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나
이 재인
머리 말
나는 작자로서 내세울 만한 약력이 없다.
나의 지난 날들은 모두가 하잘 것 없는 것이고, 절망과 비참과 또 끝없는 방황의 연속이었을 뿐만 아니라 늘 어디로 가야하는 지 모르는 염려로 오늘날 까지 살아왔다.
굳이 밝인다고 하면 어렸을 때는 의사가 되겠다던 꿈이 외로움을 알고부터는 문학의 길을 걷고자 하다가, 그것도 갑작스런 결혼 때문에 좌절되고 말았으며 생활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핸들을 잡은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실로 너무나 엉뚱한 방향으로 들어선 인생이기에 나는 늘 삶이 괴로웠고, 그래서 현실을 탈피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여태까지 전환점을 찾지 못했다.
이것은 어쩌면 내가 너무 무능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다만 운이 없는 인간으로 자위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내가 하고자 한 일이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는단 말인가.
그래도 나는 내 가족을 부양하여야 한다는 의무 때문에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번번히 고용주측의 일방적인 불만으로 해고를 당했으며, 그래서 때늦은 철새처럼 이 직장에서 저 직장을 전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은 비단 나만이 서글픈 현실이 아니리라 본다.
지금 이 시간에 핸들을 잡고 있는 모든 고용기사들의 슬픔이요, 그래서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속에 살아야 하는 그들 가족의 운명이기도 하리라.
나는 언제 어느 때나 떠날 각오는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마음 뿐 막상 갈곳이 없다. 그래서 늘 좀더 비참한 신세가 되어 끝내 밀려나곤 했던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몹시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들어도 못들은 채 보고도 못본 채 해야 하는 자가용 기사로서의 계율을 어겼기 때문이다. 어쨌든 알게 모르게 내 이야기 속에 휘말리게 된 분들에게 용서부터 빌어야 겠다.
좋든 싫든 십여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나와 내 가족에게 삶을 이어준 어른들을 욕되게 함은 인간의 도리가 아닌 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내 젊음과 나의 모두를 불태워버린 지난 날들이 하도 허무하여 여기 되지 못한 독백을 하노니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이럴 계기로 가진자의 즐거움을 위하여 받아야 하는 못 가진자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조금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사실 내가 이 글을 쓰고자 한 의도는 황금의 우산속에서 놀아나는 전천후 인간들의 비리를 고발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 소설에 관계되는 주변 인물이 아닌 독자라면 누구나 작자의 진의를 이해하리라 믿는다.
차 례
슬픔은 강물처럼
영아의 일기
그 해 겨울
아 내
산 넘어 산
씨받이
한 많은 소녀
변호사의 집
열 풍
어떻게 하나
비 정
어디로 가나
사미승
뜬 구름
아 빠
슬픔은 강물처럼
병원에서 실려 나온 그 날 저녁이었다.
문병 온 손님들이 슬금슬금 아버지의 방에서 나오고 한참 있다가 큰 아버지마저 나오셨다.
다들 슬픈 얼굴이었으나 웬일인지 큰 아버지만은 몹시 언잖은 듯 화난 표정이었다.
이제 병실에는 아버지의 회사에 공장장으로 있는 외삼촌과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가장 친한 서울에서 오신 손님 한 분 뿐이었다.
잠시 후, 외삼촌이 나와서 응접실에 있는 녹음기를 들고 들어 가시고 나자
큰 아버지는 연신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면서 휑하니 밖으로 나가셨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때 아버지의 유언을 녹음하셨다고 했다.
내용은 잘 모르지만 그 후 돌아가는 사정으로 보아 아버지의 공장은
외삼촌이 맡아 운영하기로 하고 큰 아버지는 일체 손을 대지도 못하게 했다.
아들인 나에게는 상속세를 물지 않으려고 그랬는 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 때 부랴부랴 공장을 외삼촌에게 매도한 것처럼 서류를 구며 놓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지 일 년이 조금 못 되어서부터 우리집에는
서서히 먹구름이 일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인사를 드리려고 할때마다 눈물을 감추려고 돌아 앉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 당시 나의 어린 소견으로는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온 것인 줄 알았으나
어머님이 기어이 입원을 하시게 되고 또 내어 놓지도 않은 집을 복덕방에서 둘러보려 왔을 때에야
나도 대강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오직 살아남은 가족을 위하여 혈육의 정을 끊으면서까지 믿고 맡겼던 공장을 외삼촌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버리고 어디로인지 자취를 감추어 버렸던 것이다.
아버지는 생시에 큰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북에서 단 둘이 월남을 하여 고학을 하면서 공부를 하였을 때는 그럴 수 없이 우애가 깊었다고 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로 다른 직업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부터는 서서히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아버지가 조그마한 목재소를 차려 운영을 하면서 돈이 조금 모이기만 하면
그것을 가져가서 사업을 한답시고 여러 번 날리신 후로는 더욱 발걸음을 멀리 하였고,
아버지도 더 이상 큰 아버지에게 돈을 대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버지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여 사상공단에 큰 재재소를 차리고
자가용도 구입하여 공휴일이면 낚시와 골프를 즐기곤 하였으나 어머니와 동부인 하여
야외로 놀러 가시거나 영화 구경 같은 것을 간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집안에만 계셨으며,
기까이에 있는 시장을 가는 외에는 외출이라고 하는 일이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외삼촌댁에 갔다가 조금 늦게 오신 어머니는
그날 따라 일찍 퇴근을 하신 아버지에게 거의 죽도록 매를 맞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거의 매일 통금 몇 분 전이 되어서야 돌아오신다.
혹시 일찍 돌아오시는 날은 의례히 여러 명의 친구들을 대동하고 돌아와서
화투나 마작을 하였으며, 그때도 어머니는 손님들 앞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필요한 음식은 중국집에서 시켜다 먹었으며 잔 심부름 같은 것은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시켰다.
때문에 기사 아저씨는 늘 통금 직전에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래서 한 달에 두어 명이나 다른 얼굴로 바뀌였다.
그들의 불만은 늦은 귀가 보다도 때가 되어도 밥을 먹여주지 않은데 있는 듯 했다.
그때 어머니의 하시는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로 모든 일은 아버지가 처리하였다.
심지어 회사에서 중역이 방문하여도 아버지의 명령 없이는 차 한 잔이라도 내어 오실 생각을
못하시는 어머님이고 보면 그까짓 기사 쯤이야 굶든지 말든지 아랑 곳 할 바가 아니였으리라.
지금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가 이처럼 불행하게 된 것은 아버지가 너무나 어머니의 활동을
막아 어머니를 바보로 만들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버지의 유언을 듣지 못하게 병실에서 쫓겨 난 그 길로 화를 내며 돌아가신 큰 아버지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셨다는 전갈을 받고 처음으로 시골에서 나의 집으로 오셨다.
큰 아버지는 미리 짐직을 하고 있은 듯 이렇다 저렇다 말 한 마디없이 묵묵히 장례를 치루었고,
역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다만 어머니의 무덤 앞에 쓰러져 있는 나를 일으켜 머리를 쓰다듬고 잠깐 품에 앉았을 뿐이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 우리 두 남매는 이 년만에 천애고아가 되어 큰 아버지의 뒤를 따라
시골로 갔다.
