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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아의 일기

오늘의 쉼터 2014. 8. 26. 00:47

2. 영아의 일기
 
 
   영아는 이제 중학 2 학년이 되어 있었다.
그는 아직도 어릴적에 헤어진 어머니와 오빠의 생각 때문에 늘 그리움과 의혹 속에서 나날을 보냈다.
 
   ( 정말 나의 어머님은 돌아가셨고, 오빠도 큰 아버지댁을 떠났을 까 ?)
   그것을 믿지 않은 수 없는 것이 잠결에 지금의 양 아버지와 양 어머나가 주고 받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집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늘 그것을 확인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너무나 어릴적 일이라 시골의 큰 아버지댁이 어딘지 기억이 분명하지 않아 찾아갈 수가 없었다.
 
   영아가 이 집의 새 식구가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다섯 살 때였다.
 
   시골 큰 아버지댁의 어느 신작로 모퉁이에서 절간으로 수양가신( 그는 그 당시 그렇게 알고 있었다.)

엄마를 기다리던 중 먼 언덕 아래에서 걸어오고 있는 어떤 여인을 자기의 엄마로 착각을 하고 달려가다가 지나가는 자동차에 치어 쓰러졌고, 그러한 그가 의식을 회복한 것은 다음 날 새벽이었다.
 
   눈을 뜨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고, 숨바꼭질을 할 때처럼 눈을 동여맨 것 같이 갑갑하고 캄캄했다.


   " 엄마. 멈마..."


   영아는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엄마를 찾았다. 


   " 응, 이제 정신이 좀 돌아오는가 보군 !."

   낯선 음성이 웅성웅성 들렸다.

   " 엄마. 엄마 어딨어 ?."


   "......"

   영아는 다시 허공으로 손을 허우적거리며 엄마를 찾았다.

   " 여, 여보. 어서..."

   낯선 음성이 가느다랗게 들렸다.

   " 그래, 엄마 여기 있다.


   부드러운 손길로 꼭 껴안아왔다.

   " 엄마 입술이 왜 이래 차 ?."

   그러자 차갑고 촉촉하게 느껴지던 당황한 입술이 후딱 영아의 뺨을 더났다.

   " 싫어, 싫어 !"
 
   영아는 다시 허공으로 손을 내저으며 엄마를 찾았다.


   " 그래,  엄마가 금방 밖에 나갔다 와서 그런가 보구나."

   " 근데, 엄만 왜 이제사 왔어 ? 영아가 보고 싶지도 않았어 ?."

   영아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의 젖가슴을 더듬었다.
   실로 얼마만에 만져보는 어머니의 젖인가.

영아의 손 안으로 가득히 따뜻하고 몽실몽실한 젖무덤이 만저졌다.

   ( 엄마 젖이 왜 이렇게 클까 ?.)
 
   그러다가 영아는 정말 엄마가 건강을 회복해서 전처럼 젖도 커지고 살도 저서

토실토실한가 보다고 생각하며 젖꼭지를 비틀어도 보고 입술을 가져다 대어 보기도 했다.
   주설옥 여사는 난생 처음으로 어린 아이에게 젖을 물려보는 지라 간지럽고 신기하여

감짝감짝  놀라면서도 이상하게 무엇이 와 닿는 것처럼 가슴이 뭉클하여 눈시울이 뜨거웠다.
   자기를 엄마라고 부르다니. 이것이 꿈이 아니였으면 했다.

그러나 남편의 마음은 달랐다. 그는 단순히 의사 앞에서 자기의 사고를 음페하기 위하여

아내로 하여금 그 아이의 어머니로 가장하기 위한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근데 엄마, 왜 아무것도 안 보여?."
 
   영아는 엄마의 얼굴을 더듬어 만지며 물었다.

   " 응 그래, 네가 교통사고로 눈을 좀 다쳐서 그렇단다.

몇 일만 있으면 다 나아서 붕대도 풀고 하면 잘 보일테니 염려 말거라."

