천가에 사람들이 우 모여 서서 감포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강희는 직감적으로 거기가 사고 현장임을 느꼈다.

   " 아 여기 좀 내려주시요."

   그는 어쩐지 창피한 기분이 들어 사람이 모인 곳에서 멀리 떨어져 택시에서 내렸다.

   " 어어이 택시가 어찌 여기까지 굴러와서 쳐박혔노 ?

저 가로수를 들어 밖고도 50M가 더 되는 데...."

   " 그러게 말이다. 다친 손님이 그러는 데, 운전수가 잤다 카더라."

   " 저런, 우째 그렇게 깜박 졸았던고 ?."

   사람들은 서로 웅성거리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자동차가 떨어져 있는 감포천은 돌로 쌓아 올린 옹벽의 길이가 4M 가까이 되었으나

폭은 겨우 5M도 되지 않은 듯 했다.
   강희는 구경군들 틈에 끼어 한참동안 희한하게 변해버린 자기의 택시를

원망스럽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얼마나 마음을 놓고 졸며 달렸는 지개울 이편에서 날아 저편 옹벽을 받고

개천 아래로 떨어진 차는 앞부분이 뒤로 밀려 거의 없었다.
   마을 앞을 가로 질러 수영천으로 흐르는 감포천은 마침 설물 때라

그런지 타이어가 훤히 보일 정도로 물이 빠져 있었다.
   그는 이윽고 차주의 입장이 되어 돌벽을 더듬더듬 타고 개울 아래로 내려갔다.
   자동차 바닥에는 모래가 섞인 물이 고여 있었다. 사고 당시에는 밀물 때였던 모양이었다.
   강희는 찌그려져 아무렇게나 열려 있는 차 안으로 들어갔다.

열쇠는 꽃혀진 채 시동이 꺼져, 암 메타와 오일 메타에 빨간 경고등이

그때까지 꺼지지 않고 들어와 있었다.

앞 콘솔과 시트 위에는 깨어지 유리 조각들이 싸락눈처럼 쌓여 있고,

핸들은 엿가락같이 앞으로 휘어져 있었다.  또 뒷시트에는 검붉은 피가 흥근했고,

돈주머니는  입을 벌린 채 찌그러진 운전대 켓치에 걸려 동전 몇 잎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강희는 열쇠를 뽑아 주머니에 넣고 바깥으로 나왔다.
   하늘을 쳐다보고 옹벽을 더듬으며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위로 올라왔다.

그는 고맙다는 인사도 잊은 채 그곳을 떠났다.
   " 손님, 어디로 가십니까 ? "
   " 아! 병원...제일..."
   " 예, 범일동에 있는 제일병원 말입니까 ?."
   강희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택시의 뒷 시트에 기대였다.
   운전사는 알아 들었는 지 더 이상 묻지도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도 또한 피료에 지쳤는 지 말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택시 운전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동차의 낡은 부속처럼

가는 데까지 살아갈 뿐이라는 표정들이다.
   환자는 수술을 받고 호텔로 갔다고 했다.

병원에는 입원실도 마음에들지 않고 불편한 점이 많아서 초량에 있는 호텔로 옮겼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많이 다치진 않은 모양이군요."
   " 글세요. 현제로 보아서는 뇌에 별 이상은 없는 듯 하다고 하니

 그까짓 이마에 몇 바늘 집은 것이야 별 것 아니겠지만 피해자가 재일교포라

놔서 뒤 처리가 좀 시끄럽겠는 데요."

   택시 회사 김과장의 말이었다.
   사고차에는 세 명의 남자가 타고 있었다고 했다.

한 분은 오십 대의 재일 교포로서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영 비행장으로 나가는 길이었고,

둘은 부산에 있는 친지로서 그분의 배웅을 나가는 중이었다.
   영도서에서 사복근무를 한다는 환자의 조카뻘 되는 사람은 조수대에 탔고,

뒤에는 재일동포와 그의 친지가 탔다.
   수영 삼 거리를 지날 무렵 그들이 탄 택시가 길 가운데만 포장이 되어 있는

아스팔트을 벗어나 비포장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 운전사가 우측으로 앞차를 추월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심은지 몇해 되지 않은 조그마한 가로수를 두 개나 들어 받았을 때는 앗차 싶었다.
   택시는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다리가 있는 방향을 벗어나 엉뚱하게 개천 족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앞에 탄 승객은 요금메타를 잡고 버티며 충돌에 대한 방어 태세를 취했고.

뒤에 탄 사람중의 한 분은 앞시트에 두 팔을 뻗어 무사했으나 재일교포는 국산 자동차라

앞 유리가 깨어지면 그 파편이 날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앞 시트에 머리를 쥐어 박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오산이었다.앞면은 안전유리라서 다른 승객은 다치지 않았으나

정작 그것을 염려한 재일 동포는 택시가 개천 옹벽을 받았을 때의 충격으로 앞 의자 뒤편에 붙은

재털이에 이마를 부딛치고 만 것이다.
   강희는 김과장과 함게 병원 3층으로 올라갔다.