재산이라고 단 하나 남은 집은 무능하게 화병만 앓으시다 돌아 가신 어머니의 입원비와
그동안 생활비에 끌어다 쓴 빚에 넘어갔고, 남은 것이라고는 너저분한 옷가지를 넣은
가방 두 개와 내 책가방 그리고 내 동생 영아가 안고 있는 애기인형 하나 뿐이었다.
" 큰 아빠."
" 응."
" 엄마 있는 데 다 와 가 ?."
" 응 그래. 조금만 더 가면 된단다."
" 에에이 , 또 조금이야 ?."
영아는 엄마를 만난다는 기쁨 때문에 어제 밤에도 통 잠을 자지 않더니
오늘도 차창 밖을 내다 보면서 수없이 묻고 또 물었다.
그는 아직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줄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동안 쭉 가정부와 같이 집에 있었고.
그러다가 어머님 세상을 떠나시자 바로 병원예식장에서 공원묘지로 장례를 치루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요즘 오빠가 왜 전처럼 엄마가 계시는 병원으로 데리고 가 주지 않는 지 궁금하기 이럴데 없었고, 그래서 오빠가 몹시 밉기도 했다.
우리가 털털거리는 버스에서 내린 곳은 먼 산 아래로 옹기종기 붙은 초가집들이 버섯처럼
여기 한 무더기 저기 한 무더기 모여 있는 용당이라는 조그마한 시골이었다.
거기서도 자갈이 깔린 신작로를 따라 한참 들어 가서야 큰아버지 집이 있었다.
토담 옆으로 비스듬히 열려 있는, 대나무를 엮어 만든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운동장처럼 넓은 마당과는 대조적으로 낡고 나지막한 초가 두 채가 뒷 모퉁이에 ㄱ자로 서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실개천이 흐르고 집은 약간 높은 언덕위에 있어서 개울을 따라 저 멀리 굽어 돌아간
신작로라든가 먼 벌판을 지나 까마득히 보이는 대운산은 안개에 싸인 듯 구름위에 떠 있어 운치가
있었고, 외로운 우리 두 남매를 더욱더 슬프게 했다.
"엄마 ! 엄마 어디 있어 ?."
영아는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엄마부터 찾았다.
" 오냐 ! 너희들 오느냐. 먼 길에 얼마나 고생을 했니. 어서 들어가자."
큰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와 물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우리들을 반가히 맞았다.
" 큰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응 그래. 어서 들어가자."
" 영아 뭘해, 큰 어머님한테 인사 드리지 않고."
" 안녕....엄마는 요 ?."
" 엄마라니 ?."
슬픈 표정을 지우시던 큰 어머니가 영아의 물음에 당황하자,
큰 아버지는 얼른
" 네 엄마는 병을 고치려고 절에 가 계신단다."
" 절이 어딘데 ?."
"저 산 넘어...."
" 그럼 어서 절로 가아 큰 아빠."
" 거긴 넌 못간단다. 너무 멀어서 말이다. 병이 나으면 곧 오실텐데 뭘 그러니."
" 그래도 난 갈래 큰 아빠."
영아는 몸을 흔들며 때를 썼다.
엄마를 만나야 한다는 영아의 집념은 날이 가면 갈 수록 더 했다. 그래서 어머니의 죽음을 알릴까도 생각했으나 어린 가슴에 너무나 큰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닐까도 싶었고, 또 지금에 와서 어머니의 죽음을 믿어줄 것인지도 문제였다.
그럭저럭 세월은 갔다.
나는 그곳에서 2 km나 떨어진 시골 국민학교 5학년에 전학을 하였고, 영아는 오직 어머니의 그리움 속에서 식음을 전페하다 싶이 하여 나날이 여위여만 갔다.
처음 큰 아버지는 급변한 환경과 잘 먹이지 못하여 쇠약헤지는 줄 알고 읍내에까지 가서 무리를 해가며 여러가지 도시의 음식과 과자등을 사서 큰 아버지 식구 몰래 꺼내어 주시곤 하였지만 그도 오래 가지는 못하였다.
그것 때문에 우리들은 큰 어머니와 큰 집 식구들의 미움을 샀고, 더욱더 외톨이가 되었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영아는 언제나 신작로 모퉁이의 언덕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 오빠 !."
하고 뛰어나와 나를 맞았고, 그래서 우리 둘은 부둥켜 안고 울다가 큰 아버지 댁으로 돌아오곤 했다.
" 영아."
" 응 ?."
" 너 이제 여기서 날 기다리지 마."
" 왜 ?."
" 오빠는 네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걸 생각하면 공부가 안 된단다."
그래서 오늘도 수업시간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선샌님한테 벌까지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영아는 여전히 오늘도 그 자리에서 뛰어 나왔다.
" 제발 언니들 하고 놀라는 데 왜 또 나왔니 ? 자 어서 가자."
" 싫어. 난 좀더 엄마를 기다릴래."
" 엄마를 ...."
" 큰 아빠가 그러는 데 엄마가 이 길로 오신댔다."
" 엄마는 아직 안 오셔. 병이 다 나아야 오시지. 자 가자 어서."
영아는 큰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 지, 그 후부터는 아침밥을 먹고 나면 그 신작로 모퉁이를 배회하며 어머니를 기다렸다.
나는 시골 친구들 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내 동생 영아가 부질없이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방가 후에 가재를 잡는다든가 메뚜기, 혹은 개구리를 잡으며 어슬렁어슬렁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과는도저히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늘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뛰다 싶이 집으로 달려 왔으며, 그 때문에
" 어어이 부산 깍쟁이." " 야, 줄행랑."
혹은 무시 고랑지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받았다.
어느 해 초여름이었다.
그 날도 종래가 끝나기 무섭게 나는 책가방을 내저으며 먼 신작로를 피하여 영아가 기다리고 있는 지름길을 달렸다. 숱한 돌다리와 크고 작은 여러 개의 개천을 건너고 한참 동안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가서야 영아가 기다리고 있는 신작로 모퉁이가 저 멀리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
때마침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해 가던 검은색 짚차 한 대가 급 정거를 하더니 길바닥에 쓰러진 어린 아이를 싣고 있지 않은가.
" 아 ! 영아가 ...."
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내 동생 영아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잘 되지도 않는 말을 목구멍 안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허급지급 그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내가 그곳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자동차 바퀴가 자나간 납작한 인형과 빨간 구두 한 짝만이 처참하게 나딩굴어져 있을 뿐 내 동생을 실은 자동차는 그 곳에 없었고, 차가 일으켜 놓은 먼지마져도 바람따라 솔밭으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나는 책가방을 팽기치고 얼른 인형을 주어 먼지를 털며 자동차가 사라진 신작로를 계속 뛰었다.
얼마를 뛰었을까.
가끔가다 나를 앞질러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것도 같았다. 나는 언뜻 차를 타고 영아를 싣고 달아나는 짚을 뒤쫓아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지나가는 차가 오면 손을 흔들어 세웠고, 그래도 서지 않고 지나가면 또 그 뒤를 달렸다.
나는 눈물과 먼지가 뒤범벅이 된 얼굴로 차를 세우기란 술취한 사람이 택시를 잡는 것만큼 어렵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눈물을 닦고 태연을 가장할 겨를도 없이 눈물은 비오 듯 했고 마음은 더욱더 안타깝고 슬프기만 했다.
고개는 높고 끝없이 길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오던 길을 뒤돌아 보면서 달렸다. 때 마침 경사진 저 아래에서 짐을 가득 실은 트럭 한 대가 힘겹게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이제 손만 들고 놓칠게 아니라 뛰어가서 무조건 타리라 생각하고 가슴에 품은 영아의 인형을 허리춤에 끼웠다.