   이윽고 영아는 어머니의 젖가슴에 손을 넣은 채 포근히 잠이 들었다.
 
   어느 날 오후였다.
 
   영아는 잠결에 청천병력과 같은 말을 들었다.

   " 여보, 어쩌면 좋지요. 저 애가 나를 자기의 엄만 줄 아니 말이에요. "
   " 글쎄 큰 일이구만 ! 내일 붕대를 풀면 금방 알게 될텐데."


   푹 한숨 쉬는 소리가 났다.

영아는 그 소리에 천길만길 낭떨어지에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여태까지 젖을 만지며 당신의 품속에서 잠들곤 하였던 사람이 내 어머니가 아니라니.

어쩐지 처음부터 좀 이상하긴 하였지만 병드신 어머니와 오래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조금은 달라졌겠지 하고 믿었던 것이다.
 
   " 아니 얘가 갑자기 왜 이럴까 ? 여보 얘가 무서운 꿈을 꾸나 봐요."

   여보라니, 엄마가 여보라고 부르던 아빠는 세상을 떠나신지 오래다.
   영아는 지금 자기를 꼭 껴안으며 잠을 재우 듯 토닥토닥 등으르 두드려 주는 사람이

자기의 엄마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자 더욱더 어깨가 들먹여졌다.
 
   그후부터 그는 엄마의 젖을 더듬지도 않았고,

암마가 껴안으면 가슴을 밀치고 품을 빠져나가곤 했다.
   주설옥 여사는 정말 이상하게 생각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종달새처럼 조잘거리던 아이가 갑자기 말이 없고

자주 흐느끼기만 하니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는 가 하여 재 진찰을 받아 보았지만 별 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다.

왼쪽 다리에 골절상은 입어 기부스를 한 것도 다시 촬영을 해 보았으나 잘 붇고 있으며

눈도 예상외로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거의 매일 영아와 함께 병원에서 지냈다.
   남편 허정욱 사장은 그당시 나이 겨우 삼십 대 초반이었으나 모 대학의 화학 강사로 있다가

처가의 도움으로 중앙동에 화공약품상을 내고부터 일약 중앙동 사체시장을 주름잡는 알부자가 되었다.
 
   그는 처음 주로 일본에서 화공약품을 수입하는 것 같더니,

무엇을 어떻게 했는 지몇 해 되지 않아서 돈방석에 안고 말았다.

그러니 그렇게 돈이 많으면서도 안 쓰기로 유명한 노랭이었다.

그는 자기가 데리고 있던 기사에게 운전을 배워 갓 면허증을 땄다.
   박기사는 그래도 자기가 모시고 있는 사장님이라고 있는 실력 없는 실력 총 동원하여

열심히 운전을 가르치고 면허시험 때도 아는 사람을 통하여 잘 봐주게 부탁도 했는 데

막상 면허증이 나오고 보니 허사장의 꿍심은 다른데 있었다.
 
   " 박 군, 이거 미안하게 됐네. 나는 아무래도 아직 차가 필요하지 않은 것같아서...."
   팔아버리기로 했다고 하였다.
   " 그러니 천상 자네는 내 집에서..."
   " 네, 알겠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 미안하네. 내 다시 차를 사거든 연락을 하지. 그리고 나도 자네 직장을 알아 보겠네."
 
   " 네, 고맙습니다. 사장님."
   박기사는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몇 일 후 그는 허사장이 직접 새 지프차를 운전하고 지나가는 것을

택시 운전대에서 목격하고 분노를 느꼈다.
   그날도 허사장은 서툰 솜씨로 자기가 직접 운전을 하여 울산 거래처에 다녀 오다가

교통사고를 냈던 것이다.
 
   그는 사고가 나자 응급결에 환자를 차에 싣기는 하였으나 먼저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어쨌든 자동차가 가던 방향으로 차를 몰았지만 다리가 와들와들 뜰리고 힘이 빠져서

도저히 악세레타를 밟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창을 조금 지나 주남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차를 세우고 가까운 상점에 들어가

소주 한 병을 사가지고 나와 병 채 안주 없이 마셨다.
   땀은 비오듯 했으나 펄떡거리던 가슴은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그래서 빈병을 개천에 던져버리고 다시 차에 올랐다.
 