정기사의 병실에는 자그마치 환자가 5명이나 입원해 있었다.

거기에다 병 문안을 온 사람들과 환자를 간호하고 있는 가족들까지 합류하여

그런지 병실 안은 그야 말로 콩나물독 같았다.
 한 눈으로 보아 삼류 병실임을 알 수 있었다.

환자나 가족들 모두 남루한 차림에  표정이 어두웠다.
   정기사는 눈과 입을 남겨두고 온 얼굴에 붕대 투성이었다.

윗옷을 벗은 가슴에도 그러했다.

   " 아니, 그대로 누워 있어."

   강희는 일어나려는 환자를 도로 눞이고 그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 정말 면목 없습니다. 형님 !."

   " 아니 괜찮아. 내고 싶어서 낸 건 아닐테니까.

어쨌든 다른 생각은 말고 몸 조리나 잘 하도록 해."

   그는 이빨 세 개와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진 중상이었다.

그것을 보아도 그가 얼마나 깊이 졸며 운전을 하였는지 짐작이 갔다.
   강희는 그의 노모에게 돈 이만 원을 쥐어주고 김과장과 함께 병실을 나왔다.
   운전사는 보험에 해당되지 않은 다고 하니 그것도 문제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피해자를 잘 구슬려 놓아야 겠기에 그들은 또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병문안을 하는 데 빈손으로 갔다가 행여 환자나 그들의 친지로 부터

노여움을 살까 봐 비싼 미제 파인에플 통조림을 하루 수입금에 해당되는 돈을 주고 샀다.
   정말 그는 부모님 슬하에 있었을 때 맛을 본 기억이 나는 것도 같고,

안 나는 것도 같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먹어볼 수 없는 쥬스였다.

   ( 제기랄, 하필이면 부자양반의 이마를 찢어  놓았으니,

이건 도무지 돈을 감당할 수가 있어야지.)

   울며 겨자먹기로 모두 고급으로 대접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까짓 몇 푼 되지 않은 치료비는 보험사에서 낸다고 하지만

 몇 날 몇 일이 걸릴지 모르는 호텔비는 누가 대어야 하는 가 하고 생각하니

또 마음이 서글퍼졌다.

속에서 울컥 분노 같은 것도 치밀어 올랐다.
   한참 후에 그들은 호텔을 나섰다.
   난방이 잘 되어서일까.

추운 겨울인데도 이마에 땀이 흘렀다. 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현기증이 왔다.

그래서 그런지 손수건을 꺼내어 땀을 닦으려는 그의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김과장의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나오니 이제 등에 오싹 한기가 왔다.
   찬 바람 때문인지 정신은 조금 들었으나 걸음은 여전히 후들거렸다.

배에서 쪼르륵 소리도 났다.

그러고 보니 4시가 넘도록 여태 점심도 먹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을 먹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 이형,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요. 어떻게 잘 되겠지요.

난 보험사에 가 볼테니까,

오늘은 아무상관 마시고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서 푹 쉬세요."

   그러나 그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사고 현장으로 갔다.

거기엔 언제 소식을 들었는 지 만길이가 와 있었다.

   " 어어이, 니 크레인을 불러러 갔더나 ?."

   강희는 고개를 저었다.

   " 그라믄 어디 갔더노 ? 집에서는 벌써 나갔다 든데..."

   " 병원에 좀...."


   " 임마야 차주는 차부터 고쳐야지 뭐라카노. 환자는 병원에서 의사들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 봐."


   만길이가 서두르는 바람에 그는 또 다시 바쁜 몸이 되어 발걸음을 돌렸다.
   부서진 자기차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 맨손으로 들어올려 정비공장에 까지

몰고 갈 수 없는형편을 짐작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는 무엇 때문에 다시 그곳에 빈손으로 왔는 지알 수가 없었다.

   " 야 어디로 가노. 여기다 여기."

   만길은 어느새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타고 앉아서 손짓을 했다.
   버스 정류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던 강희는 할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

그가 문을 열어 둔 택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 놈도 자기의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아니라고 겁없이 택시를 타고 앉았구나 생각하니

괴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또 한다는 소리가

   " 니는 우째서 택시 사업을 한다는 놈이 택시 타는 걸 그리 겁을 내노 ?

이 불황 때 동업자가 안 타주면 누가 타 줄끼고. "

   하면서 약을 올렸다.

   " 근데 중기는 어디서 빌리지 ?."

   " 응, 감만동에 가면 있다.