장터에서 오는 길인지 쌀 포대인듯 한짐은 다행히 앞으로 실려 있었다. 그러나 적재함은 높았다.
트럭이 내 옆을 지나자 나는 허공으로 팔을 허우적거리며 돌진했다. 그래서 겨우 적재함에 손을 걸어 죽을 힘을 다하여 한 발을 트럭 안으로 올려 놓았을 때 어쩐지 허리가 느쓴하고 허전한 것 같았다.
" 아 인형! 영아의 인형이...."
나의 허리춤을 빠져나간 인형은 가엾게도 자갈이 깔린 길바닥에 나딩굴고 있었다.
나는 트럭 안으로 넣은 발을 도로 내리고 적재함에 걸은 손을 놓았다.
깨어진 무릎이 쓰리고 아픈 줄은 흙먼지를 털고 뛰면서부터 알았다.
( 아 버스다 ! )
다행이 버스는 나를 태워주었으나 수중에는 돈 한 푼 없었다. 그래서 차장 누나에게 사정사정 하였지만 기어이 다음 정유장에서 내리라고 불호령이었다.
" 얘, 너 어디까지 가는 데 그러느냐 ?"
"부산요."
" 부산 어디 ?."
" 모르겠어요."
" 모른다니 ?."
" 내 동생을 찾으려가요."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 네 동생을 ?..."
나는 그 아주머니에게 대략 사정을 얘기했다.
" 그 참 안 됐구나 ! 그렇지만 그렇게 막연하게 네 동생을 어떻게 찾겠니."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차장 누나에게 나의 차비를 내주었다.
울산에서 부산으로 가는 완행버스는 굼벵이처럼 느렸고, 언제 어디서나 손님을 내리고 태웠으며 속 타는 내 마음은 조금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도 한이 차지 않았든지 범어사를 조금 지나서 기어이 고장을 일으키고 말았다.
손님들은 못다온 것 만치 요금을 환불 받았지만 나는 예초에 반 차비를 내었기 때문에 환불을 해 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남들처럼 다음 차를 기다릴 수 없는 형편이라 나에게 차비를 내어준 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 아니 어떡하려고 ?."
" 우선 온천장에 가서 병원부터 찾아가 보겠어요."
" 그래, 그게 좋겠구나 ! 아무래도 치료부터 해야 할테니까 어디 가까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온천장은 여기서도 꽤 먼데..."
아주머니는 다음 차가 오거든 함께 타고 가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신세를 지기도 미안할 뿐 아니라 언제 올지도 모르는 버스를 한가롭게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어이 떠나겠다고 하니, 아주머니는 그 때 돈으로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건빵 열 봉을 살 수 있는 지폐를 내 손에 꼭 쥐어 주셨다.
나는 친절한 아주머니와 고장 난 버스에서 내린 많은 사람들을 뒤에 두고 뛰기 시작했다.
기찰에서 온천장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는 않았다. 그러나 언제 해가 넘어갔는 지 어느새 집집마다 전등불이 들어와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통금 예고 싸이렌이 울린지도 오래다. 이제 통금이 눈앞에 다가오지 않았더라도 깨어진 무릎과 후들거리는 다리가 더 이상 허기진 몸을 지탱할 수가 없도록 하였다.
여기가 어딘가 ?
나는 전신주를 등진 채 힘없이 주저앉았다. 배에서 쪼르륵 나던 소리도 지쳤는 지 몹시 쓰리기만 했다.
초여름이라고는 하나 밤 바람은 땀에 젖은 내 몸에 으스스한 한기를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나는 영아의 인형을 겨뜨랑이에 기고 상의 주머니에 두 손을 찔렀다.
( 아 ! 이 건 ?." )
눈깔 사탕 두 알이 오른 손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오늘 아침 버스를 타고 가라고 큰 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산 것이었다. 큰 아버지는 가끔가다 학교가 늦을 때 차를 타고 가라고 조금씩 돈을 주었고, 나는 그 돈으로 사탕이나 과자를 사서 영아를 주었으며 대신 학교는 뛰어서 갔다.
사탕을 보니 입 안에 가득 침이 고이며 또 다시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다.
( 먹어 버릴까 ? 아니야. 영아를 줘야 해 !.)
그렇게 수십 번 되뇌이다 나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여기가 어딜까 ?
나는 견딜 수 없는 오한 때문에 눈을 떴다. 날이 새는 것인지 어두워지고 있는 것인지 거리는 안개에 싸인 듯 희뿌옇게 어두웠고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들이 가끔 지나가기도 했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마음 뿐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 왜 이럴까 ? 영아를 찾으려 가야 하는 데 )
나는 어제 밤 영아를 찾으려고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얼마나 헤매었는 지 모른다. 그러나 병원마다 한결 같이 그런 환자는 없다고 했다.
나는 사탕이 녹아 끈적끈적한 손으로 다리를 두더리고 주물러서 겨우 전신주를 잡고 일어났다. 그런데 이제는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한 발자욱 내 디디려다 풀썩 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 어 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슬에 젖어서인지 옷에 묻은 먼지는 털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본능 때문인지 몇 번인가 반복을 하다가 걸음을 옮겼다.
멀지 않는 곳에서 전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조심스럽게 담벼락을 의지하며 자동차 소리가 나는 쪽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 아 병원이다 !"
큰 길로 나오니 <서면내과 병원>이라는 간판이 아직도 꺼지지 않은 외등 아래 보였다.
나는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전차길을 건너 병원으로 달려갔다.
" 여보세요. 여보세요. 문 좀 열어 주세요."
주먹으로 수없이 문을 두드렸으나 대답이 없다. 생각 같아서는 발길로 걷어차고 싶었지만 깨어진 무릎 때문에 발이 나가주지 않았다.
얼마를 두드렸을까. 한참 후에 문 따는 소리가 나더니 간호사인 듯한 누나가 눈을 비비며 도어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 여기 혹시 교통사고를 당한 영아라는 아이가 ?..."
" 뭐 ?... 아이 참 기가 차서 ! 넌 한글도 모르니 ? 여긴 내과 병원이야, 내과병원."
하고는 문을 탁 닫아 버렸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할 틈도 주지 않는 누나를 야속하게 생각하며 나는 힘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열차를 타려 가는 지, 오는 손님의 마중을 나가는 것인지 부전역을 향해 제법 많은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우유인지 콩국인지 구수한 김을 무럭무럭 피우며 리어카를 밀고 가는 아저씨의 뒤를 따라 망개떡 장수 할아버지도 요렁을 흔들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또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다.
" 아저씨 그거 한 그릇 얼마예요 ?."
" 십 환이다. 한 그릇 줄까 ?."
" 아, 아니에요."
" 얘 많이 줄께. 마수해라."
죽장수 아저씨는 리러카를 내 곁으로 밀고 오며 더 이상 묻지도 않고 국자로 양은 그릇에 죽을 퍼 담았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그것을 받아 그야말로 게눈 감추 듯 먹어 치웠다.
" 자 좀 더 묵어라. 니 배 많이 고팠는 갑다 !.
"아니에요. 이젠 됐어요."
" 아니다. 이건 돈 안 받는다. 어서 더 묵어라."