   뒤 좌석에 실은 아이는 죽은 듯 그대로 쳐박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러지는 몰라도 아주 숨이 끊어졌다고 믿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쩐지 무서움이 들었다.

그것이 귀신이 되어 자기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것도 같았고,

누가 뒤좇아 오는 것도 같아 식은 땀이흘렸다.
 
   ( 정말 운전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 그 넓고 조용한 시골길에서 사람을 치우다니.)
 
   그는 몹시 후회를 했다.

기사 월급 몇 푼이 아까워 수억을 가진 자가 직접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었다고 하면

모두들 어떻게 생각할까.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 그래 절대로 그래서는 안 돼."
 
   그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사고를 음폐하는 쪽으로 결심을 굳혔다.
   허정욱 사장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차를 몰았다.
   팔송 검문소가 저 앞으로 보였다. 그는 놀라서 조수대에 벗어 둔 상의로 환자를 덮었다.

누가 보아도 자는 아이에게 옷을 덮어 준 것처럼 보이게 했다.
   버스에서 검문을 하고 내려오던 경찰관은 그가 차를 새우기도 전 손짓으로 통과 시켰다.

그러나 허사장은 등에 식은 땀을 흘리며 응급결에 엔진을 꺼버리고,

다시 시동을 거느라고 울컥거리며 애를 썼다.
 
   초소로 돌아가던 경찰관은 무슨 일인가 하고 이 편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자 허사장은 더욱더 당황하여 악세레다를 깔작거리며 키를 돌려댔다.

다행이 경찰관이 짚의 가까이 왔을 때 시동이 걸려 노크가 된 자동차는

검은 매연을 구름처럼 남기고 총알 같이 초소 앞을 빠져나갔다.
 
   온천장 입구로 들어서니 차량 통행이 많아졌다.

그래서 그는 몇 번인가 아슬아슬 하게 충돌의 위험을 겪었다.

그때마다 상대방 운전사에게 모진 욕설을 들었고, 심지어 앞서 지그재그로 가로 막는 놈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무조건 죽는 시늉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원수 덩어리같은 짚차가 허정욱이라는 문패가 달린 커다란 대문 앞에 멈추었다.
   요란한 크락숀 소리에 온 집안 식구들이 놀라서 달려나왔다.

누구보다도 먼저 나온 것은 주여사였다.

그녀는 계속 울려대는 경음기에 가슴이 처렁 내려 앉음을 느끼며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대문을 박차고 나왔던 것이다.
   " 여보, 왜 이러세요 ?."
   "....."
   " 어머 ! 정말 이이가 ?...정신 차리세요 여보."
   남편으로부터 역겨운 단내와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주여사는 핸들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남편을 뒤로 제쳤다.

그러자 크락숀은 멎고, 남편은 뒤로 힘없이 시트에 기대어 늘어지며


   " 나, 나 사람을 치었어."
   " 네, 사람을 치었다니요 ?."
   " 저, 저기..."
 
   남편은 손으로 운전대 뒤를 가러키며 차에서 내려 쫓기듯 안으로 사라졌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해 있던 주여사는 자동차의 뒤

시트에 놓여 있는 남편의 상의를 집어들다 

   " 어머나 !."
 
   하고, 주첨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주여사는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 앞이 아찔했다.

동생 숙이 아니었으면 영아는 영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남편은 응급결에 환자를 집에까지 실어 오긴 하였으나,

환자를 병원에 데려갈 생각은 하지 않고 태도가 모호 했다.

마침 학교에 갔다 오는 길에 언니의 집을 들린 숙은 여대생답게 얼른 서둘러 병원부터 가자고 했다.