부산에 크레인이 있는 곳은 거기 뿐인기라.
    그는 택시 기사에게 그 곳으로 가자고 했다.
   과연 항만 하역업과 특수 화물 운송업을 겸하고 있는 중기회사의 차고는

감만동 삼화주유소 맞은편에 있었다.


   " 남의 일에 네가 차비를  내면 어떻게 해. 더욱이 쉬는 날도 아닌데 일까지 못하면서...."

   " 쓸데없는 소리. 자 어서 들어가자."

   둘은 정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사무실로 들어가서 사정을 애기 했다.


   " 수영 삼 거리라면 만오천 원을 내야 겠수다. "

   " 아니 그렇게나요 ?."


   " 시간당 5천원이니까. 아무래도 3시간은 잡아야지요."

   왕복 2시간, 작업을 하는데 1시간, 도합 3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아무리 그렇지만 1시간 일을 하는 데  5천원을 받다니.

그것도 작업을 하지 않는 왕복시간까지 포함해서,

하기야 크레인 한 대 값이 택시 열 대 값이 넘으니

그렇게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택시의 사업과는 너무나 차원이 달랐다.
   강희가 애궂은 담배만 빨고 있는 동안 만길은 중기 책임자를 잡고 사정사정하여

겨우 만이천 원으로낙찰을 보았다. 

그래서 크레인을 현장으로 보내고, 범일동으로 나가 부서진 택시를 싣고갈

타이탄 트럭을 빌려타고 수영으로 달렸다.

그것은 만길이가 잘 안다는 동래 사거리에 있는 정비공장까지 실어다 주는데 삼천 원을 주기로 했다.
   사고 현장의 산비탈에는 많은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었으나 개울 옆으로는 모두 공지여서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20톤의 크레인 붕대가 개천 아래에 쳐박혀 있는 택시를 까마득히 달아 올렸을 때는

황령산 넘으로 기울어지던 한 겨울의 태양이 역광이 되어 그래도 제법 장관을 이루었다.


   그 때였다.

   한 대의 택시가 시내 쪽에서 쏜살 같이 달려오더니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다리 위에서

찍 하고 섰다.

그러더니 한 젊은 사나이가 급히 카메라를 들고 쫓아왔다.

구경군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편으로 솔렸다.


   " 보소, 보소. 당신 뭐요 ?."

   작업 현장에 카메라를 들이 대자

만길이 험악한 얼굴이 되어 청년의 앞을 가로 막아섰다.

   " 당신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거요. 뭐요 ?."

   " 사진 좀..."

   카매라를 들이 대던 청년은 머뭇머뭇 뒷걸음질을 쳤다.
   크레인 기사도 거기에 시선이 팔렸는 지, 잠시 작업이 중단되었다.

   " 사진....사진 좋아하시네 ! 당신이 무슨 기자요 ?."

   " 아 아닙니다."

   " 아니면 뭐야 ? 이 새끼 따끔한 맛을 좀 봐야 알겠나."

   만길이 공격 태세를 취하자

청년은 기겁을 하며 택시가 있는 쪽으로 도망을 쳤다.
   그 때 대개중이던 택시 안에서 신사 한 분이 내렸다.

그의 머리에는 하얀 붕대가 감져져 있었다.

   " 잠간 나 좀 봅시다 청년."


   신사는 한국말이 좀 서툰 듯 했다.


   " 청년은 저 택시와 어떤 관계가 되는 사람이요 ?."

   " 그건 왜 묻소 ?."

   만길은 한풀 꺾인 얼굴이 되어 물었다.


   " 실은 나 저 차에 다친 사람인데..."

   그 때 그들의 관경을 바라보고 있던 강희가 급히 나서며

   " 아이고 어르신, 불편한 몸으로 여기는 웬일이십니까 ?."

   그는 바로 거기서 사고를 당한 장본인이였다.


   " 내 다시 살아난 곳이라, 기념으로 한 장 남겨둘까 해서....."

   " 네 그러세요.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요."

   재일 동포는 찌그러진 택시를 달고 있는 크레인 앞에서

포즈를 취해가며 여러장의 사진을 찍었다.
   강희는 몹시 굴욕을 느끼면서도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피해자가 사고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추억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피해 보상에 대해서는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듯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호텔로 병문안을 갔을 때는 상황이 좀 달라져 있었다. 

친지들의 사주를 받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면회 오는 것을 싫어 했다.

그래도 그는 망가진 차를 정비공장에 방치해둔 채 하루에도 몇번인가

호텔로 병원으로 피해자를 찾아 다니며 수없이 용서를 빌고 딱한 사정을 호소 하며

합의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는 자기의 조카와 상의해 보라고만 했다.

그래서 강희는 또 장형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그의 첫 인상에서 타협을  이룰 수 없는 위인 같아서 절로 입이 다물어 졌다.
   사후의 모든 문제는 조카 뻘 되는 장형사에게 맡기고 피해자인 재일 교포는 삼 일 후 일본으로 떠났다. 그가 떠나자 장형사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차주인 강희에게 보상금을 요구해 왔다.