처음 보다는 좀 적었지만 그래도 양은 그릇에 가득히 퍼주는 죽을 또 다시 깨끗하게 비웠다. 가만히 생각하면 얼마만에 먹어 보는 음식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어저께 학교에서 도시락을 먹은 후 처음이었다.
나는 죽 한 그릇 값을 제한 거스름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배는 좀 부른것 같고 동은 트기 시작해도 역시 앞은 막막하기만 했다.
아아 어디로 가야 하나. 이젠 돈도 이십 환 밖에 없다.
내가 동생을 찾아 부산으로 내려 온지도 얼마나 지났는 지, 첫 날은 전신주 아래에서 잤고, 둘째 날은 포장마차 안에서 그리고 다음 날은 본역 대합실에서 잤다.
첫 날 아침은 단팟죽으로, 그 다음 날은 국수로, 또 그 다음 날은 건빵 한 봉으로, 쭉 하루 한 끼만으로 끼니를 때우며 부산 시내의 병원이란 병원은 모조리 뒤지다 싶이 하였지만 동생은 긑내 찾지 못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내 동생을 찾는단 말인가. 혹시 죽어서 묻어 버리지는 않았는 지. 자꾸만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았다. 어딘가 살아서 엄마와 이 오빠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만 믿었다.
구덕산 기슭에 산 그림자가 내리기가 무섭게 한 집 두 집 창 밖으로 전등불이 비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거리는 어둠에 싸였다.
나는 운동장을 종점으로 발길을 돌려 보수천을 따라 힘없이 걸어 내려왔다.
보수동 흑교를 지나니 영남극장이 나왔다. 막 영화가 끝났는 지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어느덧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전등불이 환한 극장 앞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멍하니 서서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영남극장 옆으로는 보수천이 흐르고, 개울 안으로 늘어뜨린 수양버들의 실가지들은 초여름의 밤 바람에 물결처럼 일렁였다. 그 때만해도 보수천에는 제법 많은 물이 흘렀고, 비온 다음 날은 고기떼들이 올라오곤 했다.
( 야 저기도 사람이 사는 구나 ! )
다리 믿 축대 옆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그 앞 개울에서는 무슨 음식을 끓이는 지 연기가 무럭무럭 나는 깡통 화득 위에 냄비 같은 것이 얹혀져 있었다.
나는 무의식 중에 불빛을 따라 더듬더듬 다리 밑으로 내려 갔다.
하천에서 제법 높게 쌓아 올린 돌무덤 위에는 옆으로는 축대, 앞으로는 판자조각과 볼박스를 쳐발라 바람벽을 만들었고, 출입구는 거적대기로 문을 대신한 듯 위로 돌돌 말은 채 철사로 묶여 있었다. 그 안으로는 새까맣게 끄얼린 남포등을 가운데 두고 너넛되어 보이는 거지들이 저녁을 먹는 지 깡통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입맛을 다셨다. 오늘도 마지막으로 남은 돈을 가지고 건빵 한 봉을 사서 먹은 후 아직 음식이라고는 입에 낳어 보지 못했다.
" 야, 이 잡것아. 네 눈깔엔 동물원으로 보이냐 ?."
나는 동시에 엉덩이를 걷어 차이며 앞으로 꼭구라졌다.
" 얼래, 요 쥐벼룩만한 놈 엄살 떠는 거 좀 보소 !."
새우처럼 움추려 든 나의 등에 구두발이 떨어졌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 맞은 개구리 꼴이 되어 쫙 뻗었다.
" 어어이 사파리. 왜 그래 ? 어떤 놈이야 ?."
안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 싸가지 없는 놈의 새끼가 글쎄, 우리 호텔을 기웃꺼린당께."
"어떤 놈이야. 이리 끌고 와."
" 야, 이 놈우 자석아. 싸게 일어 나더라고."
나는 또 엉덩이를 걷어 차였다.
내가 뻗어진 팔로 땅을 집으며 일어 나려고 안간힘을 쓰자, 놈은 내 목털미를 움켜쥐고 안으로 질질 끌어 들였다.
" 야, 우리 왕초님이시다."
놈은 그 앞에 꿀어 앉으라고 했다.
" 야 ,내 말 안 들려."
"......."
" 야 이 것 봐라. 임마 담배씨만한 놈이 도끼 눈으로 째려보면 어떡하겠다는 기여 ? ...
그래도 이 새끼가...."
깡통에 든 국물을 마시다 말고 판자조각을 깔고 앉은 놈이 묵직한 미재 스푼으로 내 머리를 깠다. 이어서 눈 앞이 번쩍하더니 여기 저기서 주먹과 발길이 날아왔다.
" 야, 그만들 해라."
그 한 마디에 모두들 깡통을 떨그럭거리며 제자리로 돌아 가 앉았다.
" 그래. 너 좋은 대로 앉아라."
왕초가 그러자 사파리는 제풀에 화가 나서
" 야, 고갤 들어."
하고, 빽 소리를 첬다.
" 너 이름이 뭐야 ?."
" 강희..."
" 뭐, 강희 ? 그럼 넌 계집애냐 ?."
" 아 아닙니다."
" 그런데 왜 강희냐 ? 난 또 계집애 같이 생겼길래 계집앤 줄 알고 깜짝 놀랬지 !."
" 왕초님 실망이 크시겠지라우 "
사파리란 놈이 얄밉게 씩 웃었다.
" 짜식 주둥아리 좀 닫아...그래 성은 강가고 이름은 희란 말이냐 ?."
" 아닙니다. 성은 이갑니다."
" 뭐라고, 이씨라고 ? 그래 어디메 이씨고 ?."
옆에 앉은 놈이 얼른 물었다.
" 짜식 저거 종씨라고..."
또 같은 또래의 다른 놈이 그 놈의 머리를 툭 첬다.
" 어더메 이씨고 말이다. 전주가 불국사가 ?."
" 경주요."
" 이 자석아 경주나 불국사나 거기 그거 아이가."
그러면서 여러 놈이 와 하고 웃었다.
왕초는 심문하듯 다시 물었다.
" 그럼 너의 집은 ?."
" 없습니다."
" 없다니 ? 보아하니 집없는 천사 같지는 않은데."
그럼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웅촌에서 왔다고 했다.
" 웅촌이 어딘데. 이 촌놈아 독똑히 좀 대라."
옆에 있는 똘만이들이 놀리듯 욱박질렀다.
" 울산 제일 끄트머리에....."
" 이 멍청아, 어느 쪽으로 ?."
" 부산 쪽으로요."
' 그래, 그럼 웅촌이라는 데 너의 집이 있겠구나 ?."
" 없습니다."
나는 거기에 있는 큰 아버지 댁에서 살았다고 했다.
" 그러고 보니 넌 학교에도 다닌 모양인데 가출을 했구나. 호강에 받혀서 말이다.
" 아닙니다."
" 이노무 자석 봐라. 아닙니다가 니 18번이가 ?"
내 머리에 사파리의 알밤이 날아왔다.
나는 내 동생을 찾으려 내려 온 자초지종을 얘기 했다.
" 그래. 그 안 됐구나 !."
모두들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동정이 가는 지 시무룩한 얼굴로 다시 깡통을 떨그럭거리며 제 자리로 돌아 가 밥을 먹기 시작했다.
" 얘 짱구야. 야도 밥 좀 줘라."
" 야."
짱구는 빈 강통을 들고 불이 나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금방 김이 무럭무럭 나는 꿀꿀이 죽을 퍼 들고 들어와서
" 야 묵어라 . 어서.'