형부의 눈치를 챈 그는

   " 형부 우리 이렇게 해요. 이 애를 언니의 딸로 속이고 뺑소니 차에 치었다고 하면..."
   " 그래요.여보. 그게 좋겠어요."
 
   그렇게 한다면 이 아이가 혹시 잘못되어 죽더라도 자기를 책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 그래. 나도 이 아이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었어. 다만 얼른 좋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서..."
   그 길로 주여사는 택시를 불러 동생과 함께 환자를 싣고 아는 사람이 없는 동래 병원으로 갔다. 다행이 그렇게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으나 영양실조로 시력이 좋지 않은 대다가 땅에 넘어지면서 뇌와 시신경을 조금 다쳐 시력을 회복할려면 다소 시일이 걸리겠다고 했다.
   왼쪽 다리에 입은 골절에는 기부스를 하고 눈은 치료를 한 후 붕대를 감았다.
 
   주여사는 이제 남편도 잊은 채 거의 매일 영아와 함께 병실에서 보냈다. 그녀는 그동안 그 애와 얼마나 정이 들었는 지 모른다. 그가 의식을 회복하고 제 엄마인 줄 알고 그녀의 가슴을 파고 든 그날부터 정말 그애를 자기의 친 자식으로 착각할 정도로 귀엽고 정이 갔다. 더욱이 그녀에게는 아직 혈육이 없었다.
 
   그러니 남편이 대학 강사로 있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 데, 사업을 합네 하고 대학을 물러나고 부터는 조금씩 바람을 피우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숫제 외박까지 하고 다녔다. 그렇다고 자식을 낳지 못하는 주재에 무엇으로 남편의 바람을 막을 수 잇겠는 가. 남편이 없는 날 밤이면 눈물과 한숨으로 지새우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요즘은 사는 맛이 좀 나는 것 같았다.
 
   처음 차에 친 아이를 집으로 싣고 왔을 때는 돈과 여자 밖에 모르는 남편이 몹시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남편에게 한없이 감사를 드리고 싶었다.
   어쩌면 하느님이 자기에게 이 딸을 주신 것이 아닌가 했다. 그러다가도 저것이 완꽤 되면 제 엄마 곁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어느날, 좀처럼 병원에 잘 나타나지 않던 남편이 조금 심각한 얼굴로 들어서며 먼저 환자의 차도를 물은 후
 
   " 여보, 아무래도 저 애를 우리가 키워야 할 것 같소."
   " 네, 우리가요 ?."
   " 내가 사고를 냈던 시골에 사람을 보내어 염탐을 해 보았더니, 저 애가 고아라는 구만."
   " 고아라니요 ? 그럼, 저 아이의 부모님이 안 계신단 말이에요 ?"
   " 응, 저 애는 아직 제 엄마가 살아 있는 줄 알지만, 오래전에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구만."
 
   " 그래요. 가여운 것 !."
   " 그런데 또 하나 문제가 있어."
   " 문제라니요 ?."
   " 큰 아버지 댁에서 국민 학교에 다니는 저 애의 오빠가 있었는 데, 개가 글쎄 제가 사고를 당하던 그 날 그 장소에 책가방을 팽기친 채 행방불명이라는 구만."
   " 그참 이상하네요. 저 애 오빠는 어디로 갔을 까요 ?."
   " 글쎄 그 마을에서는 큰 어머니의 학대에 못이겨 두 오누이가 집을 나갔다고 소문이 쫙 퍼졌다는 구만."
   그 때 침대 족에서 가느다란 흐느낌 소리가 들렸다.
   " 아니 저 애가 또 꿈을 꾸었나."
   주여사는 얼른 영아의 침대로 갔다. 그녀는 불쌍하고 구여워 죽겠다는 듯 가슴을 토각거리며
   " 그래, 엄마 여기 있다 . 쉬하련 ?."
   하고, 뽈에다 입을 맞추었다.
   영아는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돌아누워 버렸다.
 