그는 마치 삼촌이 주고간 유산을 한 푼이라도 더 찾으려는 듯이 발악을 했다.

   " 어어이 니 말 좀 들어 보거라.

아무리 그렇지만 요세 돈 30만 원이 어디고,

그래 그걸 두 달만에 홀랑 날려 버리고 손을 턴단 말이가."


   " 그렇지만 저쪽에서 얼토 당토 않게 보상금을 요구해 오는 데, 어찌..."

   " 야 처음에는 누구나 다 그래 보는 기라."

   " 그렇지만 50만 원이나 요구해 오는 데, 깍아 보아야 얼마나 깍겠니."

   " 씨팔 이마배기 좀 째졌는 데 아무리 그렇지만 50만 원이 뭐고 ?. 

순금으로 헬멧을 만들어 쓰고 다니겠다는 기가. 더럽다, 더러워 !."


   만길은 퉤 하고 식탁 옆으로 침을 뱉었다.

처음 그들이 보기엔 5만 원 정도면 합의 점에 도달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피해자측의 주장은 달랐다.

상처 부위가 이마이기 때문에 일본에 가서 다시 성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수술비가 적어도 20만원이 넘을 뿐만 아니라

3 일분의 호텔비와 병원으로 다니며 치료를 하느라고

오고 간 택시비를 포함해서 50만 원을 요구해 왔다.
   만길은 정말 분통이 터지는 지 주위의 눈은 조금도 의식하지 않고

주먹으로 식탁을 내리치며 갖은 욕설을 해 댔다.


   " 자 씨팔 , 술이나 들어라."


   한참 동안 식식되던 그는 강히 앞로 술잔을 내밀며

   " 그라지 말고, 이라는기 어떻겠노

그놈아들은 무슨 지랄을 하든지 차 수리부터 해라.

설이 한 달 안 남았나. "

   " 그래서 ?."

   " 해 보는 데까지 해보는 기라."

   " 차 수리를 하려면 10만원이 더 들텐데."
   그간 쫓아 다니느라 모아 둔 돈은 거의 바닥이 나 있었다.

당장 내일 모래 내어야 할 할부금과 세금도 문제였다.
   " 회사에 가서 사정을 해라. 한 달만 연기해 달라고...해 보다가 정 안 되면

세금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차를 가져가라지 뭐.

그라믄 설 대목에 번 돈이라도 안 남겠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기도 했다.

그래서 강희는 부서진 차를 수리하기로 결심했다.
   택시를 고치는 데는 처음 견적보다 2만 원이 추가되어 거의 15만 원이나 들었다.

그것은 모두 소영이 이웃에서 끍어 모은 빚이였다.

이자만 하더라도 한 달에 5천 원이 넘었다.


   수리 후 강희는 이제 절대로 남에게 차를 맡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남에게 택시를 맡기고 방문 뚜드리는 소리만 나도 가슴 철렁하는

불안을 느끼며 휴식을 취하니 보다,

차라리 좀 더 많은 육체의 고통 쪽을 택하고 싶었다.
   첫 날은 그런 대로 6천 원을 더 벌었다.

다음 날은 5천 원, 그 다음 날은 연료비를 포함해서 총수입금이 4천 원 안으로 멤돌았다.
   밤마다 코피는 이불깃을 적시었고,

나중에는 해가 지는 지 날이 밝아오는 지 조차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피로가 겹쳐왔다.
   대목이라고 한 밑천 잡겠다던 설날도 겨우 6천 원의 수입금을 남겨준 채 그저께로 지나갔다.
   부서진 택시를 정비공장에 몇 일 그대로 둔데다가,

수리를 하는 데 십여 일이나 결렸기 때문에 정작 영업을 한 것은 설을 십여 일 앞둔 날이었다.
   그러니 결과는 뻔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수리비에 들어간 남의빚 15만 원과

지난달 지불하지 못한 세금과 할부금,

그리고 내일 모래로 다가오는 또 이달치의 지입료와 세금. 

그간 벌어 모은 4만 원으로는 도저히 매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업친데 겹치는 격으로 장형사는 악착 같이 보상금 지불을 요구해 왔다. 

회사도 그분에게 얼마나 시달려 왔는 지 김과장으로 부터 거의 내일 주차장으로 연락이 왔다.
   강희는 요즘 통 잠이오지 않았다.
   그렇게 피로에 지쳐 오직 잠자는 것만이 원이었던 몸이 설날을 지나고부터는

이상하게 눈을 감아도 잠이 들지 않았다.

그러니 피로가 점점 더 쌓여 대낮인데도 달밤처럼 사물에 정확한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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