하고,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남포불이 어두워서인지 다시 고인 눈물에 가려서인지 처음에는 받아 든 깡통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 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고소한 것도 같고, 역겨운 것도 같은 냄새가 물씬 풍겼다.
" 강희씨 고거 쪼깨 들어보소, 그란께 고개 바로 이 호텔의 특미 카레라이스라는 것이니께."
나는 목례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전라도에서 왔다는 더벅머리한테 스푼을 받아 꿀굴이 죽을 퍼 먹었다. 처음에는 구역질이 나고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가 않았으나 나중에는 먹을 수록 혀끝을 감치는 맛이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왕초를 재외하고는 각자 자기의 그릇을 닦아서 선반 위에 얹어 두고 남포불을 둘러사고 앉았다.
" 성님, 다 모있심더."
" 그래, 그럼 우리 식구들을 소개해야지. 야, 짱구 니가 소개시켜라.."
" 예, 성님!.... 그라머 오늘 새로 온 꼬마한테 우리 호텔 종업원들을 소개하겠다." 야 이 촌놈아. 이 불 앞으로 좀 나오거라."
"......."
" 어어 야 봐라. 이거 절단 낫데이 ! 저 노무 자석이 아를 영 조지 났구나 !."
옆에 앉은 사파리의 귀사대기에서 철썩 소리가 났다.
" 아 아닙니다. 이 무릎팍을 제가 트럭에서 뛰어 내리다가 다친 겁니다."
그동안 약 한 번 발라보지 못한데다 계절이 계절인만큼 두꺼운 딱지 믿엔 몹시 곪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것이 사파리 놈이 엉덩이를 걷어차는 바람에 앞으로 넘어지면서 또 다시 무릎을 깍기 때문이었다.
나는 치료라고는 이 다리 밑에서 처음 받았다.
무릎엔 마치 반쯤 열리다만 솥뚜껑처럼 굳어진 상처의 딱지가 비스듬히 밀리다 말고 붙어 있었다.
" 야 임마야, 아파도 좀 참아라 카이. 요런 거 아푸다고 기양 놔 두먼 이 밑에 또 고름이 생기는 기라."
친절하게도 딱지를 꼬챙이로 걷어 올리고 손톱으로 뜯어 내며 때 묻은 천 조각으로 피가 나도록 문질러 닦은 후 쓰다 남은 붉은 물약을 흥근히 고이도록 부어 주었다.
" 자 인자 됐다. 이래가 그냥 있거라. 여름 살에 처매먼 또 곪는 다."
짱구는 약병을 꼬마에게 건네주며
" 자, 그라머 다시 소개를 시작하겠다. 야는 너거나 내나 다 아는 사실이고, 그런데 니 이름은 꼭 가씨나 이름 같아서 퍼떡 외왓는 데, 어서 왔다 켔째 ?."
" 웅촌이라는 시골 입니다."
" 참 그래. 웅촌이라 켔제. 야들아, 봐라. 야는 웅촌에서 지 여동생을 찾아러 온 이 강희씨다. 야를 보나따나 지 동생는 억시기 이뿔끼다. 너거들도 앞으로 밥 얻으러 댕기며 잘 보거라. 혹시 야 동생을 키우고 있는 집이 있는 가. 알았제."
그르면서 짱구는 누른 이빨을 들어 내고 씩 웃더니 왕초를 선두로 그들이 말하는 호텔 종업원 하나하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감히 부 왕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왕초 다음 자리에 군림했으며 고향도 생일도 더욱이 성 같은 것도 정확히 몰랐다. 누가 불러주었는 지는 몰라도 이름이 진국이라는 것과 경상도 사투리를 많이 쓰는 걸 보면 남쪽 지방에서 잔뼈가 굵은 것만은 사실인 듯 했다. 그는 짱구라는 별명 그대로 아무리 억수 같은 비바람이 쳐도 눈 하나만은 끄떡없이 젖지 않게 이마가 앞으로 툭 불거져 나와 있었다.
그 밑으로는 사파리.
그 놈은 나이는 나와 비슷하나 삼 각형의 얼굴에 위로 치껴 째진 눈 꼬리가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놈은 완전히 사파리가 아니다. 눈 동자를 한 곳으로 모으면 사파리가 되었다. 그는 술집 출신의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고, 숱한 계부 아래서 전전하다 기어이 집을 뛰쳐 나온 깡마른 체구의 소년이었다. 출신은 역시 그의 18 번인 목포의 눈물인 듯 했다.
네 번째로는 계모의 학대와 배가 고파서 이웃집 제사떡을 훔쳐먹다 쫓겨나온 식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내 또래의 만길이.
그는 강원도인지 어딘지 잘은 몰라도 어느 광산촌에서 장돌뱅이와 배가 맞아 달아난 어머니를 찾으려 나왔다가 길을 잃고 거지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모두 6 명. 거기다 계집애 같이 생겼는 데다 이름조차 비슷하다고 하여 그날로 당장 희야라는 별명이 붙은 나까지 합하면 모두 7 명이 되었다.
나의 종씨 만길은 그날부터 나에게 몹시 친절하게 굴었다. 자기 옆에다 거적대기 위에 볼박스 한 장을 더 깔고 이불은 자기와 함께 덮었다. 더욱이 무릎팍에 누더기가 닿으면 상처가 아플테니 자기를 향해 옆으로 눕게도 했다.
이튿날 강희가 눈을 떴을 때는 모두들 어디로 갔는 지 다리 밑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이때다 하고 도망을 치려고 누더기 속에서 살며시 빠져나와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 분명히 여기다 두었는 데 ?.)
어제 밤 머리맡에 놓아 둔 영아의 인형이 보이지 않았다.
강희는 혹시 어느 놈이 감추어 놓은 것이 아닌가 하여 넝마덩이와 이불을 이리저리 뒤져 모았지만 역시 없었다.
" 얘, 인형이라면 찾을 생각을 말아라."
" 네 ?."
강희는 깜짝 놀라 뒤돌아 보았다.
왕초였다. 그는 개울에 나가 세수를 하고 돌아오는 길인지 목에는 타올이 걸려 있었다.
" 계집애도 아닌 것이 되지 못하게 인형은....."
" 그건 제 동생 건데요."
" 동생거래도 그렇지 임마. 네 놈도 이제 정신 똑 바로 차리고 강하게 살아갈 궁리나 해. 그리고 내 이 참에 말해 두겠는 데,도망 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말아라. 들어 올 때는 네 발로 들어 왔어도 나갈 때는 그리 안 되는 게 이 호텔의 법도니까."
왕초는 어제 밤과는 딴판으로 무서운 얼굴을 했다.
( 인형을 찾을 생각을 말라니. 그렇다면 왕초가 인형을 없에 버렸단 말인가.)
강희는 눈물이 핑 돌았다.
" 아저씨 정말 인형을 버렸습니까 ?."
" 짜식 아저씨라니 !."
강희는 눈 앞에 불이 번쩍하며 모로 쓰러졌다.
" 왕, 왕초님 ! 정말 내 동생의...."
" 그래 임마. 정 의심이 나거든 저 물 속을 뒤져 봐."