   남편은 돌아가고 주여사는 오늘도 홀로 병실을 지키며 깊은 생각에 젖어 있었다. 그녀는 이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아를 자기의 딸로 만들어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결심을 했다.
   처음엔 아이가 완치되면 자기의 집으로 돌려 보내려고 치료에만 온 정성을 다 쏟았고, 그러다 보니 생전에 아기라고 낳아보지 못한 자기의 가슴속을 파고드는 애기가 점점 깨물어 주고 싶도록 귀여워졌다. 그래서 처음 남편이 자기의 죄를 엄폐하기 위해 그 애를 절대로 제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하였을 때, 천벌을 받을 일이라고 펄쩍 뛰었지만, 요즘은 응근히 그것을 묵인하고 있었고, 오히려 그래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기도 했다.
 
   그래도 남편은 마음이 편치 않았던지 그 아이의 고향으로 사람을 보내어 염탐을 해 본 모양이었다. 다행이 그 애가 고아로 시골 큰 아버지댁에 얹혀 살았다고 하니, 이제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머지 않아 영아가 시력을 회복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달라진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잘못 생각하고 있는 그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 시키느냐가 문제였다. 그러한 그녀의 마음을 알아서인지 퇴원을 하는 날이 가까워와도 영아는 즐거워하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무엇을 두려워하듯 묻는 말에 '예,아이요,로만 대답하고 점점 수심이 깊어갔다.
 
   이윽고 퇴원을 하는 날이다가 왔다.
   왼쪽 다리의 기부스는 끊은 지 오래였다. 그 때 영아는 두 팔을 벌리고 방안에서 나비처럼 날아다니며 좋아했다. 그런데 오늘은 한사코 눈에 두른 붕대를 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 허 참 ! 고 놈 고집도..."
   간호사가 붕대를 풀고 안대까지 끊었으나 영아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래서 장박사는 할 수 없이 한 손으로 영아의 눈까풀을 까고 이마에 붙은 전등을 비춰 눈동자를 정검한 후에
   " 됐다. 그럼 네 마음이 내킬 때 눈을 떠 보도록 하여라. 그리고 퇴원을 하더라도 당분간 밖에는 나가지 말아라. 강한 햇빛은 아직 좋지 않으니까."
   별 이상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 아마 오랫동안 세상을 보지 않아서 눈을 뜨기가 두려운 모양입니다."
   차차 자연스럽게 뜨 질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영아는 눈을 감은 채 주여사의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왔다.
 
   창밖에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영아는 밖에 인기척이 없자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비 때문인지 안개 때문인지 창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뿌옇기만 했다.
   ( 정말 엄마는 돌아가시고 오빠도 큰 아버지댁을 떠났을 까 ?)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잠결에 자기의 엄마인 줄 알아던 이 집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병원에서 하는 이야기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 오빠는 왜 큰 아버지의 집을 나갔을 까 ? 혹시 나를 찾으려 나섰다가 길을 잃은 것이 아닐까 ?)
 
   영아는 오빠가 몹시 보고 싶었다.
   적은 빗방울이 점점 큰 방울이 되고, 그것이 무거워 유리창을 타고 내리자 창밖에 비를 함박 맞고 걸어가는 오빠의 모습이 비춰왔다.
   " 오빠아 !..."
   영아는 자신도 모르게 활짝 창문을 열어 젖치며 소리쳤다.
   그때  주방에 있던 주여사가 놀라서 달려왔다.
   " 아니 니가 눈을, 눈을 떴구나 !."
   주여사는 창가로 달려가서 와락 영아를 껴안았다.
   ( 오 하느님 !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제발 제 곁을 떠나지 않게 하여 주소서 )
   주여사는 속으로 그렇게 기도를 드렸다.
 
   그 후 영아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새로운 환경에 적용해 갔지만 , 언제 그랬냐는 듯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처럼 명랑하게 조잘대던 성격은 간곳이 없고 늘 풀이 죽은 채 우울하기만 했다.
   주여사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안타까워 그녀가 할 수 있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온 정성을 다 쏟았지만, 언제나 야생동물의 새끼를 주어다 기르는 사육사의 심정처럼 자기의 정성을 몰라주는 데는 서운하기 짝이 없었다.
   영아는 늘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 서서 먼 하늘가를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온 종일을 보내지 않으면 인형을 가지고 정원에 나와 뒷 담장 믿에서 정원 잔듸밭을 지나 대문 박으로 지나가는 개미때들을 바라보며 혼자 놀았다. 그러다가 손님이라도 오면 병아리처럼 쪼르르 뒤 뜰로 해서 자기의 방으로 사라지기가 일쑤였다. 그때는 언제나 겁먹은 얼굴이었다.
   주여사는 그러한 아이를 어떻게 하면 꾸김없이 기럴 수 있을까 하고 고심했다.  그녀는 의사의 권유대로 조금 어리지만 유치원에 넣었다.
   유치원에 갈때는 언제나 주여사가 직접 대리고 갔으며 돌아올 때도 역시 그러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사람이 많이 붐비는 사장 통으로, 혹은 금강공원으로 손을 잡고 걸으며 여러가지 구경을 시켰지만 어린 아이답게 무엇을 보고 놀란다든가, 이상한 것이 있어도 물어보지도 않고 한결 같이 어머니의 설명에 두어 번 머리만 끄덕일 뿐이었다.
   ( 혹시 이 아이가 교통사고 때문에 백치가 된 것이 아닐까 ?.)
 
   때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백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그 속에 깃든 우수가 선명했다.
   백치는 슬픔을 모른다. 그런데 이 아이에게는 항상 짙은 슬픔이 서려 있다.
   어느 봄날 유치원에서 동래 산성으로 소풍을 갔다.
   그 날도 주여사는 집에서 일하는 순이에게 음식을 들리고 영아를 따라갔다.
   점심을 먹고 모든 자모들이 술래잡기를 하는 데 어쩐 일인지 눈 감짝 할 사이에 영아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혹시 애가 숲속에서 소변이라도 보러간 것이 아닌가 하여 사방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영아는 여기에 왔어도 친구들과 놀 생각은 하지 않고 저만치서 혼자 나비를 잡느라 열심이었다.
 
   " 얘 영아야, 이리 온. 동무들과 술래잡기를 해야지."
   들었는 지 못들었는 지, 영아는 계속 이 꽃에 앉았다가 손으로 잡으러고 하면 저 꽃으로 날아가는 노랑 나비의 뒤를 살금살금 쫓아가고 있었다.
   " 얘 영아야, 엄마가 잡아줄께. 뛰지 말고 거기 있어 거긴 낭떠러지야. 위,위험...."
   다급해진 주여사는 있는 힘을 다하여 달렸다. 그러나 기어이 나비만 보고 쫓아가던 아이를 잡지 못하고 그와 함께 2m 가까이 되는 언덕 아래로 곤두박질을 했다. 팔이 뿌러진 그녀의 품에 영아는 상처 하나 없이 무사했다.
 
   이 날 밤 영아는 팔에 기부스를 하고 누운 주여사의 옆에 꿇어 앉아
   "엄마 제가 잘못 했어요."
   하고, 눈물으 글썽였다.
   " 아니다. 어쩌면 네가 네게 죄를 짓고 있는 지도 모르겠구나 !."
   주여사의 뺨에도 눈물이 흘렀다.
   ( 나는 왜 이 아이 때문에 이처럼 애를 태워야 하나 .)
   남편의 말마따나 영아를 제 큰 아버지댁으로 보내든지, 고아원으로 보내 버리면 그만 일 것을, 물과 기름처럼 영원히 화합할 수 없는 아아라면 차라리 지금이라도 그렇게 했으면 싶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이 아이도 무엇을 느꼈는 지, 같이 언덕 아래로 떨어지고 부터는 늘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팔 다리를 주무르며
   " 엄마 많이 아파."
   하면서 애교 짙은 얼굴로 다정스럽게 묻기도 하고 잔심부름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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