왕초의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 다리 밑 하꼬방에서 기어 나온 강희는 그대로 개울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는 삼 일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다리 밑에서 치료만 하고 지냈다. 마큐름만 발라서 그런지 상처는 좀처럼 났지 않았다. 자꾸만 뚜껍게 딱지가 앉았고, 그것을 때어 내면 뻑뻑한 고름이 쏟아져 나왔다. 또 상처부위엔 늘 흰 해가 끼어 있었다.
그래서 만길은 어디서 구해 왔는 지다이야찡 가루를 머큐름 위에다 뿌려 주었지만 딱지는 더욱더 두텁게만 앉았다.
" 야 아무래도 그래가는 안 되겠다. 인자 이 고약을 한 번 발라 봐라. 해가 자꾸 끼어 사이 우짜겠노,어잉."
어느 날 놈은 난데없이 골탕 같이 새까만 조고약 두 봉지를 가지고 와서 숯불에 녹여 강희의 두 무릎위에 붙혀 주었다.
" 앗 뜨거워 !."
" 야 좀 참아라. 어서 나아야 일도 하고, 니 동생도 찾으려 갈꺼 아이가."
처음에는 못견디게 따근따근 하더니 차츰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우선 상처 부위에 조여드는 것이 없고 푹푹 수시던 통증도 거짓말 같이 없어졌다.
나흘째 되던 날 그는 가만히 앉아서 똘만이 들이 얻어 온 밥만 먹고 있기가 송구해서 그도 함께 구걸을 하러가겠다고 했다.
" 너 그래 가지고 제대로 일을 하겠느냐 ?."
" 네, 이젠 많이 나아서..."
' 그럼 만길이를 따라 다니며 일을 배우도록 해라.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왕초의 말이었다.
강희는 대행으로 생각했다. 뱀 눈 같은 사파리나 심퉁스런 짱구에게 맡겨졌더라면 얼마나 무서웠을까.그는 그 길로 당장 밥을 얻으려 다닐 때 쓰는 찌그러진 깡통 하나와 자기 키보다 엄청나게 큰 소쿠리 한 개를 우선 지급 받았다. 누가 메었던 것인지 멜빵은 느쓴하여 걸머지고 일어나도 넝마광주리는 땅에 그대로 있었다. 그것을 친절하게도 만길이가 끈을 줄여서 그의 어깨에 어느정도 맞게 해 주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기가 무섭게 깡통을 팔에 걸고 다리 밑을 나섰다.
" 니 우는 기가 ?."
"....."
" 니 울지마라. 그래도 배고푼 것 보다 났데이. 하기사 나도 처음에는 그렇더라. 그렇지만 몇 일만 지나문 이것도 재밌다 너."
그러면서 그가 쓰고 있던 뚜껑 없는 밀짚모자를 벗어 강희의 머리에 깊숙히 씌워주었다.
" 강희야. 내 니한테 부탁이 있는 데, 꼭 들어 주어야 한데이."
" 부탁이라니 ?."
" 니 정말 여기서 살끼가 ?."
" 어쩌겠니, 당분간 내 동생을 찾을 때까지라도."
" 그래. 그럼 내 안심했다. 만약에 니가 도망을 치면 나는 왕초한테 맞아 죽는 기라."
강희는 차차 거지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그를 포함한 똘만이 넷은 아침 일찍 깡통을 차고 밥을 얻으려 제각기 맡은 구역을 쭉 한 바퀴 돈다. 그래서 구걸을 해 온 음식들은 대게 성한 것과 한물 간 것으로 구분하여 싱싱한 것은 아침으로 먹고 변하기 쉬운 것은 큰 깡통에 넣어 꿀꿀이 죽을 끓여 두었다가 점심과 저녁으로 먹었다. 그러니까 구걸은 아침에 딱 한 번 있는 셈이었다.
짬뽕으로 아침을 때우고 나면 넝마통을 메고 각자 맡은 일터로 나간다. 그들은 길거리에 흩어져 있는 넝마가 아니더라도 돈이 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슬쩍슬쩍 광주리 안으로 집어 넣었다.
그러나 강희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그래서 왕초에게 숱한 매도 맞고 꿀꿀이 죽을 배당 받지 못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였다. 밥을 굶길 때는 외출도 중지 시켰다. 그것을 허락하면 금식의 효과를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만길은 남의 물건을 실례하는 방법과 도망치는 요령 등 여러가지 기술을 가르쳐 주었지만 강희가 실행을 해보려고도 하지 않자, 이제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자기가 좀더 부지런히 노력을 하여 제 못을 떼어 그에게 나누어 주고 왕초의 벌을 면하게 했다. 그래서 여러번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겼고, 그럴때마다 그는 하루 바삐 그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그가 그곳에 머무러게 된 것은 왕초의 보복이무서워서 보다 이 집 저 집 구걸을 하며 다니다 혹시 그의 동생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아의 소식은 아지도 묘연한 채 세월은 흘러 오늘은 희긋희긋 첫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강희는 보수동 검정다리 위에 내려 놓은 넝마통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만길을 기다리고 있었다.해질 무렵이면 언제나 거기서 둘이 만나 만길이 훔친 물건들을 나누어 받고 그리고 그날 수입 중 맛난 것이 있으면 서로 나누어 먹으며 "나의 살던 고향은"...,을 부르며 놀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넝마통을 메고 어슬렁어슬렁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오곤 하였다.
왕초는 거의 매일 외출을 했다. 그는 외출을 하기전에는 반드시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오래토록 했다. 그리고 나서 낮에 칼날 같이 다려둔 쫄쫄이 미군 작업복에 검정 물을 드린 야전 잠바를 갈아 입었고, 머리는 기름독에 빠진 듯 희미한 남포불에도 반들반들 윤이 났다.
왕초가 밤마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고 오는 지 아무도 몰랐다.
다만 그가 외박을 하지 않고 돌아오는 날은 반드시 강희를 깨워서 미군 담요가 폭신하게 깔린 자기의 이불 속으로 들어오게 하고 이상한 짓을 시켰다. 그것은 참으로 수치스럽고 뱀을 만지는 것처럼 징그러웠다. 그도 또 왕초에게만 그 희귀한 짓을 당한 것이 아니였다.
처음 그가 왕초로부터 풀려나 제자리로 돌아와 누웠을 때, 그의 뒤에 누운 짱구가 끙 하고 자기 쪽으로 돌아 눕더니 슬며시 그의 허리춤을 까내렸다. 강희는 반사적으로 바지를 당겨올렸다. 그러자 놈은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모로 떠밀어 눕게 하고
" 짜식 바로 대지 못해."
귀에다 대고 속삭이 듯 위협했다. 그래서 그는 또 놈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강희는 밤이 되면 이 지옥 같은 생활을 벗어나려고 몸부림 쳤지만 놈들은 기어이 욕심을 체우고야 놓아 주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생김생김이 계집애처럼 곱고, 그래서 밤마다 고통스러운 귀염을 받았지만 날이 새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들 무섭고 쌀쌀 하게 대해 주었다. 그러나 만길만은 달랐다. 자기와 종씨라고 그런지는 몰라도 언제나 친 형제처럼 다정했다.
그러나 저러나 왜 여태 안 올까 ?
( 오늘 밤엔 극장 구경을 가기로 했는 데.)
그들은 밤이 되면 종종 극장구경을 갔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돈을 내고 들어가 본 일은 없었다. 매표구 옆에 기다리고 있다가 혼자 극장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 아주머니."
혹은
" 누나. 저 좀 데리고 들어가 주이소 예."
하고, 살짝 옆에 붙어서 들어가면 표 받는 사람은 그 분들의 아들이나 동생인 줄 아는 지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들은 꼭 극장에 갈때만 세수를 했고 옷도 좀 깨끗한 것으로 갈아 입었다. 그러니까 얼굴에 물을 찍어 바르는 일은 별로 없었다. 잘 해야 일 주일에 한 두 번이였다.
왕초는 될 수 있는 대로 세수를 하지 못하게 했다. 일을 나길 때, 거지는 거지답게 얼굴이 더럽고 행색이 꾀죄죄해야 동정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그 소굴에 들어와서 처음 구걸을 나갔을 때는 얼굴에 일부려 흙칠을 하고 누더기를 갈아 입은 후 왕초의 검열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 이상한데, 만길이가 웬일일까 ? 이렇게 늦은 일은 없었는 데.)
엉덩이에 찬기가 올라왔다.
( 내 동생 영아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
그곳에도 눈이 오고 있을까.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다. 넝마 칼꾸리로 시멘트 바닥을 톡톡 찍고 있던 강희는 팔소매로 얼굴에 흘러 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 오오 주여 ! 어디로 가면 내 동생을 만날 수 있습니까. 제발 영아를 만나게 해 주세요.... 아니지 ! 나는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이 나에게 동생을 찾아주실리가 없지. 더욱이 내가 학교에 다닐때 내 짝지를 보고 예수쟁이라고 놀리기까지 하지 않았는 가. 그렇다면 부처님요. 제발 내 동생을 만나게 해 주세요. 보고 싶은 내 동생을요. 저는 부처님을 믿지 않았지만 우리 어머니는 절에 자주 다녔습니다. 지금 당장, 아니 내일 모래라도 영아만 만나게 해 주신다면 저도 열심히 불교를 믿겠습니다.)
강희는 언젠가 어머니를 따라 연산동 물망골에 있는 마하사에 간 일이 있었다. 그 때 어머님이 부처님 앞에 절을 하라고 하였지만 듣지 않았다.
( 부처님요. 그때는 뜰 앞 곷밭에 있는 나비를 잡느라고 그랬습니다. 용서하세요.)
그는 지금 몹시 후회가 되었다.
" 얘 너, 강희가 아니니 ?."
"....."
" 얘, 강희야."
강희는 발딱 자리에서 일어나다 어깨에 걸어진 멜방 때문에 엉덩방아를 찍고 주저앉았다.
( 아, 소영이구나 !.)
그는 빵모자를 푹 내려 쓰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줄행랑을 첬다. 얼마를 뛰었는 지 그의 넝마통에서 날아 나온
종이 조각들이 낙옆처럼 거리에 나뒹굴었다.
" 얘,강희야. 잠깐 거기 서 봐."
" 난 강희가 아니야. 강희는 시골에 갔어."
" 뭐, 강희가 아니라고 ?...그럼 그얘가 시골에 간 걸 네가 어떻게 알아 ?."
소영은 그가 대영 국민학교에 다녔을 때 같은 반 아이었다. 둘은 짝지였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싸우기도 했고, 또 누구보다 친하기도 했다.
그의 집은 대연동이었다. 그런데 그가 여기는 웬일일까, 이사라도 온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친척집에 갔다오는 길인지. 강희는 걸음을 멈추고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팔소매로 훔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뒤쫓아오는 소영을 따돌리느라고 어느 골목을 어떻게 돌았는 지 경남 중학의 높다란 담벼락이 눈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어느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거리엔 아직도 간간히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땀이 식으니 오싹오싹 한기가 왔다.
강희는 다시 넝마 광주리를 메고 될 수 있는 대로 한적하고 어두운 담벼락을 끼고 걸었다.
그가 다리 밑으로 들어섰을 때 어쩐지 안이 조용하고 사늘한 느낌이 들었다.
( 모두들 저녁을 먹고 외출이라도 한 것일까 ?.)
그는 창고 앞에 소리나지 않게 넝마통을 내려두고 거적문 안으로 들어섰다.
( 어 어...?)
강희는 눈이 뚱그래져서 우뚝 멈추어 섰다. 무슨 일인지 왕초가 침대 방망이을 불끈 쥔 채 방바닥에 쭉 일열로 꿇어 앉아 있는 부하들을 잡아 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 너 이 새끼 이리 나와."
이유도 모르는 채 똘만이들 옆으로 꿇어 앉으려 가던 강희는 움짓 놀라며 죽어가는 얼굴로 왕초 앞으로 나갔다.
" 너 지금 몇 시야 ?"
" 네 ?."
" 지금 몇 시냐고 ?."
거지인주제에 시계 같은 것이 있을리 없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왕초는 강희에게 시간을 물었다.
" 이 자식아, 몇 신데 이제사 기어 들어오느냐 말이다."
그제야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해가 지기전에 일터에서 돌아와 어둡기 전에 왕초로부터 수집품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율법을 어긴 것이 생각났다.
" 요 쥐벼룩 같은 새끼. 작크가 고장난나 왜 말이 없어. 만길이 그 놈은 어디 갔어 ?."
" 모르겠습니다.
" 모르다니. 이 자식이 정말."
왕초의 솥뚜껑 같은 손바닥이 강희의 귀사대기에서 불을 일으켰다.
" 임마. 그래도 바른 대로 대지 못해."
" 정말 모릅니다. 저도 여태 기다리다가..."
" 가방은 ?."
왕초는 침대 방망이로 깡통등이 들은 사과 상자를 내리쳤다.
모로 쓰러진 강희는 뽈을 움켜쥐고 엉금엉금 바깥으로 기어나갔다.
" 다른 것은 ?."
문 앞에서 거적대기를 걷어 올리고 넝마통을 내밀어 보이자 왕초는 또 한 대 올려붙일 듯이 듬벼들었다.
" 야 내 말 안 들려 ? 다른 것을 내어 보라고."
" 저어 다른 것은 없는 데요."
" 이 새끼 봐라. 그럼 여태 어디서 헤매다 왔어 ?...그러고 보니 너 짝지를 버리고 영안가 뭔가 하는 네 동생을 찾으려 다니다허탕을 친 모양이구나 ! 그렇지 ?."
" 아닙니다. "
" 아니면 뭐야 임마. 이까짓 휴지 몇 조각을 줏어 오느라고 이 오밤중에 들어왔단 말이야 ?."
강희는 왕초가 걷어차는 넝마통을 뒤집어 쓰고 뒤로 나자빠졌다.
" 이 새끼 여기가 무슨 자선단체인 줄 아나. 이까짓 휴지 몇 조각으로 침식을 제공하게."
똘만이들은 만길이가 돌아올때까지 저녁도 굶은 채 꿇어 얹아 있었다.
왕초는 밤나들이도 중지한 채 여러번 밖을 들락거리더니 이제는 단념한 듯 모두들 일어나 저녁을 먹고 제자리로 돌아가 쉬게 했다. 그러나 다른 날처럼 외출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주지 않았다.
강희는 그날 밤 한 잠도 이루지 못했다. 만길이가 자기를 위해 도둑질을 하다가 잡혀간 것이 아닌가 하여 더욱 괴로웠다. 그는 그가 가급적이면 부랑아 단속반에 걸려 보호소로 끌려 갔으면 하고 속으로 빌었다.
이튿날 날이 밝았으나 만길은 기어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없는 다리밑은 텅 빈듯 허전하고 쓸쓸 했으며, 판자벽에 걸린 그의 학생 모자가 강희의 마음을 더욱더 슬프게 했다. 놈은 그것을 신주 모시 듯 했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영아의 인형을 소중히 다루는 것과 진배 없었다.
하루의 일과는 다른 날과 다름없이 시작되었으나 어제와 같이 떠들고 찌껄이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들 풀이 죽은 듯 일터로 나가는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그 후 강희는 요 인물로 지목이 되어 사파리의 감시 아래 다시 양아치의 생활에
들어갔다.
살을 애는 추운 겨울은 점점 깊어만 갔다. 그래서 웅크러진 사람들은 대문조차 꼭꼭 닫은 채 좀처럼 열어주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 호텔에도 계절의 불항이 온 것이다.
점차 수입이 줄자 왕초는 더욱더 신경질을 부렸고, 중간 간부들은 똘만이들을 못살게 굴었다.
더욱이 잡수입의 전부를 만길에게 의존하고 있었던 강희는 거의 매일 문책을 받았다. 참다 못해 하루는 사파리가 직접 지휘를 하여 날치기 작전에 들어갔다. 작전 지역은 역시 사람이 많이 붐비고 비교적 현금 거래가 많은 국제시장을 택했다.
그날은 제법 말쑥한 외출복 차림으로 학생처럼 구미고 나갔다.
사파리는 평상시의 복장으로 넝마통을 메고 깔쿠리를 휘휘 내저으며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 씨팔, 오늘은 재수 옴 붙었나, 와 이래 물주님이 안 보이냐."
사파리는 길모퉁이 구멍가게에서 슬쩍한 오징어 다리를 휘휘 돌리고 앂으며 투덜댔다.
" 씨팔 여기서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지갑찬 년놈들은 모두 택시를 타고 내 빼니, 이거야 말로 닭쫓던 뭐시기 신세 아이가. 이럴땐 역시 만길이 그 놈이 재격인데..."
만길은 쓰리가 전문이라고 했다.
" 제기랄 내가 어쩌다가 싹수가 노란 니놈을..."
제자로 두엇느냐는 듯 신세 타령을 하며, 그렇게 하게 한 왕초를 원망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했다.
그들은 국제시장을 한 바퀴 돌아 부평동 밀가루 골목으로 접어 들었다. 사업지역을 바꾼 것이다.
" 야 간다. 저기..."
얼마 안 가서 사파리가 갈꾸리로 강희의 어깨를 걸어 당기며 앞쪽을 가르켰다. 놈의 갈꾸리 끝에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왼손에 조그마한 보자기를 들고 바쁜듯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놈이 노린 것은 역시 오른 손에 들린 핸드백이었으리라.
사파리는 넝마통을 철렁거리며 불이나게 옆 골목으로 사라졌다.
강희는 놈의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20m 가까이 아주머니를 뒤따라 갔을 때,사파리는 언제 나타났는지 벌써 그 아주머니 가까이에 있는 휴지통을 뒤지는 채 하고 있었다.
이윽고 놈의 가까이에 아주머니가 다가 왔다. 그러자 그는 넝마통을 무겁게 메고 일어나는 채 두어 번 뒷걸음을 치면서 아주머니를 가로 막았다. 그때를 놓일세라 강희는 제빠르게 핸드백을 나꿔채어 줄행랑을 놓았다. 그러나 마음 뿐 다리가 후들거려 빨리 뛰어지지가 않았다.
" 도 도둑이야. 저 저놈..."
다행이 거리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강희는 용기를 내어 뛰었다. 뛰면서 그는 문득 어디서 듣던 음성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몇 개의 골목을 빠져 나와 또 다른 커브를 돌다가 어떤 사람의 자전거에 부딪쳐 넘어졌다.
( 아 이제 죽었구나 ! )
강희는 눈 앞이 캄캄했다. 그는 처음 누가 발을 걸어 넘어진 줄 알았다.
" 얘, 다치진 않았니 ?."
발길질이 아니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강희는 슬며시 떠던 눈을 다시 꽉 깜았다.
" 어 어..."
경찰이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조화인지 경찰 아저씨는 수갑을 체울 생각은 하지 않고 친절하게도 그를 일으켜 세우고 옷에 묻은 먼지까지 털어주며
" 얘 많이 다치진 않았니 ? 좀 천천히 다니지 않고 어찌 그리 무작스럽게 뛰어드냐."
" 아 예, 죄 죄송합니다."
강희는 뒤로 뭉기적뭉기적 꽁무니를 뺐다. 그래서 막 뛰어 가려고 하는 데 경찰 아저씨는.
" 얘 잠간, 이 핸드백은 가져가야지."
하며, 땅에서 줏어 든 핸드백을 강희 앞으로 내밀다 다시 이상한 얼굴로
" 근데, 이건 웬 거냐 ?."
강희는 또 다시 가슴이 철렁했다.
" 아 네, 우리 어머니가 이모집에 가시다 깜박...그래서 절더러 가져 오랬어요."
그렇게 더듬더듬 둘러대며 경찰 아저씨로부터 핸드백을 건내 받았다.
" 어 어.....!."
강희는 또 다시 움칫 놀라며 우뚝 섰다. 언제 쫓아왔는 지 그의 등 뒤에 핸드백을 날치기 당한 아주머니가 숨을 헐덕이며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 아이고 정말 죄송합니다. 아드님을 이렇게 놀라게 해서..."
그 말에 아주머니는 조금 당황한 듯하더니
" 아니에요. 얘가 너무 덜렁거려서...얘 어서 가자."
아주머니는 얼른 강희의 손을 잡아 당겼다.
그들은 한참 말없이 걸었다. 핸드백은 아직도 강희의 손에 있었다.
아주머니는 보수 국민학교 아래에 있는 만복당으로 강희를 데리고 들어갔다.
" 아저씨 여기 단팟죽 한 그릇과 빵 좀 주세요."
그렇게 주문을 하고, 아주머니는 구석진 테이불을 가운데 두고 그를 앉혔다.
" 죄송합니다 ! 아주머니."
" 괜찮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 네 동생은 찾았느냐 ?."
그 아주머니는 공교롭게도 그가 영아를 찾으려 부산으로 내려올 때 버스 안에서 만나 은혜를 입었던 여인이었다.
하필 그 아주머니의 핸드백을 들치기 하다니. 강희는 쥐구멍이 아니라 천길만길 나락으로 곤두박질 하고 싶었다.
" 얘야 고개를 좀 들어라. 그러고 보니 네 동생은 여태 찾지 못한게로구나."
" 네."
그때 주문한 음식이 들어왔다.
" 얘 먹어라. 먹으면서 얘기 좀 하자구나."
아주머니는 스푼을 쥐어주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 자, 그만 눈물을 거두고, 어서 식기 전에 먹어라."
강희는 그동안 지내온 일들을 울면서 얘기 했다.
" 그럼 여태 큰 아버지 댁에도 연락을 하지 않았단 말이냐 ?."
" 네."
" 그럼 쓰나. 얼마나 걱정을 하시겠니."
아주머니는 자기의 눈꼬리를 적시던 손수건을 강희의 손에 쥐어주며
" 내가 차비를 줄테니까 큰 아버지 댁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느냐 ?."
그는 역시 동생을 찾지 않고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 그렇다면 다시 다리 밑으로 가겠다는 거냐 ?."
강희는 무의식 중에 깜짝 놀라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